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니메이션과 철학

애니메이션이란 이미지의 세계이다. 이미지로 이루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이 실재 현존하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세계이다. 우연히 어느 블로거의 글을 보면서 조금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철학이란 것이 돈은 안 되어도 왜 필요한지에서 단지 지금은 철학이 대세가 아니라는 글을 보았다. 애니메이션과 철학, 너무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애니메이션에 철학이 없을 수도 없고, 철학만을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존재한다. 철학은 우리 세계 어디에도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를 제기하는 이유는 2016년 1/4분기 애니메이션 <무채한의 팬텀월드>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조금 떠오른 작품은 <바케모노 가타리>이다. 그 이유는 2작품 모두 인간 세상에 과학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존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케모노 가타리>는 괴이(怪異)라는 등장시킨다. 아니 정확히 보자면 신이(神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신이란 모든지 숭배되어야 대상도 되나 때로는 내쳐야 할 대상도 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신이란 양과 음의 존재성을 띄고 결국 인간의 무의식적 요구에 따라 변형되어 버린다.

 

신화라는 인간이 만든 서사에서 신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원래서 만든 이야기라는 점이다. <무채한의 팬텀월드>는 그런 점에서 <바케모노 가타리>의 신이(神異)의 요소를 넘어 상상의 세계까지 확장한 것이다. 즉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공상과학적 요소, 초능력적인 요소까지 등장한다. 거기에 덧붙여 신화의 세계도 등장한다. 이런 비일상적인 세계가 일상의 세계에 등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일이라 보겠지만, 사실 낯선 것이어야 말로 우리 세계에 내재된 숨어있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잊어버린 이야기라고 볼 수 있고, 다르게 본다면 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다.

 

2)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마주해야할 세계는 인간의 외연도 존재하나, 내적인 세계 역시 존재한다. <무채한의 팬텀월드>나 <바케모노 가타리>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팬텀과 괴이 현상들은 외부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외부는 인간의 내부에서 만들어낸 잉여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무채한의 팬텀월드>를 알아간다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탐구하고 사유하는 것이란 철학적 자세가 필요하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들 그렇게 어렵고 따분한 것을 왜 하냐고 한다. 모른다고 해서 삶에 당장 무리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을 알면 좋은 점은 어떤 현상에 대해 그 밖의 화제에 대해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무채한의 팬텀월드>에 등장하는 팬텀들은 물질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물질적이지 못한 것들이 물질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에 존재하는 이형의 존재, 즉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즉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적 존재이란 점, 형이상학은 철학에서 고대그리스부터 다루어온 학문이다. 그리스 유명한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이란 서적을 저술하고, 그 책은 자연의 세계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를 다룬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비논리성도 있지만, 당시 인간에게 보자면 엄청난 학문적 성과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 있기에 인간 역시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영혼의 존재로 승화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 플라톤의 저서들을 보면 인간이 위대해지면 하데스의 궁에 가게 되면 후세사람들로부터 큰 숭배를 받는다고 한다. 플라톤은 죽었지만, 플라톤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저승이란 세계를 글로 남긴다. 그가 진짜 저승세계에 갔는지 혹은 가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인간이기에 인간은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무채한의 팬텀월드>는 단순히 스토리와 주인공 히로인의 모습을 보고 쉽게 넘어가기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란 이름을 거론한 것처럼 주인공 하루히코고 서사 내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론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소쉬르, 융, 프로이트 등 철학자와 심리학자 이름이 계속 등장한다. 파롤이란 것은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언어학자인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언어라는 것은 langue and parole로 나누어지고, 후자 빠롤이란 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랑그는 사회적인 개념을 가진 언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3) 무채한의 팬텀월드에서의 팬텀

빠롤이란 용어가 나온 것은 목소리를 이용하여 팬텀을 퇴치하는 코이토 때문에 나온다. 그녀가 힘을 발휘하기 전에 주문 같은 영창을 외치고, 그에 따라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위력은 강력해진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에서 기호학은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에 의해 구조주의로 발달하고, 구조주의는 20세기 중후반 세계적인 학문으로 이어간다. 그래서 <무채한의 팬텀월드>를 보다보면 전문적인 용어나 개념이 등장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스쳐가듯이 바라보면 작품에서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게 된다.

