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의 120일 동서문화사 월드북 201
사드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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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더러움과 욕망에서 얼마나 그 잔인함과 냉혹함 그리고 그 처절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인가? 마르키 드 사드가 저술한 <소돔의 120>은 그야 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가 살던 시절은 프랑스혁명 전후가 있던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이었다. 그의 저서가 얼마나 강력한 임팩트를 주었을까? 흔히 우리가 사디스트 내지 마조히스트라는 SM적인 변태성욕에 대한 어원이 바로 사드에서 나왔다.

 

사드에서 사디즘이란 그가 진짜 사디즘적인 가학적 성욕을 즐긴 것보다는 <소돔의 120>이란 소설에서 나온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가학적인 이야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예전에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인 기 드보르의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사드를 위한 절규함>이란 작품을 알면서 그 영화에서 사드가 과연 누구이기에 절규한다는 말인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사드는 사디즘의 어원이란 점과 그가 프랑스 후작이란 것과 상당히 문학적 지식이 높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소돔의 120>에서도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당대 최고의 명사는 장 자크 루소 외에 볼테르와 디드로가 있었다. 사드의 가까운 친척 중에 볼테르와 가까운 사이가 있다는 점으로 사드에겐 늘 지식인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었다. 먼저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한 절규함>이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으나, 그 영화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본다면 바로 욕과 탄식이 나올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화면인 검은색에 목소리가 총 5번이 나오고,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전위적인 예술에서 전위를 기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무참하게 파괴함에 따라 이것이야 말로 전위적인 예술을 넘어 예술을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를 위한 절규가 기 드보르에게 무엇인가와 더불어 그 사드가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까지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 충격을 주는가이다.

 

그것은 사드가 저술한 <소돔의 120>이 주는 충격에서 아방가르드가 기존의 담론을 무시하고 큰 충격을 주는 것이므로 사드를 위한 절규란 사드라는 인물이 당대 내지 후세 사람들에게 준 충격을 그대로 자신도 주겠다는 하나의 오마주일 수 있겠다. 하지만 상황주의자인 기 드보르에게 사드의 존재로서 스펙타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사드로서 스펙타클을 전도해 버리는 것이다. 사드라는 인물이 저술한 <소돔의 120>이란 작품은 감옥에서 저술하고 나온 지 230년이 지나도 충분하게 쇼크를 줄 수 있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그 고통으로 통한 욕망충족과 더 큰 폭력적인 행위는 그야말로 소설이라도 과연 이렇게까지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든다. 비록 이것이 소설일지언정 그 소설에서 담긴 의미에서 충분히 당대 사회의 개연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욕주의적인 가톨릭교회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영향을 주고 있을 때에 과연 그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는가에 대한 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을 읽다보면 많은 프랑스 파리 중심의 귀족들이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프랑스는 로코코, 탐미적인 요소를 추구했기에 귀족과 그 귀족의 아내는 애인을 두고 있었다는 점과 애인이 없으면 사교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회였다. 루소가 처음으로 성적행위를 한 것은 그에게 어머니와 같은 봐랑 부인이었고, 그가 봐랑 부인과 성적행위를 한 후에 근친상간을 한 것보다 더욱 더러운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 후에 프랑스 어느 귀족부인과 여행을 가다가 그 귀족부인과 은밀한 정사를 루소는 나눈다. 문제는 루소의 당시 행적이 불량해보여도 루소의 경우 매우 미미한 수준이란 점이다.

 

사드가 즐긴 성적인 파란은 왜 문제가 되었을까? 스스럼없이 은밀히 즐기지 않고, 마구 드러낸 점이다. 자신의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것이 마치 당연한 사회라도, 자신의 인척 관계에 있는 처제와 바람난 것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고, 그 외에 집단적 성행위도 즐긴 것 역시 엄청난 파문이었다. 하지만 <소돔의 120>에선 사드의 행위는 그마나 애교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선 근친상간만이 아니라 살인까지 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뒤클로라는 늙은 창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부터 다른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11월에서 2월까지 흐르면 상당히 잔인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폭행 내지 다소 변태적인 성행위가 보인 듯했다. 억지로 끌려오거나 혹은 생활고에 의해서나 또는 속아서 오는 경우다. 불쌍하게 끌려온 여성들은 대부분은 어린 소녀라 10대 중반이 제일 많았고, 심지어는 10살 채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도 있었다. 이들에게 가한 성폭행과 성추행은 결국 이들로 하여금 타락하게 되어 점점 추악하고 난폭한 인간으로 되게 만들었다. 뒤클로는 자신을 키워준 포주를 배신하고, 그녀의 숨겨진 아들에게 전해줄 유산을 챙기고, 그 가족을 파멸시킨다.

