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학개론
권경민 지음 / 북코리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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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것은 그저 사람들에겐 재미로 보는 시간 때우기 용으로 생각하기 쉽다. 만화라는 것은 다른 매체에 비해 정보전달하는 요건이 매우 수월하면 게다가 구매하기 쉬운 콘텐츠 중에 하나이다. 누구나 눈을 가지고 있으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며, 누구나 글만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재빠르게 이야기의 흐름을 단번에 파악한다. 다른 정보매체와 다르게 만화라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같이 대하기가 좋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앞서 지나간 샷이나 시퀀스를 그대로 보내야 한다. 만약 복선의 배치가 깔려 있을 경우 그 상황을 다시 재정리하기 위해서 시간을 역행하여 과거로 돌아가야 하나, 자신의 집에 DVD로 시청하지 않으면 많이 어렵다.

 

왜냐하면 다중영상매체는 실시간으로 방영 내지 상영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시 시간을 역행하기란 어렵다. 또 다시 한 번 봐야하거나 재방송을 기다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에 반해 만화는 문학처럼 시간적인 흐름을 되돌릴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전체 만화책 100페이지 중에서 현재 보는 곳이 90페이지일 경우를 생각하자. 보통 서사구조에서 발단-전개-위기-결정-결말이란 단계에서 90페이지가 있는 90% 정도를 보면 항상 최고의 위기상태인 절정에 이른다. 이때 등장하는 갈등의 주체나 정체에 대한 정보력이 부족하거나 상황적 전개가 다소 이해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른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시간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 만화이다. 물론 실존적으로 우리 인간의 시간은 역행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만화라는 세계는 시간의 역행이 가능하고, 다중영상매체처럼 움직임 내지 소멸의 미학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게다가 만화는 이미지를 내포하기 때문에 시간적 흐름과 동시에 공간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만화 중에서 단 1장의 그림으로 풍자나 세상을 비판하는 만평 같은 만화는 공간적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글로 쓰거나 말로 하는 것보다 만평에서 나오는 그림 내지 혹은 4컷에서 나오는 시사카툰이 오히려 더 강렬한 비판과 재미를 준다.

 

만화라는 것이 어렵지 않으므로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기에 가벼운 소재가 된 것 같이 보인다. 사실 생각해보면 만화도 일반적인 서양화 내지 동양화를 비롯한 회화예술 요소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사실 미술실에서 데생하는데 필요한 연필이나 만화를 그리기 위해 사용하는 연필은 별도로 만들어진 것보다 오히려 그 연필 자체로 이용하고 있다. 물론 전문 만화작가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이나 전문예술가가 사용하는 미술도구들에서 조금 차이점이 보일지도 모르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도구를 이용하고 있다. 그리기 위한 방법에서 만화는 회화예술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나 연출들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장르나 예술에서 가지고 있는 요소를 과감히 차용한다.

 

지난 BICOF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학술적인 요건이 강화된 컴퍼런스 주제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토대로 만든 장르만화 세계에서 Beck이란 작품이 여러 가지 장르 중에서 하나로 소개된 바가 있었다. 이미지라는 세계로 이루어진 만화에 소리라는 절대적 시간적 흐름이 반영될 수 있는가? 라는 의미에서 장르만화라도 음악이 가진 특성을 만화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컴퍼런스 발표에서 나온 주제 중에 작은 단락에도 나왔다.

 

사실 만화라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에서 이미 만화로 만들어진 이상 하나의 허상을 이루는 존재다. 그러나 그 허상에서 만화는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하나의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다. 달리는 자전거와 자동차에서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선으로 묘사하고, 선의 배치로 통해 강렬함을 전달한다. 표현주의적 미학을 가지고 있기에 만화라는 것은 보여주기 위해 전달하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 만화를 두고 우리는 그저 보고 있다는 것으로 끝낼 수 있을까? 이미 프랑스에서 만화라는 것은 제9의 예술이란 정식명칭을 부여받고 있다. 대중들이 쉽게 접하는 문화생활에서 영화는 제7의 예술이다. 그 이전의 건축이나 클래식음악, 무용 등과 같은 여러 예술에 대해 대중들의 기호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고, 대중들에게 큰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다른 예술에 비해 어렵지 않은데도 대우를 받으나 만화는 그러지 못하다. 게다가 영화라고 해도 장르나 분류를 보면 예술성을 강조한 영화도 있으며, 특히 아방가르드, 인디 장르 등도 역시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삐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라는 서적처럼 대중들은 문화와 예술로 통해 하나의 구별 점을 만들어내고, 그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다. 만화라는 존재가 정말 유치하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별 짓기>라는 책제목처럼 편력된 성향이 결국 정립시킨 문화적 상황이다. 2013년 여름에 극장가에서 개봉된 <설국열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실사 영화로 제작된(물론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들어가나) 이 작품은 원작은 프랑스 예술만화였다.

