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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적게 된 동기는 우연히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학과에서 만화콘텐츠를 가르치시는 박인하 교수님의 블로그를 보고 나서 적은 글이다. 글을 적으면서 느끼는 것은 박인하 교수님이 읽어내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역과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현황은 상당히 탁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소에 자주 블로그에 가서 글을 보고 덧글을 나누고 하는데, 최근에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그것은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단한 화제로 떠오른 어느 만화작가에 대해 교수님의 제자가 물어본 것이었다.
질문 요지는 “엉덩국 만화...엉덩국은 고등학교 1학년인 걸로 알려져 있는데, 만약 애가 저희 학교로 포트폴리오 전형으로 지금까지 그렸던 엉덩국 만화들을 들고 교수님을 찾아 뵈었다. 이러면 어떻게 되나요???????”
이때 교수님의 반응은 상당히 신선했다. “이정도 포폴이면 입학은 마음대로겠지만 졸업은 아니란다.~ 찰지구나!!!”라고 말이다. 게다가 그 아이콘에는 교수님을 미국 어느 게이영화에 출현할만한 근육질의 남성으로 그려진 모습으로 표현했다. 물론 이 그림은 교수님의 제자가 교수님에게 웃음반 재미반으로 그려준 그림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런 블로그 포스팅에 엉덩국에 대한 전반적인 비평적인 글이 있었다. 그것은 만화 자체가 워낙 특이하고 요상할지도 모르나, 그 속에는 우리나라 한국이란 곳에서 보이는 남성성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 작품에서 존슨이란 사람이 우연히 게이바에 들어가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고 위험함을 느껴 도망치려고 하나 결국 붙잡히고 몇 년뒤에 그 게이바의 대장으로 군림하게 된 점이다. 중요한 점은 게이라는 존재가 남성들끼리의 동성연애자란 점인데, 그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담론이나 색다른 고찰이 필요한 것 같았다.
교수님이 지적한데로 이것은 겉으로 보자면 웃음반 재미반 농담반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한편으로 보자면 신입 게이인 존슨은 우리 한국사회로 보자면 사회로 뛰어드는 남자라는 점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게이바는 단순히 게이들만의 집단으로 보는 것보다는 우리나라 사회라는 것으로 하여 영역을 넓혀 가면 된다.
조금 영역자체를 확대해석할지도 모르나, 이것은 우리 사회구조와 남성사회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남자들은 언제나 남들과 경쟁해야 하고, 사회의 암묵적인 법칙에 따라 길들어져 간다. 존슨은 멋모르고 이 게이바 즉 암묵적인 법칙이 따르는 세계에 들어왔으나 잘못 옴을 인지하고 벗어나려고 했으나 이 사회와 게이들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뒤에 그 세계에서 대장이 되었다는 점은 암묵적인 사회의 법칙을 완전히 통달하여 이제 기존 대장을 이은 차세대 암흑적인 사회의 법칙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남자들을 보면 뭔가 얽매이고 뭔가 속박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얽매이는 속박이 결국 자신의 굴레로 되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빠져 살아가는 현상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한번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겠다. 우선 게이라는 존재에서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구분점을 생각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게이들을 연상하면 남자인데 의상을 여장을 하며, 거기에 여자처럼 말을 하고 여자처럼 행동한다. 이것은 남성성 안에 깊이 들어있는 여성성, 즉 아니마(Anima)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성성 안에 여성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성들도 여성성 속에서 남성성이 존재한다. 이것을 우리는 아니무스(Animus)라고 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성이 아닌 타인의 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들이 흔히 자신이 원하는 이성을 찾을 때 자신의 이상형을 그려 보라고 한다.
이때 남자들은 쭉쭉빵빵한 소녀시대나 아이유와 같은 아이돌 여자가수를 연상한다면 여자들은 원빈이나 현빈, 강동원과 같은 남자 스타들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자면 우리 인간이 가진 상대 이성에 대한 욕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은 자신이 만들어낸 욕망보다는 타인들이 만들어낸 욕망을 당사자가 욕망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욕망도 타자에 의한 욕망이란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여 게이들은 자신들이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임을 원하고, 또한 여자이라는 하나의 가상적인 사고로 통해 자신이 여자로 생각한다. 그러면 자신이 여자가 되었으면 상대이성인 남성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동성연애를 가지고 정신분석이나 심리분석과 같은 높은 학문적 영역을 필자는 갖추어지지 않아 거기에 대해 자세히 풀어 설명하기란 어렵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엉덩국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남성성 안의 여성성이 지나친 게이가 아니라 남성성으로 가득한 마초이즘(남성적 기질을 지나치게 강조해 남자로 태어난 것이 마치 여자를 지배하기 위한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 일련의 증상)적인 남성이라는 점이다.