 

작품은 어느 연구기관의 사고로 인간의 뇌기능이 변질되고, 뇌의 돌연변이는 인간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은 형이상학적인 존재 팬텀을 등장시킨 것이다. 하루히코가 그려서 소환하던 괴수 역시 형이상학적 존재다. 눈에 존재하지 않은 괴수를 과거 인간이 있다고 여기고, 그것을 이미지로 남겨 후세사람들에게 기록으로 전한 것이다. 팬텀이란 존재는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세계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게끼를 전해준다. 그러나 그 시작은 인간에게 있다.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고 미지의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에 부여된 팬텀은 인간의 오랫동안 정념을 들인 존재가 많다.

 

마이가 처음 나올 때 퇴치한 림보게임에서 전신주는 인간에 의해 탄생되고, 인간의 생활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결국 팬텀은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타의에 의해 출현한 존재다. 인간이 그것을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결국 인간의 정신세계가 만든 것이다. <무채한의 팬텀월드>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를 중시한 것처럼 신화적 요소를 중시하고, 무의식적 세계를 중시한다. <무채한의 팬텀월드>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는 융이다. 융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제자이나, 반(反) 프로이트학파를 만든 장본인이다.

 

융은 인간에게 전 지구 내지 혹은 지역적으로 무의식 세계가 공통적인 요소가 있으며, 공통적인 무의식 세계가 바로 신화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수면 중에 꾸는 꿈은 개인의 신화이기에 인간은 이성이 있든지 아니면 이성이 없는 수면 중이라면 신화의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의 이야기를 보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고, 허황된 세계지만, 그곳이야말로 인간의 본연적 세계가 드러나고, 인간이 숨겨놓은 욕망과 원하는 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사유에서 <무채한의 팬텀월드>는 그 마지막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팬텀이란 결국 인간에 의해 결정된 것이란 점을 말이다.

 

4) 에니그마 등장은 무엇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에 등장한 에니그마는 모든 인간의 초능력을 빼앗으려 한다. 자신이 만약 모든 초능력자의 능력을 가지는 순간 절대적인 존재로 되고, 인간에 의해 탄생된 팬텀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혁명 혹은 쿠데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니그마가 인간에 대한 지배욕구를 품게 된 동기는 그녀에게 가해진 잔인한 생체실험이다. 에니그마는 인간의 비윤리적인 폭력에 악의를 품고 모든 초능력자의 능력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에니그마가 흡수한 능력 중에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능도 있었고, 하루히코에게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았기에 하루히코의 능력을 빼앗기 위해 하루히코의 어머니 몸을 조종한다.

 

인간의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이제는 역으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니그마는 인간에 의해 나쁜 감정만 받은 것은 아니다. 거짓의 감정과 거짓의 얼굴로 하루히코와 조우했지만, 하루히코에게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로 등장했다. 어머니의 기억과 하루히코에 대한 관계성을 에니그마 알고 있었기에 충분히 하루히코를 속일 수 있었다. 마지막에 하루히코의 반격으로 퇴치되지만, 하루히코의 생활에 대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을 남긴다.

 

처음부터 팬텀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고, 그 존재의 시작은 아리야식 연구소의 실험에서고, 에니그마의 탄생은 아리야식 연구소의 소정의 목적이다.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아리야식 연구소에 대해 논하면 다른 블로거(천연마)의 글 내용에 상당히 동의한다. 왜냐하면 아리야식 연구소의 폭발사고는 일본의 핵폭발 사고를 의미한다. 핵이 폭발하면 인간이나 혹은 많은 생명체의 DNA가 변질되어 돌연변이가 생긴다.

 

미국의 만화인 X-MAN이나 혹은 많은 히어로 장르에서 주인공이 특수능력을 가지게 된 동기는 방사능과 같이 인간 유전자를 변질시키는 광선이나 가스 등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즉 핵 사고는 단순히 폭발력과 열에너지만 무서운 게 아니다. 낙진에 의해 떨어진 방사능은 인체에 머물면 반감기 기간이 수십에서 수백년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방사능의 유해성은 인간 유전자를 변질시켜 새로운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공포심을 심어준다. <무채한의 팬텀월드>에서 아리야식 연구소가 하는 짓은 마치 그런 짓을 2번 반복하는 것과 같다.

