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하 - 완역본 범우고전선 32
투키디데스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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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헬라스의 운명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 사이의 전투에서 큰 전환점이 일어난다. 상권에서는 전쟁의 발발이라면 하권은 전쟁의 진행에 따른 헬라스 국가들의 운명을 나열한다. 후자의 입장에서 그 역사적 순간은 하나의 인과과정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는 인과과정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리스 사람들, 즉 헬라스 국가 인간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신의 존재까지 존재했다고 믿었다. “모든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이신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이시어!”라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전집처럼 인간의 운명에서 헬라스인들은 신과 함께 한다고 여겼다.


급한 전투의 순간에도 또는 당장 원정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헬라스 국가사람들은 신에 대한 축제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신들의 축제를 벌이는 순간,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점에서 그들의 전쟁이란 신의 가호가 있는 전쟁이었다. 물론 투키디데스는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부정적인 시선은 보이지 않으나, 그런 부분들이 전쟁의 상황에 큰 기여를 한다. 심지어 점술사의 점괘, 신전의 신탁까지도 모두 받아들였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그리스 국가에서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신의 축복에서 의해서라고 본 것이다.


만약 그런 감정이 없고, 단순히 인간 스스로에 찾게 되면 절망적인 상황에 희망이란 단어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신의 축복은 전쟁에 패한 전사들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축복은 트로이전쟁에 원정을 나간 아가멤논 왕에게 찾아온다. 바다의 폭우를 멈추기 위해 아가멤논 왕은 자신의 딸을 희생물로 받쳐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 대신 딸의 죽음은 아내의 배신으로 이어지고, 아내의 배신은 아가멤논 왕을 하데스의 신전으로 인도한다. 인간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을 헬라스 인들은 그리스신화로서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아테네 국가라는 이름이 아테네 여신이듯이)들을 외치고 애원해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파멸을 맞이하고 만다. 아테네는 해상전력이 강력한 것만 믿고, 또는 다른 동맹국가가 자신들의 권위에 복종하여 따라올 것만 생각하여 의외의 복병을 피하지 못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읽게 되면 모든 상황을 아테네인들이 만들었으나, 그 상황에서 파멸의 순간 아테네인들이 지명한 인물로부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큰 회의석상에서 어느 인물들이 무대 위로 나와 연설을 한다. 이들의 연설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막 소피스트들이 도래하던 시기와 맞물러 그들의 논설은 매우 유창하고 화려하다. 발언대 위의 연설자들은 대중들을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문제는 그 연설에서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점이다. 다른 연설자가 각각 다른 시기에 올라오나, 실제 애국자와 위대한 정치가는 들리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대비하는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설픈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명예욕을 자극하고, 안일한 자신들의 생활에 적의 침공을 막지 못해 아테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내용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서애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이 생각났다.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끝날 때까지 정리한 내용으로 7년 전쟁의 비참한 상세히 기록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전쟁에서 피해를 받은 이유, 그리고 전투에서 계속되는 패배는 단순히 운이 아니라 그 상황을 만들게 한 원인이 있었다.


제일 답답한 순간은 왜군이 계속 북상하고 있을 때 소문으로 조선군 주변에 왜군이 도래한 장면이다. 누군가 계속 왜군이 온다고 이야기해 군영이 소란스러워하자 군사 지휘관은 그 소문발언자를 찾아내 참수형에 처한 점이다. 건강한 장병을 전투에 투입해 승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나 군영의 엄숙함을 지키기 위해 참수형을 선택한 점에서 패배의 원인은 결정되었다. 만약 그 소문을 듣고 왜군의 향방을 알아보기 위해 척후병이나 수색대를 파견했더라면, 왜군의 침투에 큰 피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정보력의 신속성, 지휘관의 판단력이 전쟁의 좌우를 결정지어 버렸다. 현대전은 과거 한국전쟁처럼 총을 이용한 백병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전자정보전이 우선이다. 공중에 전투기를 이륙시켜 적의 기지를 강타하고, 얼마나 많은 전투기를 출동시켜 적의 군사시설과 주요기관을 파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군사전은 정보력이 제일 중요하고, 빠른 정보수집과 신중한 지휘관의 명령은 전장의 상황을 바꾼다.


