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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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의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어느 검은 머리색을 가진 백인여성이 뭔가 은밀한 느낌을 전해주는 미소가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 앞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비밀을 가진 여자가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그 전에 들은 바로는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고 하였으나, 책의 표지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나오는 장면은 교도소에 수감된 몰리나와 발렌틴이 서로 시간을 죽이기 위해 몰리나가 예전에 밖에서 보았던 영화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작품에 대한 스토리가 나오고, 거기에 대한 발렌틴의 평이 들어가고, 또한 밑에 주석에 달린 채 프로이트를 비롯한 각종 정신분석학자의 이론 내지 실험의 연구내용이 들어간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이 작품에서 여인은 작품 내에 직접 나오지 않는다. 단지 거미여인으로 되어야 하는 몰리나가 대신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몰리나가 거미여인이 되어 발렌틴과 키스를 나누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단순히 이 작품에서 동성애적인 요소로 이어가는 것만은 아니다. 왜 그렇게 되어 가는가에서 후반부에서 나름 의아한 느낌이 나온다. 가령 이 작품에서 발렌틴이 1972년에 파업을 주도하다가 임시재판을 기다린 후 1974년부터 수감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남미에서는 격동의 시기였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운동을 위해 게릴라활동을 한 직후였고, 쿠바에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고,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1973년 아옌데 대통령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 피노체트의 집권이 시작되었다. 발렌틴의 수감과 감옥생활은 단순히 역사적 흐름을 찾아보면 아옌데 대통령의 죽음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아옌데 대통령은 본래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최초로 칠레에 투표로 인해 선발된 국민대통령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민의 빈곤을 해결하기보단 국민의 빈곤으로 이익을 보려고 하는 자들에 의해 어려운 정치생활을 겪었다.

 

게다가 전투기까지 동원되어 대통령 관저까지 공격하는 쿠데타의 과격함에서 피노체트 같은 인물은 단순히 아옌데 같은 인물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까지 숙청한다. 가령 발렌틴의 수감과 관련하여 교도소 소장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전화송신자는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사람이고, 그들은 발렌틴이 어서 혁명조직을 자백하기를 바란 것이다. 수단은 매우 잔혹했다. 발렌틴이 있는 감옥 방에 식사를 보낼 때 옥수수죽에 뭔가 약을 타서 보낸 것이었다. 옥수수죽을 먹은 발렌틴은 심한 복통에 시달려야 했으며, 며칠 동안 기력을 찾지 못한 정도로 심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발렌틴이 옥수수죽을 먹으면서 몰리나까지 먹어야 했는데, 복통과 설사로 인해 두 사람은 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나 발렌틴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의무실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의무실에 가면 치료라는 이유로 주사를 투여하나, 그 주사는 바로 마약을 넣은 것으로 발렌틴으로 하여금 자백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이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처럼 발렌틴 역시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발렌틴은 이제 독립되어 새로운 공화국으로 가려고 했던 칠레의 노동운동가였다.

 

대부분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이 기반 되었기 때문에, 아옌데와 그의 정부요직은 무력으로 빼앗은 칠레에서는 어떻게든 노동운동그룹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제거하려고 했다. 발렌틴은 자신이 의무실에도 가지 않으며, 전에 정치범인 비센테 아파리시오가 고문으로 인해 죽자, 거기에 항의하여 단식투쟁하기도 했다. 고문으로 죽은 비센테는 바로 정치범이란 점이고, 그가 정치범이 되어야 했던 점은 아옌데 정권과 관련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옌데가 관련이 있든지 없던지 마르크스주의자인 발렌틴을 고문한다고 해서 정보가 바로 오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으로 발렌틴을 노렸던 것이다.

 

만약 발렌틴이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채 죽는다면 감옥소와 정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약물을 옥수수죽에 투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옥에서 같이 있던 몰리나의 경우 발렌틴처럼 정치사상이나 노동문제로 구속된 사람이 아니라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에 의해 체포된 사람이다. 발렌틴의 경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다가 체포된 이성적인 존재라면, 몰리나는 자신이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성이라고 말하는 동성연애자였다. 그와 동성애를 나눈 사람은 일반 성인남성이 아니라 미성년자였다. 미성년자에 대한 동성애행각으로 그는 7년을 언도받았으나, 소장이 몰리나에게 발렌틴을 감시하고 정보를 검색해주길 은밀히 지시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서로 계속 대화를 나누지만, 오히려 발렌틴은 단지 몰리나를 인간적인 존재로 받아들이지만 그의 동료들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발렌틴에게 온 편지조차 사실 암호로 된 편지로 발렌틴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런 정보로는 소장과 간수에게 엉뚱한 정보만 줄 뿐이다. 그래서 소장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발렌틴의 정보를 캐려고 했는데, 그런 최후 수단 중에 하나가 몰리나의 출감이었다. 문제는 처음에 몰리나는 자신과 교도소장의 거래로서 발렌틴을 대하려고 했으나, 어느 순간 바뀌게 되었다. 몰리나는 자신을 여자라고 한다. 그런 만큼 발렌틴은 몰리나를 남자가 아닌 여자로 대해주었다.

