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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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슬픔과 고통은 기나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60갑자가 몇 번이나 되풀이 되는 그 긴 시간을 지나지 않은 이상 원한은 사라질 수 없다. 최소한 2갑자 이상 지나지 않으면 과거의 원한이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선이란 국호를 박탈당한지 110년이 다 되어 간다. 을사늑약을 생각하면 2갑자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조선이란 국가는 사라져도 조선이란 국가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겪은 고통의 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후예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직 40년도 되지 않은 광주의 아픔은 오죽하랴?

 

당시 그 잔혹한 기억을 평생 상처로 안은 자들이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절규에 탄식한다. 그들은 지난 기억을 떠오르는 것이 고통스러워하나,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사실이 잊혀 진다는 점이다. 고통의 순간을 간직하여 마음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침묵의 깊이만큼 삶에 짊어지는 아픔은 더욱 깊어만 간다. 인간은 한에 맺히면 죽을 때 두 눈조차 감지 못한다. 얼굴 표정은 모든 짊을 내리고 간 것처럼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원한과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 삶을 마무리한다.

 

그 표정을 보는 사람들의 슬픔이란,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는 가족의 상처는 어떻게 그 원한을 토로할 수 있을까?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들의 깊은 원한을 왜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하는 행동은 사람의 의지겠지만, 그것이 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인 것인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518의 슬픔을 담은 책이다. 1980517일 계엄이 발동되고, 전국은 군부독재의 통제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왜 광주인가? 지금도 전국을 돌아보면 가장 낙후된 지역을 찾아보라고 하면 강원도와 전남지역이다. 강원도는 산이 많고 군사보호구역이 많지만, 전남은 개발 자체가 안 되고, 목포와 부산을 비교하여 부산이 거리가 더 멀지만, 부산은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한국의 중심 교통이 되어 있다. 전남지역 21세기 초반까지 개발이 거의 덜 되어 있고, 인구도 많지 않다. 1980년대를 생각한다면 고속도로나 철도 등과 같은 교통, 전기, 통신 등 기본적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 바로 전남지역이다.

 

서울과 주변지역에서 군부독재를 저항하는 시위가 어느 순간 위축되었지만, 전남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소식이 제대로 전해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광주에서 저항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군인들의 비중도 전남지방보단 타 지방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만일 광주출신 군인이라면 당연히 광주시민이 폭도가 아니라 이래저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광주의 비극은 군부독재가 바라던 권력에 의해 희생된 지역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518 이전부터 한국근현대사를 정리하면서 부마항쟁과 1212사태 과정을 다룬다.

 

하나회라는 군대 내 사조직은 군사행정을 국방의 의무가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기 만들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육사출신 장교가 주축이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박정희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육사 내에도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을 계속 키웠다. 전방에 위치한 20사단 병력을 국토방위가 아니라 권력을 위한 총을 사용했고, 그들은 광주시민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반국가세력으로 지정하고 무참하게 학살했다.

 

아직도 518에 대한 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 국방부 및 외교부에서 생산된 비밀문서의 보안조치가 완료되면서 그 암울한 역사의 비극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광주에 침투하지 않은 것을 알았고, 광주시민이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져 가고 있을 때 수수방관했다. 오히려 북한에게 한국 상황에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국 영해에 병력을 배치하여 전두환 군부세력을 옹호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우방 국가이지 민주주의 정신을 공유하는 국가는 아니다.

 

이런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518에 일어난 잔혹한 학살이 결국 독재세력이 저지른 죄악임을 다시금 확인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개정판은 의미가 깊다. 광주의 비극이 1980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계엄군에 저항하거나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다시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평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도 그 기억은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책은 당시 존재했던 사람들의 진술을 비롯하여 외신기자가 촬영한 사진, 군사자료를 찾아내어 1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518일부터 도청이 함락되던 27일까지 말이다. 읽으면서 정말 끔찍한 사건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M16 소총을 군부에 저항하던 광주시민만 아니라 길가에 서 있는 어린아이와 임산부에게 사격했고, 여학생들의 가슴부분을 도려내기도 했다. 자신들끼리 오인사격으로 타격을 입자, 화풀이로 주변마을에 가서 마을청년들을 학살했다. 길거리에 7세 어린아이가 주검으로 변한 채 쓰러져 있었다.

 

거리에 무참히 쓰러진 시신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격했고, 죽은 사람에게 칼을 다시 찔려 확인사살을 했다. 게다가 시체를 제대로 묻어주거나 가족에게 인계해주지 않고 암매장을 했다. 5월 말이며 초여름이 시작되니,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하고, 날이 어느 정도 지나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원히 헤매는 영혼을 생각하자니 참으로 애석했다. 설사 시신을 인수해도 문제다.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상주가 되어야 했던 이들은 아직 얼굴의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멍하니 앉아있던 어린아이의 표정, 자신의 아들이 담긴 관을 잡고 통곡을 하는 노모, 그 장면을 보면서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절망의 시간은 이들의 운명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 버렸다. 이런 죄를 짓고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한 얼굴을 들고 다니고 있으며, 과거 자신이 저지른 죄가 두려워 그의 아이들에게 재앙이 갈까봐 종교에 빠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들을 용서할까?

 

그런 죄를 용서해주는 신이라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외쳐도 좋다. 신이 절대적 선의 기준이 된다면, 그건 신이 아니라 악마가 신이란 탈을 쓰고 군림하고 있을 뿐이다. 518의 기록은 세계 문화유산 UNESCO에 등재되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여 자유라는 이름을 건진 값진 가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인간의 피를 빨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인간을 억압하여 피를 흘리게 만드는 전체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조차 피가 필요하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다시 이런 피가 흘리지 않도록 518의 기록은 계속 기억되고 전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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