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제 -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독립기념관 :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이동언 지음 / 독립기념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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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 그리고 모든 것을 바친 분들에 대해 순국열사라고 한다. 순국열사라고 해도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판단해야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흔히 어느 자가 이런 말은 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라고 말이다. 흔히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는 말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흔히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닌 파시스트들이 그런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히틀러나 무솔리니 그리고 일본과 같은 침략 국가들도 그런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 그게 필요한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그럴 때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을 때가 아니고 침략자에게 있을 때에 말이다. 지금을 생각하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란 말에는 엄청난 모순이 있는 것 같다. 조국을 위해서라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고, 민족을 위해서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란 말인가? 이 모순적인 2가지에 대한 명제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모순을 볼 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와 민족을 위해서는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2가지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은 모두 비명횡사 내지 비참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서평을 적는 순간, 삼일절 전을 맞이하고 있는데, 1919년 3월 1일에 그 운명을 넘어 하나의 민족적 존재성을 알리고자 하던 비운의 날에서 백산 안희제 선생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예전에 천도교 활동에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에서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 요인들이 많았는데, 사실 천도교의 전신인 동학부터 시작하여 천도교를 생각해보면 손병희 죽음과 최린계의 득세로 천도교는 일제 앞잡이 된 점을 생각하면, 불운한 형태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겠지만, 천도교 종교의례에서 일본 군국주의적인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나 각종 일제행사의 찬조 등을 생각하면 천도교의 오명이 참 크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점을 대조하여 대종교에 대해 조금 조사하다보니,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이 수도 없이 나왔다. 그 중에서 백산 안희제 선생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내가 사는 지역에 백산기념관이 설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지난 과거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가족을 버리고, 재산을 탕진하던 분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리지는 점에서 안타까우나 그 자리를 대신하여 엉뚱한 인간들이 오는 것도 이상하다. 독립운동 중에서 무장 투쟁한 분의 후손이라 주장한 분이 그분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자들과 같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진짜 독립운동 하던 분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있는가? 아무튼 백산 선생에 대해 조금 책으로 보니 엄청났다.

 

모든 국가나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것은 인력이나, 그 인력을 운영하기 위한 참모진과 자본이다. 자본력이 없으면 식량과 무기, 기타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런 자금줄의 반 이상을 백산 안희제 선생이 했다는 점이다. 한국정부의 최초라고 볼 수 있는 임시정부와 한국군의 전신의 광복군조차 그렇다. 백산 상회에서 운영한 상업 활동으로 자금이 독립운동에 사용하고, 언제 한 번 가족들이랑 경주에 나들이로 놀러갔을 때 최준이란 경주 최가 부자 댁에 가본 적이 있는데, 최준은 독립군을 위해 자금을 대어 주신 분인데 그가 안희제에게 건네준 돈과 독립 운동하는 분에게 전달된 돈의 액수가 같았다고 한다.

 

중간에 착복하거나 혹은 많은 변절자가 있던 시기, 그런 세상에 백산 선생은 위험을 무릎 쓰고 계속 활동을 했다. 보면서 참 치밀한 분이었던 것 같다. 변장을 하면서 일본의 옷을 입고 다닌 적이나, 술을 마시면 항상 일본여자를 옆에 끼고 마신다는 점이다. 감시가 살벌한 장소에서 자신들의 활동을 들키지 않기 위해 비밀경사인 대동청년당을 결성할 때 이름이나 조문들을 남기지 않고 오직 말로서 전달하여 그 누구에게 들키지 않고, 일제의 눈을 피했다. 비밀결사는 결사조직보다 결사운영이 더 힘들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산 선생의 활동을 보니 매우 철저하게 관리해온 점과 그 와중에도 부산경남지역의 힘없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돕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일제강점기는 일제와 독립운동의 투쟁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자본력과의 투쟁도 있었다. 일본이 국내 상권을 잡아내기 위해 경제침략도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친일하던 자들은 조선총독부나 야쿠자, 경찰 등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조선 민중을 착취했고, 사기를 쳤다. 백산은 이런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와 부당함을 알렸고, 여론을 통해 해결하였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집들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도와주기도 했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어려운 동족의 어려움을 보살펴 준 것이다. 생각하면 국가란 땅, 국민, 무력이란 3가지 중에서 가장 무엇이 필요한 가에서 공자나 혹은 많은 정치철학자들은 국민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국가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이 없으면 국가를 재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해임시정부 역시 주권을 상실해도 대한민국 정부의 전신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하여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독립군조차 모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로하여 별세하고, 인간의 천수도 누리기 전에 총칼에 맞고, 고문에 쓰러져 갔다. 그런 비탄의 시간조차 억울한데, 지금의 현재시간에서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극우행동에서 백산 선생님이 힘들게 기울인 노력이 그저 물거품이란 사실은 허무한 사실이다. 진심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민족과 국가의 자유와 평화를 바란 분들은 이슬처럼 사라져가는 대신 그들을 업신여기고 일본과 결탁한 자들은 떵떵거리는 모습은 씁쓸하다.

 

친일하던 자들의 후손이 일제에게 받은 재산을 국가에 반납되지 않기 재판을 하는 모습에서 과연 인간이라면 부끄러움이 없는지, 최근에는 자기 조상이 친일한 것을 자랑하는 인간이 있다고 들었고,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은 한국이 독립하지 않아야 했다는 말도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만약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그런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군국주의가 유지되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서다.

 

우리나라 독립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 놀라는 점은 한국인만을 아니라 일본의 국민조차도 염려한다는 점이다. 죄 없는 일본국민들을 다른 다라의 국민을 괴롭히는 범죄자를 만든 것도 모자라 전쟁의 위기에 몰아넣어 그들을 죽음의 땅으로 집어넣는 것조차 말이다. 아직도 그런 망언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일본의 무리를 볼 때마다 요새 정말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점에서 백산 선생은 임오교변(1942년) 사건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43년 8월 순국한다.

 

백산 선생이 유언으로 내리기를 “앞으로 2년 후면 일본은 패망할 것이요. 오방은 독립될 것이다. 너희 형제들이 앞으로 곤란한 입장에 처하였을 때에는 너희 등의 양심에 물어 처신하라. 고상의 각 공지 산에 과목을 심으라.”

 

백산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지식인이며 경제인이었다. 경제활동으로 민족의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어려운 민중을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경제활동은 제로섬 게임과 같이 승자독식과 패자멸망이란 아쉬운 기로를 생각하면 백산 선생이야 말로 우리가 존경해야할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경제인이다. 근대화라는 것과 근대철학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근대철학이란 근대화의 기본정신이 되었지만, 근대화는 근대철학을 완수하지 못했다. 근대철학은 계몽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산 선생의 계몽정신은 합리주의를 넘어 합당한 것을 추구하는 민족의 근대 지식인의 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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