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사람들 -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평화 발자국 8
김성희 외 5인 글.그림 / 보리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영화 2편이 생각났다. 하나는 <두 개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견>이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인 용산참사사건을 토대로 제작했다. 영화에 대한 비교에서 전자는 사실과 영화의 편집을 했다면, 후자는 순전히 가상의 인물과 이야기로 만들었다. 전자는 그래도 르포르타주 형식을 어느 정도 차용했다면, 후자는 영화라는 특성인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반영했다. 후자의 편이 카메라 앵글의 이동과 shot by shot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재미를 위한 요소에서 추리와 대립이란 플롯구조 장치도 잘 배치하였다.

 

약간의 재미를 주었는지 혹은 재현성에 대한 부분을 중시했는지 위의 영화들은 철거민들의 입장에서 보이는 현실에 대한 부당함을 제3자의 관점을 바라보았다. 카메라의 시선이 결국 어느 대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나, 위 영화는 주인공의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나의 영웅 신화 서사를 반영한 게 아니라 영웅은 현실에서 나올 수 없거나 혹은 영웅은 나약한 존재로 그린다. 이길 수 없기에 패배적 상황은 오히려 이야기의 비극성을 드러내고, 여기에 대한 관객의 반성의식을 촉구한다.

 

문제는 관객은 영화를 영화로 볼 뿐이지, 그 이상을 기대하는 부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상하게도 드라마의 가상으로 조형된 세계에 빠져들어도 불편한 이야기는 뒤로 담아두지 않는다. 단지 자기들의 입맛에 어울리는 반찬만 찾는 현실이다. 불편한 현실에서 인간들은 불편함에 대한 배타의식이 잠재적으로 숨어있다. 배타적 반발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에게 편리한 것만 추구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이타적인 정신은 이런 모순적 관계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참으로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상의 부조리, 자신이 느끼는 인식의 부조리, 이것들을 찾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의무인 것 같다. 현대미술과 현대만화는 이미지로서 수용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미술의 예술성에서 한계는 표현과 사유의 확장이지만 서사의 확장은 없다. 미술이 대중들에게 외면 받은 이유는 바로 서사가 없고, 서사는 없는 것은 공감대를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다. 공감대의 형성에서 만화는 그 힘이 강력한 정도가 아니라 전환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전환점을 불러도 다 바꾸는 행운까지 이어지지 않지만, 적어도 뭔가를 말하여 소통의 세계로 인도하는 노크까지 발전한다.

 

<두 개의 문>과 <소수의견>의 시나리오는 바로 기존 철거민들이 농성하는 상태에서 들이닥친 경찰병력과 대치하다 큰 변을 당한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철거지역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이 대치하던 것은 경찰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주민들에게 각종 협박과 폭행을 시행하던 철거용역 깡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업무상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돌면서 철거업체 관계자와 만난 적은 있어도 그렇게 난폭하거나 위험한 사람들은 없었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서 등장한 철거업체는 조금 달랐다.

 

조직폭력배는 아니지만,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신속하게 주민들을 내쫓는 모습은 참으로 끔찍했다. 이 원인은 무엇인가? 예전에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이유가 부동산 지대의 상승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여 임대받은 상가가 자신의 기존의 이윤과 임대료를 해결하기 위해 상품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자 말의 의미를 알 수 없다거나, 혹은 다른 친구와 전화통화하면서 물가의 상승이 그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가 아니냐고 들었다. 물론 물가의 상승은 복합적이지만, 갑자기 임금이 상승하지 않고, 자재도 갑자기 올라가는 일도 드물다.

 

원자재조차도 처음에 가격이 상당히 오르다가 갑자기 등락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르는 추세에 신도시단지 계획이나 주택재건축사업이 발표되면 갑자기 그 지역의 부동산이 폭등한다. 1년 사이에 그 부동산의 가치가 30% 이상 증가한다는 점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부유한 자들에게 오히려 자신의 자산가치가 늘어나고 투자의 기회가 증대되지만, 중산층에게 부동산 시세 따라 자신의 집을 팔고 이사하는 부류가 아닌 이상 독이 된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부동산의 가격이 오른다고 이사를 늘 갈 수 있는 상황조차도 불가능하다.

 

자신의 생계는 부동산업으로 통해 주택매매가 아닌 임금을 받거나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역으로 손해다. 재산세의 증가와 취득세의 증가는 역으로 세금납부가 부담된다. 그러나 제일 걱정인 부류는 세를 들어오거나 집을 구해야 하는 입주자들이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부담은 주택매매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자들의 호주머니 속에 돈이 오르면 오를수록 심각해진다. 갑자기 증폭된 부동산가격 이전투구처럼 달려드는 투기바람, 한국의 헌법은 인간의 재산권과 생존권에서 안타깝게도 재산권에 손을 들어준다. 예전에 생존권을 찾아 떠난 사람이 어느 순간 재산을 가지게 되면 생존권이 위협받는 이들을 차갑게 외면한다.

 

세입 들어간 사람이나 혹은 그 집을 소유해도 반강제로 철거당할 입장에 놓인 주민에게 이런 사업들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입장에 놓인 사람에 대해 만화작가가 현장에 가서 취재하고 지켜본 작품이다. 르포르타주의 장르인 이 만화책, 한국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이상하게도 나쁜 쪽으로 바라보고 있다. 운 좋게도 르포르타주의 장르의 만화책들은 도서관에 배치되거나 시민단체의 애용품으로 들어온다. 그것이 아니라면 웹툰으로 제작된 콘텐츠이다.

 

코믹스와 같은 재미가 아니라 사실성을 보여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화폭에 담겨진 철거민들의 아픔은 매우 사실주의적으로 그려내었다. 그림체는 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일지 몰라도 이야기의 흐름과 상황적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겪고 있는 아픔, 현실 앞에서 무력한 약자,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로 변신해 고소장을 날리는 현실, 용역깡패에게 폭행당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외면당하는 부조리,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만화로 그려낼 수밖에 없는 우리 생활 주변에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은 TV, 라디오, 인터넷 매체 같은 매체로 전달된다. 그러나 그 매체가 그들의 입장과 상황을 외면한다. 오히려 자그마한 소식지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주민으로 몰고 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를 임신한 임산부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저항할 힘도 없는 70대 노인에게 다수의 용역직원이 폭행하는 모습에서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 라는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환멸감을 느꼈다.

 

우리 사회는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히 인심이 흉흉하게 변했다. 계속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은데 그 근본적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계속 빨리 흘러간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의문을 제기하면 다른 호기심거리와 분쟁거리를 내세워 문제의 안건을 물 타기 식으로 흘러 보낸다. 오늘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현실의 벽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보고 우리가 당장 도울 수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기억은 잘못된 현실에서 미끄러지는 미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