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3 - Seed Novel
김월희 지음, nyanya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표지를 보면서 19세 이하는 보는 것을 금지하던 것이 어느 새 15세 미만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 제일의 여동생님>의 1권과 2권의 표현에서 잔혹한 폭력과 다소 윤리적으로 의심하게 할 위험한 발언들이 숨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2권은 폭력적 묘사는 전 권에 비하여 적으며, 물론 성적인 요소도 덜하다. 그런다고 물론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탕화면 일러스트에서 왜 금발의 소녀 2명이 나와 있는데, 2사람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둘 다 금발의 트윈 테일이나 조금 다른 점은 1명은 다소 짧은 치마에 니삭스를 입었다면, 다른 1명은 왠지 mania를 지나 상당히 위험한 의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거의 비키니 수영복에 검은 코트를 걸쳤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뒤를 보면 비슷하게 생긴 금발의 트윈 테일 소녀가 서로 칼을 잡고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겉표지의 일러스트에서 나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 이번 3권의 주인공은 바로 2명의 소녀다. 작품의 도입부는 이상한 노출증에 걸린 여자아이가 무기를 들고 블랙헤이젤 가문에 침투한 것과 그 소녀가 마치 리리의 움직임 모두 간파한 것처럼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다가 다시 잡혀온다. 그 여자아이는 리리의 언니인 리나인 것이다. 본래는 리리와 같이 블랙헤이젤 가문의 특수부대 요원으로 있다가 어느 새 모습을 감춘 것이다. 결국 블랙헤이젤 가문에서 그리고 그 당주인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숙청당해야 할 배신자인 것이다. 3권에서 리리와 리나로 통해 본 시영의 행동, 그리고 다소 과장된 상황과 연출이 나타나기도 하나 그런 개인적 에피소드는 몰라도, 리리와 리나의 일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작품에서 리리와 리나의 출생배경이 중요하다.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 미래도 계속 활동하는 NGO에서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단체가 있다.

 

주로 의료 봉사업무를 분쟁국가 내지 개발도상국과 같은 제3의 나라에 헌신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펼치는 인술이란 매우 존경을 넘어 숭고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 프랑스 예술만화가인 기 들릴의 <굿모닝, 버마>라는 작품을 보면, 미얀마라는 나라에 가서 실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만화로 만든 작품이다. 작가 본인은 만화예술가이고, 그의 아내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던 의료진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 나온 아이 한 명과 같이 3명이 프랑스에서 미얀마로 간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국경없는 의사회는 그런 미얀마와 같이 독재정권에 의해 의료혜택을 못 받는 빈민을 위해 활동하며, 실제 전쟁으로 고통 받는 나라에도 간다. 그런 점에서 리리와 리나가 부모님을 따라 같이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라 가는 것은 전혀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기 들릴의 작품을 보면 국경없는 의사회의 의료진들은 1번 방문하면 기본 1년 전후로 머물기 때문에 가족과 동행하는 게 선택사항으로 필수다. 문제는 그들이 항상 좋은 환경에 업무할 리가 없다. 전쟁이나 개발도상국, 심지어 독재국가나 분쟁으로 고통 받는 나라에서 의료진들의 이동은 물론, 주변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도 불안요소로 작용하기 마찬가지다. 그래서 리리와 리나는 작품에서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당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설정이다. 게다가 테러리스트나 분쟁국가에서는 어린 아이를 이용해 이익을 채우는데, 남자아이는 소년병으로 만들어 전쟁터로 보내고, 여자아이는 성매매 도구로 이용하여 팔아넘긴다.

 

굳이 그런 나라가 아닌 태국이나 방글라데시의 어린 소녀들은 이미 여성으로서 기능을 다 갖추기 전에 벌써 성매매 활동을 하고, 그것으로 통해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기도 한다. 세상이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못해 추하고 역겹고 그것이 하나의 진정한 정의라는 가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라이트노벨에서 이른바 어린 소녀들을 가리키는 롤리타와 추억을 만드는 시영이나, 그 시영의 입장에서 보는 세계란 바로 희망이란 없고 오로지 어둠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둠 안에서 희망은 없다보단 그 어둠만이 희망보단 유일한 길이라는 암울한 설정이다. 단지 작품에서 시영이 마리아와 백련, 그리고 일부러 장난을 거는 로스차일드의 당주에게 벗어날 궁리로 신부선택을 리리로 한 점이다.

