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
송광룡 지음, 이종국 사진 / 풀빛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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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내 블로그에 어느 누가 나의 포스팅에 덧글을 적었다. 나는 답글을 주지 않았으나, 주요요지는 조선 학자군주 정조의 죽음에 대해 독살설이 정식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덕일 작가의 서적인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지 않았으나, 보지 않아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덧글을 보는 순간 나는 굳이 답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필요가 없다면 왜 없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말해야 하고, 정조의 죽음이 최근 심환지와 정조의 편지가 공개되었다고 해서 정조독살설 자체가 부정되는 것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당시 노론 벽파와 남인 시파의 대립에서 채제공의 죽음 이후 정조의 죽음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가 정조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래저래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랫동안 같이 왕과 신하이라도, 정조는 심환지보다 채제공을 더욱 신뢰했다. 어찰을 주고받으며 예의가 없는 농담을 건네도 그것 자체가 독살설과 멀다고 하는 것이 수상하다. 독살설이란 것은 반드시 독약을 넣어 죽이는 것만은 아니다. 한의학자들이 정조의 죽음을 두고 어의 처방을 보니, 술을 많이 마시고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한국 남자 대부분인 스트레스와 과음으로 간암과 위암으로 고생하여 죽는 것은 맞으나, 정조의 죽음 등창으로 인한 패혈증 증세로 사망한다. 패혈증이란 인간의 혈액으로 세균이 침투하여 혈액이 부패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증세이다. 등창은 피부에 난 화농성 세균인데, 당시 집도한 어의가 침을 잘못 놓아 등창부위가 터지고, 침이 들어간 자리가 신체 내부로 들어가면 등창을 일으킨 세균이 패혈증 감염증세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바른 것이다. 독살이라 하여 뭐든지 약 안에 비산이나 독약을 넣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역사학도 아닌 기본적으로 미생물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의심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처방받은 약은 다른 각도로 보면 독이다. 하다못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조절을 위해 약을 처방하는데, 고혈압증세 환자에게 처방전으로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을 주며 심장쇼크를 일으킬 수 있고, 저혈압 환자에게 안정제를 처방하면 심장이 약하게 뛰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약이란 그런 것이다. 등창에 걸리면 몸에 열이 오르는데, 사람 몸에 열을 올리는 인삼을 처방한 점에서 독살설의 의문을 풀 수가 없다. 게다가 어의가 손을 떨거나 보통 의사 같이 아니하다면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임금을 진찰한 어의가 진료도중 임금이 죽으면 국문을 받지만, 그런 과정도 생략된 점에서 정조독살설을 부정하는 가설은 부당하며, 이런 과정을 역사학계 시각이란 말도 웃긴다. 한국사학계에서 대부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이병도로 시작하고, 이병도는 이완용의 후손이다. 을사오적의 후손이 한국역사학의 시초이고, 역사학 강의시간에 외부초빙강사로 일제강점기 조선사를 연구하고, 이병도 세력에 강의를 가르친 자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본다면 어느 것이 더 상식적으로 다가가야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째든 본래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두를 장식했으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저술한 이덕일의 글을 오늘 우연히 보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 조선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에 다산 정약용 선생을 손꼽는다. 그가 다산초당에서 머물러 큰 학업을 남길 때,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전이 흑산도에 남아 <자산어보>를 남길 때, 또 다른 형님인 정약종이 순교하여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성인으로 남았을 때 그들은 과연 그것을 원해서 그 위치에 올라갔냐는 말이다. 결국 그들은 권력자에 의해 강제로 현실세계에서 버려진 유학자이었다. 그들이 버려진 이유는 단 1가지이다.

 

기존 사회체계를 부정했고, 그 사회체계란 권력자들의 이권이 보장되고, 힘없는 백성들은 고통 받으며 괴로워하던 세계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와 일반 백성은 계급에 따라 큰 차이점은 있으나, 최소한 백성들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것이 공자의 유학사상이다. 그러나 조선의 유학은 성리학만 쫓고, 글자 하나 토씨에 의문을 가지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한다. 물론 사문난적이란 핑계에 불과하다. 그 모든 것은 권력의 다툼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권력의 이름으로 행세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다. 잘못된 정책을 바꾸려면 그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했다.

