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 문학동네김영하의 문장은 잘 읽히고 매끄럽다긴장을 풀고 술술읽다보면 어느새 날이 잘 선 칼로 행과 행사이를 슥슥 베어내고 있는것같다연쇄살인범이 있다그는 본능적으로 살인을 한다이유는 없다 싸이코패쓰다이자가 향년 70세인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피도눈물도없는 냉혈한에게 애잔한 딸이 있다25년전 은희의 부모를 살해하고 희생자의 어린딸을 친딸처럼 아끼며 키웠다는 그자의 기억해마가 얽혀버려 만들어낸 상상이었다. 사실 그어린것마저 살해해 자기집 앞마당에 파묻었다.살인이 취미인 이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후로도 쭉 누군가의 생명을 베어내어 뒤뜰 대밭에 묻는다시신도 묻고 자신의 기억도 묻는다자기딸을 살해하려는 연쇄살인범이 은희의 목숨을 노리고있다며 있지도않은 가상의 파렴치범을 찾아다닌다누군가를 비난하는것은 자신은 드러내지못하는 추악한일을 그가 뻔뻔히 저지르기때문이란다자신안에 있는 비열함난 그것을 감추고있는데 타인은 그욕망을 행한다그래서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나의 내밀한 욕구를 배설한다김영하그는 미친듯이 행간을 달리고 앞을 내다볼수없는 안개속으로 질주해 시야를 가로막는다갑자기 고요해진 순간 공포가 들이닥치게 하는 작가이다
<여자없는 남자들>무라카미하루키/ 문학동네하루키 전작팬은 아니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신비한 매력이 있어서 다음책은 어떨지 기대를 갖게한다당연히 장편이라고 생각하고 ˝드라이브마이카˝를 읽고나서 ˝예스터데이˝를 읽었다.무언가 앞뒤가 맞지않는 인물이 나와서 앞장을 다시 펼쳐봤다. 아하 단편이구나.뒷이야기가 있을거라고 기대하고의문을 갖게하는 결말로 끝나는 7편의 단편들엔 어김없이 여자가 없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다른 사람을 안다는건 거짓이죠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게 가능할까요? 설령 그사람을 깊이 사랑한다해도˝˝우리 마음에 차가운 얼음달이 떠올라요˝˝무언가를 알수있다는건 불가능합니다.달의 뒷면과 같은겁니다. 볼 수도 없고 너무나 넓으니까요˝<사랑하는 잠자>를 뺀 나머지 6편에는 바람피운 아내와 이혼하거나, 사별하거나,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를 자기친구에게 소개하거나, 많은 여성과 이중연애를 하는 이상하고 찌질하고 이해할수없는 남자들이 나온다그들은 상처받는것을 두려워해서 여자와 진짜 사랑을 거부하고상처받았지만 태연히 아무렇지않은척 가장하기도하고소중한 사람에게 이별당할까봐 먼저 떠나는척 하기도한다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내면세계혹은 남자의 속마음을 보는 듯했다안그런척하면서 사실은 외롭고 약한존재들여자도 약한존재이긴한데여자들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속이진않는다여자들에겐 <독립기관>이 있어서 의지와 상관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대목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어느정돈 맞는 말이기도 한거같다어제 이동도서관에서 하루키<1Q84>도 빌려다놨다.요번꺼까지 하루키 3권 읽었는데 하루키는 쉽게 읽히지않는다. 