 

여기서부터 발단을 지나 사건을 시작된다. 리리와 결혼식을 올리는 시영,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잘 만들어진 각본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리리의 입장에서는 시영이 자신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고, 시영의 입장에서는 리리는 자신을 지켜준 생명의 은인과 동시에 귀여운 여동생처럼 보인 사람이다. 따라서 결혼식 자체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일지 몰라도 서로 간의 관계성에서 부정하지 않는다. 유럽의 산토니아 섬에 도착하자 말자 결혼식에 거기다가 호텔 스위트룸, 이 모든 것이 너무 잘 구성된 이벤트이며, 단지 말장난이 여기까지 번진 것은 왠지 모르게 망상적인 흐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다시 찾아온 인물은 리리의 언니 리나, 겉으로는 호의적이나 속으로 다른 속셈이 있었다. 호텔로 다시 가려고 하던 시영과 달리 리리는 오히려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가자고 한다. 공항에 가는 순간에 호텔이 갑자기 붕괴된다. 폭탄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폭탄테러의 준비는 리나, 그녀는 리리의 옆에 있던 시영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백련에 살리기 위해 시영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이다. 블랙헤이젤 가문에서 마리아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장난감이자 모든 것으로 남은 애완오빠가 아니라 그 블랙헤이젤이란 가문의 피를 같이 나누어 가게 될 일원으로 변모한 것이다.

 

당연히 백련을 구하기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맺은 협약은 간단히 일이 아니었다. 6연방 러시아룰렛을 하기 위한 메그넘 권총에서 1발이 아닌 6발의 공이치기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총안을 없으나 그 총알 없는 총은 그 만큼 다른 인명을 대신한다. 1발 총알이 시영을 죽이게 하나, 총알 없는 1발의 장전은 아무 죄 없는 수 백 명 혹은 수 천 명, 때로는 그 이상의 인간을 죽이기는 도화선이 된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산토니아 섬의 호텔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 시영과 마주한다. 호텔이 붕괴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폭탄의 폭발력에 의해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거나, 화재로 화상을 입고, 건물의 잔해에 의해 사망 내지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아비규환의 지옥, 그 지옥이 시영이 택한 여동생 백련의 생명의 대가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가치와 세계관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서 그 상황에 어떻게 인간은 되는가?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무기는 공포다. 공포는 그 모든 이성을 물거품처럼 만들고, 인간은 가장 무서운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는 로스차일드의 당주에 의한 배려도 있지만, 로스차일드의 당주는 그저 산토니아의 결혼식과 스위트룸에 대해서지 그 이후로부터는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그렇게 테러리스트로 붙잡힌 리나, 하지만 리나는 리리의 언니이고, 그녀 역시 아직 어린 소녀이다. 왜 그런 소녀는 테러를 저지르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는 것에 모든 삶을 거는 것일까? 주인공 시영은 이른바 심연의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깊이 아주 깊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세계를 닿게 되면 절망에 갇혀 버린다. 게다가 그 깊은 절망은 희망이란 단어가 그저 쓰레기와 같은 것에 불과하며, 인간이란 불신의 존재이다.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되어버린 당사자인가? 아니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조건인가?

 

리리와 리나의 이야기에서 국경없는 의사회 일원으로 테러리스트에게 당한 이야기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란 점이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고, 어린 2자매는 어머니와 운 좋게 살아남으나 문제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전쟁이란 인간을 광기로 빠지게 하는 하나의 게임과 같다. 차라리 광인이라면 전쟁에서 정상인으로 보일지 모른다. 미쳐버린 세계에서 모두가 공포로 인해 두려움과 파괴의 본능에 즐거워하는 동안 광인들만 원래 자신이 하는 행동을 충실히 이행하기 때문이다. 두 소녀의 어머니는 자신들의 가족을 납치한 범인에 의해 무자비하게 집단강간을 당했다.

