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 한길그레이트북스 39
이익 지음 / 한길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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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월 나는 해남에 위치한 고산 윤선도 고택과 그의 후손인 공재 윤두서의 고택을 찾아갔다. 윤선도의 고택은 현재 직계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박물관을 관람했다. 그러나 윤두서의 집은 개방이 되어 건축물 내부에 들어가지 못해도 마루 끝에 앉아 여름비가 하염없니 내리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가면 기와지붕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소리는 참으로 경쾌했다. 하지만 이 곳에 오니 그 어린 시절의 빗물소리보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전통 사대부 기와집 아래 떨어지는 빗물은 마치 거대한 음악이 되어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집에 아무도 거주하지 않았지만, 가끔 이집의 후손이 찾아와 가끔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방안에 옷걸이가 있었고, 마루 끝에 이런저런 간단히 책이나 신문들이 놓여있었다. 해남 백포마을에 위치한 윤두서의 고택, 그의 이름은 잘은 몰라도, 그의 그림은 잘 알 것이다. 최근 외국게임 블라자드에서 제작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한국판 영상광고에서 이른바 시공조아라는 단어가 나올 때, 시공의 폭풍을 탐구하던 한 사람이 어느 초상화 이마 부분을 떼니 게임 로고가 나왔다. 그 초상화 주인공이면서 그린 사람이 바로 공재 윤두서이다.

 

게임 영상광고에 나온 이 그림은 국내 미술학계 내지 세계 미술학계에서도 큰 연구소재거리이다. 한국의 전통화풍에서 사실주의적으로 인물을 표현한 그림이 18세기 초반에 나온 점이 큰 반향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소치 허련 같은 조선화가는 공재 윤두서의 화풍을 따라 그렸다. 양반사대부 집안인 윤두서는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지배계층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거기서 많이 멀어진 자이다. 윤두서는 친구의 형님이 장살(杖殺)당한 사건이 있었다. 장살이란 곤장을 죄인에게 수십 수백 차례 가격하여 죽게 만드는 잔인한 형벌이다.

 

윤두서의 친구 형님이란 누구인가? 우선 윤두서는 해남 백포마을에 고택이 있지만, 자신의 직계조상은 고산 윤선도이다. 윤선도는 효종이 하사한 집을 다 해체하여 해남 연동마을 종택으로 사용했다. 녹우당(綠雨堂)이라 불리는 이 집의 현판을 누가 멋지게 획을 그려넣었다. 그 글을 넣은 사람은 옥동 이서이고, 옥동 이서의 큰형인 이잠은 숙종 당시 노론당파의 부패와 모순을 지적하고 상소하다 미움을 받아 장살을 받아 죽었다. 이잠의 죽음에서 이미 조선사대부들의 정신은 소진 중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말했다고 하지만,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린 이유로 선비 하나가 매를 맞아 죽었다.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 이잠에게 동생인 옥동 이서, 그리고 막내 동생인 이익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벼슬의 길을 포기하고, 평생 재야에 묻혀 학문을 연마했고, 그 학문은 당시 빛을 보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의 유교를 말하자면 과거에 민중을 탄압한 썩은 물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유학을 다시 눈을 뜨고 있고, 중국에서 공자의 정신이 움을 트고 있다.

 

한국이 세계화가 되어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란 나라는 무엇이고, 그들의 정체성을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때까지 버려온 성리학유학은 그야말로 폐단 중에 폐단이었다. 그런다고 어디서부터 다시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아할지 몰랐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다산은 한국 전통사상만 아니라 성리학유학, 심지어 천주교회사가까지 관여되고 있는 인물이다. 다산이 한국의 전통사상의 그 끝이고, 조선의 문을 이룩한 인물이라면, 그가 어디서 자신만의 문을 쌓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는가?

