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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데이즈 3 - Seed Novel
김월희 지음, nyanya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중2병 데이즈 3권>을 다 읽는 순간 이 책은 나름 실존주의적 혹은 개인에 대한 성찰을 위핸 만든 도서인 듯하다. 철없는 여동생 린, 흑련, 붕어빵에 빠진 슈, 바보 뱀파이어 루나를 아무리 살펴봐도 제 정신이 아니다. 그나마 제 정신보다는 그저 평범하게 삶을 살고 그냥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싶은 연오만이 한숨을 내쉬며 독백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러나 중2병 아이들에게 아니 진실로 중2병은 아니나 비현실적인 인생을 살아온 주변 인물에 의해 정상적인 삶이란 없다. 그렇다면 연오에게 주어진 정상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이 작품 3권에서 연오는 자신의 선배에 대한 추억을 넘어 현실에서 마주치는 모습이 나온다. 갈까마귀왕이란 아명을 얻기 전에 그 아명을 지닌 남자, 조직에서 가장 무섭고 잔인하며 모든 것을 넘어선 남자 자오, 그는 사실 연오와 똑같이 생긴 남자였다. 아니 연오와 똑같은 것이 아니라 연오는 자오의 복제판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생명에겐 처음부터 의미가 있었는가? 살아있는 인간보단 억지로 만들어진 기계인간처럼 이들에게 평범한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조직의 명령에 따라 마술사를 찾아 죽이고 죽여 그들의 눈에 모조리 시체로 되어 있을 때까지 미친 듯이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기고 장전한다.
여기서 선대 갈까마귀왕인 자오는 어느 순간 회의감을 느낀다. 연오를 두고 했던 말들, 뭔가 알 수 없으나 쓸쓸한 눈으로 미소 짓는 그 얼굴을 연오에게 살짝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연오와 자오는 둘만의 전투를 시작하고, 연오에게 패배한 자오는 자취를 감춘 채 사라진다. 그런 자오가 사라지고, 연오는 조직의 넘버원이 된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연오는 그저 자오의 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가는 순간 한 없이 가슴속으로 허무함이 뒤따랐다. 과연 나는 이때까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원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느 한 서글픈 정치인이 저술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제목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숙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의문과 숙제도 따른다. 산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의미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그 유한성에 따라 시간이 존재한다. 인간에게 시간이 없는 것이라면 무한의 정지된 시간이다. 시간적 존재가 되지 않기에 육체적으로 움직임도 없고, 정신적으로 생각을 할 수 없다. 그저 멈추어버린 우주공간의 진공일 뿐이다.
그래서 연오가 선택한 것은 린을 데리고 나와 조직에서 나온 것이다. 조직을 나오기 위해 조직의 일원과 마찰이 있었고, 생사를 넘어 평범한 남고생과 여중생이 되었다. 물론 전자는 현실을 적응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적응은 빠르게 되었으나 브라더 콤플렉스로 오빠라면 모든 것을 망각하고 달려드는 강박관념자다. 연오의 일상은 무엇일까? 평범하게 중2병 환자로 소문나서 학교에 가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고, 심지어 유튜브 영상 조회 10만을 거뜬히 넘은 인터넷 스타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스타가 되면 생계현황이 좋아져야 하나 오히려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식사 때마다 편의점에서 김밥, 라면, 햄버그로 때우다 점심 때 학생식당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연오에게 현실은 그렇게 만족할 만한 것인가? 그의 일상은 불과 몇 개월만 하더라도 양손에 잡고 있는 총자루에서 불을 내뿜으며 상대방의 생명을 태워버렸다. 그저 죽음을 주기만을 위해 태어난 킬링 머신, 그 킬링 머신이란 이름이 결국 자신의 일상이었다. 그가 선택한 일상은 진실한 일상인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일상을 버리고 새로운 비일상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 몸부림이야 말로 연오가 눈부시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는 나에 의해 살아간다는 개인에 대한 성찰과 실존적인 자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은 과다 포장하여 억지로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던 만큼 자신이 인간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어 작은 것이라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자신이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는가? 빛나는 순간은 늘 거대한 무엇을 손에 넣어야 빛이 나는 것인가? 물론 개인마다 차이점은 있다. 하지만 연오는 그 빛남을 알지를 못하나 손에 넣었다.
