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번에 터진 웹툰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뭔가 조금은 관계성이 있어 보인다. 2014년인가? 부산대학교에서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정기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참석하여 수많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 그리고 부산경남권의 웹툰작가들을 만났다. 물론 2013년 부산CT교류대회에서 몇몇 웹툰작가들과 만났고 가끔씩 마주치는 때도 있다.


그당시 내가 지금도 만화애니메이션학회의 학회장으로 계시는 장동렬 교수님께 아주 무례한 발언을 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소비자를 조금 더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만일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들이 그들을 무시하면 그들은 한국 만화애니메이션을 포기할 겁니다. 그러면 교수님들의 제자들이 졸업하면 나갈 길이 없을 겁니다."라고 말이다.


이 말은 재작년 7월 서울 SICAF에서도 다른 교수님들과 2차로 호프집으로 가서도 발언했다. 그들의 눈엔 그냥 지방에서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오타쿠 나부랭이가 학회에 논문 1~2편 집어넣어 뭐하는 인간인가 싶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오타쿠 소비계층은 한국에서 2000년대 신세기 에반게리온 열풍에 따라 당시 10대들이 20~30대로 진입하고 그들은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구매되는 각종 문화콘텐츠를 생각하면 우리 만화애니메이션 학회나 산업은 무엇을 보고 느끼야 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웹툰시장은 진짜 말하자면 초기의 웹툰작가 혹은 웹툰 이전의 만화작가들이 노력한 시장이다. 도서가 전자매체로 변화하면서 책이 인터넷 웹으로 변화한 것이다. 만화책들이 이제 웹에서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웹툰 역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다.


그러면 플랫폼의 변경에 따라 콘텐츠 그 자체는 변화하는 것인가? 담겨지는 틀에 변해도 그 안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작가의 몫이다. 그리고 작가를 알아주는 것은 독자의 선택이다. 고맙게도 디시인사이드 한국애니메이션 갤러리는(다른 갤러리와 비교는 하지 마세요) 아직까지 희박하고 열악한 한국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위해 응원한다. <고스트메신저>가 나오기 전에 이들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극장이 나올 때 서로 먼저 극장에 가서 감상했다는 인증을 남겼다.


그 작품이 성공하든지 안 하든지 제작자 입장에서 자신들을 응원해준 팬들이 있다는 점은 상당한 행운이다. 현대사회가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겨제로 인해 인간의 물화되어버렸다고 해도, 그래도 소비자 주권시대는 유효하다. 작가의 사상은 자유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누리는 것은 권리이다. 하지만 자유와 권리는 타인에게 상처입힐 권리는 없다.


그리고 남자가 하면 용납되고, 여자가 하면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은 더 더욱 어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차이점은 분명하나, 사회적인 영역에서는 서로 용납될 수 없다. 진짜 그 티가 미혼모, 소녀가장, 성폭행 피해자를 돕는 금액으로 간다면 좋은 일이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범죄를 일으킨 사람을 위해 소송비로 나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보고 거기에 대하여 반성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것이 억울하여 우리가 도와주겠다는 식은 스톡홀룸 증후군의 말기 현상에 가깝다고 본다. 현재 작가에 대해 협박메일을 보내는 것도 문제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욕설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욕설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욕설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없는가? 


어느 분들은 이 문제가 한국의 페미니즘 발전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 보는데 사실 나는 그 말에 비관적이다. 광우병사태로 인해 일베가 탄생하고, 그들은 애국서사를 내세우고 네오-메카시즘을 일으켰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조롱을 퍼붓고, 518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애국서사 탄생은 한국사회에 일반화로 자리잡았는가? 일반여성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일베를 일반남성 역시 불쾌감을 느낀다.


메갈리안 사이트가 일베의 미러링이 되었고, 그리고 그들은 페미니즘을 말한다. 처음부터 논조에서 일베의 미러링의 방법이 틀렸다. 과격파가 되어 사람들에게 쇼크를 주어 인식의 전환을 준다는 전략이 있겠지만, 그 전략의 사용이 영국의 서프러제트 운동(1910년대 영국여성선거권 획득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영국의 여성들은 정확한 이념과 목적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그들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 풀어가려 했다. 지금은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는 볼 수 없고, 그런다고 무작정 오류라 볼 수는 없다. 내 생각에도 구멍이 있고, 저들의 논리에 구멍이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 자체에 구멍 밖에 없다. 아래는 미디어투데이 이선옥 기자의 글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게 옳은 것인가? 내가 대학교 수업 수강 시 시간이 남아돌아 여성학 수업을 우연히 들었다. 교양수업을 하시던 여자교수님의 말을 듣는 것과 현실은 별개로 돌아간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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