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지음, 최형익 옮김 / 비르투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아니 영원히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똑같은 구조가 다른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연배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비극에서 소극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한가? 프랑스대혁명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인해 혁명이 무너지고, 나폴레옹이 군사권으로 통해 프랑스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지나친 전쟁수행으로 인해 유폐되었고, 다시 프랑스는 봉건적인 사회가 되었으나, 한편으로 자본주의 유입으로 통해 근대화라는 착취, 억압, 폭력이란 신화로 가득차게 되었다.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혁명을 1789년 7월만 생각하고 그 뒤에 목이 단두대 아래 분리된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16세의 부르봉왕가만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1830년에도 있었고, 1848년에도 있었고, 1871년에도 있었다. 게다가 불과 반세기 전인 1968년에도 5월 혁명이 존재했다. 프랑스는 말 그대로 혁명의 나라이고, 진실한 공화국이었다. 전에 국내 어느 국회의원이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말에 자본주의라고 하였는데, 진정한 민주주의의 목표는 공화주의이다.

 

공화국의 가치는 자유, 평등, 박애이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구속받지 않을 자유와 평등, 그리고 개인적인 요소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박애정신이 공화주의(共和主義) 국가의 이념이다. 한자로 풀어보아도 모두가 잘 지내는 것을 목표로 사는 의의를 두는 것이기에 공화국의 가치란 바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읽어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읽는 순간 조금 당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카를 마르크스라는 사회경제학자가 여기서는 정치역사학자로서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 노선만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차라리 민주공화주의에 더 가까운 그의 모습이 나온다. 그가 생각하는 부분은 루소와 비교하자면,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 내지 <사회계약론>에선 농경사회 중심, 즉 착취대상자가 대부분 농민으로 본다면, 마르크스는 노동자로 보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부르주아 계급이 막 탄생하여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입지를 세우려 했으나 봉건사회에서 왕족과 귀족이 아닌 이상 그 한계점이 존재했다.

 

그에 반해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은 부르봉파와 오를레앙파가 존재해도 이미 그들은 봉건주의적인 사고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가령 부르봉왕가는 금전적인 동산 부분을 많이 소유했다면, 오를레앙 쪽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 계열에 많은 재산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추후에 의회를 가진 프랑스 국가에서 계속 정치적, 경제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었으며, 그것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1830년 혁명에서 1848년 2월 혁명과 6월 봉기로 통해 새로운 선거를 실시했으나 여전히 부르봉파, 오를레앙파, 보나파르트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보나파르트가 당선되고, 곧 그는 나폴레옹 3세라는 명칭과 함께 과거 프랑스에서 전쟁영웅이 된 나폴레옹의 후광을 받으려고 했다. 그는 전쟁에서 치열한 모습의 나폴레옹 동상에서 황제의상을 입은 나폴레옹으로 바꾸려고 했다. 자신을 프랑스 영웅인 나폴레옹과 동일 시 하려는 속셈이었다. 물론 나폴레옹은 전쟁을 한 만큼 국고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많은 군인들을 죽도록 만들었다. 전쟁으로 영웅이 탄생하는 것은 곧 인간의 기본적인 원리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해 열기가 가득한 그 나라가 어느 순간 왕국으로 변했는가?

 

결국 나를 제외한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 자가 필요한 것이다. 아니라면 그런 기대감으로 가득하여 혹시 자신에게 뭔가 이익이 되는 것을 바라고 뽑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바로 루이 보나파르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다. 온갖 사기와 공갈 심지어 쿠데타까지 일으켜 의회를 점거한 그를 말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역사적 사실에서 그의 행동이 소극으로 되는 이유는 단순히 이 책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사기꾼 행위에 촉각을 두기보단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더 치중을 둔다.

 

이 책의 후반부의 논문에서 등장하는 제일 중요한 문장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자기 마음대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상황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직접 발견된, 주어진, 그리고 물려받은 상황 아래서 역사를 만든다.” 라는 부분이다. 생각해보자. 분명히 프랑스 시민의 혁명과 봉기가 실패하여 민주주의 정체 역시 후퇴한다. 그것으로 통해 루이 보나파르트는 대통령이 되었으나, 어떤 구조냐는 것이다. 그것은 루소가 농경사회의 프랑스에서 가장 가엽게 여긴 농민들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다. 농민들에 대한 지식이나 의식구조는 정말 수준이 낮았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삼촌인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감에 젖어 프랑스 전 지역의 농민은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으나 그들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자포기에 든 감자는 출신이나 생산지가 다 다르나, 그 맛은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보나파르트는 승리를 하고, 그가 자신의 영역을 우위를 두기 위해 처음에 부르주아 세력과 규합하고, 그 뒤에는 사기꾼, 야바위꾼, 깡패 등과 같은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자신의 전위대로 만들어버렸다. 사실 사회적 구조에서 가장 빈곤하고 처량하고 구제받을 대상이 가장 심한 범죄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런 소극적 일들은 당시 프랑스에도 20세기에서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정치깡패 내지 시위대 앞에 경찰이 아닌 비경찰세력이 폭력을 일으키는 현장에서 종종 룸펜프롤레타리아를 볼 수 있다. 보나파르트는 그들에게 술과 돈을 주고, 그 술과 돈은 자신에게 위지한 부르주아의 돈이었다. 처음에 보면 군중이 봉기하거나 혁명을 일으키면 부르봉왕가, 오를레앙가, 부르주아 등과 같은 지배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손해 보므로 거기에 대한 대항마로서 보나파르트에게 지지했으나, 점차 보나파르트는 이들의 돈을 넘봤고, 1852년 대통령 임기가 다가오자,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잔머리를 사용한 부르주아는 오히려 그 잔머리에 발이 걸렸고, 그 당시 제일 부자인 부르주아의 집에는 보나파르트의 군대가 발사한 대포를 맞이해야 했다. 결국 보나파르트는 독재로 통해 프랑스 전부를 가질 의도였다. 그런 보나파르트가 집권하고 게다가 쿠데타를 일으켜도 국가적으로 가능하고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화적인 욕망과 더불어 무지의 산물이다.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판단한다. 선험적 비판능력이 없는 농민들에게 보나파르트는 그저 나폴레옹 신화의 연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치적 한계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간들이 적에게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보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점들은 한국 정치사회에서 많이 본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참여에 대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에게 지지를 돌린다. 이탈리아에서 어느 코미디언 같은 사람이 정치인으로 될 수 있는 이유 역시 양비론적인 자세다. 헤겔의 변증법으로 보면 찬, 반, 합의 세계에서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란 명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르크스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극에 대한 비극은 소극이란 새로운 형태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비극이 2번 되풀이되면 소극이 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 알려주는 셈이다.

 

에리히 프롬이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적 좌표는 한계성이 있고, 그 좌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기에 인간이기에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곧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무지한 대다수의 의견이 곧 하나의 정의 내지 도덕적인 가치가 되는 순간, 민주주의가 가장 전체주의로 되기 싶다는 토크빌의 충고가 증명되는 셈이다. 또한 그런 독재자인 보나파르트에게 의지하다가 그 보나파르트에게 잡혀먹은 어리석은 부르주아의 일화에서 우리 역시 소극을 보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역사는 진실로 주인공이 바뀌면서 반복되는 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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