 

등장하는 대부분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변에 모든 것을 파괴한다. 자연계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문제는 자연적 욕망은 그 욕망을 발휘하는 자만이 아니라 발휘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연적 존재다. 어느 하나가 원하면 다른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하는 부당한 처사가 내리진다. 처음에는 어린 소녀에게 자위하여 정액을 쏟는 성직자와 벼슬아치들을 보면 사드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사회에 지도계층의 부정과 타락이 넘치고 넘친 것을 알 수 있다. 수도원장이나 혹은 유명한 백작이 와서 변태적 성행위를 즐기는 것을 지나, 분뇨를 먹거나 먹이거나, 심지어 분뇨를 몸에 바르고 쾌락을 느낀다.

 

쾌락의 조건에서 중요한 부분은 바로 고통의 부분이다. 옛날 일본에서 실화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감각의 제국>에서 남자는 성욕을 느끼는 것과 여자가 느끼는 조건으로 여자가 남자 위에서 성행위를 할 때 남자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남자는 결국 교사당해 죽었고,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성기를 칼로 벤 일이 있었다. 성욕이 단순히 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폭력을 주고받고 함으로서 쾌락을 느끼는 점이다. 법원장은 죄 없는 사람에게 사형집행을 내린 후에 그 사형집행이 일어나는 순간에 사정한다는 것에서 그의 성적욕망은 성적인 도착증을 지나 하나의 파괴본능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생명을 영위하거나 보존하는 것보다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쾌락을 삼는다. 심지어 자신의 성기를 여성의 성기보단 항문으로 하거나 또는 남성의 항문 내지, 다른 남성이 자신의 항문에 삽입하는 것에 욕망에 대한 쾌락을 느낀다. 이들에 대해서 보면 에로스적인 삶의 욕망보단 오직 타나토스적인 죽음의 욕망만 존재한다. 자신의 인간성을 파괴하고, 무차별적인 성욕을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만족함은 오로지 자연계는 생성보다는 파괴로서 이어지는 셈이다.

 

자신들의 노리개로 만든 여자가 임신하자 그 여자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살인한 점은 사드의 <소돔의 120>은 인간의 생명을 만드는 것에 대한 삶의 욕망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욕망이었다. 그런다고 하여 사드 그 자체는 그런 행위를 즐기거나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상상조차 불허하는 가학적인 소설은 감옥에 갇힌 37일 동안 만든 점이다. 그러나 그 막대한 분량과 도저히 일반인들이 만들 수 없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내면에 살아있는 폭력성에 대해 거울로서 비추게 한다.

 

뒤클로의 이야기에서 성적으로나 또는 가학적인 이야기에서 나 역시 흥분에 빠진 점을 보고, 순간 나 역시 이들이 벌이는 잔혹한 도락행위에 어느 정도 욕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사드의 소설은 인간이 거부하는 것을 적고 있다. 하지만 그 거부하는 사람도 결국 마음 속 깊은 곳에 잔인하고 음란한 욕망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해도 가학적인 폭력성은 정말 끔찍했다. 마지막에 음부에 쥐를 넣거나 혹은 입안에 쥐를 넣어 바늘로 꿰맨 후에 이야기는 참으로 끔찍하다. 쥐가 나가지 못하자 사람의 장을 파먹어 결국 사람이 죽는 것이다.

 

또는 미치광이 살인자가 사람을 무척이나 잔인하게 죽이자 결국 사정함은 우리 인간이 숨겨진 본서이란 매우 잔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거부하나, 인간의 광기가 하나이 정의로 바뀌는 순간 벌여지는 폭력은 <소돔의 120>을 그대로 실천할 것이다. 단순히 성적인 욕망은 성적쾌락만이 아니고, 오히려 폭력이란 인간의 본성을 성적인 부분으로 연결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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