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트 강의 7번째 내용은 미술시장이다. 내가 평소 미술작가와 작품은 잘 모르고, 단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고전주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등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서 인간이 남긴 유산은 그 시대의 흐름과 풍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점들이 미술시장의 감정평가 기준에서 미술사적인 요소로서 작용하는 것을 알았다. 미술시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나, 미술시장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들은 정말 알기 힘든 영역이다. 미술 그 자체를 대중문화에서는 낯설고, 고급문화 차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속한 영역은 서브컬처 영역이다. 대중이 이용하는 mass culture와 다르게 서브컬처 역시 대중에게 낯선 존재다. 대중문화는 어느 특정대상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공존을 파괴하는 것에서 대중문화 현실적 기만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강연자 큐레이터분이 설명하면서 생각했지만, 한국의 화랑 즉 그림을 사고 팔 수 있는 공간에서 갤러리리스트가 부정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값 비싼 미술품이 사치품으로만 바라볼 뿐이고, 이해하기 힘든 작품성과 예술성에서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은 모순과 부조리를 만들고, 거기서 만들어진 여파는 누군가는 뒤집어쓰게 되는 또 다른 모순으로 이어진다. 미술시장은 예술가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시장으로 연결하여 문화의 풍부한 가치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90% 가량의 미술시장이 일부 30인 정도 작가에 의해 돌아가고, 나머지 10%를 약 25,000명 정도의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연간 대략 6천억의 금액에서 6백억을 25,000명에서 돌아간다 하지만, 실제 그 돈이 작가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예술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다. 예술작품들의 매매시장이 1990년 전후로 갑자기 성장한 점에서 지하경제의 돈이 건설과 금융뿐만 아니라 미술시장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벌이나 비리로서 돈을 상당히 모운 자들의 집이나 혹은 창고에 가면 미술품이 그리 많은 이유는 그때 그 시기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처세술이라고 할까나? 한국의 처세술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따르기도 싫어하는 편이라 막상 그들 입장에서는 어느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여 먼 미래에 가격이 폭등하면 하나씩 팔거나 혹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과시욕구 자체에 대해 구매계기라 하여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문제는 그 지나친 과시욕인 것이다. 미술시장은 필요한데, 미술시장이란 말처럼 시장은 곧 자본의 이동과 축척, 잉여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란 예술적 가치를 논하면서도 한편으로 상품적 가치를 논해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쏠리게 되면 작가가 매장당하거나 혹은 매도당하는 상황이 된다. 한국의 미술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미술세계만이 해결해야할 사항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으나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미술세계까지 파고들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안타까운 이유는 18~19세기 시작된 근대산업화가 서구에서 시작했다면, 20세기는 탈근대화로 인해 공업화 내지 산업화가 그 나라의 경쟁력이 아니라 문화적 수준이 경쟁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대 한국의 대표적 망국병이 1970년대 사고방식을 고수하려는 것이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당시 한국은 물자가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산업사회를 성장하는 것만이 우선사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상품은 과거와 비교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증대했다.

 

대량생산이 된 상품이 소비되지 않으면 공장운영자나 기업자들에게 부도라는 치명적인 악조건이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중심의 공업화를 지나 서비스유통 역시 그 한계성이 드러난다. 말로만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사실 그 이면은 인건비 절약이란 교묘한 수법만 숨어있다. 인건비의 감소는 결국 소비시장의 위축이고, 이것은 또 다른 경제적 악영향을 주는 모순의 순환고리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사람들에게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그 소비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줘야 한다.

 

직업군에서 기계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인간의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된다. 노동력을 감소하고 임금을 줄고 한다면 결국 생산과 소비의 관계성은 붕괴된다. 노동력을 감소하면 그 노동의 제공자들은 무직이 되어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들이 쉽게 나올 수 없다. 예술에서 보이는 문화적 가치란 바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하나의 방법이란 점이다. 미술시장의 규모가 작은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술가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거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팔지 않는다.

