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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6일 전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조너선 래티머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6월
평점 :
<처형 6일 전>을 읽으면서 예전에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이란 서적이 생각났다. 이 도서가 생각난 이유는 미국의 소설에서 유독 범죄소설이 1930년대 전후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런 일들을 제공해준 원인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세계의 자본주의화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종이의 보급화가 중요한 시점이다. 18세기 후반 책 1권 가격이라면 보통 프랑스 가족이 2주 정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한 가정이 2주 정도 생활이 가능하다면 그 가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치품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은 귀한 것이다.
19세기에 넘어오면서 인쇄술이 발달하고, 특히 신문의 보급이 활성화되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으로 진입하면서 아직까지 사진기나 영상기기의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가지는 전형적인 문자문화가 형성되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19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이 없었지만, 19세기부터는 급격히 늘어난다. 그 이유는 18세기에 자본주의 산업체계가 들어와도 근본적 산업구조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이다.
농경산업이 중심일 때는 화폐의 가치나 상업적 교역이 개개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땅을 정리하면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15세기부터 영국에서 양모 산업으로 인해 인클로저 현상이 발발하고, 많은 농민들이 농촌에서 벗어나 도시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도시로 이주하는 농민이 많을수록 도시는 빈곤문제에 큰 골칫거리를 만든다. 게다가 기존 빈민과 거지와 합세하여 도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산업사회가 점차 진행되어 도시가 대규모로 조성되면 될수록 농촌에서 유입되는 인구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런 인구를 내포하기 시작하면서 서구국가들은 많은 경제적 성장을 거두었다. 도시에 많은 인구가 모이면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대량생산이 된 상품이 다시 또 대량소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화는 늘 필요하고, 소비되며, 자본의 이윤을 거기에 따라 올라갔다.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을 조금 생각하면 내가 이런 문장들을 쓰는 이유가 나온다. 농경산업 중심 때는 범죄의 유형이 생계적인 부분보다는 국가적인 형태(전쟁, 폭동, 권력다툼)나 또는 그 사회의 본질적 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 자본주의와 산업화 시대는 개인의 생계에 의해 범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점이다.
도시로 유입된 빈민들이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가진 돈과 식량이 떨어진 순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도둑이나 강도, 혹은 굶어죽거나 또는 경찰에 붙잡혀 모진 감옥살이를 할 뿐이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나 혹은 벌 수 있는 금액은 한정적이고, 거기서 미국과 같이 원래 원주민들이 세운 국가가 아닌 유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게는 많은 이민족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기존에 넘어온 세력들이 토대를 잡아 경제적 이권을 지니고 있었고, 많은 하층민들이 매일매일 힘든 노동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흔히 마피아라고 하면, 이탈리아인들이 생각난다. 마피아들은 스스로를 칭할 때 마피아라는 것보다 파밀리아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파밀리아는 패밀리, 즉 가족이란 단어이다. 집단적으로 미국으로 넘어온 이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도 했지만, 그 기회는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들이 하는 업무는 매춘, 도박, 마약, 밀주 등 범죄와 언제나 연결고리가 묶여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1930년대는 매우 심각한 고비를 넘기던 시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세계열강의 그 세력판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전쟁에서 러시아가 차르 황제와 무능한 정부로 인해 수백만에 이르는 러시아군인들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다.
