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10일간의 야전병원 - 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
노성만 외 29명 지음 / 전남대학교병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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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슬프고 화가 나고 무서웠던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같았다. 책은 글이란 문자로 되어 있기에 그리고 눈으로 읽기에 이성적 판단 아래 내용을 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 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은 정말 심각했다. 19805월 광주의 봄은 여전한 늦은 봄바람을 맞이했지만, 그 봄바람은 어느 순간 피바람으로 불어왔다. 518일 계엄군의 군화발이 광주시내로 들어오면서 광주시는 광주시민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지옥의 아수라가 펼쳐졌다.

 

광주민주화항쟁 내지 광주사태 등 여러 말이 있지만, 거의 학살에 가까운 참극이었다. 예전에 다른 책을 보니 전두환 군부세력이 계엄령 발령과 동시에 저항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충정훈련을 했다고 한다. 훈련에 투입된 사병은 모르나, 위관 이상의 영관급 장교, 부사관은 상사급 이상은 대부분 월남전에 투입된 살인기계였다. 베트남전쟁에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라고 해도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학살, 한국군이 도중에 받은 고엽제 후유증은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베트남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총에 맞고 칼에 맞고, 폭탄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나가고, 고엽제로 시달려 이름 모를 병에 죽어갔다. 인간이 만든 전쟁은 역사의 큰 획이 되나, 그 획에 동원된 인간은 그저 비참한 죽음과 조우해야 했다. 베트남전쟁은 1970년대로 끝난 게 아니다. 전쟁에서 배운 기술이나 전쟁에서 느낀 피의 전율은 여전히 폭력의 미학으로 이끌어 내었다. 안 그러면 그렇게 잔혹하게 광주시민을 학살할 수 있겠는가?

 

버스에 사격하고, 농촌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는 어린아이에게도 조준사격을 한다. 심지어 길에 서있는 임산부의 머리까지 노리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지옥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갈 수 없겠지만, 518이 일어난 그날부터 열흘 동안 광주는 지옥이었다. 사람이 죽게 되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심장과 폐, 그리고 간과 뇌에 총알이 뚫고 지나가면 금방 출혈사로 죽고 만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응급처치 후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 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은 바로 518 그 참혹함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전남대학교 의료진들의 이야기이다. 당시 의료진들은 일부 진료과장 교수를 제외하면 레지던트, 인턴 등이 집도하였고, 간호사들도 의사와 같이 쪽잠을 자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다른 518 관련도서를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사실이나, 이 책에서 더 심한 분노가 오는 이유는 병원에 오는 사람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이나, 안타까운 죽음을 계속 목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응급실을 지키던 의료진은 처음에 곤봉과 개머리판에 가격당한 광주시민만 만난다. 그들은 두부가 손상되거나 얼굴 안면을 다쳐, 외과처치를 하고 안정만 취하면 충분히 치료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잔혹한 일도 마주한다. 어느 여학생은 계엄군의 총에 장착된 칼에 찔려 가슴부위를 다치고, 누구는 쓰러진 상태에서 군화에 차여 안구가 손상되었다. 제일 심각한 것은 21일이다. 도청 앞에 몰린 시민들을 향하여 집단사격이 시작되었다. 3일째 병원은 전시상황과 맞먹을 정도로 비상사태였다. 총에 맞은 사람은 도착할 쯤 이미 사망했고, 치료를 하기 위해 상태를 확인하니 총알이 복부를 통과하여 장기가 엄청 상했다.

 

계엄군의 총은 어린아이도 피하지 못했다. 5살 아이가 총상으로 다치고, 어머니와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아이는 총을 맞고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복무의 장기들이 다 보일 정도로 다친 학생, 총알이 눈을 스치고 가서 한쪽을 잃어도 다른 눈을 치료받으면 볼 수 있다며 털털하게 웃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헌혈을 해주고, 밥과 음식을 날려주던 광주시민들, 이 급박한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수술을 해도 출혈쇼크사, 패혈증, 후유증으로 눈을 감은 사람들, 살아남아도 평생 몸과 마음의 흉터를 지니고 살아야 했던 그들, 37년이 지나도 그 당시 의료진과 연락을 하던 광주시민은 많았다.

 

군대에서 전쟁에 관한 규칙을 배울 때 최소한 병원에 폭격을 가하면 안 되는 것으로 배웠다.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어긋나고, 그것 인간이 해야 할 짓이 아니다. 그런데도 계엄군들은 병원을 향하여 사격을 가했고, 심지어 최루탄까지 발사했다. 최루탄이 군사훈련용과 진압용은 다르다. 심폐가 손상된 환자나, 호흡기 부위가 다친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이기 때문이다.

 

518의 폭풍이 지나간 뒤 추후 경찰과 검찰, 군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병원을 다시 찾아올 때 그들의 야만성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신을 검사하는 장면에서 과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일까? 계엄군 사이에도 서로 충돌이 있었다. 계엄군이 소속이 다른 부대를 보고 시민군으로 오인하여 사격을 가했고, 이 일로 계엄군 사망자 60% 발생했다. 자신들의 실수인데 화가 난 그들은 인근 마을에 찾아가 화풀이로 마을주민에게 사격했다. 탱크가 움직일 때 실수로 옆에 있던 사병을 깔아뭉개 죽였다.

 

518사이트에 가서 사망자 중에 민간인 이외에도 경찰, 군인이 있던 이유는 아마 그럴 것이다. 광기와 폭력으로 죄 없는 광주시민을 죽인 것도 모자라 광기가 폭발하여 계엄군끼리도 죽인 것이다. 어떻게 같은 민족이 그렇게 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 광주 망월동묘지에 가서 기념관을 관람했다. 그렇게 희생된 사람을 아직까지 비웃고 조롱하여 광주의 영혼을 왜곡하는 자를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면, 그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았을까?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 사실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오욕의 기억, 인간이 가장 괴로운 일들은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내야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내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었다. 2017518, 광주518 37주년 행사는 참으로 특별했다. 1980518일에 태어난 한 여성은 그날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다. 자신이 태어났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라 여기던 그 고통은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인간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그 천수가 다해 이 세상을 떠나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그 시간만큼은 행복을 위해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만일 옆에 소중한 사람이 허무하게 억울하게 사라진다면 정말 불쌍한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난 자가 아니라 그 떠난 자를 보내야 하던 사람이다. 그들에게 남은 생이란 오직 슬픔과 분노, 고통과 절망일 것이다. 슬프고 아픈 일을 겪고도 슬프다 아프다.”라는 말조차 외치지 못한 그들을 위로해주는 것은 그날의 상처를 다시 처음부터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의술(醫術)은 서울권역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가장 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의술(義術)은 전남대학교병원이 가장 최고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의료기술을 가진 의료인들이 모여도 그들이 펼치는 의료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부와 권력일 것이다. 양심과 인륜이 없는 의술은 존경심을 받지 못한다. 총알이 날아오고,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을 다시 찾아준 전남대학교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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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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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0 0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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