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시대의 아리아
신종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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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시대의아리아
신종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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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소리를 문자화한다면 어떤 소설을 만날 수 있을까. 짐작할 수 없지만 이 소설은 가청의 영역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 파동까지도 동원되어야 가능할까. 낯설고도 매혹적인 시도의 소설집은 소설읽기의 전혀 다른 매력으로 나를 이끈다. 음악에 대한 소설이라면 작곡가와 소설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능수능란함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설정된 경계를 오고가는 것도 아니고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다. 소설을 읽고 있지만 서사를 따리가며 인물에게 이입되기보다는 문자를 해독하는 느낌으로 따라가며 정보를 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굉장히 특별한 독서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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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에 울려 퍼지는 참혹한 음성을 독특한 구성으로 쓴 <전자 시대의 아리아>는 실험적 시도(나에게는 낯선)와 치밀한 문장으로 특별한 소설이었다. 이 작가의 등단작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작품방향과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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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건물은 안팍으로 적막해보인다. 남아있는 소리는 하나뿐이다. 어둡고 넓은 지하층 로비안에 울려 퍼지는 단음절의 노래."
<전자시대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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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다, 직조하다의 행위에서 다양한 상상들을 배치한 <멜로디 웹 택스처> 또한 시선을 사로 잡았다. 베란다에서 음악으로 실을 잣는 거대한 거미라는 발상이 놀라웠다. 특히 2인칭으로 너를 호명하기에 읽는 내내 긴장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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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너를 부른다. 오차 없이 계산된 완전음정과 때로 고의성 짙은 불협화음들로. 이 수학적인 속삭임은 온몸에 돋은 생체 레이더를 교란한다. 그것은 위협처럼 다가오는 단발성 소음이나 경계할 필요 없는 잡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신호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기억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 지금은 잃어버린 기억. 예컨대 아름다움. 이 알쏭달쏭한 말의 실체가 무엇이었더라."<멜로디 웹 텍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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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칭시점의 호명은 누군가의 시선과 목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거미임을 인지하고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또한 <전자시대의 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이름은 '경성군사통일연구소'였으니까. 다시 읽으면서 의미망들이 직조되는데 이 특별한 호명은 독자를 빠르게 이 소설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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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낯설다. 하지만 여러번 읽음으로써 익숙해지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낯선상태로 감각, 특히 청각으로 음악 혹은 음향을 텍스트화하는 시도는 잊지 못할 독서경험이다.





#서평 #책소개 #추천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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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미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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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미로
천세진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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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처럼 깊은 눈을 가진 이야기꾼 미로에 대한 소설이다. 우연히 미로를 만난 외삼촌과 나의 이야기에 미로가 해준 이야기가 담겨있는 액자식 구성의 서사다. 돈도, 글도, 책도 없는 호수세계에서 왔다는 미로는 호수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세상의 이야기들을 구루할아버지로부터 듣는다. 독특한 설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미로와 같은 마음으로 이입하여 귀기울이게 된다. 호수세계라는 가상의 공간은 호기심에서 시작해 읽어갈수록 마음의 평화를 일으킨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곳이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미로는 기대와 걱정 속에서 이야기꾼을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 자욱한 안개를 뒤로하고. 이야기꾼 할아버지의 말은 여행에서 마음에 품은 나침반처럼 이야기꾼으로서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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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갖고 있지.
세상에 죽은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50~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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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라고 불리는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호수마을을 돌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미로의 여정은 꿈처럼 아득하다. 호숫가의 안개 사이로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들의 이아기가 여러 결을 담고 있어서 서사 이상의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마치 나도 그들과 여행하는 기분으로 환상동화를 읽는 마음이었다. 호수들의 이름도 참 아름답다. 바오밥호수마을, 두얼굴 호수마을, 소리 호수마을 등 하지만 가장 오래 시선과 마음이 머무른 곳은 그리움거울호수였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어쩌면 이야기를 하는 마음에는 그리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운 마음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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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은 소설에서 지나오는 느낌보다는 여전히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야기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고 그런 마음이 아름답고 투명한 문장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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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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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나의밤을떠나지않는다
아니에르노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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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는 어머니에 대한 간병과 문병의 기록은 그 시도만으로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자신에 대한 자책 그리고 때때로 절망하는 시간들을 대면하도 나약한 내면에 대해서 써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독자 또한 그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경계하며 멀게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아니에르노라면 어떨까. 생에 대면하는 용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하려는 힘과 선명한 포착은 늘 놀랍다. 장르는 소설이라고 하지만 읽다가보면 그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한다면 어떨까. 이 책이 궁금했지만 가볍게 시작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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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아니에르노가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죄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연민에 대해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루하루의 일기를 모았음에도 어머니의 병과 이를 바라보는 아니에르노의 복잡한 마음 때문에 슬픔과 감동이 이어진다.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는 말처럼 순수한 매일의 기록으로 구성되어있다. 어쩌면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눈에는 어떤 문학적 장치나 표현이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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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손으로 내 귀를 틀어막았다. 뭔가 끔찍한 구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의 어머니다.(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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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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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턱은 축 늘어져 있고 입은 항상 벌리고 있다. 나는 이렇게까지 크게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다.(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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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구절을 옮겼지만 이러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경험의 강도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어렵다. 어머니의 치매라는 현실을 고통을 아프게 받아들인 아니에르노는 죄책감과 좌절감으로 글을 남긴다. 어머니와 함께한 간병일기와 이어지는 문병일기는 생생하고 그렇기에 너무너 아프다. 동시에 그의 소설에서 다뤄지는 치매와 치매가족이 겪는 모습은 치매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어지게 했다. 기이하게 낯선 모습으로 세상과 단절되는 치매환자들을 무조건 나와는 무관하다고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치매환자에게도 삶과 정체성이 있고 과거의 추억과 함께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치매라는 이유로 개별성이 존중되지 않지만 치매와 함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존재와 관계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아니에르노는 절망의 기록이었다지만 나는 독자로서 그녀의 기록에서 진심을 읽었다. 그 투명한 문장들이 치매라는 안타까운 병을 함께하는 순간들에 이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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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는 어머니에 대한 간병과 문병의 일기를 기록한 아니에르노의 소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와