 

온 몸이 병이 들어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참아낸 이유는 두 딸이 살아있어서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만의 희망일까? 아니면 지금의 현실을 억지로 외면하려고 하는 인식 도피일까? 그렇게 죽은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어둠 외에 남은 게 없는 리리와 리나, 그리고 나타난 블랙헤이젤 가문의 당주 마리아, 마리아는 두 소녀에게 테러범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는 대신 자신의 밑에서 일하라고 한다. 그리고 차례로 두 소녀는 몸에 이상한 것을 심어 넣고, 개인적 이성과 감성 대신 오로지 본능적으로 기계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누구나 신체적 한계가 있었다. 리나는 몸의 부장용으로 모르핀을 의존할 정도였고, 죽음을 앞을 두고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납치범, 하지만 그들을 모두 죽이고 나니 모든 것은 원래대로 오지 않았고 현실은 여전히 부조리했다. 자시가 그렇게 죽이고 싶은 테러범들도 알고 보니 보통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그렇게 만들도록 나둔 보이지 않은 세계의 인간이고, 그 인간은 바로 마리아와 같은 블랙헤이젤 가문이었다. 물론 1번 잡히고, 시영에게 구출된 후 리나는 리리와 시영이랑 같이 떠돌게 된다.

 

거기서 나타난 무장병력 그리고 도주와 피신, 이 모든 것에서 리나와 시영은 생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함정이었다. 시영을 꾀어내기 위한, 하지만 생각해보면 리나에 대한 행동은 틀렸다 하기 전에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왜 세상은 아무리 착한 일을 하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밟아야 하는 것인가? 국경없는 의사회도 그러하나 사실 산타니아 섬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사람 역시 그렇다. 누구를 위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말려드는 것일까? 문제는 그들은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할 곳에 있다는 점이고, 선이란 절대적 가치가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나 상황은 없었다.

 

오로지 그 악에 대해 악으로 승부하는 것이 정의였다. 악에 대한 응징이 악으로 되는 것에서 부정의 부정이 결국 긍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악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결국 세계의 권력이라 불리는 그 깊은 심연보다 깊고 깊은 어둠에서 진정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시영은 그런 리리와 리나를 보면 갈등을 한다. 결국 이 세계란 깨끗하게 사는 것은 그저 위선이고, 오직 악이 하나의 힘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포기한 리나에게 정의의 선은 전혀 그녀에게 손을 내어주지 않았다. 오직 내어준 것은 악이라고 볼 수 있는 블랙헤이젤 당주의 오빠인 시영의 손이다.

 

어떻게 보면 정의라는 이름이 과연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가? 정의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힘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자신의 정의는 결국 힘이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문제는 정의의 가치관에서 그 선이란 기준이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다. 블랙헤이젤 당주 마리아와 선우가의 백련은 그 중심이 시영이었다. 오로지 오라버니만이 절대적 조건이고, 그것을 부정하고 없애는 세력이 나오면 그들에게 내려진 것은 무차별적인 살인과 폭력이다. 물론 도덕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명백한 악이나, 시영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 대한 헌신적 사랑이다. 인간은 그렇게 비뚤어진 존재인 것이다.

 

단순히 마리아와 시영 그리고 블랙헤이젤 가문의 일화가 라이트노벨이란 망상적인 상상력으로 만든 스토리텔링만 그러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각종 부조리가 마치 옳은 것처럼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자신은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혹은 인식하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억울하게 산타니아의 섬에서 폭탄테러로 죽은 이들은 불행하다고 보겠으나, 그들도 그런 부조리에 무관계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에서는 미국이란 나라 이름이 많이 나온다. 세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영향권을 보면 미국은 강력한 나라다. 그런데 그 나라가 여러 가지로 국제분쟁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다. 예비군훈련에 가면 제일 우스운 코미디가 베트남 이야기다. 베트남전에서 원인은 통킹만에 정박한 미함정에 타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미국 CIA가 했다는 것이 이미 문서로 폭로된 사실이다. 물론 그 전쟁으로 죄 없는 난민들은 피해를 입고 심지어 많은 그 나라 사람들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된 것은 말하지 않은 기만이다.