 

즉 동성애를 위해 발렌틴은 몰리나의 항문에 자신의 성기를 삽입한 것이다. 이런 동성애적인 요소에서 사람들은 많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인간의 DNA 자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신분석학에서는 어렸을 때 인간이 우연한 계기일 수도 있다고 한다. 호르몬의 강약에서 오히려 동성애자조차 정상적인 호르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상대방의 호르몬을 투여하면 여성 같은 경우 수염이 나오고, 남성들은 가슴이 부푸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는 단순히 호르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차라리 인간의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자국에 의해 발동하거나 또는 그리스처럼 그 시대적 문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칠레의 당국에서 동성애자인 몰리나를 감옥에 장기수옥을 시킬 정도로 관대하지 않았다. 결국 몰리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자이면서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어 결국 발렌틴에게 여자로서 인정받는다. 그리고 자신은 거미여인이 되고, 섹스만 하고 키스를 하지 못한 발렌틴으로부터 거미여인이란 칭호를 받는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거미여인은 바로 몰리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동성애자인 몰리나가 교도소에서 발렌틴만을 만나는 소설로만 생각하기에 조금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누엘 푸익이 저술한 <거미여인의 키스>는 시대적으로 배척받은 동성연애자와 노동운동가의 만남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두 사회로부터 감시와 처벌을 받은 사람이다. 서로 대립된 가치관과 방향성에서 어느 시점에서 승화한(동성 섹스) 시점에서 배척된 자들의 화합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다. 몰리나는 처음에는 출옥을 원했지만, 발렌틴과의 승화로 인해 오히려 나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발렌틴에게 이야기한다.

 

감옥에 나오는 순간 몰리나는 영원히 발렌틴을 만나지 않게 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죽음이라고 한다. 몰리나는 사랑하는 늙은 어머니가 있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이 있으나, 자신은 자신의 인생에서 발렌틴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긴다. 발렌틴은 몰리나가 나가기 전에 뭔가 이야기하고, 몰리나는 뭔가 이야기를 듣고 출옥한다. 출옥한 몰리나는 매일 실시간으로 첩보감시단이 달라붙으며, 몰리나가 전화하면 감청하여 듣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이름이 나오면 그 인물이 누군지 찾아본다. 심지어 그 주변까지 모두 조사되어 불법적 감시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몰리나로 통해 발렌틴의 측근세력을 모두 섬멸하려 하나, 어느 날 공원에서 몰리나는 누군가의 총에 의해 살해당한다. 살해를 주도한 사람들은 분명 교도소장과 정부기관의 행동이 아니다. 그렇다면 발렌틴의 일행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죽음은 발렌틴의 이야기로 통해 죽기 위한 암살인가? 어째든 몰리나가 죽은 후 발렌티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고문의 고통을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자백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마약을 투여한다. 하지만 발렌틴의 입에서는 아무 정보도 얻을 수가 없고, 거미여인이 정글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발렌틴의 입에서는 마르타의 이야기가 나오고, 몰리나가 했던 영화이야기가 자신의 입에서 이래저래 섞여 나온다.

 

그러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번역자의 후기를 보면 분명 위에 덧붙일 수 있는 내용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 서평은 번역자의 글을 참고적으로 할 뿐이지 그 자체로 인용하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 수잔 손택이란 저명한 학자의 글을 인용했는데도 말이다. 번역자의 글에서는 단순히 몰리나와 발렌틴의 관계로서 영화이야기를 활용했지, 칠레의 아옌데를 거론하지 않았다. 몰리나가 마지막으로 살해당하기 전에 몰리나는 신변정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0분 동안 공원에 아무런 행동도 없이 있다면, 체포하라는 당국의 지시에서 시대적인 배경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피노체트의 잔혹한 탄압을 말이다. 번역자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역시 번역자의 생각으로 적은 것이 아니다.

 

단지 영화이야기를 나누는 감옥소의 두 죄수가, 영화이야기가 단순히 심심풀이로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대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에 스릴러 미스터리가 연애로 인해 벌여지다가 나치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착취당하는 원주민, 그리고 흉악하게 얼굴이 바뀐 미남과 태어날 때부터 못난 여자의 사랑은 발렌틴과 몰리나를 메타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배치로서 서로에 대한 감정과 자세가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에 가서 심하게 다친 청년은 발렌틴, 못생긴 하녀로 나오는 처녀는 몰리나라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소외된 자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의미다. 발렌틴은 몰리나의 가치를 인정했기에 그와 섹스를 하였고, 몰리나는 발렌틴의 가치를 인정했기에 암살을 당한다. <거미여인의 키스>의 표지에 거미여인이 나온 것처럼 거미줄이 쳐져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죽음의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죽음은 고통보단 영원성을 찾기 위한 유미주의적인 요소를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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