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 - 요희전기 1, Novel Engine
크레파스 지음, Mx2J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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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노벨라이트 출판사 중에서 시드노벨과 노블엔진에서 나온 각각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여 보았다. 우선 시드노벨에서 나온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와 그리고 노블엔진에서 나온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를 말이다. 두 작품을 비교검토해보자면 기본적으로 환타지 속성 갖고 있는 경소설로서 전쟁을 소재로 사용하여 어느 특정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그 시대적 흐름에서 헤쳐 나가는 하나의 영웅서사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단지 영웅의 서사에서 영웅이란 존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영웅보다는 오히려 반영웅에 가까운 존재다.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의 남자주인공은 용사의 손자이고, 현시대에 용사로 인정받은 자와 대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지 마왕으로 선발된 어린 소녀에 대한 입장을 생각하여 마왕소녀와 같이 행동한다. 이번에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에서 남자주인공인 흑록은 월하에서 태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월하를 망하게 만든 화선의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화선이 월하의 저항군을 토벌할 때 같이 참전할 정도로 이율배반적인 인물이었다.

 

당연히 자신이 있어야 자리에 있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자리에 있었다. 단지 차이점은 전자는 반대의 자리로 간 것이라면, 후자는 반대의 자리에서 다시 원래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두 한 소녀 때문이었다. 그 소녀는 너무 연약하지만 강한 마음을 가진 착하고 다정한 사람인 점이다. 마왕소녀와 월하공주라는 존재는 분명히 여왕과 공주라는 지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나약한 존재다. 그에 반해 그녀들과 같이 엮이는 남자주인공은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유사한 조건으로 남자가 편을 든 세력은 상당히 미미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자의 경우에도 마족은 수많은 용사들에 의해 인간계에 침략할 생각조차 못하는데, 오히려 왕과 그의 군사들은 마족들을 토벌하러 온다. 토벌로 인한 제노사이드라는 학살극은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의 화선이란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용병까지 고용하여 철저하게 월하라는 국가를 넘어 월하라는 국민조차 멸살하려고 한다. 국가가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한자어 나라 국(國)처럼 땅 안에 인간이 있고, 무기가 있다.

 

국가라는 것은 결국 영토가 필요하나, 그 영토가 영토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영토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하다. 무기는 무기로서 존재하나 무기 그 자체로서는 무기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만이 무기를 다루고, 인간만이 영토의 기능하도록 할 수 있다. 결국 국가의 기본은 결국 인간이고, 민족이 있으면 비록 영토가 당장 상실해도 다시 건립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혹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프랑스도 역시 그렇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영토를 다른 누군가에게 박탈당해도 다시 그 나라의 국민이 있으면 국권을 찾을 수 있는 경우 나라를 세울 수 있다.

 

만약 한국인이나 프랑스인 모두 학살당한다면 그 나라는 복귀가 불가능하고, 또한 국가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국가의 가치인 헌법이다. 헌법은 국가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상징이고, 현대 세계에서 민주주의국가에서 헌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는 그저 독재국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가 이번에 읽은 라이트노벨인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다. 화선이나 월하나 둘 다 왕족이 통치하고 있으며, 왕족이 곧 국가 그 자체라는 군주정이 운영되고 있다. 군주가 있는 월하와 화선, 거기에 왕인 군주가 사라지면 그 나라 자체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므로, 국가 그 자체가 국민의 것이라는 하나의 상징이라면, 군주정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왕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왕이 없어지면 그 나라의 상징이 모두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면 화선은 어떻게든 월하의 공주인 월영을 제거하고, 월영을 제거한 뒤에는 월영의 동생인 월린을 죽이려 한 것이다. 작품의 저자는 분명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작품에서 보이는 세계관은 삼국시대 이전의 시대와 같고, 기술력은 22세기 정도 되어 보인다.

 

융(戎)이란 병기의 특징을 보면 전자동 시스템에다가 조종사의 능력과 감정에 따라 자신의 기능을 올릴 수 있는 점과 게다가 레이저 광선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동력 에너지를 전자 광선으로 전환하여 병기로서 상용화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기술력이다. 그래서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은 과거시대의 정치적 체계와 미래의 기술력, 그리고 의상은 서양과 동양의 혼합물이다. 의상에서 머리장식이나 옷감을 보면 분명 동양이나 오버니삭스의 착용이나 여자가슴이 아슬아슬하게 가릴 정도의 복장은 분명 한국의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크로스오버 내지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세계관을 생각해봐도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월하라는 국가의 정치적 체계가 그렇다. 우선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의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인상이 깊지 않아도 다소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의 고전적인 요소를 상당히 반영했다는 점이다. 라이트노벨만을 전문적으로 읽는 독자는 아니나, 이 정도 내용이면 최근 국내에서 나오는 문학소설조차 잘 다루지 않는 한국의 전통성을 다루었다.