 

만화라면 유치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던 한국의 문화정체성에서 <설국열차> 영화의 흥행은 만화 <설국열차>의 관심도가 증가했으며, BICOF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는 <설국열차>를 그리고 제작한 프랑스 만화작가와 한국 영화감독 봉준호 씨가 나오기도 했다. <설국열차>가 아니더라도 웹툰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웹툰 소재가 광고나 드라마형식을 만들기도 했다. 혹은 하나의 만화책으로 이루어진 <식객> 역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만화에서 보이는 다양한 소재나 재미 등이 영화와 드라마로서 콘텐츠 요소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만화라는 것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위치에 머무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만화와 웹툰작품이 흥행하고, 때에 따라서는 다른 콘텐츠로 제작된다고 해고 그것은 일시적인 요소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요소를 어떻게 더 개발하여 발전시키어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하여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중적으로 접근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만화라는 것도 예술적 가치가 높고 다양한 담론이 가능한 세계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가이다.

 

결국 만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고, 어떻게 다시 봐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남서울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권경민 교수가 집필한 <만화학 개론>은 그런 흐름에서 만화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일 것이다. 국내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도서에서 만화보다는 애니메이션 쪽에 더 많은 도서가 있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 관련 도서는 영상학이나 영화학 전공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국내에도 영화학 관련도서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영화학 도서에서도 애니메이션 한 장르나 소재로서 소개된다. 하지만 그 정보를 제공해주는 질적, 양적인 부분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애니메이터 내지 만화가들이 만든 책이 절실한 부분이고, 설사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만화가와 애니메이터 입장에서 만든 다소 한계점이 존재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 자체를 잘 풀어갈 수 있어도, 관점의 차이 내지 담론적인 요소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국내 만화와 애니메이션 개론이나 이론에 대한 도서를 보면 관련 분야에 종사하거나 전문교육을 받는 사람에게 적당할지 모르나, 일반적으로 초심자 내지 혹은 교양으로서 접근하는 사람에게 소개해줄만한 도서는 어려운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내 입장을 생각해보면 프랑스 구조주의, 구조주의 이전의 소쉬르의 언어학(기호학),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등을 알게 된 동기는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한 도서를 보면서였다. 사실 만화라는 것이 이미지라고 해도 하나의 그림체로서 기호이며, 기표로 통해 기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부여된 점이다. 서사의 진행에 따라 이미지 표상과 흐름에서 전달되는 이데올로기의 분석은 쉽지 않다. 정확하게 정리하면 그렇게 분석하기 위해 독자로 하여금 배경적인 지식과 학문적 요건을 쌓기가 어렵다.

 

쌓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런 세계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게 하고, 그것이 간단히 무엇인지 정보로 제공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가령 대중들이 흔히 무슨 뜻인지 모르고 남발하는 “스펙타클하다.” 내지 영화나 광고포스터에서 나오는 “초강력한 스펙타클한 전개” 등에서 스펙타클이란 단어가 어디서부터인가에 생각해보면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를 읽는 것은 쉽지가 않다. 최소한 “스펙타클이란 이미지가 매개가 되는 사회”라는 의미처럼 주요 핵심을 간추려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만화라는 것은 그냥 보고 간단한 것이나 알고 보면 생각이상으로 어려우며, 다른 학문과 많은 연계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만화를 만화로서만 대하는 것으로 만화를 이해하기가 부적당하다. 만화의 연출이나 묘사방법에서도 몽타주나 미장센, 시퀸스와 같은 영화용어를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화면 안에 이원적인 것을 동시에 넣어 상황의 극대화 내지 갈등의 증폭 역시 좋은 방법이다. 물론 <만화학개론> 책 1권을 읽고 만화전문가 내지 만화비평가, 만화작가로 될 수는 없다. 이 책은 개론도서이지 전문적인 요소를 더 들어간 서적은 아니다. 하지만 만화라는 것이 무궁무진한 작품을 가진 세계이고, 무궁무진하게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세계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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