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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 -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
피터 디어 지음, 정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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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혁명이란 것은 곧 기존의 어느 특정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혁명이란 것은 반드시 모든 단어에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 대해 뒤집는 것을 말한다. 가령 혁명을 논하자면 우리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논할 수 있다. 기존의 앙시엥 레짐 즉, 구체제인 봉건사회에서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시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반드시 혁명의 조건은 헤게모니에 대한 전복성이다. 그 전복성은 지배하는 부류 내지 사회적 권력을 지닌 자에 의해서가 아니다. 흔히 권력을 소유한 자가 기존 세력을 뒤집는 것은 쿠데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혁명이란 단어에서 과학혁명이란 단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쉽게 요략 짓자면, 이 책은 유럽의 지식과 야망이던 1500~1700년 시대 즉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기라는 점이다. 르네상스는 인문주의와 더불어 과학과 이성이 발전된다. 그 근거는 바로 인간이 가진 이성의 발달이다. 그렇다면 중세시대는 어떠한가? 중세유럽의 시대는 이른바 가톨릭교황 시대다. 물론 그런 요소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종교가 가진 권위에서 정치적 개입에서 교황이 국왕을 임명하는 행사 내지 각 국가별로 세력을 조정할 수 있었다.
종교적인 영역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중세다. 그러므로 헤게모니적 부분을 고려한다면 과학혁명은 바로 종교적인 관념으로 가득한 중세의 인식을 전환될 수 있는 큰 업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서양 가톨릭은 초반에 교부철학에 의해 스콜라철학을 영향 받는다. 그 근거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겸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다. 이 책을 읽으면 다소 이해하고 갈 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形而上學), 즉 meta-physics라는 것이다. physics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자연학이다.
지금으로 보면 물리학에 해당되는 말이 physics나, 당시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을 집필 시기에는 physics는 자연과학으로 물리만 아니라 천제, 지구과학, 화학 심지어 생물학까지 포함되어 있다. 실제 형이상학을 보면 인간의 동물적 기능에 대해 적어놓고 있다. 서구사상을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논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영향이 매우 크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가톨릭과 겹쳐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부철학으로 발전하여 중세유럽을 지배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종교적 가치관의 중심은 절대적 존재인 신의 영역이다. 신의 중심으로 모든 것이 형성되어있다는 관념론이 결국 과학이란 science로 통해 그 영역이 변화해 가는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까지를 지나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칸트의 형이상학적 영역에서는 이른바 <순수이성비판>이란 선험적 비판이 중시되었다. 즉 신이란 존재성의 유무보단 그 유무를 벗어난 하나의 비경험적 인식으로 통해 이성의 범주를 정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이성의 범주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것이 과학이란 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과학은 경험에 의한 도출에 가깝다. 왜냐하면 과학은 가설을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실험으로 통해 증명해야 한다. 그 실험에서 하나의 결과는 인간의 관념적 영역보단 형이하학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경험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객관적 사실을 경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선험적 판단을 하는 이성에 큰 작용을 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권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요한 하우징어의 <중세의 가을>을 보면, 그 당시 종교적인 영향이 그 시대에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12세기 전후 십자군원정은 가톨릭의 권의가 유럽에 모두 미칠 정도로 강력했다.