 

정약용과 친한 유학자 중에 이가환이란 인물이 있다. 신유사옥 시 천주교박해와 관련하여 죽음을 당한 학자이다. 그는 이익 선생의 후손이다. 이익이란 인물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산 정약용이란 인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 중 하나가 이익이었고, 그가 저술한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이익 선생이 살아생전 적은 글들은 그분의 후손이 모아 집필한 도서이다. 이익이 왜 중요한가? 이익은 노론과 대치되던 남인들에게 큰 정신적 지주였고, 그의 가르침은 조선 명재상 채제공, 불세출의 천재 정약용, 조선 역사학의 지평 순암 안정복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남인 그리고 세도세자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시파 무리에게 성호사설은 중요한 책이다. 사도세자는 당시 집권당인 노론보다 소론하고 친하고, 남인의 영수가 되던 번암 채제공에게 큰 신임을 주었다. 노론과 반대되는 정치세력은 전통적 봉건제도가 아니라 개혁적인 정책을 원했다. 조선시대 가장 심한 정치적 폐단은 군정폐단이다. 양반과 양반이 소유한 노비는 군에 가지 않으나 일반 농민 같은 양민들은 16세에 군적에 올라 60세까지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군역을 이행하지 않을 시 이에 따른 군포를 납부해야 하나, 그 폐단이 너무 심했다.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이란 시조를 보면 강진 갈대밭 아내가 방에 들어가니 남편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남편이 칼로 자신의 성기를 잘랐고, 피가 온방을 젖게 만들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죽은 시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내아이가 군적에 올라 군역을 내야 하나, 낼 수 없어 농민의 재산인 소를 끌고 가서 남편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일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의 성기가 결국 이렇게 만들었다는 그 분노와 절규에서 말이다.

 

군적의 문제는 성호 이익이 늘 지적한 부분이다. 양반은 높은 자리에 올라 폼만 부리는 게 아니라 직접 일을 해야 하며, 글을 쓸데없이 과거만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농민이나 백성을 위한 실학적 요소를 강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호사설을 보면 공자의 논어(論語)가 계속 나온다. 공자는 그 당시 기준으로 2200년 이전 사람인데도 왜 공자인가? 공자는 실제적인 유학정신을 백성을 위한 정치적 제도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의 성리학은 지배이데올로기만을 강조했고, 백성들은 거기에 시름을 앓아가고 있었다.

 

백성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져 가는데도, 그들은 늘 풍악을 올리고 술잔치를 올린다. 그리고 백성의 쌀을 빼앗아가고, 그들이 빚을 지면 노비로 부려 평생 짐승처럼 부린다. 이익의 그런 현실이 너무 싫어했다. 자신의 형인 이잠이 이런 현실에 분노하여 강개 굳은 의지를 표출했지만, 그도 역시 희생되었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약자를 늘 착취했고, 약자의 슬픔을 동조하는 엘리트들은 그 최후가 매우 끔찍했다. 성호사설을 보면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다양한 현상을 연구하고, 경전을 다시 재해석했다.

 

만일 100년 전에 이익이 이 책을 썼다면 위험했을지 모른다. 노론의 정신적 지주는 주자의 성리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했고, 만일 거기서 글자 하나라도 잘못 인식하면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여 버렸다. 학문은 늘 자유롭게 연구하고, 기존의 것을 다시 작금의 현실에 따라 새로이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학문의 정신이 이미 조선에게 없었다. 벼슬을 위한 학문하는 자만큼 가장 백성에게 해로운 존재는 없었다. 이익은 백성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잊지 않고 책에 기록했다. 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글귀 한 편을 적고 있을 때, 이익은 30년 일을 떠올렸다. 아주 추운 겨울 어느 거지가 어떤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거지의 옷은 모두 헤져 있었고, 앞을 볼 수 없던 맹인이었다. 그 거지가 문을 두드리며 하던 말은 죽여주세요! 죽여주세요!”라고 했다. 이익은 그 일이 본지 30년이 지났는데도, 그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복이 죽고, 그 노복의 아들이 아버지 묘 관리를 하지 않자, 종복의 외손자를 불러 묘 앞에 참배할 수 있도록 재물을 주고, 제문까지 지어 올려주었다. 그것도 자신의 농지를 잘 돌봐주어 자신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이다.

