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2 - 효종에서 고종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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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9일 이날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거하는 날이다. 그리고 다음날 510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과거 언론에서 신임 대통령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분명히 어머니이다. 그러나 보통 대부분 한국인이나 혹은 세계 어디를 가도 보편적인 성향이 있는 자라면 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란 부모님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누구를 제일 존경하면 좋을 사람인가? 한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도 있지만, 지식인들이라면 당연히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물론 나도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다산의 위대함은 그 시대에도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그가 죽은 뒤 나라가 망한 후 독립운동가에게 조선의 얼이요, 해방 후 우리 역사에서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이란 언제나 가시밭길이고,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정조대왕이 붕어하자 그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변했다. 정조대왕은 아직 40대 정도이고, 문예적 실력만큼 무술실력도 뛰어났다. 효종대왕을 이어 무관군주로 사도세자를 이은 정조이다. 명궁은 물론이거와 병법조차 훌륭한 철인군주이다.

 

여기서 철인이란 강력한 철권통치자가 아니라 플라톤이 원하던 지적능력과 더불어 운동능력 같이 지닌 자이다. 이데아의 절대적 세계를 도달하지 못하여도 이데아의 세계에 가장 접근한 군주로 볼 수 있다. 그런 정조가 갑자기 승하했다. 수원화성을 만들고 그 옆에 사도세자의 무덤까지 조성했다. 그가 왜 죽어야 했을까? 조선은 특이한 국가이다. 이덕일 작가는 2009년부터 이 책을 재발간하면서 원하던 답을 이미 제시했다. 역사라는 틀을 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은 전주이씨 성씨를 가지지 않으면 될 수 없고, 왕의 직계 세자 내지 세손이 아니면 그 자리에서 더욱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방계로 이어져도 최소 10촌을 넘지 않았다.

 

대부분 4촌 내지 8촌 사이에 오갈 뿐이다. 그 정도면 가까운 친척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여정은 간단하지 않다. 조선이 전근대사회이며, 인간의 수명은 40세를 넘으면 하늘로 돌아갈 정도로 생존기간이 짧다. 그래도 왕가나 사대부는 60세 넘은 자도 많고, 80세를 넘은 자도 많다. 아무리 그래도 20살도 넘지 않거나 혹은 40대 되기도 전에 죽은 임금과 세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임금의 죽음은 이상하고도 묘한 기운이 느낀다. 건강한 임금이 어느날 종기에 걸려 처방이 틀려 죽거나, 시체를 염을 하는데, 시체의 몸에서 피가 나오거나 몸 전체가 퍼렇게 멍든 것처럼 변하면 무엇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조선의 왕가는 의문 속의 죽음이 늘 곁에 숨 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한국의 정치체계는 봉건사회와 민주사회이지만, 그 근본적인 정치적 동력은 같다. 조선의 정치는 왕을 중심이나 왕 혼자만으로 불가능했다. 사대부가 없으면 통치가 어려웠고, 사대부들이 신봉하는 유교문화를 지탱하지 못하면 집권에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그 당시에 당쟁이 있었고, 지금도 당쟁이 있다. 단지 그 차이는 조선은 당쟁이 왕권에 의해 조절되고, 지금은 국민에 의해 움직인다. 한국에 군주는 5000만명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종을 두고 용군이란 말을 하듯이 국민조차 용민이 되면 곤란하다.

 

조선역사에서 국가재정은 파탄 나고, 농민은 살기 위해 도망치거나 도적이 되고, 누구는 반란을 일으킨다. 이런 정치적 조건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조선에서 왕이 힘이 없으면 신하의 권세에 밀린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승정원은 임금의 비서를 맡은 자이다. 임금이 아무리 시정명령을 내려도 승정원 승지가 문서를 생산하지 않으면 임금의 명령은 전달되지 못한다. 승지가 임금과 권력의 라이벌일 경우 그 정도는 심하다. 조선은 붕당에서 국익이 아니라 당익을 위해 정치를 펼친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혐오증을 일으키는 이유도 정치적 쟁점에서 어느 당론이 맞는가이다. 그런데 그 당론을 논리적으로 보고 국익에 부합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서 현실 상황에 큰 여파가 닥치기 때문이다. 당론의 의결이 당의 이익에만 치중되고 대의가 없다면 분명 물려야 할 것이다. 조선의 왕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끼는 동생과 조카를 귀양을 보내야 하고 심지어 사약을 내려 목숨까지 빼앗아 버린다. 조선의 군주는 가족도 가족처럼 대할 수 없었다. 삼촌이 조카가 군사를 몰고 직위를 빼앗기도 하고, 사랑하는 동생을 지키지 못해 눈물로 사약을 내리는 군주도 많다.

 

이런 점에서 <조선왕 살해사건>은 단순히 조선이란 국가에서 군주와 그의 일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국왕은 죽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국가적 존립에서 심각하다. 군왕의 죽음은 정치체계의 개편이고, 다음 군주가 어느 성향인지 신하의 포진상태에서 따라 조선의 운명은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진다. 조선의 왕이 죽은 점에서 30% 이상이 권력 다툼에서 사라진 자들이다. 그 권력을 다시 잡은 권력자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고민한다. 형님 문종 조카 단종을 보내고 직위에 오른 세조는 이런 고민에 빠진다. 그 역시 공신을 이용하여 김종서를 죽이고, 많은 대신들을 주살한다.

