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3모녀가 가난과 질병에 이기지 못해 마지막으로 방세를 봉투에 남긴 채 운명을 했다. 그들의 죽음에서 생각하는 바에서 단순히 이때까지 3모녀와 같은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 드물었다면 문제가 덜 하겠으나, 저들의 죽음 이후 밝혀지는 죽음들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3모녀의 죽음은 이른바 사회의 제도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죽음이었다. 아무도 위탁할 수 없는 현실과 국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구원의 손길은 무리였다.
심지어 일을 하던 모친도 병으로 노동할 수 있는 육체적인 조건마저 상실했다. 그런 점에서 해고는 살인과 같다는 말은 바로 저러하다. 이 문제에 대해 논하자면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흔히 저런 사람들에 대해 평소에 문제의식이 없다가 언제 어느 순간 미디어에 노출될 경우 모두 아쉬워하며 그들의 입장을 가엽게 여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쓸데 없이 보이는 참견이나 오버일 수 있으나, 평소에 저런 사람들은 많이 있다는 점이다.
TV에 나와 성금 얼마 주고 나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 순간이 기다리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이슈로서 몰려드는 시야에서 결국 그때이지 그 후는 아니다. 돈이 몇 천만원이 기부되어 들어가면 무엇하느냐? 결국 병치료와 생활수단으로 인해 어느 순간 금방 돈은 소비된다. 그래서 일회적인 차원을 떠나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일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누가 할 것인가이다. "진짜 불쌍해!"라고 외치는 사람이라든, 혹은 "허허, 참 세상을 그렇게 떠나다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든, 또는 이렇게 글을 적는 나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 거시다. 무관심한 자들은 몰라도, 만약 그것에 대한 사회적 이슈로서 문제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저들은 계속 일방적으로 관심갖고 도와줄 수 있는가?
결국은 사회적인 제도아래 명확한 관리로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려면 결국 사회적 함의, 즉 일반의지로서 시행된느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고, 그것을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이른바 국민들의 대표자란 점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국민전원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를 처음에는 인정하다가 지금은 하찮게 여기는 이유는, 투표권을 시행하는 자들이 정말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의 이익, 공공의 이익, 자신보다 처지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투표권을 수행하느냐이다.
대부분 옆에 들으면 그런 일반의지가 아니라 전체의지 내지 개인적 이익으로 통해 움직인다. 특히 한국과 같이 지연, 학연, 혈연이 강한 곳에는 도저히 실행되기 어렵다. 저런 자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려면 결국 국민들의 선택점이 달려있다. 그래서 나는 3모녀를 죽음에서 자살이 아니라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것과 같이 사회적 타살이고, 그 주범은 국민들이다.
국민들의 외면이 죄가 아니라, 그들을 궁지로 몰리게 만든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책임이다. 투표권의 시행에서 자신의 선택이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과연 공공의 이익과 타자의 인권과 처우를 정당히 말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참고로 덧붙이면 자살한 3모녀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거나 혹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소시민이다. 그런 소시민들을 궁지로 몰아내면서 외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죽이는 사회와 대중들이 그들에게 보이는 눈빛에 대해 나는 한줌의 구역질과 가십감이 든다.
자신들이 3모녀의 죽음, 그리고 계속 터지는 비보 속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위해 제대로 된 보장제도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그런 감정을 품어 누군가에게 말함으로써 자신은 매우 인간적인 인간으로 착각한다. 그런 착각이야말로 가장 한심하다. 그 감정을 가지고 느끼는 것을 지나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정작 자신이 정의롭다면 평생 책임질 수 있는가? 소외독거 노인의 죽음과 입양아의 수치가 거의 올림픽의 메달순위권에 있는 나라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