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색 : 화이트 - 아웃케이스 없음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줄리 델피 출연 / 대경DVD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세 가지의 색에서 첫 번째는 블루, 즉 자유라는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1993년 제작한 자유를 의미하는 blue가 이제 white로 넘어간다. 평등을 상징하는 화이트란 단어로 말이다. 이 작품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의 색에서 가장 코미디 속성이 강한 작품이다. 유쾌하기보단 하나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이 작품은 프랑스인 여자와 폴란드인 남자의 이야기다. 본래 폴란드인이던 카롤은 아내인 도미니크에 의해 강제로 이혼당하여 집에서 내쫓긴다. 그는 폴란드인이므로 프랑스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고, 가진 재산이 없어서 추운 날에 당장 먹는 것과 자는 것부터 걱정해야 했다.

 

폴란드인이던 카롤은 아내인 도미니크를 매우 사랑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그러지 않았다. 언어적인 요소에서 폴란드인이던 카롤은 이혼재판과정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고, 심지어 이혼 이후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카드마저 사용불가로 되었다. 사랑하는 도미니크를 두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공중전화에 가서 자신에게 있는 동전 1개를 넣고 통화하는 순간,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아내인 도미니크는 다른 남자와 Sex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음 소리는 매우 행복하고, 이때까지 카롤이 듣지도 못할 정도로 열기에 가득했다.

 

카롤은 거기에 망연자실한 모습이 나오는데, 폴란드인으로서 프랑스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기력에 스스로 자학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아내의 가게에 몰래 가서 잠을 자다가 우연히 아내가 들어와서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Sex를 하려고 했으나, 이내 카롤은 무기력한 남자로 변하고 아내에게 내쫓긴다. 아무 희망이 없는 카롤이었다, 카롤은 더 이상 프랑스에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고향인 폴란드로 가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와 폴란드인데, 감독인 키에슬로프스키는 본래 프랑스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었다. 그 역시 폴란드 공산당과 업무를 했으나 공산진영의 모순과 부패로 그는 프랑스로 오면서 자유주의적인 영화를 촬영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를 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주의하고 큰 차이가 있다. 그의 세 가지의 색이란 말 그대로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말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에서 평등의 가치란 무엇인가? 화이트는 바로 그런 의문을 상징적인 존재보다는 블루에서 나온 졸리 처럼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나온 셈이다. 카롤이 아내를 만난 동기는 그가 헤어디자이너로 활약할 때 우연히 아내를 만나 한 번에 반하여 결혼하였다. 언어도 다르나,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어의 장벽에 가려지면서 카롤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카롤은 프랑스를 떠나 폴란드 고향으로 가기로 한다. 우연히 위험한 일을 할 것 같은 남자를 만나 비행기를 타게 된다. 자신은 비행기 표도 살 수도 없고, 강제이혼을 당해 프랑스국민이 아니기에 여권도 소지할 수 없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나 사회적으로 죽어있는 인간인 호모 사케르였다. 그가 프랑스에서 죽어도 그의 죽음은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다. 카롤이 삶과 죽음을 다 가지기 위해서는 프랑스국민이 아니라 폴란드국민이어야 했다.

 

그래도 역시 프랑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였고, 카롤은 프랑스에서 나오기 위해 그 위험한 남자에게 부탁하여 그 남자의 짐에 자신의 몸을 넣었다. 답답한 가방 안에 몇 시간이나 갇혀 하늘을 통해 폴란드로 온 카롤, 합법적 결혼에서 이제는 불법적 이민자가 되어야 했다. 아마 이런 일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고, 카롤이 온 폴란드는 그가 예전에 알고 있던 폴란드가 아니었다. 폴란드도 역시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공산진영에 속했으나 소비에트 연방 해체이후 자본주의가 침투했고, 자본주의는 공산진영과 다르나 새로운 부패와 투기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일했던 미용실로 와서 화려한 복귀를 하였고, 이전에 오던 손님들이 단골로 계속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충분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아내인 도미니크에 대한 분노와 애정이 같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불법적인 일을 시작한다. 총을 들고 어느 수상한 남자들이 모인 곳에 서 있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의 위험한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땅 투기까지 고려하여 거부가 된다. 과거 국가자본주의이던 공산진영에서 볼 수 없었던 시장경제의 자유에서 카롤은 더 이상 불법보단 합법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의 명성은 넓리 퍼지고, 우연히 카롤은 자신을 도와준 위험한 남자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죽었다고 광고를 내어 아내가 오면 거기에 대한 조치를 해달라는 점이다. 엄청난 거부가 된 카롤은 자신의 재산을 유언에 따라 아내에게 주라고 하였고, 전 남편의 죽음을 들은 도미니크는 카롤을 찾아온다. 도미니크는 카롤의 죽음에 슬퍼했고, 실의에 빠졌지만, 남편인 카롤은 죽지 않았고, 시체로 있어야 카롤 대신 어느 부랑자의 시체가 시체보관소에 보관되었다. 시체상태는 매우 심각하여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폴란드의 공산진영의 해체나 자본주의의 도입에서 각각의 장단점은 있으나 자본주의 도입은 결국 돈이면 뭐든지 해결되는 풍조를 다소 비웃기도 하였다.

