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소년 공주님 1 - Novel Engine
모베 지음, 모브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이야기가 무척 막장으로 가는듯한 작품이나 나름 이 라이트노벨도 1권으로 끝내기 정말 아까운 작품이었다. <절대소년 공주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엉성한 이야기보단 너무 엉성한 인물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나름 읽을 만한 이유는 이 라이트노벨을 정말 끝까지 읽고 후기까지 참고해야 하는 것이다. 라이트노벨이란 장르가 한국에 거의 10년 정도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일본에 비하면 발간 부수나 종류가 매우 열악한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라이트노벨이 계속 개인적 번뇌나 망상으로 가득하여 읽어도 거기서 거기인 것도 역시 아쉽다.

 

물론 개인의 자유로운 창작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런 이야기만 가득하면 결국 돌고 도는 이야기 속에 라이트노벨이란 경소설이 그저 하나의 유치한 이야기로 전략하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 면에서 스토리텔링이 중시되는 점을 고려하면 라이트노벨이란 콘텐츠의 무한한 보고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라이트노벨에서 만화,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이 파생되어 상품화된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보면 그 인기도 상당하다. 한국에서 라이트노벨에 대한 작품성을 논하기에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그 최대 이유는 작가가 얼마나 자신 스스로 수련 하였는가 이다. 라이트노벨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로 택하기에는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 스토리라도 나름 규칙과 정해진 패턴이 있다. 물론 지나친 규칙과 패턴에 얽매이면 작품은 그저 붕어빵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레디 메이드에 불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절대소년 공주님>을 적기 앞서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에 대한 이유가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보다가 나츠메 소세키라는 작가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내가 읽을 시점이 라이트노벨이 아니라 만화책으로 읽었기에 원작과 대조함에 있어서 얼마나 잘 분석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만화책에 주인공 스즈미야 하루히가 일본 근대문학의 최고선구자인 나츠메 소세키와 만난 것에 대한 에피소드다. 현대 일본 문화평론가 및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나츠메 소세키의 그 역량은 이루어 말할 수 없으며, 그가 내놓은 소설이나 각종 문학이론도서 역시 일본문학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사실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마음>이란 소설을 읽어보면서 그의 치밀하고도 높은 글에 놀라움을 느낄 뿐이다. 바로 이런 문학에 대한 요소들은 라이트노벨에 직접적으로 차용했다는 점은 나름 작품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던한 작품이다. 시공간의 비일치와 더불어 신이라고 여기는 스즈미야 하루히가 신적인 소양이란 없다. 절대적인 요소를 부정한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그런 점을 생각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나, 그 상상력에는 그만큼 문학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있다는 사실이다.

 

<절대소년 공주님>을 읽으면서 먼저 후기부터 살펴보았다. 거기에 그가 읽은 도서로 유명 작가가 있었다. 나츠메 소세키,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일본 근현대 작가만 아니라 그 외 다수의 유명한 작가들의 서적들을 읽었던 것이다. 책의 본문을 보면 왕국의 공주를 납치한 마왕국의 한 신하가 마왕국의 경제와 내부 살림을 걱정하는 모습이 나온다. 물론 본래의 작가이름은 다르게 표시했으나, 암만 봐도 경제학을 생각하면 유명한 이름과 서적이 나온다.

 

시장경제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덤 스미스의 <국부론>, 아덤 스미스가 발견하지 못한 공황과 자본주의 구조를 제일 잘 분석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그리고 미국 대공황시기에 루즈벨트가 차용한 존 케인즈의 <일반론>이란 도서가 나왔다. 아무리 웃기려고 한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나 적어도 이런 도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작가 본인은 어느 정도 문학적 혹은 사상적 배경이 있었다는 증거다. 따라서 작품을 보면 그 나름대로 교훈이 보인다. 라이트노벨에서 무슨 교훈을 찾을 수 있는가에서 분명 찾을 수 있다.

 

김용석 교수의 <서사철학>에서 그 어떤 이야기라도 분명 철학적 담론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아주 못난 일본 극우적 만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저런 극우적 성향이 강한 만화에 교훈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판단하여 문제가 있다고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적인 부분이 그 이야기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철학적인 부분을 찾아낸다. 생각해보면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대화록이 그런 게 아닌가? 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기를 말이다.

