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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 이야기 1 - 4인의 실력자
이승한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려 무인 이야기 1권 째를 보는 것에서 느끼는 바는 역사의 흐름에 그 인물과 배경, 상황과 전세들은 모두 다르나 근본적인 원인과 결과는 유사한 것이다. 대학교 학부교양시간에 한국역사에 대한 강의에서 참 어려운 단어들이 교수님 입에서 나온 것을 기억난다.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그 교재를 찾아 내가 직접 메모한 글들을 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를 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마르크스주의가 나오고, 어떻게 하여 마르크스가 역사와 관계가 있는가? 라는 의문에서 최근에 읽어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프랑스 내전>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변증법적인 유물론적인 구조에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 역사라는 것은 단순히 모든 이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 정치적인 영향력에 대한 기술이다. 따라서 거대한 서사에서 역사란 항상 대표자에 의한 투쟁의 역사로도 볼 수 있으나, 그 뒤에 숨은 비대표자, 하위계층의 피지배계층 역사 무시하지 못한 영향을 보여준다. 단지 헤게모니적으로 숨은 피지배 세력에서도 대표자가 있는 법이고, 주동자가 있는 법이다. 민중대란에서도 그 민중조차도 대표자가 있고, 그들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기존의 관념이란 벽을 깨는 것에서 또 다른 관념이 되듯이 인류의 역사란 결국 어떻게 하든지 정치적 상황과 그 중심의 대상인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게 한계점인 것인가? 어째든 고려 무인 이야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적어도 그런 인물들조차도 하위계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령 무인의 난에서 정중부나 경대승 같이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진 세력이라면 몰라도 이의민과 같은 천민 출신들은 상당히 큰 전환점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역사적 이름은 그저 어느 시대에 흔한 하급무장 내지 병사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어느 순간 쿠데타적 성향이 강한 행동으로 당시 정치권을 좌지우지했다는 점은 하위계층도 상위계층과 정치적 판도에 큰 여파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그 사회적 흐름은 상위구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위구조에서도 역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구조적인 연관성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큰 역사적 흐름을 일으킨 사람이 그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처음부터 자신에 대해 살인마, 반역자, 범죄란 타이틀을 쥐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가 원하여 되기보단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환경이란 결정적인 조건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의종을 직접 죽여 연못에 던져버린 이의민의 경우, 그는 분명 키도 크고 힘도 좋았으며, 무장으로 기골이 장대했다.
단지 출신이 비천했기에 출세할 길을 찾지 못해 결국 위에 형제 2명과 함께 행패만 부렸다. 모진 고문에 형 2명은 옥사하고, 기골이 장대한 본인은 살아남아 이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문을 집행하던 관리는 이의민을 기특하게 여겨 그를 군적으로 넣었고, 그런 와중에 의종과 의종의 문신들이 무신들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무신의 난이 이토록 피를 부르고 재앙으로 되었을까? 역사는 단순히 결과물로서 우리에게 찾아올 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우리가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적 흐름을 본래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부자연스럽게 해체하는 것과 또는 되돌려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요소들이 있으나, 그것을 증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수 없으나 다시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나는 점이다. 위에서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나온 이유도 그의 저서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아주 유명한 문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역사는 2번 반복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소극으로”, 단지 역사의 반복에서 동일한(로 볼 수 있는) 인물이 똑같은 일은 2번 한다면 분명 1번째가 비극으로 되는 것은 큰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반복 1번이 소극으로 되는 것은 이미 그것을 또 다시 재현하는 것은 더 이상 해보았자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루이 보나파르트라는 나폴레옹 3세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계략에 걸려 권력을 실각하고, 파리의 시민들은 1871년 파리꼬뮌으로 천부인권을 외치나 결국 몰살당했다. 비극은 분명 2번 되풀이 되었으나, 단지 그 루이 보나파르트와 주변 인물들은 어리석은 바보가 된 것이다. 무인 정권 이야기도 비슷하다. 만약 똑같은 군사정변을 일으킨 인물이라면 비극과 소극으로 되어야 했지만, 모두 비극으로 되었을 뿐이다. 의종의 죽음과 더불어 권력을 잡은 무신들은 결국 자신들의 내부적 권력 다툼에 서로 희생되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역사의 반복에서 인물은 반복할 수 없으나 상황의 반복은 이상하게 계속되었다. 모두 자신의 권력과 재물에 눈이 멀어 처음에는 정치적 당위성과 명제에 대한 무신정권이라면 이제 그들이 그 정점에 올라가는 순간 자신의 권력을 가시적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재물만이 필요했다. 중앙에서는 시장과 관련된 관리들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하고, 농토를 멋대로 갈취했으면, 심지어 임금이나 다른 신료들의 여자들까지 건들고 다녔다.
