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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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두고 남녀의 관계는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은가? 예전에 내가 책에서 본 문구가 기억난다. 여자가 남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 순간은 남자와 같이 침대에 있을 때가 아니라 침대에 나오는 순간이라고 말이다(원래의 말은 다르지만, 표현적인 요건에서 수정).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조금 바꾸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여자는 침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침대에 가기 전에 더 조심해야 하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나 혹은 일본사회에서나 어떤 식으로 연애관계가 발전할지는 모르나, 남자인 내가 생각해도 남자는 기본적으로 리비도(Libido)라는 무의식적인 성적욕구가 원래 강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억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통제할 뿐이다. 보통 남자들에게 당신은 여자에 대해 성적욕구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이 오히려 무서운 일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한 국가에서 그런 남자를 두고 뭐라고 여길까? 동성애자도 아니고 이성애자도 아닌 무성애자라면 더욱 어떤가? 여자에게 남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남자에게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약간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여러모로 불리한 점은 많지만, 그런다고 남자도 불리한 게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차이는 남녀의 성적인 차이를 떠나 그 사람이 현재 처해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으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할 수 없는 현실이고,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사정을 보고 사회적 여건을 토대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번에 읽은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이전에 읽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보다 조금 심화된 내용이다. 주인공 수짱이 예전보다 나이가 더 찼다는 점과 수짱의 친구인 마이코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아, 이번에 새로 등장할 노처녀로 사와코 씨가 등장한다.

 

수짱의 사촌동생 아카네가 등장한 <아무래도 싫은 사람> 편에서 등장한 아카네 직장동료인 기무라의 나이는 40이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등장한 사와코의 나이 역시 40이다. 그런데 같은 40이라도 여자나 남자나 혹은 모든 인간들은 나이만으로 판단해서 안 되는 것이다. 기무라는 아주 사소한 것에 자기 편의를 챙기는 사람이라면, 사와코의 경우 자신의 생활에 나름 충실하다. 그런 그녀는 40이 되도록 결혼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아직 미모도 좋은데, 몸매관리하려고 요가학원도 다니는데, 잘 풀리지 않는다.

 

요가학원에서 만난 수짱과 친해진 사와코는 집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계신다. 내용을 봐서는 할머니가 친가 쪽이 아니라 외갓집의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남자가 없이 여자 3명이 3대를 걸쳐 살고 있다는 것은 왠지 쓸쓸하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나마 어머니는 연세가 있어도 정정하시나, 할머니는 치매가 있는지 제대로 몸도 못가누고, 기억력조차 없어졌다. 할머니가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왠지 슬픈 일이다.

 

인간이 가장 슬플 때가 언제인가? 여러모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내가 혼자가 될 때이다. 혼자가 되는 순간이 슬픈 이유는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같이 기뻐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군대생활을 사병이 아닌 간부로 복무할 때 심하게 감기가 걸린 적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혼자 돌아와 너무 아파 아무 것도 안 먹고, 방 안에 이불을 혼자 덮고 있을 때 참 서러움 기분을 느꼈다. 혼자라는 것이 왜 슬픈가에서 이미 확실히 체험한 추억이다. 사와코의 걱정은 자신이 결혼하면 어머니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막상 어머니까지 연세로 인해 돌아가시면 자신은 그때 정도 할머니가 된다.

 

아무도 보살펴주는 이도 없고, 아무도 찾아주는 이도 없다. 외로운 생활이 젊어서 편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생활을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사와코의 마음은 여러모로 괴롭다. 그녀는 27살 이후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13년 동안 혼자였고, 그동안 같이 남자와 침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럴 때 가장 느끼는 자괴감은 다시 남자와 침대로 갈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여성의 40대는 30대와 다르게 신체 구조적으로 노화의 영향이 확실히 온다. 피부에 윤기도 없고(직원이 선물로 피부기름을 제거하는 화장세트를 줘도 오히려 기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뱃살도 늘고, 가슴의 탄력도 약해진다.

 

결혼은 둘째치더라도 사와코는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소개팅을 하여 우연히 남자를 만나 17년 만에 같이 침대에 가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두 사람의 가족에게 인사하는 것부터다. 남자의 집 쪽에서 사와코에게 아이를 어서 낳아달라고 요구하는 것까지 이해갈 수 있다. 하지만 임신이 가능한지 안 한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증명서를 발급해달란 소리에 갑자기 어이가 없었다. 40이 되면 거의 늦은 시기라 하더라도 그냥 되는대로 결혼해서 살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덕분에 사와코는 자신이 소개받은 남자와 인연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난감한 것이 남녀사이에 가장 더 중요한 부분이 남녀로서 대하는 것 이상의 인간으로서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독특한 성향과 취향으로 수짱이나 사와코처럼 되어갈지 모른다. 그래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혼 후 처음 인지하지 못한 상대방의 모습이 드러나면 엄청난 곤경에 빠진다는 점이다. 사람이 오래 알게 되면 사소한 것들에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나, 처음에 몇 차례 만난 사람에겐 속내를 보이는 것보다 자기포장으로 통해 보여준다.

 

인간 사회에서 자기포장은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의 경우 조금 말은 다르다. 사람의 성향이 처음에 맞게 느끼는 것은 상대방을 보고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금방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게 쉽다. 물론 어느 정도 친분이 있으면 적당히 넘어갈지 모르나, 상대방의 입장에 따라 매우 예민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그런 예민한 부분을 어떻게 잘 보여주고 잘 넘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란 제목처럼 결혼하지 않으면 곤란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곤란하다. 마이코가 결혼 후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서로 간의 대화주제가 다르고, 공감되는 부분도 다르다. 불편하지 않은 친구가 불편해지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정체된 듯 유동하는 존재이므로 자신의 정체성, 즉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과 살아온 날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저런 고민은 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때마다 다가온다. 심리적으로 뭔가 잘 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은 인간의 현재진행형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다고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인생의 역설적인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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