 

아내 도미니크 앞에 나온 카롤은 이제 자신만만한 남자가 되었다. 프랑스에선 무기력한 남자가 이제 도미니크에게 최고의 Sex를 해주었고, 도미니크는 만족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해피엔딩처럼 보일 듯하였다. 문제는 카롤은 이미 사망신고처리가 된 것이고, 카롤의 살인범으로 아내인 도미니크를 지목한 것이다. 도미니크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자신은 프랑스인이기에 폴란드인의 언어를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변론조차 못하고 폴란드의 어느 감옥에 5년 동안 갇혀야 하였다.

 

카롤은 그런 그녀를 보기 위해 감옥에 찾아오고, 그녀는 말 대신 제스쳐로 카롤에게 대답한다. 여기서 나오면 카롤과 다시 재결합하여 다시 사랑하겠다고, 카롤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보이면서 영화는 막이 내린다. 그런 점에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화이트를 본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두 남녀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적 여건을 블랙 코미디로 보여준다. 소비에트 연방 이후의 국가들은 긍정적인 요소와 더불어 돈에 의해 결정되기에 사람들의 성향이 바뀐 것을 말이다. 카롤이 성공한 이유도 도로건설이 되는 곳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자본력이 얼마나 늘어 가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시체도 어떻게 입수가능한지도 마찬가지다. 경찰에선 시체매매나 투기보다는 카롤에 대한 살인범에 집착한다.

 

그런 점에서 화이트 블랙코미디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화이트에서 평등은 바로 카롤과 도미니크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카롤은 프랑스에서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당했고,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은 점은 그에게 치명적인 요소가 되었다. 아내인 도미니크 역시 프랑스에서 폴란드로 오면서 살인범 용의자로 몰려도 결국 언어가 통하지 못해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려도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평등이란 단어는 참 독특한 색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남과 똑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이 동일하여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을 알아야 진정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조건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다. 평등이란 무조건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 조건이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단지 가난하거나 혹은 병을 안고 있거나 또는 지역적, 민족적, 인종, 성별로 인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한 불평등이다. 프랑스의 모든 것은 1789714일 바스티유감옥 습격한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다. 매년 714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광장에서는 그 날의 영광을 위해 행사를 거둔다.

 

프랑스혁명을 소개하면 그 중심은 장 자크 루소가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이 작품에서 같이 두고 봐야 한다. 인간은 2가지의 불평등이 있다. 1가지는 선천적인 불평등이고, 다른 1가지는 후천적인 불평등이다. 카롤과 도미니크의 관계는 아마 처음에는 선천적인 불평등인 인종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으나, 결혼하고 나서는 후천적인 불평등에 의해 갈라진 것이 보는 게 타당하다. 이혼하고 나서 도미니크는 카롤에게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였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불평등이 이제 사회적인 불평등으로 카롤에게 전가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 다시 화이트란 사실은 영화배경이 겨울이란 점이다. 추운 프랑스보다 더 추운 폴란드는 눈으로 가득하다. 눈이 내린 공황에서 카롤은 항공기 승객의 짐을 훔치는 도둑에게 심한 꼴을 당한다. 예전의 폴란드와 다르게 강도들이 여기저기 출몰하는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폴란드에서 화이트라는 것은 순수의 색보단 다른 색이 들어오면 바로 물들어가는 색이기에 어떤 색이 들어가도 화이트는 그 색으로 변해야 했다. 즉 어떤 부당함이 오더라도 그 부당함은 사라지지 않고 그 흔적을 남기는 셈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의 색 중 화이트는 우리 사회에서 잘 생각해야 한다.

 

타인에 대해 자신이 일방적으로 우세하다고 하여 타인에게 가해지는 부조리한 태도는 결국 다시 본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전에 어느 선박의 침몰에서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여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비수의 칼날처럼 비난하던 자들에게 이 영화를 떠오른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도 이 영화처럼 같은 대우를 받고 자신이 상대방의 고통을 충분히 느껴야 진정한 평등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생각하건만 세 가지의 색의 화이트를 적고 있지만, 박애를 상징하는 레드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은 분명하다. 하지만 평등이란 것은 기회의 균등과 더불어 상대방에 대한 부조리를 가한다면 그 부조리를 자신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평등이 아닌가?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몰아넣는 것과 몰아넣도록 하는 것은 역시 불평등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영화 포스터 메인장면을 보면 남자주인공이 검지 손가락으로 빗을 잡고 입에 대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이발사로서 빗을 가지고 하모니카처럼 불어대는 재주가 있다. 어쩌면 그의 매력은 아주 뛰어난 헤어디자이너보다는 작은 재주로 상대방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에 온 그는 프랑스어가 되지 않아 자신의 능력을 살리지 못해 저 재주조차도 부리지 못한다. 그래도 그런 카롤을 보고 뒤에서 미소 짓는 도미니크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로 답을 해주고 있다.

 

아가페적인 사랑(박애)을 의미하는 레드는 아니지만, 적어도 도미니크의 마음은 카롤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메라 앵글은 두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나, 위치적으로 어깨너머 샷으로 도미니크의 뒷모습에서 카롤의 뒷모습을 잡으려는 것은 역으로 배치한 것 같다. 사실 카롤이 크게 보이나, 카메라를 뒤로 하면 카롤이 왜소한 남자로 나오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정면에 보인 카롤의 표정은 도미니크를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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