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책만드는집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란 작품은 작가 본인의 작품 중에 상당히 초반에 만든 작품이다. 그 이후에 나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작품을 생각하면 <도련님>은 장편의 소설보단 중편의 소설에 가까운 분량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몇 권을 읽으면 생각하지만 그의 소설은 등장인물이나 주변 배경적 조건이 복잡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보통 주인공과 그 주변의 가족, 그리고 몇 몇의 주변인물 정도이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인물과 공간에서도 그의 소설은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작은 세계만을 다루는 것 같으나, 사실 그가 다루는 소설은 그렇게 작은 세상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도련님>이란 작품은 청일전쟁 전후 시대에 어느 한 남자가 물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의 학교의 수학교사로 부임 받아 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를 보면서 기차가 생긴 것이나, 혹은 학교 미술교사가 마돈나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아 일본에 서양의 근대문물이 막 도입되던 시기에서의 냉철한 그의 눈썰미도 보인다.

 

우선 작품 내에서 주인공인 도련님은 진짜 도련님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린 시절 매우 말썽을 많이 피우고, 장난을 많이 쳤으며, 장난의 도가 지나치다 못해 자기 손가락에 칼을 베게하거나 장기를 두다가 형을 때리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집안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고, 아버지로부터는 의절선언까지 들었다. 도중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것 역시 도련님의 행실이 바르지 못해서라고 원망을 듣기도 했다.

 

삶의 목표나 자신의 길을 찾는 것보다 오로지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던 도련님은 중고등학교를 졸업 후에 별 생각도 없이 물리전문학교를 진학하고, 졸업하여 수학교사로 부임되면서 그저 주변 상황이나 시대적 흐름과 관계없이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처럼 나온다. 그래도 이상하게도 도련님에게도 유일한 아군이 있었다. 도쿠가와 에도시대의 고귀한 귀족의 딸로 태어났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귀족가문이 몰락하면서 도련님 집에서 하인으로 고용된 기요가 있었다.

 

늙은 할머니인 기요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련님에 대해서는 아주 지극정성이다. 다정하게 말을 붙여주고, 필요할 때는 용돈과 간식도 주었다. 도련님을 무엇을 할 때마다 칭찬을 해주었고, 옛날에 태어났다면 매우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격려해준다. 겉으로 본다면 마치 철없는 아이를 두고 오냐오냐 하면서 길러주는 할머니 같은 인물이 기요였다. 그래서 도련님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기요 만큼에 대해 매우 특별히 생각하였고, 시코쿠 쪽의 중학교에 가면서 기요를 두고 갈 순간, 만약 거기 간 뒤에 언제 기요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도 했으며, 가는 날 우는 기요를 뒤로 한 채 떠날 때에도 혼자 마치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한 도련님, 오직 기요에게만 사랑받은 도련님, 이제는 고향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 가서 혼자만의 삶을 꾸려야 했다. 도련님의 새로운 인생에서 그가 살아온 행실은 전혀 좋지 못한 것이기에 잘 지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코쿠에 있는 중학교에 오면서 도련님은 어느 평범한 부임 교사처럼 행동하기보단 다른 행동을 보였다. 튀김우동을 먹고, 경단을 먹으며, 억지로 누군가 같이 할 것을 권하면 응하지 않고, 혼자 원하는 것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좋은 인상을 줄 리가 없다. 직설적인 행동과 남의 눈치를 억지로 맞추지 않아 그는 학교 내의 선생이나 학생들에게 좋지 못한 인물로 찍혀 있었다. 특히 잠자고 있는 방에 학생들이 집단으로 장난친 것과 학생들의 장난을 억지로 잡아 해결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평범한 학교선생이 아닌 것으로 나왔다. 또한 같은 수학교사인 센바람에 대해 처음에 잘 지내는 것 같더니, 하숙집의 주인인 이상한 골동품을 강매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하자 하숙집 주인의 앙심으로 처음 소개해주었던 센바람에게 집에서 쫓겨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도 했다.