이런 상태에서 지구라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행성이고, 그 행성은 신이 존재하기에 다른 생물체가 다른 별에 산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구는 신이 있기에 모든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천동설에 입각했다. 생각해보면 중세시대 인간들은 바다를 보면서 바다 멀리 어딘가 폭포와 같은 낭떠러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구는 둥글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바다를 보면 수평선 너머로 직선이 아니라 타원이란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그런 지구의 특성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에 대한 반박은 당시 교황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신이 지구를 중심으로 여기던 당시 종교관에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갈릴레오 역시 교황권력에 굴복하여 지동설을 폐기하고 천동설을 주지했으나 결국 지동설로 다시 돌아갔다. 과학의 중요성은 바로 기존 종교적 관념을 가진 사회에 대한 반발이다. 그것은 신을 중심으로 하던 유럽사회에서 인간중심으로 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학이란 것은 결국 미신이나 관념에 존재하여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추후 뉴턴의 경우 기존 유럽에서 고수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탈피했는데, 과학의 영역에서 과학에 대해 철학적 보편성을 따지고, 그 현상에 대해 형이상학적 영역으로 다룬다면 과학혁명의 취지는 그 보편성을 떠나 유용성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Art라는 단어는 지금에선 예술이라고 할 것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시절에는 기술이었다. 기예의 하나의 창조물이라고 한다면, 과학의 발전에서 새로운 물건들은 다른 물건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도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즉 과학혁명이 도래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공학 전공자 입장에서 자연을 하나의 관찰대상에서 이용대상으로 바꾸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종교적 관념으로 영향 받던 시절에 식민지 개척시절로 넘어가면 선원들이 항해술 및 천문학, 해양학의 발달로 통해 지구과학의 지식이 축척되어 간다. 그러면서 지구는 둥글다는 것과 지구가 자전하고 태양의 중심으로 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무렵, 교황권력은 지동설적 발언을 하는 사람에 대해 이단심문으로 통해 화형에 처했다. 신의 절대적 영역을 건들지 말아야 한다는 종교적 맹목적성이었다. 이런 종교가 국가정치와 관여하는 이상 이성의 판단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1600년대 합리주의 철학을 선구자인 르네 데카르트 역시 그런 한계성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인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나, 자연적인 심도에서 설명하기가 난해한 부분에서 대해 신학적인 요소를 가진다. 방법서설을 실제로 읽으면 수학에 대한 정의와 논리, 게다가 과학적 기술에서도 생물학과 물리학이 등장한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데도 결국 그는 종교적 권위에 따라 과학과 수학을 발전시킨 셈이다. 당시 철학사상가들의 특징은 보면 대부분 과학자이면서도 수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형이상학자이기도 했으나, 정치학과 물리학, 수학자이기도 했다. 심지어 생리학인 의학적 영역도 다루었기에 대부분의 형이상학자들은 철학과 수학, 의학과 과학까지 동시에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과학적 발전은 점차 형이상학에서 과학과 의학을 별도의 분야로 분리하도록 만들었으며, 지금의 21세기에 철학자들이 의사와 과학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알고 있는 범주와 조건이 계속 달라지기에 인식과 관념의 변화가 생긴다. 그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계속 유지하는가? 아니면 변화를 주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기존에 믿고 있던 것이 하나의 거짓이란 점은 그동안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사회적 관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룡이 6,000년 전에 있었고, 아담과 이브가 동산에서 사과를 따먹어 공룡이 망했다고 하는 엉터리주장이 나오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 당시라면 더욱 심했을 것이다.
지식이 결국 과학의 발달에 따라 과학은 결국 나라의 부나 혹은 권력의 과시욕이 되었다. 가령 왕이나 귀족의 지원을 받거나 작위를 받는 것에서 궁정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누리는 특권과 동시에 그들의 고용주들은 과학자를 데리고 있다는 권위적 상징을 발휘할 수 있었다. 프랑스 태양왕 루이14세의 경우 그는 과학에 관심 따위는 없었으나, 그래도 과학자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과학자를 보유했다는 상징적인 부분은 지식인들을 소유하는 것 역시 권위적으로 가능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과학자나 그 외의 많은 학자들이 자신을 후원한 주인을 위해 서문에 그들을 위한 헌사 글을 남긴다. 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글쓴이들은 연구도 글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과학적 발전에서 인간은 고전주의와 작별을 하고, 구체적인 분야에 들어가게 된다. 대신 과학으로 통해 존 로크나 토마스 홉스와 같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과학이란 분야가 정치학과 사회학에 큰 영향을 준다. 과학의 발전은 곧 인간에게 지금 그것이 일어나는 것이 과연 그 말 그대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 과연 옳은가? 라는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는 점이다. 과학적 사고는 결국 합리적 이성의 추구다.
과학혁명이 없었다면 아직 우리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여길 것이다. 지금 그 소리를 하면 헛소리한다고 하나, 불과 600년 전에는 그것이 당연했다. 과학의 발달에서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성과는 매우 거대하나, 그 기간은 매우 짧다. 최근 복제동물이 태어나고,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한 아이도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르네상스 과학은 신의 중심에서 인간의 중심으로 가게 했으나, 지금은 인간조차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잘 이용하면 인류의 발전이 되나, 과학은 이성을 발달시킨 만큼 윤리적이지 못하다. 독일 나치가 유태인들을 상대로 실험할 때, 그 실험한 의사에 대해 양심적인 독일의사도 그들의 잔혹한 행위를 부정하지 않았다. 과학은 증명하기 위해서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혁명인지 반동인지 그것은 오로지 과학자의 양심에 달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