 

리나의 슬픈 이야기를 볼까? “그래서 제가 제 손으로 그들의(부모님을 죽인 테러범) 숨통을 끊어 놓았을 때, 저는 이 세계가 바뀔 거라고 믿었어요.”에서 시영은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세계’가 없어진다고 한들, 블랙헤이젤과 로스차일드, 선우, 미국과 서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이 없어진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없다. 세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온 리라의 말은 “모든 인간들이, 그들의 어둠을 공유하기 때문이죠.”라고 한다. 인간이란 개인적인 욕망과 그 더러운 이면을 자신에게 있는 것을 부정한다. 그래서 자신만은 언제나 착한 인간이기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 인간마다의 개인들은 자신에게 큰 이익이 오기를, 앞으로 그런 이익을 줄 그런 존재를 바란다. 결국 신화라는 무지한 자신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인지하지 않고 기만하기에 비극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란 그렇게 심연의 어둠에 보는 것이란 점에서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3권>은 매우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라이트노벨 설정 상 주인공은 세계 제일의 위기와 능력자 혹은 우주 외계인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다고 하여도 현실적인 요소는 배제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믿는 것은 인간의 존재,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오로지 한 개인이란 점이다. 생각해보면 블랙헤이젤의 마리아나 선우가의 백련 모두 피와 공포를 뿌리는 악마와 같은 존재다. 그녀들이 오로지 다정하고 헌신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시영이다. 그녀들이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세계를 적으로 돌려도 모든 사람들의 원망을 들어도 관계없다고 한다. 자신의 손에 피가 묻어 얼마나 더러운 인간이 되더라도 시영이 옆에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사회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나 단지 개인과 개인의 관계다.

 

모르핀 주사를 맞고도 견디는 리나는 오로지 리리, 리리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마음을 열게 해준 시영을 보면 답은 개인 그 자체에 대한 실존적 부분이다. 그들이 사회성과 세계에 대한 도덕적 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은 이 세계가 그들은 부정했고 버림받아도 내버려 두었으며, 이 사회에는 그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시영도 그런 심연의 세계를 겪은 인물이다. 1권과 2권을 읽으면 부모 없이 홀로 살면서 온갖 무시와 생계로 인해 고생만 했다. 그에게 손을 내어준 것은 없었다. 빛이란 이름, 정의라는 이름은 그저 허울 좋은 껍질이었다. 그들에게 손을 내어준 것은 어둠이고, 그들에게 살아갈 공간은 어둠이다. 시영의 결심처럼 어둠의 힘으로 절망에 빠진 리나에게 구원을 주었다고 하는 것이 이번 3권은 결말이다.

 

시영이 두 번째로 좌절하고 있는 리나의 손을 잡을 때 부조리에 대해서는 더 큰 부조리로 대한다고 한다. 이런 느낌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가깝다. 부조리로 가득한 세계에 대해 부조리로 응답한 뫼르소, 뫼르소는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사나, 어느 모래해변에서 외국인 1명을 총으로 쏴 죽인다. 그리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왜 그런지 모른다. 단지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그렇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중2병과 같은 발언이나 <이방인>은 세계적 문학이다. 부조리에 대해 부조리로 응답한 카뮈의 소설이나, 부조리하기에 그 부조리로서 응답할 수 없는 뒤틀린 인간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우리는 뫼르소나 혹은 시영처럼 그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세계적 문학작품과 한국의 라이트노벨을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은가 하나, 적어도 부조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비교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작품에서 롤리타로서 수행하는 리리와 리나, 그들의 이형적 신체기관은 물론 작가의 설정이나 실제 그런 일은 존재한다. 예전에 마르얀 사트라피라는 이란계 프랑스인이 만든 예술만화 <페르세폴리스>를 보면 그녀가 어린 시절 이란에서 겪은 일을 만화로 그려낸다. 어린 소년이 전쟁에서 아무 의미 없이 죽어가는 것을 말이다.

 

이슬람에서 그 소년에게 기념품을 주면서, 만약 천국에 가면 각종 부귀영화와 많은 미인이 둘러싸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총에 맞거나 폭탄에 맞거나 지뢰를 밟는다. 따라서 3번째 책에서 나온 리리와 리나의 일이란 그렇게 비현실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시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을 찾아 전쟁도구나 성매매로 이용한다. 시영과 리나의 대화처럼 악순환은 막을 수 없는 부조리다. 라이트노벨의 허구성은 소설에서 보이는 이상으로 만들고 환상으로 채울 수 있으나, 그런다고 그 허구와 환상 안에도 현실적 기반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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