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코치 K 1 - 진짜 얼굴, 가짜 얼굴
이진 지음, 재수 그림, 조벽 외 감수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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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같을 수가 없다. 인간 그 모습 그대로의 자연적인 모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은 운동을 어느 사람을 글 쓰고 사색하는 것을 어느 사람들은 분석하는 것을 특기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사회는 아쉽게도 그런 개인적 소질과 적성으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단지 그런 선택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효용적인 즉 자본력과 권력을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추천한다. 인간의 사회성에서 한계성이란 인간이 자연적인 존재로서 보는 게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나의 타인은 당신일 수도 있겠지만, 그 타인이던 당신이 자신조차도 타인에게 타인이다. 우리는 타인과 타인 속에서 본인조차도 타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아와 욕망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과 거기서 생겨난 틀에서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있는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소실되어 간다. 그런 점에서 감정코치K는 우리 사회에 보여주는 이런 단면적인 모순이 결국 사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하게 왜곡되어 다양한 형태로 문제점을 일으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학생에게 증폭되어 보여준다. 학생들은 아직까지 이성적인 판단력이 완성되지 않고, 심지어 감정적인 조율 역시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 그런다고 학생만이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책임지어야 하는 어른조차도 더 심각한 판단력 부족과 감정의 부적절한 통제로 일을 더 크게 만든다. 아이들이 왜 힘들어 하는가? 대부분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당장 없애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인가?

 

어떤 문제인 부분만 제거하면 그것으로 끝이 날까? 학교폭력으로 얼룩이 진 사람을 다른 곳에 보낸다고 그 학교 자체에 폭력이 종결되는 것인가? 아니라면 폭력의 발생원을 다른 곳에 보내면 거기도 생기지 않은가? 극단적인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가 아닌 이상 분명 아이들의 비행행위나 또는 거기에 대한 피해는 원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는 악독하고 도저히 인간의 윤리의식으로 저지르면 안 되는 행위지만, 후자의 경우 감정의 기복이나 무의식적인 충동에서 순간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나도 지금은 학생이란 신분에서 한참 멀어진 사람이나, 그런다고 하여 이 책에서 보인 학생들의 고민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만, 다소간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시대나 지금 학생시대나 학교라는 공간은 꿈을 키우는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꿈을 버리고 억지로 주형틀에 넣어 기성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라 생각한다.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처럼 학교는 하나의 감시체계가 존재하고,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요건으로 인간을 키우는 것보다는 인간 그 자체를 재생산하는 공장처럼 느낀다.

 

아이들의 감정과 마음은 자연적이나, 그 자연적인 요소를 억압된 공간에서 나두게 되니 당연히 뭔가 어긋나고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 이야기에서 투명인간인 학생은 자신은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림만 그리다보니 남들에게 존재감이 없다. 그런 자신의 존재감 부족과 타인들로부터 왕따현상은 개인적 문제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자기가 가진 특기가 드러낼 수 없다면, 결국 이것을 하나의 기예로서 당당히 올려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의 특기가 인정받게 된다면 타인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른바 기죽이지 말고 기를 살려줘야 하는 교육방법이다.

 

기를 살린다는 것은 오만과 자만이 아니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정해진 규율과 틀에만 고정시키는 협소한 교육방법이 아니다. 어차피 머리가 좋든 나쁘든 또는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학교시험을 보면 1등부터 꼴등은 정해진 자리이다. 어느 누구에게 성적이 떨어져 고민하고 있다면 다른 누구는 고민하지 않으랴? 공부 못한다고 하여 결국 다 같이 공부 열심히 해도 꼴찌는 존재하는 법이다. 꼴찌에게 따뜻한 손을 내어주지 않는 불친절한 세상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물질적인 혜택이 도래했지 마음에 대한 혜택은 일절 없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적 상황에 모든 것을 판단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세계를 보고 있고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다못해 일진인 애들도 최소한의 정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정조차도 없다. 인간이 철저하게 감정이 메말라 단지 학교의 아이들은 나의 적 혹은 이익이 되는 친구로 가고 있는 현상이 심한 것이다. 이런 책임은 아이들에게 몰아넣는 어른들의 무책임이 아이들을 더욱 스스로 감옥에 가두고 있다. <감시와 처벌>은 감시에 의한 통제력이나, 우리 사회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관심에 의한 처벌로 이어지고 있다.

 

몸의 상처는 피가 나면 닦으면 되고, 상처가 남으면 연고를 바르고, 자국이 심하게 남으면 성형수술로 복원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눈에도 보이지 않고, 나체의 육신을 감추고 있는 의복을 다 벗기어내도 알 수 없다. 맨몸의 인간 신체 역시 마음을 알 수 없다. 마음의 깊이는 1㎜보다 낮으면서 1㎞보다 멀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기에 마음의 고통은 인간에게 트라우마 내지 스트레스, 노이로제 같은 행동을 보여준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과 말을 하고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의문에서 그 치료가 시작된다.

 

타인의 기준에서 그런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타인이 되는 그 자신조차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이성과 지성을 갖추어도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감정과 무의식적인 요소가 오히려 이성적인 척하는 모습도 다분하다. 어른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자기들이 그런 요소를 가진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화도 내고 짜증도 부린다. 그런 자신이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가야 타인을 대할 수 있다.

 

문제 학생들을 만드는 것은 학생들 자신의 자질도 있겠지만, 그 자질을 만들어내는 환경이 문제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좋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 이상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는 환경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하면 겉보기에 날라리처럼 보이는 애들도 알고 보면 좋은 녀석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리어 겉으로 우등생이 더 짜증나 보일 때도 있다. 마지막에 부모의 문제, 선생의 문제에 크게 공감이 갔다. 뭐든지 좋은 것만 강요하고, 불리한 것은 제외하는 어른들이 보일 때마다 학생들은 자신이 도망갈 공간이 없다. 사이코 패스처럼 동물을 학대하는 애나, 그 동물을 사랑해주는 불량소년에서 누가 더 인간적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길가에 버려진 연약한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 사랑해주는 인간이 근본 자체가 나쁠 리는 없지만, 단지 그가 공부도 못하고 반항하는 이유로 몰아가기에 더더욱 심하게 불량해지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다. 우리 역시 학생일 시절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사랑하는 것만 강요했기 때문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맞다. 하류의 물이 상류로 올라갈 수 없다. 그것은 과학의 법치이고, 인간이 과학으로만 판단할 수 없지만, 사회과학적으로 인간 역시 과학적 판단으로 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중요한 점을 더 망각하고 있다. 감정코치는 아이들만 받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어른들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망가지는가? 망가지는 것은 아이들이 시작한 게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삶의 여유를 빼앗고, 인생의 즐거움을 빼앗고, 자연적인 인간성을 파괴하면서 사회적 목적만 강요하는 공간에서 과연 감정코치를 한다고 해도 완성될까? 그런 것부터 같이 조금씩 바꾸면서 감정코치를 하는 게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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