 

<절대소년 공주님>의 답은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서 혹은 정말 엉망인 생활에서 마지막에 나온다. 억지로 납치당해 공주 행세를 해야 하는 레빈 루안에서 그가 최후의 행동이 그런 것이다. 남장으로 통해 용사 하는 실제 공주는 사실 절대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주 대역인 레빈은 아주 힘이 약하고 소심한 남자아이다. 문제는 그 진짜 공주와 가짜 공주를 보위하는 메이드의 이야기다. 그 메이드가 어린 시절 인신매매를 당해 가혹한 생활을 했을 때 어떤 남자아이에 대한 기억이다.

 

그 남자아이는 다정했기도 했으나, 나중에 구출단이 와서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이 난행할 때 정의의 응징을 당해야하던 인신매매 조직까지 보호하려 했다. 칼을 가진 구출단이 잔인하게 인신매매 간부를 다리를 조금씩 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반대하자, 용사는 그 어린 남자를 구타한 것이 나온다. 메이드로서 보위하는 기사 넬의 어린 기억에서 레빈 루안의 행동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 라이트노벨이 가이낙스 애니메이션인 <마호로매틱>과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마호로매틱>에서 마호로의 의상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1기에서 마호로가 세인트의 전사 류가와 싸울 때 스구루가 나타나 그 연약한 몸으로 싸움을 말리는 부분에서 말이다. 단지 스구루는 연약한 신체인데도 세인트의 전사 류가에게 정면으로 막았다면, <절대소년 공주님>의 레빈 루안은 다른 식이다. 그는 여자아이처럼 작은 몸집의 남자아이고 게다가 매우 귀엽게 생겼다. 자신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대해선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그는 용사로 나타난 공주 앞에서 만약 마왕성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자신의 팬티를 내리고 그 팬티를 내린 모습을 공개하겠다고 한다.

 

용사군이나 마왕군이나 모두 강력한 전사나 마법사다. 오로지 자신만 무기 하나 잡지도 못하고 마법조차 모른다. 하지만 레빈 루안은 그런 식으로 용자군을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넬이 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레빈 루안에 의해 회복되는 것이다. 사실 마왕국에 납치당한 것은 사실이나 막상 마왕국의 일상은 두려움보다 재미라는 것이 있었다. 본래 왕국의 시녀였으나 알고 보니 마왕국의 신하였던 자도 아주 친절한 사람이고, 마왕은 세계정복이니 왕국타도가 아니라 그저 은둔형 폐인이고, 그 마왕의 여동생은 이름을 줄여 빈유라고 하고, 그 빈유를 지닌 몸인 만큼 키도 정신연령도 낮다.

 

남에게 도저히 위험을 끼치지 않을 것만 같은 마왕국이다. 당초 공주납치도 부당한 채무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점에서 어떻게 본다면 우리는 그 본질을 모르고, 그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마왕과 마왕의 주변 인물을 모두 제거하고, 얼마든지 왕국으로 갈 수 있었던 레빈 루안이나 그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마왕국에 포로로 잡힌 공주로서 남는다. 서사적으로 완료설정은 공주가 구출되어 다시 복귀하여 레빈 루안은 일반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이 작품의 완결은 그저 레빈 루안과 넬이 마왕국에 남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보는 집단보단 그 집단이 적대시 하는 공간에 막상 가보니 사실과 다른 공간임을 알고 자신이 편한 위치에 있기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왕국에 가도 공주 행세는 계속 해야만 한다. 그래도 마왕국의 포로보단 왕국의 공주대우가 훨씬 좋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진정한 용기와 정의는 무엇인가? 강한 힘을 가진 용사군단일까? 아니라면 용사단이 마왕국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을 막으려고 약골인 자신을 날리는 레빈 루안인가? 물론 본질을 모른다면 결국 용사들의 손을 들겠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무엇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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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ㅏ 2015-04-0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해조차 못한 주제에 그 경향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떠드는 모순이 같잖이 그지없다

만화애니비평 2015-04-01 09:09   좋아요 0 | URL
그런 네가 네 아이디 걸고 네가 적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