 

시대적 배경이 삼국시대 이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정일치 사회라는 점이다. 군주는 하나의 왕으로서 통치자를 맡으나 또 한편으로 종교인으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제정일치의 군주는 왕이면서도 제사장이란 위치에 있는 것이다. 월하라는 국가는 제정일치의 국가사회다. 한국의 제정일치 사회는 삼국시대 이전에 대부분 존재했다. 삼국시대에 초반에는 샤머니즘이란 무속신앙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으나, 지방호족 내지 신세력이 등장하면서 그들조차도 하늘의 자손 내지 신의 후예라는 상징성을 부여했기에 추후에 삼국시대는 불교를 정치적인 요건으로 반입한다.

 

작품은 불교 유래 전의 한국시대라는 점이고, 불교만이 아니라 유교, 천주교 유입되더라도 여전히 한국은 무속신앙적인 요소가 남아있다. 단지 불교, 유교 등이 기존 토속신앙과 융합되어 다른 식으로 표현될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요소들이 국내 라이트노벨에 잘 등장하지 않았다. 예전에 만화책으로 나온 <사신전>에서 환웅(작품에서 “한”)이 호랑이족을 물리치는 내용이 나왔는데, 모티브로 따져본다면 환웅이 배달국을 만들면서 호랑이와 곰을 인간으로 변화하기 위해 동굴에서 근신하도록 했는데, 호랑이는 도망치고 곰은 남았다. 그런다고 실제로 곰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본다면 환웅은 우사, 운사, 풍백 등과 같은 농경문화를 주관하는 신하를 데리고 있는 점에서 호랑이는 육식이고, 곰은 잡식이므로 농경사회의 주요 식량인 쌀을 먹을 수 있는지 또는 없는지 로서 연합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보는 환타지세계의 전쟁물을 생각하면, 일상적으로 서양문화 유입으로 보는 것은 낯설지는 않으나,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환타지 장르는 현실이 아닌 비현실이란 환상에 의해 진행되는 이야기나, 그 근원은 인간의 현실성을 기반으로 한다. 단지 일상은 우리가 보고 듣는 것으로 통한 이성적인 영역이므로 평소 인지할 수 없지만, 분명 인간에게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 어디인가 숨어있는 깊은 심연의 공간이 존재하고, 그 세계는 결코 드러내지 못할 욕망이 살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단순히 인간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의해 조성되므로 욕망은 때로는 부러움과 질투, 시기, 억압과 해방이란 다양한 형태로 신화로서 태어난다. 환타지 장르를 보면 대부분 인간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현대에 있는 인간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살았던 인간도 상상으로 존재했던 존재다. 즉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관념에서는 그것이 반드시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한다고 인식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물질적으로 존재해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된다.

 

모순적인 인간의 인식에서 존재성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한다.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는 문구처럼 말이다. 작품은 그런 한국적 전통적인 문화적 요소들은 사용한다. 용병의 체계에서 갑을병정부터 이름도 흑록, 유하, 월린, 가람, 백경이란 한자어 내지 순수한글이 사용된다.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명사가 한자어를 차용하기에 대부분 한국어 한자로 된 명사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단지 여기서 가람이란 강(江)이라는 하천을 의미한다.

 

물론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와 더불어 동양적인 사상도 나온다. 동양철학까지 자세히 알지 못하나 주자학의 요소가 조선시대에 들어오는데, 퇴계 이황의 주리론과 율곡 이이의 주기론이 조선유학의 양대로 나오고, 조선 후기 당파구분에서 주리론은 남인으로 주기론은 노론으로 이어진다. 이(理)라는 것은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인간이 순행할 수 있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 백경이 만든 융을 탄 10명에서 8명은 모두 폐인이 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신이와 흑록은 무사했다. 8명의 사고자들은 모두 정상인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신이는 월영이 죽은 후로부터 정신이 죽었고, 흑록은 아버지가 죽고 나라가 망하며 어머니가 돌아가고 나서 정신이 죽었다. 흑록은 작품을 볼 때마다 삶의 의지나 목표가 없으며, 유하가 아무리 설득해도 마치 전쟁터에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일상에서 삶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나, 죽음이 기다리는 전장에서는 삶에 대한 의지를 찾는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관계다. 이때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던 흑록에게 월영이 죽은 후 신이의 반응과 그리고 월린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문제는 백경이 만든 융이라는 거대한 병기는 의지가 살아있는 인간을 망쳐도 의지가 없는 인간은 망치지 못한다. 아무 의지도 없고 삶의 이유도 찾지 못한 흑록이 갑자기 월린을 지키는 이유는 자신에 의해 망가진 신이와 그 신이가 동경하던 월영의 이름을 지키려던 월린이 있어서이다. 월린은 겉보기에는 매우 몸매가 좋고, 머릿결은 마치 비단 같으며,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사용하는 마음 여린 소녀다. 하지만 그 여린 마음은 이미 상처받을 만큼 받았으며, 억지로 자신의 게슈탈트(쉽게 말하자면 육체와 정신 그리고 심리)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월린은 월영이 죽었는지 혹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실종되었는지 운명의 그날에 월영이 없어졌기에 자신이 월영이 만든 저항군을 조직하여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고, 사실은 언니의 죽음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무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날 언니인 월영을 죽게 만든 제공자인 흑록이 등장하고, 그는 월하의 백성이었으나 화선의 용병이 되어 앞에 등장한 것이다. 흑록의 등장에서 흑록이 월하와 화선에서 무엇을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이야기의 흐름은 결국 흑록이 월하의 기사가 되어 월린을 돕는 것이나, 한편으로 그는 월린의 제일 가까운 사람이고, 또한 그는 남자로서 월린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월린을 만나기 전에 화선의 용병시절 같이 활동한 유하라는 관제사다. 그녀는 본래 화선 왕족의 공주이나, 항상 암살의 위험을 받았으며, 용병으로 활동한 점에서 왕실 내에서 상당히 심한 배척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술에 취한 어느 날 흑록에게 황궁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서 그녀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 왕족이면서 왕실을 뒤집어 놓는 혁명 내지 쿠데타를 일으킬 심산인 것이다.

