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 동백 숲길 맑은 그늘 물 끝난 곳 구름 이네
정민 지음, 김춘호 사진 / 글항아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가 동양에 있는 국가이나, 현재는 서구사회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서구화가 되었다. 물론 국제사회 동향과 미래에 대한 움직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고, 앞으로 그런 추세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구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 중세유럽과 르네상스 이전인 16세기까지 농업중심에서 17세기부터 목축업이 성행하였고, 19세기부터 공업이 발달하여 상업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산업구조가 농업, 공업, 상업으로 이어지고 20세기는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산업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부터는 다른 산업구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경제단위의 확대로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게다가 대규모공업화와 농업의 기계화 도입은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고, 단기적인 인구증가는 직업체계에서 누구나 회사, 공장, 농사, 장사만 한다고 하여 그 수요를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직업을 찾아봐야 할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대안이 되는 사업이란 바로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은 하루아침에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꾸고 자라면 크게 꽃을 피우는 과실수와 같다. 흔히 예술과 철학을 말한다면 분명 프랑스와 영국을 생각할 것이다. 미국은 자유주의 정치에서 하버드대학교를 생각하겠지만, 예술로선 유럽에 미치지 못한다.

 

파리에 위치한 베르사유의 궁이나 루브르박물관은 세계적인 예술품이 있어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쇄도한다. 그들이 파리의 문화를 즐기면 그 거리의 식당이나 문화 상품을 파는 곳도 성행한다. 그에 따라 상업이 발달하고, 음식을 먹으면 농산업이 유지되며,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나 수공업자도 이어져간다. 문화산업은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주는 경제적 돌파구다. 하지만 문화산업은 결코 무에서 유로 되는 게 아니다. 그 무의 공간을 만들어줄 기본적인 베이스가 필요하다. 한국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의 농업 국가였고, 해방이후 근대화시절에 공업과 상업이 발달했다.

 

대규모 공업은 처음에 많은 노동인력을 필요하게 되었으나, 기계의 발달은 인력을 감축하고, 서비스산업이란 사업이 발달한다. 하지만 이젠 서비스산업도 소비하는 주체인 소비자의 소비능력 감퇴로 과소소비의 한계에 도달했다. 산업구조가 더 이상 기존체계로는 무리고, 앞으로 다른 산업이 필요하고, 여기에 대한 인력과 투자개발은 새로운 직업군을 필요하게 된다. 문화산업의 기반은 바로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적인 생활 그리고 문화적 베이스가 되는 그 민족만의 특이성이다. 한국에서는 아마 위에 3가지 모두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문학 전공자가 줄어들어 그들이 사회에 나가면 생계가 힘든 세상이고, 문과계열은 취업위주의 교육을 추구하여 문화적인 소양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겁다. 이런 사회적 구조와 교육현실은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모두 막아버리게 되고, 그들에게 문화적 생산력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mass culture 즉 대중문화를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다른 하위문화나 고급문화 또는 counter culture 같은 반문화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다양성이 문화산업의 기반이고 에너지다.

 

세계화로 통해 우리를 서구사회의 틀이란 옷을 입는 것도 좋으나 가끔은 우리만의 옷을 찾아 입는 것도 필요하다. 옆 나라 일본이나 유럽의 국가에선 자기만의 특유문화를 살려 관광 사업으로 만들거나 또는 관련 상품으로 제작한다. 스토리텔링으로서 문학, 연극, 영화, 만화, 게임 등으로 새롭게 재생산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여 다시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확립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아이템을 만들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각 마을의 특성을 살려 축제라는 행사를 개최하는 일이 많아졌다. 축제에서 단지 먹고 노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가치관을 부여한다면 그 행사는 더욱 값진 것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런 축제와 행사의 질을 올리는 것은 문화적 유산이 기반 되어야 한다. 황무지 위에 씨앗을 뿌려도 꽃이 피기는커녕 나무줄기조차 올라가지 않는다. 이번에 읽어본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은 기존에 내가 가진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대만권역에서는 다도문화에 대한 교류가 있다. 중국 운남성의 보이차, 일본의 말차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한국의 대표차로는 작설이 있을 것이다. 다도문화와 관련하여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하고, 술을 마시면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문화의 보존만이 아니라 건강을 챙기고, 차는 선비들의 독서생활에서 즐기던 것이므로 우리 조상의 지혜에서 술보다 차를 권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가 강진 다산초당이듯이, 유배지 주변에 있던 월출산 자락의 백운동 역시 좋은 경치였다. 다산초당이나 이 책이 소개하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나 생각하면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이런 역사와 문화공간이 숨 쉬는 곳이 국가에 의해서보단 그 문중의 후손에 의해 지켜진 것이다. 한국이 양반과 상놈이 없어진 곳이지만, 진짜 양반가문이라면 그런 양반의 특권의식이 아니라 양반들이 지켜오던 그 문화적 유산을 기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 누구의 지원 없이 오로지 후손들의 손으로 지킨 문화유산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화산업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책을 읽어보면서 아름답고 경이로운 우리 문화유산이 저 멀리 일본과 유럽에 있었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 문화재의 보존과 전승은 그 나라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문화자본으로서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민 교수가 저술한 이 책에서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 당시 이 서원의 주인들과 그들을 방문한 나그네를 찾으며 우리 문화와 자연을 음미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초의선사와 완당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시대 차의 성인으로 모셔진 것처럼 강진에서 유배생활이 한국의 다도문화의 활성화 시킨 것을 생각하면 좋은 문화유산을 발굴한 것과 같다.

 

흔히 한국의 차밭이라 하면 보성차밭을 생각하나, 그곳은 일제가 대규모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에 비록 차의 생산은 많으나, 단지 넓은 차밭을 제외하면 문화적 유산가치가 강진에 비해 부족하다. 백운산의 죽로차는 대나무 숲의 이슬을 먹은 찻잎을 따서 만든 차로 그 맛이 어떨지는 모르나 분명 깊은 세계를 가질 것이다. 대학시절 다도문화동아리에서 활동할 적에 한 번 강진의 다산초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다산 선생님이 기거하신 다산초당은 윤단의 별채였고, 거기의 후손들은 다산 선생님의 제자들이었다. 그 제자의 후손들이 계속 초당과 주변을 지키고, 다산차를 지켜왔다.

 

다산 선생님의 제자 18인이 만든 모임인 다신계에서 그 중 한 사람의 후예가 그 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사서 마신 차는 이때까지 어느 작설차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구수하고 깊은 차 맛에서 다산 선생도 좋아한 백운산 죽로차 역시 상당히 좋은 차란 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별서정원의 조경과 주변 환경은 자연에 대한 인공적 자연미가 무척 어울려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은 운치가 있을 것이다. 현대처럼 뜨거운 자동차매연 아래 콘크리트 숲을 걷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안정이 없다.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푸른 숲과 한옥, 과거의 것이라고 하나 지금의 우리 마음에 치유로서 그 가치는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그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며, 많은 기록을 남겼으니 한국의 국문학과 미술까지 같이 자라나는 것과 같다. 그동안 한국은 먹고 사니즘에 정작 미래에 먹고살아갈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모습을 알고, 그 현재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문화적 유산은 바로 거기부터 시작이다. 한국이란 나라가 계속 한국이란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그것이 곧 우리의 자산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문화에도 중요하다. 2012년 유네스코 인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되셨다. 한국의 인물과 그 인물로 통한 문화적 유산이 세계유산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유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문화적 가치가 오르면 교류가 활성화되고, 교류가 활성화되면 상품과 시장이 발달된다. 우리의 미래는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은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