 

아무리 몰락한 사대부라도, 상민보다 높은 계급이었다. 그런데도 양반도 일을 해야 하고, 피지배계급이라도 그들의 인권과 삶을 존중했다. 노복이라도 하나의 생명이었고, 그들의 고단함을 알아주고, 고마워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위에 있는 강자들은 자신보다 약한 자들의 고단함을 고마워하기보다 오히려 더 착취하려고 한다. 성호사설이 개혁적 지식인에게 귀감이 된 이유는 성호 이익이 제시하고 있던 인간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학문이라도 그것이 백성의 입에서 환호성이 아닌 탄성이 나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리라?

 

백포마을의 윤두서 고택을 방문하면서 윤두서가 한 업적이 생각났다. 그가 어느 날 집에서 어떤 문서를 들고 농민이 사는 마을로 갔는데, 그곳에 간 후 그 문서를 불태웠다고 한다. 그 문서는 돈이나 곡식을 대출해준 것을 기록한 장부였다. 세금도 제대로 못 내고, 군포에 시달린 그들을 본 윤두서는 결국 장부를 소각했다. 성호사설을 읽은 후 고산 윤선도가 가족에게 남긴 유후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많다. 노복의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복이 가족이 있으면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점이다.

 

이런 점을 보면 윤선도나 윤선도의 후예 윤두서, 윤두서와 친구이던 이익은 아주 탁월한 정치경제학자이다. 만일 노복에게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조치하고, 일을 할 때 아무리 종이라도 그 일한만큼의 노임단가를 준다면 그들은 계속 그 지역에서 생활을 할 것이다. 그들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한다면 자기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그것이 다시 고용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서로 간 의지할 수 있는 형상이 된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립되는 현실 속에서 상생의 관계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있는 자는 고용되어 일하는 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나, 그들의 노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성호사설에도 그런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있다. 경세치용, 농상중심 경제구조에서 농민이 잘 살아야 국고가 부유하고, 국고가 부유해지면 국력이 상승해서 외적의 침입을 대비할 수 있다. 또한 국력의 상승과 인구가 불어나면 그만큼 나라가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대의가 있어도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면 얼마나 아쉬운가? 성호의 가르침은 조선이 끝날 때까지 완성되지 않고, 단지 그들의 후학들로 하여금 그의 정신이 옳다는 점만 증명했다.

 

21세기 조선의 역사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영화 <대립군>은 광해군과 같이 사지를 헤쳐 나온 이름 없는 조선의 민중이 곧 조선의 주인이라 보여주었고, 앞으로 개봉할 <군함도>에는 일제에게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이 죽음의 섬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되찾고자 했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조선의 아나키스트 청년과 일본의 가난한 여성의 혁명과 사랑을 다루었다. 조선은 패망해도 우리에게 조선인이라 꼬리표는 조선인의 후예가 살아있는 그 순간까지 같이 갈 것이다. 조선의 망해도 조선인을 살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대한민국 역사는 자랑스럽다고 보기에는 많은 무리수가 있다. 대다수 백성들이 권력자에 의해 핍박과 억압을 당했고, 그런 부조리를 느낀 왕족과 선비들은 독살당하거나 참수당하거나 유배 살이 등을 당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자들이 있기에 우리의 역사는 자랑스럽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몰라도 우리 역사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이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성호(星湖) 이익의 호처럼 성호는 태호(太湖)처럼 크고 넓은 호수이다.

 

호수의 물은 우리에게 식수를 주고, 생물에게 생명을 주며, 농부에게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원천이 된다. 모든 생명과 시작의 중심이 물은 우리 인간만 아니라 지구전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호 이익은 우리 민족에게 그 크기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호수이다. 거대한 호수이기에 머나먼 존재가 아니라 그 거대한 호수의 물이 모두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은 언제나 가려진 존재였다.

 

당시 권력자들은 역사의 이름아래 역적 내지 간신이 되어있고, 아니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익 선생의 이름과 성호사설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가 가진 사상은 옳았음을 입증되었다. 시대에 따라 살아있는 자와 그에 따른 환경은 달라도,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그 세상에는 항상 모순과 부조리가 살아있다. 그리고 모순과 부조리에 의해 고통 받는 인간 역시 계속 존재한다. 그런 사회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성호 이익 선생의 안목에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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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0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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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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