 

하지만 유하는 월하의 포로가 되었다가, 화선의 공격을 막는 대가로 월린의 주인이 되기로 한다. 다시 화선의 왕실로 갈 수 없는 입장이 된 셈이다. 결론적으로 화선과 월하의 공주가 서로 같은 편이 되었고, 저항군은 소수의 군력이나 결국 월하를 화선으로부터 독립하여 군주국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며, 최후에는 그것을 방해하는 화선이라는 국가. 그 국가 자체의 상징인 화선의 왕족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 월린이 처음부터 타격이 된 이유는 마지막 왕족이고, 월하의 모든 백성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상징이었다.

 

흑록에겐 그런 상징성을 가진 자가 2명이 있었다. 월린과 유하, 유하는 처음부터 흑록이 무슨 이유로 마음에 들었는지 몰라도 오로지 흑록을 위해 활동했으며, 월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남자는 흑록이란 점과 흑록의 아버지가 월하의 장군으로 활약하다가 패배한 전쟁에서 전사한 점에서 애증적인 관계가 놓여있다. 월하의 왕족이 패배하여 흑록의 아버지는 죽고 흑록은 비참하게 살아야했고, 흑록의 활약으로 월영은 월린으로부터 떠났다.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신의 목적이 없어지는 것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시체와 같다.

 

그래서 제목은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처럼 달의 공주는 월하의 공주인 월린이고, 죽지 않는 병기는 바로 흑록을 말할 것이다. 죽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물리적인 공격을 직접적으로 받으면 흑록은 사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란 개념은 물리적인 개념보단 백경이 만든 융을 탑승 때의 흑록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범상치 않은 검정색 융을 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융은 살아있는 자가 어떤 의지를 품으면 그 의지로서 에너지로 기동하여 결국에 탑승자를 시체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살아있는 시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죽지 않는 병기라는 것은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인 죽음이다.

 

죽어있는데, 이제부터 죽지 않기 위해 죽은 자가 타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이유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월린을 위해서 말이다. 작품은 그렇게 서막을 알리지만, 한편으로 본다면 이 작품 역시 신화적인 요건을 잘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으나 주인공이 어느 누군가 혹은 선택하지 못해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 참고도서로 계명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직 중인 서정남 교수의 <영화서사학>을 참고하면 영화라는 것이 영상이라도 기본적으로 문학과 같은 문자서사와 같이 서사적인 요소를 갖춘 것으로 본다.

 

여기서 프로프에 의해 정리된 것에서 이야기의 31가지 기능 중에 1번과 31번이 인상이 깊다. 1번은 “가족 중에 한 명이 집에서 멀어진다.”와 31번 “영웅은 결혼하여 왕좌에 오른다.”이다. 흑록은 가족의 죽음으로 월하에서 떨어져 화선으로 온 점과 그를 좋아하는 유하, 유하가 라이벌로 여기는 월린의 삼각관계적인 구조에서 둘 다 공주라는 점이고, 누구를 택하던지 주인공은 왕좌에 오르게 된다. 월린은 마지막 왕족이고, 유하는 배척받은 외톨이 공주다. 물론 다른 선택지점 내지 그런 연애적인 요소는 미완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이 단순히 전쟁이라면 제목에서 달의 공주가 처음 나올 이유는 없다.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이란 제목처럼 월린과 흑록의 이름보단 하나의 칭호로 드러나기에 두 사람의 상징이 드러났기에 로맨스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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