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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 - 시인으로 농부로 구도자로 섬 생활 25년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 / 도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올 해 백목련의 흰 꽃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 꽃이 필 때 동시에 나도 핀다는 것이다. 백목련의 꽃이 피고 다만 그것 뿐인데도 공연히 기쁘고 행복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중략>
우리의 몸 속 유전자에는 우리가 식물이었던 때의 기억이 분명히 남아있기 때문에 꽃 한송이가 피면 이웃 가지의 꽃도 동시에 피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꽃피워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남편과 나는 시골에 가서 농사 지으며 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것은 도시인이면 누구나가 꾸는 꿈일 뿐, 내게 현실이 되는 날이 올 리 없는 꿈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 헬렌 니어링의 책을 읽으면서 그게 꼭 꿈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좋겠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을 십년 혹은 십오년 안에 실제로 이룰 일로 생각하고부터는 이런 종류의 책도 그냥 읽히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내가 보고 싶어하는 부분- 단지 자연과 교감하고 찬미하고 사는 아름다움 혹은 낭만-만을 보고 말았을 것인데 , 텃밭을 가꾸고 산에서 내려와 밭을 헤집어 놓는 동물과 실랑이를 하고, 직접 집을 짓는 과정 등에 마음이 많이 갔다.
지네와 도마뱀과 거미가 나오는 지붕을 해체하는 부분이나 태풍 후에 끊긴 전기와 수도를 복구하는 공사 등은 농사 짓는 생활에 대한 동경은 결코 현실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다.
시골 생활의 아름다움 못지 않게 솔직한 섬생활이 묻어나는 일상을 읽을 수 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가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시인과 자연의 공감은 아름답다. 가미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뭐가 좋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영혼, 넋, 혹은 정수 그런게 될 수 있을까?
2000년 묵은 삼나무가 태풍에 쓰러졌을 때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는 아난처럼 울었다는 부분에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몇날 며칠을 자신이 죽으면 돌아갈 별을 찾는 부분에서 우주와 공감하며 사는 자연인의 '가미'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게 <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그가 가진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눈을 가지게 된 것, 그것이 진정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