현대전에서도 이런 조건이 따르는데, 과거 그리스 폴리스 국가시대는 더 심각했다. 적조차 온다는 것도 알 수 없었고, 적의 숫자나 장수 심지어 전투하는 시기에 바다에 폭풍이 오는지 육지에 지진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인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이유는 정보의 부족이었다. 상대방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점,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너무 쉽게 의지한 점이다. 전쟁은 무슨 조건에 의해 승패가 어떻데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전군을 멸망시킬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그 지휘관이 자신의 성과를 너무 추구한 나머지 적진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서 많은 사상자를 만들기도 했다. 투키디데스는 분명 아테네인이지만, 그의 시각에서 아테네 적 스파르타는 그런 문제를 충분히 넘어선 점이다. 침착한 전투지휘와 확실한 적의 타격은 아테네를 패망의 길로 인도했다. 게다가 군의 지휘관이 간단히 바뀌지 않고, 오히려 왕의 아들이나 왕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여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상황은 시민들은 현명한 참여자보단 금방 입맛을 바꾸는 표리부동한 모습만 보였다.


민주주의 정체제가 있기에 아테네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었으나, 그들에 결여된 점은 시민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지성이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시민들은 그 사회의 주인이나, 그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배계층으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지성과 인성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아테네의 패배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배반과 이기적인 행동은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것은 니키아스가 알키비아데스의 행동을 저지하려기 위해 군중 앞에 연설할 때 그것을 선택한 군중들이었다.


알키비아데스 같은 유형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같은 부계 친족들이 어느 업적을 쌓고, 사회적으로 높은 인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후예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도 알키비아데스는 부계 친족의 명성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고,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알키비아데스의 행위를 보는 것처럼 전쟁이란 어느 한 명에 의해 일어나는 게 아니나, 어느 한 명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큰 타격을 받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의 긴 글은 바로 이런 점들을 보여준다. 알키비아데스와 달리 페리클레스의 모습은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으로 비추어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위대한 아테네 정치가 페리클레스 혹은 훌륭한 스파르타 지략가 브라시다스보단 항상 알키비아데스에게 많이 홀린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조롱을 받고, 뒤에는 아테네인들의 잘못된 선택의 책임까지 져야했다. 브라시다스는 아테네에게 열세에 빠진 스파르타의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그의 공적에 질투하는 스파르타의 위정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다.


이렇듯 전쟁에서 각종 인간의 군상이 튀어나오고 그 당시 훌륭한 인물들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전쟁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이다. 알키비아데스가 허망한 행위가 먹혔던 이유, 그리고 스파르타가 이겼던 이유를 잘 보아야 할 것이다. 아테네는 과거의 영광에 빠져, 그 영광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의 위치에 교만한 태도만 취했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영광은 바로 지도자들의 앞잡이다. 칼과 창 그리고 화살이 날라 오는 전장에서 스파르타 왕은 자기의 몸을 아끼기보단 직접 병사를 인솔하여 적진을 함락시킨다.


물론 스파르타 내의 왕을 감독하는 독시관이 있고, 그들도 나름 정치제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위험에 가장 먼저 도전하는 스파르타의 왕과 그들을 따르는 라케다이몬인 전사들에서 지금의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관료사회 문제는 관료주의화 되면서 관료라는 직함보단 관료라는 직함으로서 얻어지는 이익에 치중하여 책임을 뒤로 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바로 그런 관료주의 모습이 일체 없었다. 관료주의 폐단이 국가의 부를 감소하고, 국민을 피폐하게 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강한 지도자란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 위험한 장소에 가서 몸을 날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전쟁으로 인해 플라톤의 저서들은 그가 아테네인이고도 불구하고 각종 서적에 나타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강한 철인군주의 통치가 필요한 것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에 어긋난 것이나, 정치가라면 누구나 그런 플라톤의 정치사상에서 말하는 바를 생각해볼 점이고, 그들을 선출해야 하는 국민들은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같은 실수를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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