작정하고 읽어야하지만 또 읽고싶은 묘한 매력이 있는 문장들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오주석 / 솔글 잘 쓰고 시 잘 짓고 뛰어난 음악가였던 김홍도는 익숙하지 않았다.내가 아는 김홍도는 <씨름> <무동>처럼 익살맞고 해학넘치는 풍속화를 그린 화가로 더 친숙했기 때문이다.김홍도는 실제로 음악의 대가요빼어난 시인이요당대의 명필들과 벗하던 뛰어난 서예가였다그는 정조의 신임을 받아 예외적이게 화원이라는 중인신분으로 안동 안기역의 찰방 벼슬을 지냈다.그는 자신의초가에서 지역문인들과 시서회를 자주 즐겼다. 작은 초가주변엔 좁지않게 느껴지는 탁트인 앞뜰과 초가를 호위하는듯한 기암괴석과 소나무들이 보인다.사방트인 마루의 시서회에 흥취가 달아올랐다양반문인들 앞에서 거문고를 타는 단원의 풍모가신선같다.그럴일은 없겠지만 날더러 단원의 그림중 하나 가지라면 <단원도>를 고르겠다.빨간깃털 머리에 꽂고 검정꽁지 기품있는 단정학이 넘실넘실 걷고있는 소박하지만 단아한 공간을 내옆에 두겠다.첫번째 그림 <포의풍류도>맨발에 당비파를 연주하는 단원의 프로필사진이다자신을 드러내는 자화상이기도하다 서책과 두루말이 화병 생황 주병 검 이런 소품들이예술가 김홍도를 말해주는듯하다그의 시를 보면 해맑은 향기가 난다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언젠가 베셀에 오래있었던 히가시노게이고 소설추리소설이긴한데 스릴이나 공포도없다. 그렇지만 추리소설의 미덕인 흥미와 반전을 가지고있다. 오래전 문닫은 나미야잡화점에 좀도둑들이 숨어들고 이곳에 시간을 거슬러 30년전 고민상담자들의 편지가 도착한다뜻밖에 카운셀러가 된 도둑들졸지에 예언자가 되어 훌륭한 상담을 하게된 세사람그들은 과거이면서 현재인 이곳에서 기적을 만든다상담을 받는자에게도 상담을 해주는자에게도 특별한 기적이 이루어지는곳이지만해답은 자신에게 있는것같다질문을 하는 동시에 상담자들은해답을 가지고있었다그답을 쥐고 쩔쩔매는 사람들은나미야잡화점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다
<행복한 클라시쿠스> /생각정원읽은지 몇달 지났다. 음악은 글로읽는게 아니지만 나는 이런다.이거 읽는다고 KBS클래식FM앱 받아서 날마다 들었다. KBS클래식FM앱은 명곡이라불리는 음악들이 다 들어있는 훌륭한 어플이다. 남들이 명곡이라 하는 음악을 들으면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 그냥 느끼는게 좋다는거다. 하지만 하나하나 기억해주진 못하겠다. 집에서 혼자 있는시간에 밥먹으며듣고 빨래널면서 듣고 베란다 오가면서 화분에 물주면서 듣는다.흘러나오니까 무심결에 듣다가 이거좋은데!하고 느낄땐 제목이랑 작가를 찾아본다.베란다에 나가선 화분옆에 내려놓고 음량을 올린다.(위아랫집에서 시끄럽겠다출근한시간이니 괜찬겠지?윗집 소음에 비하면 이건 예술이지 중얼중얼)소심하게 다시 음량 줄이고 듣고 물주고 가스불줄이러 들어가고 하면서 한달 내내 들었다그동안 클래식 귀가 트이진 않았지만음악을 듣는동안은 내게 평온함이 함께 했다책은 음악듣다가 읽다가 음악 찾아듣다가 하느라 느릿느릿 읽었다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야기를 많이도 들려주었다. 양언니 책에도 책갈피마다 빼곡이 적은 메모지들이 깃발처럼 꽂혀있다.타인의 감동을 듣는것이 나의 감동이 되는 순간이다.지금도 식구들이 모두 빠져나간 빈집에서클래식방송을 크게 켜놓는다.나 혼자만의 자유시간 속에서 함께한다고내가 클래식매니아는 아니다으막은 그냥 있는거다 조용히.말없이 내옆에 있어주는 친구가 필요한 순간에클래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