 

그런 그가 포악한 임금인가? 세조는 분명 권력에 잔인했다. 하지만 백성에게는 친절했다. 군주가 되어도 몸소 검소한 의복과 식단을 지켜왔다. 그의 후손인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시키고, 도덕군주로 활약했다. 이런 일련 과정에서 조선의 왕이란 자신의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이란 점을 우린 충분히 알 수 있다. <조선왕 살해사건>에 등장하는 왕과 왕족을 보면 은근히 괜찮은 면이 많다. 정조는 당연하고, 효종과 현종, 효종의 형님이신 소현세자, 순조의 아들, 예종 등등, 이들의 희생은 왕권과 더불어 조금 더 나은 조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 자들이다.

 

소현세자는 명이 멸망하고, 청이 우세하며, 멀리 유럽에서 온 서양인 선교사와 친분을 나누고, 문물을 발전시키려 했지만, 인조의 질투 아래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까지 죽어갔다. 40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이나, 그 사연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효종은 형님과 달리 강한 무관군주로 동북아시아의 군웅이 될 수 있었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아들 역시 아주 현명하고 침착하지만 왕권강화를 이룰 수 없었다. 숙종은 피를 피로 물들이는 정치공작을 펼치고, 그 덕분에 영조의 형님 경종은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

 

왕의 독살은 백성에게 당장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정치암투를 늘 일상적인 궁궐의 이야기이나, 그 집권자 중심으로 누가 옆에 있는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무능함도 있지만, 백성의 재산을 착취하고, 백성의 눈물과 피를 빼는 포악한 행위로 인해 망했다. 공자와 맹자는 모든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라 하였거늘, 오히려 그들은 백성을 죽이고 수탈했다. 군주제의 왕권을 다시 회복하면 절대왕권으로 신하의 권력을 감퇴할 것이다. 그 시작점은 재산의 통제이고, 재산은 백성의 골수에서 나온다. 백성의 골수를 빨아대는 비리와 부패가 사라지면 조선은 분명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기득권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득권은 오히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의 영역을 더욱 더 확장시키고 싶어 한다. 조선군주의 죽음에는 이런 기득권에 저항한 사대부들의 운명도 따라온다. 노론에게 격렬히 저항한 청남과 소론은 경종과 정조의 죽음으로 몰살을 당하고, 영조시대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사도세자의 시신이 궁 밖으로 나갈 때 많은 백성들이 슬퍼했다고 한다. 사도세자를 죽이려한 노론과 권력자들은 화근을 제거해서 좋다고 했다. 이게 정치의 현실이고, 국가가 망하게 된 원인이다.

 

이덕일 역사학자는 이런 조선의 역사를 두고 지나간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정치적 정쟁에서 정치권력은 조선 사대부들의 특권이나, 지금은 아니다. 조선의 왕은 전주이씨 적통이나, 현재는 전주이씨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이다. 우리의 군주는 아니나, 우리는 조선의 군주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으로 우리의 앞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 마지막 독살된 군주는 고종황제이다. 고종황제의 아들 순종은 독에 의해 뇌질환이 생겼고, 고종황제 역시 해외망명 이전에 서거한다. 비록 아버지 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 일제와 청나라 등 국가 내외로 많은 압력으로 힘든 삶을 살아도 조선군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분이다.

 

조선의 백성은 아무리 왕정이 무능해도, 그래도 조선의 백성이었다. 나라를 잃어도 고종의 존재에서 조선이란 국가는 사라져도 조선이란 역사와 영혼을 살아있었다. 조선의 몰락은 일제강점기의 시작이나, 한편으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국권을 박탈당한 시기이다. 조선이 명나라의 눈치를 보고, 고려가 몽골에 의해 점령되어도 고려와 조선이란 국가라는 이름은 존재했다.

 

4월 초, 시골에 집안제사를 지내기 위해 먼 길을 운전한 적이 있었다. 시골에 가면 우리 가족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묘지에 재배를 올린다. 이때 절을 올리면서 나의 조부모만이 아니라 조부모의 형님 내외까지 절을 올린다. 나의 할아버지는 4형제 중 3번째이다. 그런데 제일 큰 형님, 즉 나의 큰할아버지는 증조부가 별세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자식으로 가장 큰 죄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 분이 떠난 시기가 1946,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다음 해이다. 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강제징용을 갔다가 해방되면서 귀향했지만, 결국 운명하고 만다.

 

일제에 의한 징용당한 분들이 거기서 운명을 하거나 돌아와서는 골병으로 인해 운명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큰할아버지 따님, 사촌누나하고 친했다. 아직도 그 큰고모님은 생존하시고, 아비 없이 살아온 날이 70년이 넘은 셈이다. 만일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나도 큰할아버지 얼굴 1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덕일은 단순히 조선왕의 죽음을 적고 있지만, 조선왕의 독살설은 결국 조선 민중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만들었다. 지금도 위안부 할머니의 한은 풀리지 않고 있으니, 역사의 과오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덕일 작가는 조선역사를 주로 연구하고, 특히 정조시대, 그리고 정약용 선생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를 저술하여 관리의 중요성이란 결국 목민관의 성향에 따라 백성의 생존까지 이어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다산 선생은 박해 속에서 살아가고, 죽은 뒤에도 권력에 의해 묻혀 지내야 했다. 독립운동을 하시던 민족사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은 다산이야말로 조선의 멸망성쇠 그 마지막 기로에 있다고 했으며, 21세기 다산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민족의 스승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새라도 하늘에 날기 전에 올가미에 걸리면 날 수 없고, 그대로 죽고 만다. 조선의 군왕은 독살되었지만, 지금의 한국국민은 독살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과거의 오랜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미래를 선택하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다시 배우고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 선택의 순간이 과거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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