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공주와 잊지 못한 상처 - 요희전기 3, Novel Engine
크레파스 지음, Mx2J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요희전기 3번째인 <물의 공주와 잊지 못한 상처>를 보며 1권과 2권이 달과 불의 공주인 점에서 다시 공주라는 인물이 메인 표지 일러스트로 등장했다. 그 인물은 수향의 이사장 외동딸인 수희, 전형적인 자본력의 토대가 되는 화폐의 운영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이곳은 왕은 대주주이며, 모든 자본가보다 더 많은 나라의 주주를 가지고 있다. 단지 일반적인 부르주아와 다른 점은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 보여준 것처럼 수향의 이사장은 다른 곳에 망명하면서 치사하게 혼자만 몸은 보전하려고 한 게 아니라 가난과 고통 안에서 사라져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한 나라의 군주로서 충분한 책임감을 느끼고, 화선으로부터 침공당한 수향을 위해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딸인 수희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 수향을 위해 월린과 유하와 손을 잡게 되었다. 동맹을 임시를 맺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동맹 이후에 진행되어야 할 상황 전개다. 지나칠 만큼 강한 화선의 공격 아래 무력한 월하의 게릴라전은 이미 의미 없는 것처럼 되었다. 화선의 왕자이며 유하의 라이벌인 태화는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월린과 월하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라 한다. 일부러 모조리 죽이지 않고, 자기 진영에 빈틈을 만들어 서로 대치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의 스토리설정에서 숨은 복선과 플롯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전반적으로 화선이란 국가를 보면 내부적으로 권력다툼이 매우 심한 곳이란 점이다. 요희전기 2권 별권부록에 나온 꽃의 나라에 온 황비와 그녀의 아이가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둘 다 아무런 힘도 없었고, 그저 가만히 인형처럼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녀들의 죽음은 화선이란 국가가 얼마나 많은 권력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단순히 황제와 황제의 자제인 황녀와 황자만의 다툼만이 아니다. 그 뒤에서 움직이는 세력들 스스로가 알아서 권력다툼에 참가하여 원하지도 않은 죽음을 만들어낸다. 그런 세계에 있으려면 보통 사람의 정신으로 견딜 수 없다. 그 잔혹한 타성이 길들여져 같이 파멸 속으로 달려가거나 또는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키며 어둠의 타성에 빠지지 않게 살 수밖에 없다.

 

화선의 황자인 태화는 그런 존재인 것 같았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냉정한 그의 군사작전은 천재소녀인 유하 이상으로 능력을 보여준다. 월린이 있는 월하국가와 대립으로 그가 얻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니, 살아가기 위해 싸운다는 말은 결국 그에게 어떤 운명적인 흐름에 몸을 담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월하에 최고의 전사인 산신의 반응은 재미있다. 산신이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바로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그 흐름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그 흐름을 누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의 국가일 수 있고, 타국의 존재일 수 있다. 화선의 황자 태화는 바로 자신들이야말로 화신이고, 화신은 산신처럼 흐름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한다.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정체된 상태에서 멈추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존에 멈추어진 큰 벽이 있다는 뜻이다. 화선의 황자는 남들이 모르게 큰 계획을 꾸미는 것이다. 억지로 월린과 유하를 곤경에 빠뜨리고, 그러면서도 바로 죽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단지 그의 계획에는 흑록과 큰 관계가 있다. 또한 유하가 왜 그렇게도 흑록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뭔가 숨어 있다. 흑록은 분명 월하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월하가 망하면서 그의 고국을 등졌다. 그렇지만 그가 등진 것은 사실 국가만 아니라 또 하나가 있었다. 바로 동생의 존재였다. 태화는 흑록에게 흑록의 동생 흑비가 자신의 옆에 있고, 그녀는 완벽한 화신이라고 한다. 화신의 존재에서 흑비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전란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는가? 단순히 3권은 그런 새로운 상황만 암시해주고 막을 내린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면 전체적인 흐름 화선으로부터 수향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총회 과정에서 시량의 방해, 그리고 계속되는 대립, 그 와중에서 주주총회의 패배, 그렇지만 단순히 태화가 노리는 것은 월하를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월하가 화선과 비등하게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적 차원, 정치적 상황에서 간단해 보이는 공식이 성립되나 그 상황에 놓여있는 인간에게 간단하지 못한 것이다. 국가라는 것은 눈앞에 당장 보이는 게 아니라, 그 국가조차도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에서 국가 그 자체가 관념적 존재에서 하나의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국가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국가의 사람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많은 군인들은 전투 중에 무참하게 사라져 가버린다. 그래서 잊지 못할 상처란, 흑록만 그런 것만이 아니라 월하에서 활동하는 전장지휘관 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매우 힘든 전투상황에서 군사 반 이상을 탈환하여 무사히 퇴각했다. 퇴각에서 그는 많은 병사를 살릴 수 있었지만, 그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다. 그의 선택은 결코 남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지시하는 과정에서 실제 그곳이 함정인 줄 알면서도 부하에게 가라고 명령하거나, 또는 그 과정에서 위험한 것임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여 상황을 타파해 나갔다. 자신과 많은 군인들은 살아왔지만, 대신 누군가를 희생하게 만든 셈이다. 전쟁에서 누군가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그 레퀴엠을 울리게 만들 상황에서 지휘관으로서 휘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족감, 즉 자신에게 대한 만족하는 것이다. 그 만족감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성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휘는 그런 성과를 내면서도 자신의 기만적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휘의 죽음으로 살아난 흑록은 그런 기분을 알고 있었다. 살아남는 것은 중요하나, 그런 삶이란 행복과 동시에 허무함과 후회로 가득하여 복잡한 심정이 되게 마련이다. 흑록이 가진 그런 허무함과 순간적인 위기에 놓인 생존본능, 인간은 자신의 무력한 현실 앞에 지루함을 느끼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죽음의 경계로 간다. 죽음의 공간이 펼쳐지기에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자신에 대한 삶의 의지가 없다는 점과 그 의지가 없다는 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린 이유는 자신에게 한가한 평온함이 상실된 셈이다. 요희전기 2권에서 유하와 사이가 서먹했던 흑록의 모습은 자신이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 있어서이다. 휘의 죽음에서 자신만 살려던 휘의 과거에서 휘는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후회가 상처가 되었고, 타인과의 관계를 더 나아갈 수 없는 벽이 된 것이다. 전쟁이란 인간을 극한의 상황과 위기를 주며, 극단적 인간을 보여준다.

 

거기서 망가지거나 망가지지 않거나, 망가지더라도 단지 어떻게 망가져 가서 최후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는 것이다. 전쟁이란 많은 인간들을 비참하게 만들어내는 재앙 중에 재앙이다. 그런 재앙에서 인간은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도 전쟁을 계속 원하는 자는 있고, 그 전쟁을 계속 유지하여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내는 자도 있다. 그 안에서 흐름을 따라가는 산신이나, 그 흐름을 만드는 화신이나, 또는 거기에 사라지는 인간들의 운명은 결국 불행이란 것을 알면서 그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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