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1 루소전집 1
장 자크 루소 지음, 박아르마 옮김 / 책세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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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지배계급에 의한 세계였다. 지배계급은 자신만의 지식과 권력, 그리고 무력을 이용하여 피지배계급을 지배했다. 철저한 지배계급 중심의 사상인 플라톤주의나 혹은 공자사상이 훌륭한 가르침이 있어도 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플라톤주의나 공자사상은 피지배계급에 대한 통치와 지배를 하더라도 억압과 착취를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배계급의 능력으로 질서 그대로 유지하고, 그 질서 속에서 모순을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그동안 정치사상에서 철학적인 요소는 배제된 채,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작용하였다.


그나마 조선의 유학은 공자의 철학이 아니라 주자의 유학이었다. 주자의 성리학으로 인해 공자의 정치사상의 기본적 토대를 버린 채 오로지 주자의 학술에만 주자의 주석에만 의존했다. 주자의 글자 하나 다르게 적거나 해석하면 멸문지화, 사문난적이 되어야 했다. 주자의 철학은 공자사상에서 종교적인 교리를 추가하여 만든 사상체계다. 그런 사상들이 계속 발달하면서 학문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으나 그 학문의 깊이를 두는 의미가 사유는 계속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학문과 사상을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인간은 본래 구석기 이전 시대에는 동물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었다. 인간은 단지 동물 포유류에서 2족 보행을 하는 종이었다. 침팬지나 원숭이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미개한 족속이었다. 인간에게 자연이란 그저 자신에게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질서였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죽고 살아가는 것이란 동물적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동물이란 것은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여도 그 죽음이 당연한 것이고 그 죽음조차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에게 이성적 판단력, 그리고 시간적 관념을 가지고 나서부터다.


인간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된 동기는 시간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아마 신석기 시대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벽화에 그려진 그림을 보거나 거대한 돌무덤을 본다면 자연 속의 미개인이던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상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아주 작은 이성적 능력이 있었기에 동물적인 본능으로 자연을 경험하는 게 아니다. 천둥번개를 보면 신의 분노이고, 가뭄과 홍수는 신의 재앙이며, 풍년과 수확은 신의 축복이다. 자연의 흐름은 과학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했고, 자연의 변화는 신의 능력이라 여겼다.


그런 시기에 인간은 신과 자신을 동일하게 보고, 점차 세력을 넓히고 무기를 들고 빼앗고 약탈했다. 힘으로 통치하던 지배자들은 더 이상 힘으로 지배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들에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정치적 권력이고, 그 권력은 지식과 조직체계다. 인간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제시키고, 그들이 자신의 권좌를 노릴지라도 그 권좌에 앉아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게 만드는 것이다. 지식의 역사란 과연 인간을 위해 존재했는가? 아니라면 문명이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했는가? 물론 존재했을지 몰라도 보통 누리는 것보다 어느 특정 누군가가 훨씬 더 좋은 행복과 혜택을 누렸다.


이런 체계를 정당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지배계급의 정당화이다. 플라톤의 철학이 그나마 용인 받는 이유는 플라톤은 정치가에게 철저히 강인한 육체와 현명한 지혜를 갖추기를 원했다. 오로지 수련하고 검소한 행동으로 용기와 절제를 강요했다. 하지만 지배계급에 올라선 자들을 지켜보면 실제 그런 행동을 한 자는 거의 드물었다. 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훌륭한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이 용감했는가? 죽음이 바로 마주하는 전장에서 그들은 왜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을 따라 트로이아인들에게 돌격했는가? 그것은 식사시간에서 알 수 있다.


모든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제사로 받친 고기를 모두 공평하게 배불리 먹게 해준 것이다. 왕이나 병사나 모두 같은 음식과 술을 마시고, 전리품은 왕보단 부하에게 나누어준다. 그래서 병사들은 용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공물을 위로 몰릴수록 병사들은 겁이 많아지고, 위에 있는 장수와 부장들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인간이 된다. 인간의 문명에서 과연 우린 문명인이라 볼 수 있을까? 분명 기술과 문명은 시대가 흘러갈수록 발전한다. 이런 인간의 문명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과 좋은 인생을 살아온 것인가?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이 바로 장 자크 루소다. 그의 서적은 아주 역설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내재되어 어느 편중된 시선에서 보는 것이란 불가능했다. 그런 만큼 루소의 인생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하고 어느 한 가지로 정의내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루소의 인생은 과연 어떤 것인가? 사실 인간 스스로의 자서전이나 또는 그런 평전들은 문학소설(도서관 비치번호 800)이나 역사서(도서관 비치번호 900)에 올려놓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루소의 자서전이란 문학도 아니고 역사서도 아니다. 그의 서적은 100번대인 철학도서다.


