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계전선 1
나이토우 야스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혈계전선>을 읽다보면 전형적인 하드고어가 날뛰는 일본 만화의 한 장르다. 환상적인 세계와 현실의 공간이 뒤엉킨 세계, 그것은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관념 안에 존재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왜 그런가? 이 작품의 배경은 미국의 뉴욕이란 곳이다. 미국의 뉴욕은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도시이다. 뉴욕이란 도시가 단순히 미국의 대도시라고 하여 그런 것일까?

 

미국 뉴욕에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경제의 중심지가 있다. 월가라고 하면 주식의 무대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주식에 대한 경제적인 지식이 없지만, 적어도 미국의 월가라고 한다면 세계 금융의 중심이 오고가는 큰 요충지다. 현대사회는 이미 경제구조가 자본주의구조에 해당되며, 자본의 증식은 결국 자본에 의해서고, 수많은 자본가들이 움직이는 뉴욕의 월가는 그야말로 황금의 도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황금은 그 모두에게 열리지 않고, 오히려 가려진 채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인가? <혈계전선>의 주인공은 레오나르도 워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면 모르지만, 워치라는 것은 watch라는 시계라는 명사적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 지켜보다 관찰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그의 이름은 워치 즉 무엇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존재이다. 관찰의 존재성에서 무엇을 관찰하고, 감시라는 점에서 무엇을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괜히 그런 이름이 붙인 것도 아니란 점에서 우연히 가족과 미국에 와서 산책을 하는 도중에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관찰자의 눈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라는 대답에 그 운명의 두 눈을 레오나르도가 받게 된다.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이야 하는가?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결국 그것은 Justice 정의로 이어진다. 왜 정의인가? 보고 관찰하는 것은 말 그대로 누군가의 편에 일방적으로 드는 것도 아니고, 아주 정확하게 사물을 파악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의 본질은 인간이 가진 다섯 가지의 감각인 촉각, 미각, 청각, 후각, 시각 중에 시각만이 이성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촉각, 미각, 후각은 무의식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쉽고, 청각은 감정에 의해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보는 것만은 관찰하는 것만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여 거기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판단기준은 그가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나, 자세하게 보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반드시 정의로 이어진다. 워치의 두 눈은 정의로 이어지나, 그 정의의 수단과 방법은 폭력 내지 비폭력으로 이루어진다.

 

1권의 에피소드에서 음속원숭이와 반쪽 사신의 해결에서는 폭력적 수단에 대한 비폭력적 수단이 발휘하고, 인신매매단에 대해서는 폭력이란 하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방법은 비폭력적인 것은 요구하나, 반드시 비폭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는 점이다. 왜 이런 것을 담고 있을까? 작가는 분명 일본인이나, 작품 배경은 미국 뉴욕이란 거대한 도시다. 그 도시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사는 만큼 온갖 부조리와 뒤틀림이 존재하는 법이다. 평소 눈에는 당장 보이지 않으나, 눈에 보이지 않은 어둠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법이다.

 

헬사렘즈 로트, 실제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공간이나, 우리가 바라보며 느끼는 관념 안에서는 하나의 악마의 소굴과 같다. 처음부터 은행 강도가 등장하고, 미친 테러리스트가 존재한다. 미국에 은행 강도가 자주 일어나는 것도 그러하나 뉴욕에서 비극적인 테러가 일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그것이 하나의 불안감으로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단지 만화라는 매체가 작가의 상상력에 스토리텔링으로 입혀질 뿐이다. 그런다고 만화는 현실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서 받아들인 것이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헬사렘즈 로트에서 존재하는 것은 이형의 괴물체와 무서운 사건들, 그리고 거기에 대항하는 비밀결사, 그렇지만 비밀결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 없다. 비밀결사에 조직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가 보는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다. 주인공 워치로 보는 뒤틀려 버린 헬사렘즈 로트이나, 그것의 토대가 되는 것은 결국 현실의 상황이다. 왜 뉴욕이 그렇게 뒤틀려 보이는가?

 

뒤표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뉴욕 붕괴 후 하룻밤 만에 구축된 도시, 헬사렘즈 로트, 이계와 현계가 뒤섞인 이 마도에는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암약하는 비밀결사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뉴욕은 현실에서 붕괴되지 않았지만, 이곳에 무엇이 뒤섞여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원래 실천해야할 도덕적인 사회와 더불어 그렇지 못한 세계가 놓여 있고, 그 모순된 공간에서 무엇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이 작품은 나쁜 요괴 퇴치로 끝날 작품이라면 워치에게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줄 이유는 없다.

 

음속원숭이를 죽이는 것만 생각한 대다수 사람과 달리, 워치는 원숭이에 숨은 장치를 찾아내어 위기를 막는다. 위기를 막는다며 무조건 달려드는 것보다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파악하여 처리하는 것,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은 어두운 세계를 워치는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관찰하는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판단은 judgement라는 판결로 이어지나, 그는 육체적으로 강력한 힘이 없기에 옆에 동료를 의지하는 것이다. 물론 동료들도 그의 눈을 의지하여 그의 판단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눈이란 외부의 물리적인 공간을 형성하는 것만 본다. 물리적 존재의 그 너머에 존재하는 그 사람의 의지와 사고는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판단은 눈으로 하지만, 눈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혈계전선이란 표지제목에서 보인 워치의 보스는 비밀결사를 운영하는 리더이나, 한편으로 그 무엇을 알 수 없는 깊은 살기를 가지고 있다. 정의의 수행이 정의로운 의지로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처음 워치를 찾으러 온 사나이도 하는 짓이 건달에 민폐를 일삼는 사람이다. 민폐를 일삼는 사람이 정의 따위를 생각할까? 우연적인 기회로 통한 자신의 심심풀이 내지 기분전환으로 정의를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만화의 액션은 박진감이 넘쳐야 한다. 조용히 끝낼 상대도 아군도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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