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에반게리온 2 - 나이프와 소년
GAINAX 지음, 사다모토 요시유키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TVA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보인 신지의 모습은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자신을 숨기고 나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만화책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신지의 모습은 마치 한참 사춘기 청소년이 어른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가진 아이였다. 오히려 TVA의 신지 더 어른다웠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함에 따라 왠지 모르게 카메라의 시점에서 본다면 “짜증이 밀려오는 녀석” 같았다.

 

그런 요소에서 TVA에선 왠지 회피하는 신지라면 만화책에서는 회피보단 그저 반항을 하는 것이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반항하는 아이들은 반항의 수단으로서 일탈과 탈선,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 그리고 침묵과 회피 등이 있다. TVA에서는 신지는 일탈하는 모습을 보여주나 그런다고 그 자신이 일탈에 대해 반항으로서 의미보단 차라리 회피로서 가까운 모습이다. 이른바 도망치는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말이다. 만화책에서 보이는 신지는 왜 이리 도망친다는 느낌보다 반항하는 이미지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원작인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책에서는 작가인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관념이 강하게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화책 단행본을 읽으면서 알게 된 점은 작가인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어린 자신을 남겨놓은 채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신지가 느끼고 있는 강한 억압감이 작가에게 크게 다르게 느끼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도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이 스토리를 전개하므로 두 가지 연계성을 가지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단지 작가가 주인공에게 가지는 입장 차이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알 수 있다.

 

이야기 주요 내용은 신지가 중학교에 전학하여 처음 전학생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그가 에바 초호기 조종사란 것이 학교 내에서 알려지면서다. 제3사도를 무찌르면서 초호기가 도시를 파괴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겼고, 그 부상자가 같은 반의 토우지의 여동생이었다. 여기서는 주호라고 되어 있으나 토우지는 교복 대신 츄리링을 읽고 다니며 사투리를 사용하고 다소 말을 거칠게 하는 소년이다. 하지만 여동생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좋은 오빠였다. 집에 가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기에 홀로 남은 여동생을 보살피는 도중 지난 전투에서 일어난 충격으로 머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신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당연히 고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지에게 주먹을 휘둘렸으나, 문제는 신지의 태도다. 보통 동급생에게 한 대 맞으면 저항하여 같이 주먹다짐을 할 것이나, 신지는 오히려 토우지보고 옥상 위에서 자기를 떨어뜨리고 싶으면 하라고 한다. 신지는 토우지에 대하여 진심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피상적인 관계로 대할 뿐이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동급생 관계에서 다툼이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친구관계는 대부분 자연스럽게 옆에 있다가 친해지는 경우가 있으나 가끔 서로 주먹다짐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우가 있다.

 

한 번 상대방과 마음을 진심으로 내놓을 수 있을 때 본심이 나오기 때문이다. 신지는 그런 것을 거부한 점에서 너무 아이 같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회피하는 방법은 어른들의 세계에 흔히 있는 일이다. 피곤하고 복잡한 일에 귀찮게 되지 않도록 그저 슬쩍 발을 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급생에게 그런 신지였으나 막상 위에 어른들에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반항하고 신경질적으로 대할 뿐이다. 신지가 미사토의 집에 기거하게 되면서 미사토의 방에 들어가게 되고, 그때 우연히 미사토가 기록한 신지의 기록물이 있었다. 신지는 그것을 미사토가 자신에 대해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저 도구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화가 났다.

 

그래서인지 이번 단행본에서는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반항적 태도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사실 TVA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신지는 미사토에게 그렇게 엄마처럼 해달라는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만화책에서 가능한 이유는 안노 히데아키와 달리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아버지 없이 어머니 아래서 힘들게 성장했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다모토 요시유키 나름 이카리 신지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TVA <신세이 에반게리온>에 대해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등장하는 인물 모두 자신을 투영했다고 한다.

 

이카리 사령관이나 신지나, 레이, 그리고 아스카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만화책은 신지와 이카리 사령관 쪽으로 더 치중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레이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어째든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가족과 친구 등의 인간관계 전반적이라면 사다모도 요시유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가족 중심적인 갈등이 강하게 그린 점은 분명하다. 토우지의 분노가 강렬한 이유 역시 여동생 사쿠라(<신극장판 에반게리온 Q>에 등장하는 의무담당관)의 부상이었다.

 

신지에게 여동생의 부상으로 자신을 때린 토우지, 자신을 그저 도구로 보고 있다고 생각되던 미사토에 대해 반항적 요소가 제4사도 격퇴에서 나온다. TVA에서 켄스케와 토우지의 탑승은 미사토의 명령에 의해 실행되었으나, 만화책에서는 신지 스스로 의지에 의해서였다. 게다가 사도에 대해 신지가 달려드는 이유는 신지가 사도격퇴라는 어른사회의 강압적인 명분에서 생겨난 강박관념이라면, 만화책에서는 미사토에 대한 반항의식이었다. 신지는 사실 미사토가 자신의 집에 살자고 했을 때,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 기록물을 보고 나서 상심했다는 점이다. 그런 신지가 네르프에서 나가려고 했을 때, 미사토는 오히려 신지에 대해 책망하기보단 신지가 그런 마음에 에바에 타는 것은 바르지 못한 것이며,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것이 신지에게 좋겠다고 한다. 신지는 그때 비로소 미사토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깨달았으나 상황이 너무 늦었으며, 미사토가 왜 신지가 반항적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찾아온 토우지와 켄스케에 의해 그 의미를 알았고, 신지를 찾아간다.

 

신지에게 찾아간 미사토가 신지를 다시 위로하고 안정하게 해준 것은 펜펜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펜펜을 데리고 온 것과 신지를 데리고 온 것은 “줄곧 혼자서 생활했었어.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지쳐서 돌아왔을 때, 날 반겨주는 누군가가...가족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와 함께 신지에게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신지는 원래 자신이 오던 곳에 가기 싫다고 한다. 신지가 원래 있던 외갓집, 그곳은 신지에게 좋은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신지가 아무리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일만 한다고 해서 저 정도로 비뚤어진 이유는 그쪽 시골 가족들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신지의 성격이 저렇게 소극적이면서도 반항적인 아이로 된 이유는 제대로 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신지가 다시 시골로 돌아가더라도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네르프에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울 수도 있다. 신지가 네르프에서 초호기를 타는 것이 괴로워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미사토의 진정한 고백이었다. 가족처럼 같이 살아보자는 의미, 그리고 혼자인 것은 신지만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 아무도 없이 지쳐 있는 미사토 역시 그렇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고, 가족이 필요한 이유도 역시 그렇다. 토우지 역시 가족이 소중하기에 신지에게 그런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면 가족이란 것은 혈연적인 관계보다 더 소중한 가족관계가 바로 유대감이란 것이다. 유대감 요소에서 신지와 미사토의 관계를 보면 서로에 대해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혈연관계가 더욱 진한 유대의식을 가지겠지만, 아들인 신지를 멀리 친척집에 맡기고 네르프에만 빠져있는 이카리 사령관을 보면 반드시 혈연관계라고 해서 가족이 유대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의식은 혈연이든 아니든 서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목적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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