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이승편 상.하 세트 - 전2권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신과 함께> 이승편은 저승편을 이어 나온 작품이다. 저승편에서는 저승차사가 죽은 자를 불러오는 것과 저승에 가서 인간이 심판 받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와 달리 이승편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이다. 옷과 집이 없으면 추위와 더위 그리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먹는 것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의식주의 해결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다. 만약 그것이 곤란한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신과 함께> 이승편은 상당히 씁쓸한 이야기로 진행된다. 우리가 현실에서 일어나지만 은폐되거나 또는 조작되는 우리의 이웃을 볼 수 있다. 최근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한국전쟁 후 산업화 시대에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노년층으로 전략했다. 그들이 일할 때 농촌에서 나와 모두 도시로 이주했고, 전쟁 때 특히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도 많다. 그들은 이제 20세기 중반의 아픔을 겪은 후에 가정을 만들고 행복하게 살려고 했으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않다. 누구에게는 행복이 간다면 어느 누군가는 그 이상의 불행의 악운이 따른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차사 외에 살아있는 인간으로 서울 산마을에 살고 있는 노인과 손자다. 노인은 연세가 오래되어 거동이 사실 불편하나, 종이폐지를 주워 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손자는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고, 가난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 그러니깐 손자의 아버지가 되는 자는 병으로 죽고, 그의 아내인 어머니는 밖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으며, 할머니는 몇 년 전에 노환으로 죽었다. 할머니가 눈을 감을 때 아마 제대로 눈조차도 감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의 정서에 부모보다 먼저 자식이 죽는 게 엄청난 불효라고 한다. 그것만큼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슬픔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의가 아닌 우연의 사건이므로 죽는 자나 살아가는 자 모두 비극이 된다. 인간의 인생은 과연 행복인가 불행인가? 가끔 생각하면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절망은 우리 인생에서 항상 반복되어 나타는 현상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도대체 내가 살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으나 그것조차 좌절되어 존재성마저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승편에서 아마 그런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같다. 가진 것 없이 가난하고, 매일 생계에 고민하는데, 몸은 이미 병들어 앞으로 살아갈 날조차도 기약할 수 없는 운명을 말이다. 그런 할아버지에게도 응원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었던 자였다. 인간이 무속신이 되어 그들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물론 신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나는 신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신이란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관찰만 하는 존재, 즉 이신론(理神論)적인 가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 거대한 자연의 힘이 신과 같은 힘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지구온난화나 각종 자연 파괴로 인해 인간은 이상기상현상에 재앙을 당하고, 공기와 물이 오염되어 인간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분명 우리 한국인은 자신이 사는 공간과 시간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새로운 집에 이주하거나 또는 자동차를 구매하면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음식물을 올린 제단을 앞에 나두고 절을 하여 앞으로 무사태평과 안전을 기원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단지 그렇게 더욱 간절히 자신이 바라는 것을 더욱 공고하게 하여 스스로의 암시를 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은 무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있는 나무도 베어내면 목재가 될 뿐이고, 돌과 시멘트, 각종 건축자재는 생명이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집에 조상신이 온다거나 또는 가택을 지키는 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집터를 지키는 성주신,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등이 말이다. 우리 집은 신들이 지키므로 안전하다고 여긴 것이다. 아마 그것은 지금의 건축문화처럼 대규모자본이 대량생산 대량판매로서 가옥을 구축하는 게 아니라 모두 자기 손으로 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혹은 주변 사람들이 모여 집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의지가 집에 반영되어 있다. 집에 신이 거주하는 이유는 집에 사는 인간들이 집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집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신과 함께> 이승편은 가택신들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조왕신, 성주신, 측신이 거주하는 한 주택에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호하기 위해 저승차사와 겨루고, 살아있는 철거업체 업주와 싸운다. 할아버지가 연로하여 이제 곧 강림도령에게 호명당할 차례였기 때문이다.

 

손자가 입학하여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가택신의 모습은 안쓰럽고 애처롭다. 이승의 신 가택신과 저승의 신 차사에서 직급은 가택신이 높다. 그러나 가택신들은 힘이 약하다. 저승과 이승을 다스리던 대별왕 소별왕 형제에서 대별왕은 공정하나, 소별은 공정하지 못하고 간사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승을 통치하지 못해 이승의 세계는 언제나 불행과 슬픔이 넘치는 것이다. 늙은 할아버지고 고생하여 겨우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나, 아파트 재건축 투기열풍은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강제로 토지를 매입당해 집이 철거당하니 말이다.

 

이 가난한 마을에는 유독 늙은 노인이 많았다. 노인의 친구는 오락실을 운영하던 주인이나, 자녀들이 제때 찾아와 돌봐주지 않아 혼자 외롭게 병과 굶주림에서 고독사 하였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게 노인들의 죽음이다. 예전 시대에는 노인이 죽으면 그 집에서 모든 장례절차를 밟았고, 시신도 집에서 모신 후 매장을 하였다. 이제는 시신은 병원영안실에 모신 후 화장을 한다. 하지만 가족도 없거나 제대로 봐주지 못할 경우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다. 죽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아마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은 점이다. 살아있었다는 그 자체도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철거업체에도 가난한 청춘이 등장한다. 가끔 용역업체에 등록금과 생계수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보단 현실의 상황에 이끌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약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면 후에 엄청난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 남에게 피해를 주면 언젠가 그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신과 함께>에서는 그런 한국의 민간신앙 요소가 깊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만큼 한국사회의 어두운 모습이 짙게 베여 있다는 점이다. <신과 함께> 전체를 읽으면 현실이 부조리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도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승의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장담은 못하나, 만약 있다면 대부분 거기서 살아있을 때 저지른 죄 이상으로 벌을 받을 것이다. 물론 저승조차 없으면 불가능하고, 후대에서도 과거의 인물도 다른 식으로 포장이 가능하다. 힘없이 억압받는 입장이 놓인 일반 서민들에게 현실이 오히려 수라의 세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과 함께>는 다소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승편에서 보이는 철저한 현실의 고통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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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9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8-10 09:01   좋아요 0 | URL
아!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