처음 나온 자서전인 <고백>, 다음으로 나온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그가 죽기 전에 미완으로 끝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모두 철학도서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생각 그리고 그가 겪는 현실을 적는 것이 자서전이라면 분명 역사도서일 것이다. 하지만 루소의 자서전은 그의 역사만을 기록한 게 아니다. 인간이 가진 온갖 역설과 모순 그리고 비극과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통해 노래한다. 그것은 하나의 비극 시와 같고, 극단적이고 격정적인 글들이었다.


왜 그런가? 왜 루소의 서적이 이래 독특한가? 많은 역사적 인물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불리한 부분을 적지만, 결국 그것을 뛰어넘어 하나의 영웅으로 남으려 한다. 그러나 루소는 전혀 영웅적으로 보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시절 영웅처럼 보이고 싶어 하다 곤란한 입장을 놓인 것을 적어 놓는다. 루소는 태어나면서 평범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 그 동기는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머니는 루소를 낳자말자 돌아가시고, 루소는 숙모의 손에 큰다. 어머니의 부재, 그 어머니의 산통으로 태어난 루소는 건강하지 못했다. 작은 키에 마른 체구, 체력도 약하고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


삶에 대한 회고에서 그는 분명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루소는 세상이 자신보고 불우하다 해도, 자신 스스로는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한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루소의 인생을 알려면 단순히 <사회계약론>과 <인간불평등기원론> 같은 서적이 아니라 <고백>으로 통해 들어가야 한다. <고백>을 저술한 시기는 루소가 가장 인생에서 가장 불우한 시기에 적은 것이다. <사회계약론>이 왕권 절대주의에 큰 문제가 되는 책이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에밀>이었다. <에밀>을 읽게 되면, 신이란 우리 인간을 처음부터 만들고 모든 것을 결정짓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는 이미 신에 의해 완벽하게 태어났고 그 인간 스스로가 삶을 결정짓는 것이 바르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과 마주하는 것은 그가 저승에 가면서부터다. 신은 그저 인간 스스로의 양심을 바라보는 이신론(理神論)적인 존재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진 것이라 말하는 기존 가톨릭교회로부터 루소는 악마적인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에밀>에서 더 위험한 말은 곧 유럽에서 혁명이 시작된다는 글이다. 실제 <에밀>은 1762년에 출간되고, 그로부터 27년 후 프랑스 바스티유광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그의 끔찍한 예언은 루이16세의 목을 단두대의 칼로 분리시킨다. 루이16세는 자신의 왕국을 무너뜨린 자가 루소와 볼테르라고 한다. 하지만 볼테르보단 루소에게 더 많은 호응과 열의가 다가왔다.


루소가 살던 시절은 루소의 삶은 매우 불우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자 그는 프랑스의 신이 되었고, 세계 혁명가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고 좌우 이데올로기를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그런 루소의 삶 자체가 엄청난 모순과 역설이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새로운 가치와 사유를 만들 수 있던 것은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삶과 시선을 가졌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 느낀다면 그 사회 자체를 읽을 수가 없다. 사회 테두리 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낯선 나그네로서 바라보기에 세상을 알고 바꿀 수 있었다.


루소는 바로 그런 힘을 가졌던 것이다. <고백 1>을 보면 루소가 어머니의 부재에 콤플렉스를 가졌던 점, 특히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 관심 받는 것을 좋아했다. 고백 초반에 어린 시절 랑베르시에 양에게 교육을 맡길 때, 그녀에게 혼날 때 루소는 고통과 더불어 쾌락의 감정을 느꼈다. 흔히 말하여 상대 이성에게 성적이나 혹은 다른 식으로 학대받는 것에 성적 쾌락을 가졌다는 점이다. 루소의 성적인 증세는 마조히스트였다. 루소 시대 이후 후작이나 문제가 심각했던 사드는 사디즘을 만들데 한 장본인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루소의 성적인 결벽증과 돌발적 행동은 그의 심리적 불안에서 기여된 것이다.