 

조선에서 그런 도전을 하는 자에게 끊임없는 죽음과 멸문만이 도살아 있었다.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을 보면 양산보로 통한 기묘사화부터 시작한다. 기묘사회로 정암 조광조 사림세력이 큰 화를 당한다. 화를 당한 사대부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떠나간다. 그리고 대부분 가세가 기울여 향반으로 농사를 짓기도 한다. 따라서 사족 중에도 개혁사상 내지 실학자, 왕도정치를 추구하던 세력은 늘 어둠에 가려져 있거나, 혹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있어야 했다. 바른 말을 하는 순간 화가 뿌리까지 미치는 일이 허다했다.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에 소개된 인물 대부분이 권력에 저항하거나 혹은 권력의 화를 피해 살다 간 사람들이다. 이덕일 작가가 논한 것처럼 조선의 선비 중에 그렇게 훌륭한 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짓을 했는 가이다. 이 책은 주된 배경은 전라도 지역이다. 전라도 지역은 20세기에 많은 아픔이 있다. ·순 반란사건에서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고, 광주518 같은 경우 지금 다시 보니 학살극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20세기 한국, 그 이전인 조선에서 전라도 역시 아픔이 많았다. 전라도는 경상도와 달리 알려진 인물이 많이 없다. 성호사설에서 낙동강 위로는 퇴계 이황, 아래로는 남명 조식이란 선비가 있었다. 전라도에 이름난 학자가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는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 때문이다. 이른바 정여립 반역사건은 그 출처와 배경 그리고 전후과정이 명백하지 못하나, 천 명에 가까운 호남의 사대부들이 화를 당했다. 당시 인구가 지금보다 101이고, 사대부는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사건이다.

 

호남은 유배의 지역이며, 왜구가 항상 침탈하는 곳이다. 변방의 세계이고, 가난한 선비가 많이 살았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인 매산 황현의 죽음이 서글프게 흐르는 곳 역시 호남이다. 유배지에서 서글프게 노래를 부른 인물로 고산 윤선도가 있고, 유배지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다산 정약용이 있다. 죽은 뒤에도 자신의 서원이 계속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것을 겪은 정개청의 원한이 있다. 이들은 모두 권력 앞에서 변방의 공간에 떠돌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 이들은 우리가 늘 우리 스스로 부정한 헬조선의 세계를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하지만 이들을 내몰았던 당시 권력자들을 보면 헬조선의 어원은 쉽게 사라질 수 없는 모양이다. 헬조선에 의해 희생된 그들의 인생을 두고 우리는 학회연구도서나 혹은 위인도서에서 볼 수 있다. 역사에서 패배자인 그들이 결국 삶을 초월한 세계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이들을 억압한 권력자들은 수백 내지 수천 명일 텐데, 그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피해자의 이름은 나와 명예가 회복해도 가해자의 이름이 나와 죄악을 다시 묻지 않으니, 지금도 계속 그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게 아닌가? 20세기의 대한민국은 일제의 침략,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과 같은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그 어둠의 시기에 작은 빛줄기를 찾아 떠난 자들은 깊은 어둠속에 침몰해 영원히 떠오르지 못할 치욕의 날을 보냈다.

 

권력에 의해 당시 역사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역사는 패배해도, 미래의 역사에서는 승자가 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승자로 오르는 과정을 보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패배자는 명예가 실추되고, 부끄러움을 참아야 하는 자들은 패배자들의 후예들이다. 최근 독립군 후예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제대로 보장된 생활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다행인 것 같다. 피해자로 살아온 그들은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늘 어둠의 그늘 속에서 숨었다. 이들의 소원함이 풀어지는 순간 책 제목처럼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로 승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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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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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0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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