독재자 아니 권력자들이 가장 최후에 목표로 하는 것은 재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은 결국 물질로 이루어진 보물과 땅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우리 사회나 그 시대나 땅과 재물에 미친 듯이 달려드는 이유도 역시 권력을 위해서다. 재물로서 다시 권력을 키우고, 다시 권력으로 재물을 키운다. 문제는 모든 재원과 자원은 한계가 있고, 그 권력이 다투는 정치세계에서도 관직이 있고, 그 관직도 한계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언제나 정치적 권력에 의해 견제와 음모가 존재하며, 바른 말을 하는 것이 옳은 게 아니라 권력의 힘에 따라가는 것이 옳은 게 되어 버린다.
칼을 들고 정권을 잡은 이들이 비참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결국 권력은 누가 더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는 배제해야 하는 점과 그런 와중에 자신의 권력을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우월심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여있지 않은 백성들에게 간다는 점이다. 무신정권 이전에도 문신들의 무능한 내정 역시 어지러우나 외지의 지방 역시 어지러웠다. 무신들이 정권을 잡자 오히려 무신들이 지방에서 더 큰 부정부패를 저지른 점과 이들의 더 큰 문제점은 문인이 아니라 무인이기 때문에 사납다는 점이다.
경대승을 비롯한 이의민 역시 그런 무인이기에 주변에 많은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세를 유지하고 정치적 견제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수많은 사병들을 군집했다. 문제는 이들은 정상적으로 일하고 거주하는 평민이 아니라 무술에 능하고 성품이 불순한 불량집단에 가깝다는 점이다. 경대승의 무인정권에서 그가 실천한 의지는 틀린 것은 아니나, 그것을 하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의 토대가 되는 사병의 존재는 상당한 문제였다. 그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관아와 민가에 침입하여 식량이나 재물을 빼앗으며, 심지어 사람까지 죽이는 일을 저지르곤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경대승과 같은 무신들은 해결하기보단 오히려 무마시키며, 그런 점을 들추는 행위를 하면 정치적 압박을 가했다.
경대승만 아니라 많은 무신권력자들이 폭력적 수단을 사용했으며, 때로는 자신을 탄핵하거나 비판하는 관료에 대해 귀양, 파면, 살인 등을 가했다. 이러니 나라가 어지럽고 기강이 서지 않으니 중앙과 지방의 주민들은 살기가 힘들어지고, 민란이 여기저기 발생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 관료들은 업무의 난이도가 높고 대우는 낮은 반면, 그 지역 세력과 잘 규합했다. 그런 점에서 무신시대에 많은 난이 일어날 때 그 주모자나 세력이 일정한 세력보다는 그 지역의 농민부터 시작해 승려, 불량배, 하급 장교나 군졸까지 넓게 포진했다.
문제의 시작은 문신들이 자신보다 나이도 많을 뿐만 아니라 직급도 높은 무신에게 함부로 대한 것이었다. 게다가 왕은 자신의 친위대를 소홀히 하여 마치 잡부처럼 취급하며, 급료가 제대로 지불하지 못해 경제적인 문제로 많은 무인들이 고생했다는 점이다. 결국 무신정권이 탄생한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중신축의 인물이 그 당시 직급에 있던 자들이고, 그들이 일으킨 이유는 자신의 성장배경과 더불어 사회적 배경과 시대적 한계가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변에서 남은 것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더 강하게 되었고, 결국 고려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빠지며 1170년 의종의 폐위와 더불어 약 220년 뒤에 고려무신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 이성계는 그 자신도 무신이면서 조선건국이념을 유교문화로 변모시켰다. 그러면서 무신보단 문신 위주로 돌아가게 했다. 그런 시대적 한계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으키고 말았다. 역사라는 것은 항상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을 반성하는 것보단 반대로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증법적으로 다시 똑같은 위기에 봉착한다. 당시는 신분계급이 세습인 봉건사회라고 하나,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여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교과서 무신정권 시대는 정중부만 나오는 짤막한 내용이나 드라마에선 매우 공감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그 역시 신화적으로 우리의 욕망이나 시대적 욕망이 일치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