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다시 읽기 -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돌베개 한국학총서 15
이호룡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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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다시 읽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한 영화가 생각났다. 예전에 영화배우 장동건 씨가 출연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대 아나키스트들의 활동과 그리고 죽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잊어진 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보면 전형적인 모던보이였고, 그래서인지 항상 멋진 양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며, 술집 미녀아가씨와 농담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대의 암울함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거기에 빠진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은 겉과 다르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멋쟁이 미남청년들은 알고 보면 술과 노래, 패션을 좋아하는 모습은 물론 좋아하기도 하나 그 이면에는 항일운동을 하던 자였다. 일본군의 주요인물을 살해하거나 또는 공작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아나키스트>처럼 아나키스트들은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자였다. 단지 작품에서 장동건 씨가 맡은 역에서 마약을 흡입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처한 운명과 현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고뇌가 숨어 있다.

 

그런데 이 아니키스트의 정신은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래저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서 주요 단체나 조직을 보면 제일 유명한 것이 상해임시정부부터 시작하여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이 운영하던 항일유격대, 그리고 종교단체로는 대종교, 정치적인 체제에서도 좌우 이데올로기 역시 같이 참가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모호한 면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자유주의이나, 모든 억압과 소속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이란 체계가 누군가에게 권력을 독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권력에 대한 관계에서 지식은 누구만의 소유가 아니라 전체가 나누거나 공동체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란 점이다.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담론이 생각났으며, 거기에 대한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가 생각났으나, 그런다고 아나키스트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체계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이 단합하여 하나의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이라면 아나키스트는 그것마저도 해체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가 그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란 점이다.

 

생소하고 너무나도 낯선 한국의 아나키스트, 한국에서 아나키스트라는 존재를 그다지 접해보지 못했으며, 그들의 극단적인 자유주의는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자유주의다. 무정부주의는 작은 정부도 아닌 정부가 없는 것을 추구한다. 단재 신채호라는 이름은 독립운동가 이름 중에서 나오는 이름으로 민족주의 사상가이면서 역사학자다. 그런 그가 한국의 아나키스트 운동가 중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았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은 조금 알아보던 계기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많은 인물 중에서 대종교에서 활동한 점이다. 신채호와 활동하던 인물 중에서 대종교 3대 교주인 윤세복이란 이름이 나온다. 당시 대종교의 주요 인물들 중에서 독립운동이나 한국의 민족주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은 분이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역시 대종교에서도 활동을 했고, 그동안 한국역사를 가려진 곳에 있었는데, 다시 복원하려고 했다. 특히 조선시대도 그러하나 우리나라가 사대주의사상에 가려져 자기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음을 크게 염려했다.

 

그래서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를 비판하고,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잡기 위해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강목을 비롯하여 다양한 역사서적을 연구했다. 특히나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보러 가거나 각종 역사문헌을 참고하여 한국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당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를 사회진화론으로 보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강력한 국력을 중시했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다소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국가주의로서 접근했다. 구국적인 가치를 국가주의로서 당시 고구려시대의 영웅들을 칭송했다.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장군과 같이 중국의 거대한 병력을 지혜와 용기로 물리친 장군을 소재로 글을 적었다. 초반에 신채호 선생은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용기와 지혜 있는 몇몇의 영웅으로 생각했다. 사회진화론적인 가치와 더불어 일제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영웅이란 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게 되었다. 러시아혁명과 삼일운동을 보면서 국가가 있는 것은 국민들에 의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국민 그 자체 아니 민중이라는 그들이었다.

 

그런 역사적 가치관이 처음에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고, 역사의 중심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이어야 하는 점이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아나키스트적인 정신은 남녀노소라는 신체적 조건을 떠나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도 모든 것이 민중이어야 한 것처럼 생각했다. 그가 바란 세상은 오직 모든 것에서 해방이기에 처음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 독립만이 아니라 독립 후에도 모든 것을 해방하기를 원했다.

 

그런 해방적 미래를 위해 동양의 아나키스트를 모은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가 적대한 국가는 일본이나, 일본 내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가 아나키스트가 되려는 것은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천황을 암살하려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적대하는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 동조한 인물이 있었다. 동양의 아나키스트들은 자금을 모아 무기를 제조하는 공장과 보급책을 획득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하고, 수많은 인파들 속에 일본관료나 군장성이 오면 암살작전을 실행한다.

 

단재 신채호의 독립운동방식으로 테러적 직접행동론을 민족해방운동의 방략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아나키즘 정신으로 수용했으며, 1936년 민족전선론을 폐기할 때까지 단재 신채호의 사상을 수용했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영화가 바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다. 그들은 은거하거나 위장하여 군장성을 살해하는 테러행위를 벌인다. 그들의 테러는 자신을 위한 테러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억압에서 해방하기 위한 테러였다. 그러나 시대와 혹은 이상한 교과서나 어느 특정사람들은 그들은 단지 테러리스트로 보려 했다.

 

그렇지만 왜 그들은 테러를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조명과 민족의식이 있다면 당연히 납득될 사항이다. 자국을 지키려면 자국민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기반하는 것은 자국민이란 역사적 민족적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진화론에서 사회개조론으로 진보하여 보편적인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는 온 몸을 바치고 결국 뇌일혈로 서거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교도소에서 서거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 자국의 땅에 묻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만들려는 사람에 대해 감금과 구속, 고문이 이어졌을 정도니 말이다. 다행히 그의 육신의 불길에 나온 하얀 가루는 땅에 심어져 그의 안식처는 찾았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한 세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에 무조건으로 동의할 수 없고, 그 방식이나 행동조차도 옳다고 볼 수 없다. 단지 그가 바란 모든 것에 대한 억압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세계는 결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향하여 계속 향할 뿐이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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