 

원하지 않는 학교생활과 원만하지 못한 일상에서 도련님이 자신의 학교에 뭔가 있다고 여긴 것은 낚시하러 가면서다. 빨간 셔츠 교감과 미술교사 딸랑이와 같이 낚시하러 가면서 자신에 대한 험담과 더불어 센바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게다가 새로 이사 간 하숙집으로 가면서 끝물 호박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끝물 호박선생은 도련님이 학교 내에서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니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 하던 사람이었다.

 

끝물 선생은 집안이 쇠락하여 약혼녀와 결혼하지 못하게 되고, 억지로 다른 지역으로 부임까지 가야했다. 집안이 쇠락한 것도 모자라 약혼녀와 부임 문제에서 도련님은 그 내막을 알게 되고, 때마침 센바람도 골동품을 강매하려고 하던 하숙집 주인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알면서 다시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어떻게 보면 도련님은 처세술에는 매우 능하지 못한 인물은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은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도 싫어하며 도리어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

 

기요가 말한 것이나 스스로 도련님이 귀족집안의 후예라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는 점에서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사회가 어떤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소문을 듣고 흘리고 남의 흉을 보는 좋아하고, 인간이 인간으로 가져야 하는 인간성에서 도련님으로 통해 본 사회란 위선이 가득한 곳이었다. 정규학사를 나온 사람들이 근대사회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었고, 기요와 같은 인물은 막부시대 귀족의 후손이나, 몰락한 이상 그저 하인에 불과했다. 근대문명의 유입과 더불어 메이지유신은 과거와 근대의 혼란 속에서 인간의 정신을 발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화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교양인으로서 행동하기보단 오히려 어설픈 지식으로 잘난 척하고, 그것까지 좋다 하더라도 남이 곤란한 상황을 이용하거나 혹은 억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도련님이 있는 마을에서 큰 행사가 있었는데, 중학교와 사범학교 학생 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이 일어나면 교사들이 말릴 생각 없이 그저 도망치기 바쁘고, 오히려 말리던 도련님과 센바람이 중간에 맞으면서 싸움 말리던 사람들은 싸움을 끝을 내려고 했다. 덕분에 경찰에게 연행되어 간단히 취조 후에 풀려났다.

 

그런 상황에서 신문에서 도련님과 센바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2사람에 대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이 문제로 센바람은 학교에서 강제로 사표를 쓰게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의 싸움을 말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삼아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을 찍어 내는 행동에서 <도련님>의 소설에서는 시대가 변했다고 하여도 사람들의 이기심과 질투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지식인이어야 할 이들이 지식을 올바른 곳에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을 보고 <도련님>이란 소설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고, 사람들의 입이 싸다는 점, 타인을 질투하는 것도 모자라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짓, 남의 작은 행동에는 큰 망신을 주면서 정작 그 망신을 주려는 자들은 도덕적으로 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이때까지 자신의 뜻대로 솔직하게 행동하는 도련님이 훨씬 인간다워 보인다. 끝물 호박선생이 다른 곳에 가면 자신의 월급이 올라가는데도, 그 돈을 받지 않는 점이나 혹은 끝물 호박선생을 궁지로 내몬 딸랑이와 빨간 셔츠를 골탕 먹인 것도 그렇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매우 작은 공간의 사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이야기가 사소하지 못하게 여기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도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도련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여기저기 일어나는 것이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신시대의 지식인들이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할 도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골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지금 만약 도련님이 현실에 있다면 더욱 곤란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면 딱히 에도시대를 찬양한 사람은 아니나, 적어도 그의 글에서 에도시대의 삶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적어도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게 노력하려 했으나, 이제는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19세기 한국의 위대한 철학가이면서 정치인이던 다산 정약용 선생 역시 시대의 흐름에서 농민을 괴롭히고 착취하던 양반과 관료들의 특권의식을 비판했다. 그런 점의 그 분의 시조 한편을 보면 문구에 단군의 시대보다 못하다 한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과거로 통해 보는 현실에서 보는 사회와 그 사회에서 보는 인간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은 잘 변하지 않은 존재라고 한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는 그런 시대의 변화에도 억지로 따라가도 거기에 묻히지 않으려 했다. 고집불통인 도련님과 같은 인물이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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