옆에 중2병 환자들처럼 이상한 녀석이나, 그래도 같이 웃으며 싸우고 같이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늘 사람을 이용하고 속이는 것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오의 모습은 살인귀 갈까마귀왕 시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논리만 존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 불과하다. 마음의 감성이 들어가는 순간 삶을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연오에 대해 자오는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자오는 연오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랑을 할 수 있냐고 말이다.
자신 이외에 타인이고, 그것도 인간과 인간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서 그 여자를 사랑할 수 있냐고 말이다. 연오는 당시 살인귀가 되기 위한 시기였기에 그런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오로지 조직에서 실력 있는 인간 청소기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연오가 어느덧 사랑이란 달콤하고도 위험한 덫에 걸린다. 린이 조직에 같이 있을 때 연오에게 접근한 여자에 대해 처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 접근하는 여자는 마술사 조직에 속해있는 주술사들, 그 주술사들은 미인계로 조직의 남성을 유혹한다. 린은 유혹하려는 여자가 나오는 순간 모두 자신의 손에서 나오는 무기로 토막토막을 내었다.
오빠만 찾는 지독한 중2병 브라더 콤플렉스라도 일단은 일류 살인기계였다. 그러나 이번에 연오가 당한 것은 린은 눈치 채지 못했다. 아니 눈치 채는 것이 불가능했다. 연오가 빠진 유혹의 덫은 마술사가 마술을 부린 것이 아니라 마술사가 여자로서 마술을 부린 것이다. 조직의 적인 마리가 이상하게도 연오의 선배인 자오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마리는 학교 안에서 최고의 미인에다가 성격도 운동도 학업도 뛰어난 미소녀다. 그런 미소녀가 연오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연오의 삶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없이 하늘을 날아가기 위해 날개 짓만 반복하는 작은 새처럼 보잘 것 없이 보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 빛이 나는 것이다. 마리는 그저 자신을 숨기고 맞추어 살아간다면 연오는 숨기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점에서 마리와 다른 삶을 선택한 것이다. 피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 연오의 삶, 하지만 자오에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오와 자오는 분명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쟁이 끝나는 것만을 생각하고 살인만 했지, 그 이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마술사 조직과의 전쟁도 끝난 상황에서 전쟁의 회귀는 불가능했다. 평화가 온 것이다. 손에 피 냄새가 나지 않고, 억지로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연오는 그것에 대한 생각에서 자오를 따라가지 않았다. 만약 살인기계로 태어난 자신들이 더 이상 살인기계로서 활동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행복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인정받을 때 행복해진다고 했다. 자신에게 있어야 할 공간, 아니 있을 수밖에 없는 공간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오는 스스로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살아왔던 그 공간과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조직이 없어지면 자신의 살아온 흔적이 무의미해지는 것이고, 자신이 싸우던 전장이 사라지면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의미다.
마치 그것은 전쟁터에서 지겨울 정도로 총탄을 피해 상대진영의 병사에게 총을 발사하고, 칼을 찌르는 군인처럼 전쟁을 끝난다고 해서 전쟁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전쟁에서는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저 골칫거리라면 그 평화 뒤에 오는 세상을 파괴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것을 부정한다는 것을 부정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인 논리에서 자신의 일상이 곧 타인에게 비일상이야 하듯이 자신이 살아갈 공간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일 것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에 대해 피지배계급이 전복을 시도하는 혁명이 아니라 그저 힘이 있는 자들이 자기만의 세상을 가지고 싶어 하는 쿠데타다. 연오의 삶은 혁명과 쿠데타도 없이 그저 자신의 길만 찾아간다. 연오는 병기로서 지배세력이나 현실생활에서는 피지배계급에 가깝다. 학교에서 중2병으로 소문나고 맨날 동생과 주변 중2병 소녀들에게 휘둘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이란 존재에 대하여 중2병 소녀들은 사람으로서 대해주었지 연오를 살인기계로서 대해주지 않았다.
그런 비일상 같은 일상이 자오에 의해 파괴당할 위기에 처한다. 연오는 날카롭게 살기를 띠고 있는 자오에게 이길 수 없었다. 자오가 가진 각오와 허무함에서 연오의 결심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의 목숨이 자오의 손가락에 의해 결정될 때, 겨우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것은 흑련의 정신없는 중2병적인 말투다. 중2병에 의해 살아가는 엉뚱함에서 결국 자신이 살아갈 공간이다. 일상과 비일상이란 2가지 선택지에서 한 가지만 아니라 2가지 모두 속하거나 혹은 속하지 못한 것이 연오다. 오히려 2가지 선택을 모두 가져간다는 3분법적인 선택도 있으나 물론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