 

5) 팬텀은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이 등장한 것

여기에 인간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가? 아니라면 저지해야 하는가? 아리야식 연구소 간부들은 그 원인을 알고도 문제해결을 위한 단서를 주지 않는다. 결국 권력과 지식이란 서로 재생산하는 것으로 이권을 추구하는 담합을 보여준다. 팬텀이란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팬텀이 나와서 인간 세상이 문제가 되는 것도 있지만, 팬텀 그 자체가 인간의 현재 모습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팬텀이야말로 인간이 그동안 가려오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작품의 주인공인 하루히코에게 늘 루루라는 작은 요정 같이 생긴 팬텀이 있다. 아주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그래도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귀여운 캐릭터이다.

 

작품 초반부터 생각했고, 나중에 완전히 밝혀진 것이지만, 루루는 하루히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다. 하루히코는 평소 독서만 하고, 성실한 성격에 매사 착실하다. 하지만 그런 하루히코는 많은 하루히코 모습 중에 가장 많이 평소에 드러난 것이지 그에게도 은밀한 욕망 내지 어리광 피우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망이 있다. 루루는 하루히코의 아니마(남성성 안의 여성성)으로 기존 남성성의 하루히코는 절제와 단정이라면 루루는 자유분방함과 나태함이다. 에니그마에게 일부 능력을 빼앗길 때 루루의 성격이 원래가 아닌 하루히코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다시 회복할 때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루히코가 그려낸 루루의 모습은 하루히코가 평소 결핍으로 가득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피우며 사랑받고 싶은 감정을 대체한 것이다. 루루는 하루히코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사주신 동화책에 나온 캐릭터와 비슷하게 생겼다. 루루의 모습은 그동안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하루히코의 욕구불만을 드러난 캐릭터다. 하루히코의 슬픈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에 가족과 같이 그네와 시소를 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하루히코가 어린아이로 변할 때 옆에 마이가 있었고, 하루히코가 마이를 따르는 이유는 마이가 다른 여성 캐릭터보다 가슴이 크다는 점이다.

 

여성이 가진 가슴의 크기에서 단순히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가슴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 어린아이가 가장 원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인 것처럼, 풍만함 가슴은 모든 인간(남녀 구분 없이)이 가진 원초적인 보금자리다. 물론 마이가 다른 히로인보다 하루히코와 오랫동안 알았던 사이고, 마이가 하루히코를 좋아하는 것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하지만 하루히코의 어머니가 나오는 점에서 하루히코는 어머니에 의한 정신적 안정으로 인해 마이나 다른 여성 캐릭터에게 고백하는 일은 쉽게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6) 팬텀을 이기는 법

이런 요소는 비단 하루히코만이 아니다. 또 다른 히로인인 레이나의 경우를 보면 부유한 명문가정의 아가씨인 그녀는 집이란 공간을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부모님이 다정하기보단 다소 엄격하고, 언니가 바이크를 타는 것을 좋아하나 부모님의 반대로 가출하고 만다. 레이나 내의 정신적인 빈곤은 언니의 부재와 부모님의 갈등이 자리 잡았기에 가정문제가 그녀에게 큰 짐이 되었다. 이상한 버스를 타고, 레이나가 원하는 팬텀세계의 부모님은 평소 레이나가 그려오던 환상의 가족이다. 가족문제에서 레이나 그리고 하루히코 역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 특히 어린 아이거나 청소년들에게 가정문제는 심리적인 박탈감과 동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마이 역시 자취를 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있고, 코이토 역시 어린 시절 초능력으로 인해 왕따 당한 기억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 팬텀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부족한 마음일지도 모르나, 그런 팬텀을 이겨내야 하는 것도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다듬어가기 어렵다. 인간의 한자어가 人間이다. 사람의 사이가 인간이다. 인간에게 사람이란 존재가 서로 옆에 있어주지 않으면 인간이란 존재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팬텀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나타난다. 인간은 이성이란 정신적 활동을 하나, 감정과 무의식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도 가지고 있다.

 

<무채한의 팬텀월드>을 다시 생각해보자면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란 물리학 이론처럼, 단순히 학문적 영역을 떠나 고양이란 생물이 그동안 정들었던 인간과의 추억으로 생긴 것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은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팬텀은 인간의 마음에서 태어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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