 

순수하게 미술을 하고, 미술품을 제공한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산업사회에서부터 그러하듯이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미술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다른 관계 업종이 필요하고 거기에 따른 부수적인 경제적 효과를 올린다. 하지만 한국은 문화자본에 대해 투자는 하지 않으려 하면서 문화자본이 상품으로서 전시될 수 있는 미술관이나 전시관만 쓸데없이 크게 비싸게 만들려고 한다. 부산 영화의 전당을 보면서 저 비싼 땅에 쓸데없이 큰 건물만 짓고, 수요는 없고 전시용 행정으로 운영하면 결국 부산시민 세금만 날리는 셈이다.

 

중요한 부분은 그 전시나 공연 혹은 여러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기반적인 인프라를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문화 위에 고급문화가 있듯이 그 아래에 서브컬처나 다른 문화권이 존재해야 한다. 기둥이 있어야 집을 세울 수 있지만, 기둥을 올리기 전에 기초공사와 지반공사부터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의 예술은 바로 이런 현실이다. 본인이 속한 세계는 분명 서브컬처 영역이나, 서브컬처에 대한 연구와 비평에선 다양한 학문과 결합한다. 가령 미술에서 서양화 내지 회화 계통, 영화와 문학도 포함된다.

 

다양한 기반이 학문적 토대라면 그곳에 성곽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미술시장보다 더 열악한 것인 서브컬처 시장이다. 한국에서 자체 생산하기보단 일본에서 수입을 하는 편이 많으며, 콘텐츠에서 자국은 열악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바닥에서 기어가고 있을 정도다. 미술세계에서 미술인들은 큐레이터나 미술관의 관장, 비평가만 하려고 하지 시장의 영역에 대해 깊이 고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볼 때도 서브컬처 영역에서 전문가들은 교수, 비평가, 정치적인 입지만 신경 쓰지 막상 그 시장에 대한 역동성은 관심조차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문이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필요에 의해서이다. 필요한 조건으로 학문의 기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비효율적인 이유로 대학의 학문들이 폐쇄되고 통합되어 사라지는 경우를 본다. 이런 현상이 오히려 역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양성을 죽이는 것은 그 가능성을 죽이는 것이고, 새로운 아이템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파괴한다. 서브컬처와 관련하여 대학교 내에 만화, 애니메이션학과가 개설되고 있으며, 미술대학은 오래전부터 계속 유지되었던 학문영역이다. 그런데 미술이나 서브컬처 시장이나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수요의 문제도 있지만, 수요의 증대를 위해서는 문화적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데, 그 개선사안이 다양성의 공존이다. 다양한 관점이 사라지면 미술의 작품 수나 형태 그리고 그것을 작업하는 미술작가도 축소된다. 중국이 세계 미술시장의 반을 잡아먹는 이유도 경제적으로 큰 규모가 이르면 더 이상 공업 산업화가 확장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문화산업 밖에 없는 점이다. 서구사회 강대국들은 자신의 나라가 선진화되면 될수록 문화재를 보존하고, 문화영역에 대한 투자를 부여했다. 국제사회에서 자본의 유동은 중요하나, 자본의 운동이 단순히 기업의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사람이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물품은 한계가 있고, 시간적으로 누적되어도 그 한계성이 있다. 문화자본력은 입고,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을 초점으로 두기에 새로운 시장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프랑스에서 베르사유궁전과 루브르박물관의 문화상품은 주변 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이에 대한 관광자원도 풍부하게 만든다. 전에 메르스 사태 이후 국내 경제를 활성화 한다는 명분으로 휴가일을 늘려 소비를 촉진한다고 하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문화와 특히 문화를 토대로 하는 관광산업은 일시적 효과로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지속적인 것인 문화산업이 계속 활성화하게 해주는 토대가 필요하다.

 

미술시장이나 혹은 서브컬처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문화산업이 한국이 부실한 이유는 이런 것들은 처음에 돈이 되지 않거나, 또는 이해하기 싫다는 점이다. 서브컬처 콘텐츠 비평에서 만화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이유는 대중들이 그런 것들을 깔보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문화공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문화산업으로 볼 수 있는 미술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미술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인간의 소유욕과 과시욕은 미술시장의 수요를 만들고 공급도 만들어 나가지만, 그 한계성은 여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