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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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군사전략을 생각하면 이미 항공기의 우수성에 따라 달려있다. 항공기의 우수성에 의존한다는 것은 현대전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개되던 백병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병전ㅇ의 양상은 20세기 걸프전에서 보듯이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못을 박은 사례는 이라크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이다. 항공기로 이용한 적의 기지 타격, 지하기지의 붕괴, 무인 전술기를 이용한 암살, 공중정찰을 위한 조기경보통제기 등, 현대사회 공군력은 전쟁의 우위를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전쟁에서 항공작전은 비단 전투기의 성능만이 아니라 조종사, 정비사, 군사시설을 관리하는 시설인, 공중작전을 지원하는 관제사 등의 역량으로 이어졌다. 공군이 차지하는 전체 군사력에서 인원은 적으나, 공군 장병 및 장비에 들어가는 예산은 엄청나다. 전투기 1대의 가격은 수 백 억에 호가하며, 전투기 조종사 1명 양성하는데 수 십 억이 소요된다. 전투기에 들어가는 각종 무기하고, 전투기를 공중에 보내기 위한 활주로공사는 많은 예산과 공사기간을 요구된다. 서평을 쓰는 본인 역시 공군출신 예비역이고, 활주로를 비롯한 항공작전시설을 유지보수 및 시공을 맡은 건설기술자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징병제를 추진하고 있기에 일반 남성들은 육군에 자동적으로 입영하게 된다. 그러나 공군의 경우 지원으로 입대하고, 공군에 많은 부대 및 특기가 있으나, 항공기에 대한 로망 때문에 공군 지원자들이 제법 많다. 물론 항공기를 운영하는 점에서 기지시설이 평지에 위치하고, 지원시설이 타 군에 비해 좋은 편이며, 교통이용도 편리하기에 여러모로 공군에 입대한 장병들은 그런 혜택을 받는다. 공군비행장에 배속 받으면 가장 눈에 보이는 게 역시 비행기다. 한국의 군사공항은 민간공항에 입주하여 활주로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민간항공기 전용 공항은 군사공항 수보다 적다.

 

비행기를 직접 눈앞에서 나는 장면과 이착륙하는 장면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항공기를 탑승할 때 항공기까지 이동할 때 옆에서 보겠지만, 직접 눈앞에서 커다란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은 상당히 박진감과 멋진 장관을 보여준다. 그러나 생각하면 항공기는 높은 고도에서 운항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기계이다. 이런 기계가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공군복무에서 공군의 작전은 1분 1초 먼저 항공기를 이륙시켜 적의 군사기지를 타격하는 것이다.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공군전투기이다.

 

한국에서 공군이 처음 창설되어 운영된 것은 한국전쟁에서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남침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적을 무력화시키는 방도로 당연히 항공기의 운영이다. B-29 폭격기의 등장은 다량의 폭탄을 투하하여 적의 기지를 무용화 시키는 무서운 전략이다. 그러나 폭격의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지금처럼 레이더가 발달하거나 위성에서 실시간적으로 조종사에게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운항거리가 그렇게 긴 것도 아니다. 결국 부정확한 정보와 작전수행 중의 변수는 본래 원하는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게 만든다.

 

폭격의 가장 무서운 점은 수 천, 수 만에 이르는 폭탄을 지면에 충돌하여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한다. 폭탄이 터지면 우선 열에 의해 화상을 입게 되고, 폭발에 의한 공기압으로 폭풍이 몰아치며, 폭탄에 의해 건물이 붕괴된다. 군사작전지역과 민간인거주시설은 장소와 때에 따라 같이 붙어 있기도 혹은 분리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육군을 제외한 나머지 공군이나 해군은 도심지 및 항구, 교통이 용이한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지리적인 특성과 보급물자의 수급에서 육군과 공군은 한정된 위치에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도심지 내부에 군부대가 있거나, 혹은 군부대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는 전쟁이 발발하면 공격 목표가 되는 장소는 군사기지가 아닌 민간인이 사는 장소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폭격의 역사를 본다면 폭격은 단순히 적의 전투력을 마비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민간인들을 폭격할 경우 상대국의 사기가 저하되고 혼란에 빠진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해도, 군인들이 입고 먹는 식량과 의복은 민간인의 생산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경우 많은 군사기지와 더불어 민간공장들도 폭격으로 대파되었다. 민간공장에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기계, 화약 등을 다루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군인이 아니라 군수물자를 생산하기에 공중폭격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패배는 결국 미공군이 떨어뜨린 2개의 핵폭탄이다. 핵폭탄으로 손해본 것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 더 많았다. 전쟁에서 민간인을 가해지는 비인도적인 살상은 국제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늘 피해보는 인간들은 군인보다 민간인이었다. 군인에게 정보가 있었고, 저항할 수 있는 무기도 있었지만, 민간인에게 가진 것이란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순박함이다. 공중폭격에서 민간에게 가해진 잔인함은 보통 윤리적인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해불가다.