식량과 옷감 그밖에 많은 생활용품의 부족, 세금의 부적절한 운영, 무너지는 산업체계는 러시아에서 2번의 혁명으로 이어진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날 때,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어가고 있었다. 패전국들은 엄청난 빚을 지고, 승전국조차도 자신들이 투자한 군자금, 그리고 전쟁터 내보낸 군인들의 전사자 명부로 큰 혼란을 빚던 시저이다. 예전에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시대를 지내온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군대를 입대하여 참전 후 상이용사는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길거기에 누비지만, 그들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전쟁 중에 다리나 혹은 팔을 잃어 온전한 신체적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훈장달린 군복을 입은 채로 돌아다녀도 알아주지 않았던 시대, 미국에서 그런 사람들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처형 6일 전>은 그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다. 국내에서 몇 번 번역되어 최근 2015년 6월에 개정본이 발간되었고, 원본은 1935년에 나왔다.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에서 제시한 것처럼 미국은 자본주의가 우세한 국가이기도 했지만, 그 체계로 인해 범죄는 어떤 사회적 문제로 인한 우발적인 사건보다는 고의적으로 이익을 노리기 위한 지능성 범죄가 늘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일어나고, 경제적으로 큰 침체를 맞이한다. 주인공인 웨스틀랜드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범죄의 음모에 노출된 것은 그런 시대적 배경과 함께 한다. 주인공 중에서 탐정이나 동료들을 보면, 흔히 대령이라 불리는 남자가 있듯이 전쟁에서 한 번 크게 굴러본 인간들이고, 암울한 미국 경제에서 화려한 도시의 거리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이 살아있는 곳, 거기에서 한 청년은 전기의자에 앉기를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전기의자에 죽는다는 것은 아주 차가운 의자에 따가운 전력이 온 몸을 감싸, 신경이 타서 아주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다. 고통의 처형에서 인간은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그 운명의 순간이 점차 눈앞에 다가오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웨스틀랜드는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것도 모자라 죽어야 한다는 것에 매우 부당한 일이다. 그때부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탐정을 고용하고, 그들을 통해 일을 처리한다. 당시 사회는 매우 엇갈려 있었고, 도덕성은 추락했다. 만 달러의 돈은 지금도 제법 비싼 돈이다. 하지만 1930년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큰 금액이다.
자신의 무죄를 위해 탐정을 고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력을 받기 위해서는 교도소의 소장과의 커넥션이 필요했다. 억울한 일이 있든 없든 단지 죄가 그에게 지정되어 있다면 그에게 변호할 권리조차 주지 않고 죽을 수 있던 시대인 것이다. 이 소설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부조리한 일을 당한 인물로부터 시작한다. 추리소설에서 피해자는 기본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 그리고 해결사는 많은 위기와 고난을 넘어 사건을 해결한다. 단 여기에 등장하는 위기는 마피아나 깡패와 같은 악당보다는 오히려 주변인물이란 점이다. 이 소설을 볼 때부터 범죄를 구상한 자는 처음부터 있었던 셈이다.
웨스틀랜드가 무죄라고 편지를 보낸 자가 살해되는 순간, 비밀을 누가 내보낸 것이다. 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처럼 돈에 대한 탐욕이 범죄를 일으킨다. 그리고 항상 피해자 주변에 흥청망청 대는 가까운 친척이 있고, 그가 마치 꾸미는 것처럼 보이나, 범죄자는 의외라고 보이면서도 아니다. <즐거운 살인>에서 말한 것처럼 그저 그런 추리소설, 범죄소설에 가까운 형태다. 이런 소설이 발전한 동기는 물론 재미다. 신문이 보급되고 도서가 시장경제에 활성화되자, 많은 작가들은 범죄소설을 아주 싼 가격에 시중에 내놓았다.
범죄소설을 읽는 것은 재미를 위한 하나의 오락거리이다. 읽을 때마다 내용의 깊이나 전해주고자하는 의미는 없다. 보는 내낸 배신과 음모, 그리고 기묘한 발상을 이용한 증거 찾기를 어떻게 보여주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거기서도 은근히 여성의 관능미를 찾는다. 웨스트랜드의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르나, 소설에서 보이는 용의자 여성과 탐문대상이 되는 여성은 다들 허리가 날렵하고, 엉덩이라인은 마치 산처럼 퍼져 성적인 매력을 계속 강조한다. 다리라인이나 가터벨트의 색, 그리고 가운 속에 속옷, 브래지어 위로 보이는 가슴골 등이다.
사건의 마무리는 물론 웨스틀랜드의 무죄석방이다. 처음부터 그 주제는 던져 있었고, 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점에서 서사의 순번은 정해진 패턴이다. 그러나 웨스틀랜드의 무죄, 그에게 함정을 파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분만이 전부는 아니다. 탐정은 마지막에 엄청나게 섹시한 여인과 사랑의 여행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일어난 범죄가 이제는 성적인 매력이란 탐욕으로 보상받는다. 물론 우리 사회 역시 그런 탐욕의 세계이다. 탐욕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 탐욕 중 어느 것에 비중을 주는 것이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