60대 여성운동가이자 학자의 시선으로 노년에 대한 사회과학적 에세이를 모은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이후의 페미니즘>을

두권의 책으로 소개합니다.
두 책 모두 딸의 시선으로 치매를 앓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 책입니다.

전자는 아니에르노의 솔직한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고
후자는 치매노인의 정체성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두권의책 #나는나의밤을떠나지않는다 #흰머리휘날리며예순이후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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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력적인 철학 - 아테네 학당에서 듣는 철학 강의
김수영 지음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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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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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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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방법은 많다. 개론서로 흐름을 훑으며 시작하거나 바로 원전을 찾아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흥미를 갖고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철학을 통한 사유의 힘이 일상에서 발휘된다는 것을 믿기에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에게도 철학의 깊이가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청소년기에 철학을 접했더라면 좀더 현명함과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아쉬움이 생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철학책을 추천하는데 누구나에게 환영받을만한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철학'이 갖는 복잡하고 난해한 이미지 때문일까. 다행히 철학의 매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이토록 매력적인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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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라파엘로의 명화 "아테네학당"에서 출발한다. 이 그림은 대단히 유명하다. 중심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리스를 비롯해 에피쿠로스, 디오게네스, 제논, 파르메니데스, 히파티아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그림속에서 찾는 재미와 손동작이나 소품 등으로 학자의 디테일이 표현되어 흥미롭다. 이전에 읽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이 그림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동작을 야구신호로 재미있게 상상한 대목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 그림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하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철학자의 정확하고 흥미로운 해설로 이어진다. 한편의 그림에서 책한권의 해설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을까. 누구나 알만한 명화로 시작하기에 진입장벽이 낮고 충실하고 핵심이 담긴 해설이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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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테네학당>을 그린 라파엘로와 그 시대에 대해 충실한 해설을 한 후에, 그림속으로 들어간다. 아테네학당은 가상의 공간이고 여기의 철학자들은 시공간적으로 모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파라엘로의 그림은 그 황홀한 상상을 가능케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적고있는 피타고라스, 사람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말하는 소크라테스, 편안한 복장과 자세로 홀로 있믄 디오게네스, 피타고라스 뒤에 우아한 모습으로 서있는 여성수학자 히파티아. 하나의 그림에서 서양철학의 시작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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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 철학이나 윤리과목을 수강할 예정인 고등학생, 철학논술을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추천한다. 무엇보다도 책으로 시작하기보다 그림으로, 흥미롭게 철학을 접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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