 

그러나 전쟁에서 가해지는 군사적 이익과 전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에서 민간인을 제거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게 없었다. 일단 자원을 모울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여 건장한 남성은 징병할 수 있으며, 민가에서 은신하여 적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게릴라전법에서 민간인들 사이에 잠복하여 적을 불시에 공격을 가하는 방식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민간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살상, 피난민에 대한 공격은 인간의 의식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윤리적인 영역으로 가버렸다.

 

한국전쟁에서 폭격으로 확실히 북한국은 많은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도래하면서 당시 공군력이 없던 북한이 공군력을 가지게 되었고, 언제라도 조종간의 스위치를 누르면 강력한 미사일이 지면을 강타한다. 문제는 지면의 강타가 적의 소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의 전쟁사를 <폭격>에서 본다면 미공군의 폭격작전은 북한을 정전을 하고 싶게 만든 원인이 되었으며, 현재도 북한의 반미의식이 되게 만든 트라우마였다. 미군정과 미국무부의 비밀문서를 참고하면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의식을 충분히 볼 수 있다.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수행하던 방식과 의식수준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상대로 폭격하던 양상과 거의 흡사했다. 인종주의적인 마인드와 공군조종사들의 자질이 일반 육군과 해군보다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공군 조종사들은 우수한 두뇌와 신체를 소유한 인재이나, 당시 한국전쟁에서 미공군의 조종사는 학력이 매우 낮고, 인문사회적 지식이 적었으며, 위스키를 언제나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방탕했다. 체계화된 전투조직보단 개인의 출세와 이익에 치중한 나머지 군인의 본분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민간인 폭격에 대한 부분이다.

 

분명 적군에 대한 살상과 타격은 군사작전에서 추구하는 제일의 목표다. 그런데 민간인들에게 퍼붓는 총격과 폭탄은 군사작전이 아니라 단지 학살에 불과한 일들이다. 여름철 하얀 삼베옷을 입은 마을부락에 폭탄을 투하하는 사진과 군사문서 기록을 <폭격>에 접하면서 전쟁의 섬뜩한 모습을 다시금 느낀다. 폭격의 잔혹성은 철학자의 서적에서도 나온다. 20세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유주의 철학자 선구자로 손꼽히는 존 롤즈는 2차 대전 시 장교로 출전하여 개인적 회고를 <만민법>에서 다룬 적이 있다.

 

이때 롤즈는 폭격이 가해지는 지역의 민간인에 대한 인권이 무참하게 외면된 점을 목격했으며, 제 아무리 일본이 군사적 저항이 심해도 미군에 의한 원자 폭격은 옳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권력이 없이 폭압적 조치에 의해 움직이는 신민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어떤 혜택과 지위를 보장받았다면 그 죄를 물어야 하겠으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강요로 움직이는 인간에게 과연 죄를 물어야 하는가이다. 그 인간들도 압제의 의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전쟁은 이런 인간의 기본적 원칙을 무시한다. 단지 적을 더 죽이거나 어느 순간 전쟁이란 이름 아래 인간은 전투기계로 변하고, 오늘 폭탄을 민간인이든 적에게 투하하는 것은 자동차정비소의 노동자가 차의 타이어를 교환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도덕심을 무디게 만들며, 인간에게 기만적인 자세까지 만들어 버렸다. 민간인을 폭격한 조종사들은 모두 적의 스파이 내지 적의 은신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조사만이 아니라 세계피해조사단이 방문한 결과 죄 없는 민간인이 다수였고, 대부분 어린아이, 여성, 노인 등과 같이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약자들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고 하나, 그 이면에 가려진 민간인의 희생은 한국전쟁의 신화를 창조했다. 만약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면 민간인들이 그 가치의 수혜자이다.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의 한 부분이고, 국가의 구성이 되는 것은 국민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입장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서다. 미정부나 한국정부가 보여준 행태는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 단지 어느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국가였다. 20세기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1차 및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더불어 잊을 수 없는 전쟁이다. 이 모든 전쟁의 슬픔은 가장 많이 피해본 사람은 민간인이란 점이다. 무기체계가 발달되면 전쟁의 신속하게 끝낼 수 있지만, 전쟁의 후속조치는 신속하지 못하다.