물론 엉덩국의 작품에서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소 마초이즘 요소가 보이는 이유는 남성성 안의 여성성으로 게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남성성의 강조로서 게이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엉덩국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런 남성성으로 가득한 동성애적인 부분은 지금 막 나온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잔존했다.
미국 콜럼비아 대학교 문화인류학자로 유명한 마빈 해리스(2001년 작고)의 “작은 인간”이란 도서를 참조하면 남성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소주제는 “남성끼리의 동성애”에서 각 나라와 부족에 대한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 병사들은 매우 용감하고 엘리트적인 부대였는데, 이들은 사실 동성연애자였다는 사실이다. 전투기술이 뛰어난 전사는 나이가 어린 소년에게 전쟁기술을 가르쳐주는 대신 소년에게 섹스파트너로서 대할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이 소년은 이런 요구에 응한 점과 차후 이들은 다시 전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스 동성애적인 부분은 그리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보인다. 플라톤의 “향연”을 참조하면 “여자와 동침하면 육체를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고 믿었다” 여기서 이 동성애적인 부분이 육체적인지 혹은 정신적으로 대하는지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늙은 남자와 어린 소년이 동성애적인 관계에 대해 사회적으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철학의 기원인 그리스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 점과 그 외로 일반 원시부족 성격을 지닌 민족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파푸아 뉴기니아 산악 지방에서 소년 견습 병사와 상급 전사의 관한 이야기는 아주 독특하다. 이 부족은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어린 소년을 이십대 초반으로 이루어진 남자 전사들 사이에 보내지는데, 이들은 정상적인 성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7세 정도 되지 않은 남자아이들로 하여금 오랄섹스를 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서 배출되는 정액에 대해 많이 삼키는 남자아이일수록 더욱 남자다워 진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젊은 남자는 25세가 되면 일반적인 여성과 결혼하여 그 세계에서 벗어나겠지만 계속 이런 문화적인 현상은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런 지나친 남성성에 대한 집착은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사실은 이런 지나친 남성성을 지닌 부족들은 아주 호전적이고 전쟁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부족이 자신들의 군락에 찾아올 경우 면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방이 무기를 손에 놓는 순간 뒤에서 공격하거나 또는 다른 부족 마을 앞에 잠복하여 새벽에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을 습격하여 죽이는 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민족은 일부다처제라는 특징이 있으며, 여성은 인간이라는 존재보다는 하나의 재산으로 보는 것이 심하다. 갖은 구타와 노동력 착취는 이런 부족들에게 보이는 특징이며, 또한 전쟁으로 남자들이 사망하면 여자들은 그 남자의 동생에게 다시 소속되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이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일정한 영역의 영토에 적은 인구수가 분포하면 식량으로 인한 다툼은 없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지고 단백질을 섭취할 동물이 적어지고 게다가 토지마저 황폐하게 변한다면 다른 군락이나 부족과 필연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전쟁에서 남자들은 문화적으로 전투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남성을 리비도 즉 성욕에너지로 충만한 존재로서 성욕으로 통한 정복욕까지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는 프로이트의 이론보다는 남성이 전투적으로 변화한 것은 원래 전투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남성들을 난폭하게 만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친 남성성은 자연환경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제한된 자원으로 통해 서로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세력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전투능력이 여성보다 뛰어난 남성이 주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서적에서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전투적인 기질을 올린다는 것을 비판하는데, 그런 부분은 본래 생리적인 기능보단 생리적인 기능으로 조성된 일련의 문화적인 인자가 강하다는 점이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신체구조는 보통 사람에 비해 키가 크거나 덩치가 좋으며 근골계가 상당히 발달해야 한다. 그런 점은 그리스 고대석상 헤라클레스를 연상하면 매우 좋을 것이다. 그런 남근중심적인 사회문화에서 강력한 사회지배통치력은 바로 남성의 강인한 남성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돌아가 엉덩국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대부분 남성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일반인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근골격계가 발달한 편이다. 전형적인 남성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단지 인용한 인물들이 게이포르노 배우라는 점이나 그들에게서는 보이는 남성성 안의 여성성은 없다. 단지 남성성으로 무장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남성성으로 무장한 이들에 대해 엉덩국 만화에서는 이것이 정당하다는 느낌보다는 다소 풍자와 조롱이 묻어 나온다. 작가 본인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렸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지 내가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남자 고등학생이란 점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가 살아가는 환경이나 일상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를 보자면 남성들은 억지로 자신들의 남성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가부장체계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이 예전만큼이나 통용되는 시대는 아니다. 다시 그 남근중심적인 사회로 가고 싶은 회귀의식일까 아니면 그런 남자들이 가지는 억지스러움을 놀리고 싶은지는 그 본인의 기분이나 적어도 국내 인터넷 만화인 웹툰에서 그가 남긴 업적은 결코 적지 않은 영역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