그의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행동은 인간에게 이성과 감정이란 세계 말고도 무의식이란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알리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준 것도 루소라고 한다면 근대사상에서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가 중심이었다면 루소는 그들보다 이미 100년은 앞 선 것이다. 단지 루소는 자신의 분석이 자신의 역설적 요소라는 점이고, 그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어두운 곳에 나와 여성이 있는 것을 목격하면 그녀들이 눈에 뛸만한 곳에 가서 자신의 코트를 열어 놓는다.


그 옷 속에 숨은 자신의 성기가 여자에게 보이게 되고, 루소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여자들의 비명과 시선에 쾌락을 느낀다. 이름 하여 바바리맨이 루소가 보인 행동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엄두도 못 낼 행동을 루소는 실천했고, 덕분에 어떤 건장한 남성에게 잡혀 봉변 당할 뻔도 했다. 루소가 가진 성적인 증세는 지나친 자위로 자신의 심신이 소모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다른 여자들을 육체적으로 취하지 않고, 정신적인 상상력과 자기 스스로의 해소는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루소는 수줍음이 너무 지나쳤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아주 연약한 마을에 격렬한 감정, 도저히 자신을 자제할 수 없는 소용돌이는 누가 보더라도 루소를 이해가 불가능했다. 루소조차 당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기보단 자신의 심정을 대변했을 뿐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너무 지나치게 편중된 점에서 루소는 자신을 학대하고 상처 주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으려 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너무 학대하는 사람을 우리가 본다면 더 이상 다그칠 수 없는 것처럼, 루소의 자화상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루소를 보고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루소는 자신의 <고백>에서 자신의 책을 읽는 대단한 사람들이란 문구가 있다.


이 문구를 읽어본다면 나나 다른 분들은 루소에게 있어서 대단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루소보다 대단할 수 없다. 그가 남긴 인간중심의 민주주의,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라서 아니다. 루소보다 우리가 더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반성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도 자신보단 주변에 있는 불쌍한 이웃에 향한 루소의 연민에 대해서 말이다. 루소는 파리에 가면서 느낀 것은 거리에 비참한 사람이 넘쳐나고, 시골농촌의 농부는 과다한 세금착복에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미 그런 비극은 계속된 현실이었고, 어느 그 누구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려하지 않았다.


볼테르가 지적한 것은 무능한 정부이지, 무기력한 민중이 아니었다. 루소는 바로 그 민중을 향한 시선을 <고백>에서 처음 나타낸다. 이미 디종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받은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를 읽어본다면 루소가 바라보는 것이란 문명에 대한 인간의 모순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 학자로서 가장 피하여야 할 그 방식을 예나 지금이나 고수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루소를 보고 더럽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의 입으로 나의 더러움을 말하여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 그 누가 실천할 수 있는가? 이런 현실을 보면서도 아무런 외침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나약함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지만, 루소에 비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간사한 존재다.


루소는 인간의 이중성을 제대로 고발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 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자신은 그런 인간이 되길 거부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유산이나 연금을 주려해도 거절하고, 명예와 이름을 높이려 해도 거부했다. 자신의 힘으로 책을 저술하여 매출된 서적으로 돈을 받았고, 늙어서도 방에 홀로 앉아 악보를 뺏겨 쓰며 자신의 생계비를 충당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다소의 이익에 눈을 밝히며 덤벼드는 사람을 볼 때마다 참 난감하다.


작은 이익은 아니지만, 그 이익이 결국 타인의 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훔쳐가고, 타인에게 커다란 빚을 안겨준다. 그런 행동에 대해 자신의 양심에 일말 가책도 없고, 좋은 기회에 돈을 벌었다고 주변에 자랑하며, 그런 자신의 지혜로움을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힘들거나 방송에서 세상물정이 어려우면 남에 대해 걱정하는 척한다.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선량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바보 같은 사기에 나는 그들을 비웃고 있는 것을 느낀다.


현실에서 바보처럼 내 이익에 밝지 못한 채, 그런 이익을 충실한 인간을 보며 비웃는 내 자신이 옳은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속에서 그들을 비웃는 내 모습이 있기에 그들처럼 살지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나도 그러한데 모든 인간들은 역설적이지 못해 그것을 모르고 자신의 모순에 빠져드는 세상을 보면서 그들에게 과연 진정한 고백이 존재할까? 부끄러움 자신을 알고 반성하는 삶, 그것조차 없는 인생이라면 과연 그의 최후에 어떤 식으로 인생이 질문을 던질까? 차라리 스스로 인정하는 삶 그것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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