 

전쟁의 시기에 타국을 점령한 군부대가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잘 생각해야 한다. 설사 그 국가의 정부가 독재자 내지 전제군주라고 할지어도 국민들의 시선은 다른 방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 16세기에 이르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전쟁을 일으킬 경우 점령국가의 국민에게 공포를 심어줄망정 그들의 안정된 생활을 파괴하면 안 된다고 했다. 칼과 방패를 두르며 싸우는 시대에는 농작물을 건들지 못하도록 했다. 어째 보면 식량의 보급에서 장거리 운송이 힘들기에 정해진 조치다. 현대전은 수송이 언제라도 가능할 정도로 교통이 발달했다.

 

생산력의 발달은 군수물자를 신속하게 제작하여 내보낼 수 있다. 사람보다 기계에 의한 전투는 백병전이 아닌 첨단장비의 성능차이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래도 군인보다는 민간인의 피해가 심각하다. <푹격>에서 제시한 것처럼 21세기는 분단이 60년을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40년 후면 100년이 된다. 한국과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 하나, 그것은 심리적으로 같은 동족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문화적인 동물이기에 살아온 체제와 경제, 사회 등이 존재하므로 이미 북한과 한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책에서 1952년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북한주민이나 혹은 최근 전쟁박물관에 방문한 북한주민이 본 폭격의 참상은 모두 피해자의식을 만들어낸다. 즉 역사라는 것은 어느 정치적 입장에서 하나의 내러티브(Narrative)를 생성시킨다. 내러티브는 평화로운 세계에 적의 침입으로 어떤 해결사가 등장해 해결한다는 패턴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흔히 우리가 보는 전쟁 혹은 액션장르가 눈에 선한 스토리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폭력이란 이름을 마치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이 있다. 분명 북한은 독재국가이고, 북한 국민들은 가난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어도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군사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예비군제도가 있어서 만약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발령되면 예비군들은 소집되어 전쟁에 투입된다. 한국의 남성에서 현역(여군, 보충역)과 예비역(민방위)을 포함하면 인구의 30% 정도 될 것이다. 한국에서 전쟁병력이 이 정도면 군국주의적인 정치체계를 가진 북한은 이보다 더 많은 수의 군사력을 보유한 셈이다. 결국 전쟁이 나면 북한 주민 대부분이 전쟁에 동원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명살상이 일어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현실적인 관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폭격>이란 책을 본다면 과연 그 생각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사료를 정리한 부분에서 북한은 미국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형태가 되었다. 한국 외교정책이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관계망에서 형성된다는 점에서 먼저 그 날카로운 증오의 칼날을 해결하지 않으면 정리되기가 어렵다는 생각만 든다. 북한과의 외교문제는 단순히 정치적 이익만이 아니라 국내 경제까지 침체시킨다.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이 한국만이 아니라 타국의 자본을 오고가는 점에서 한국이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사라지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강경론자이 주장하는 북한의 도발도 고려해야 하나, 전쟁이 발발할 경우 과연 누가 가장 피해를 보는지 생각하면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생활을 하면 전쟁영화나 전쟁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커맨더가 되어 지휘하는 것으로 생각하나, 막상 전쟁나면 커맨더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졸병이나 혹은 전쟁터에서 무참하게 죽어나가는 행인 A, B 정도만 될 뿐이다. 왜냐하면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폭탄은 목표물이 되는 대상이 누구냐를 가라지 않고, 있는 그 자리를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거기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머저리 같은 일이라고 저승에서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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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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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5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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