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쿨 DxD 7 - Novel Engine
이시부미 이치에이 지음, 곽형준 옮김, 미야마 제로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하이스쿨 DXD 작가는 은근히 야한 것을 강조하여 독자의 관심만 끌다가 중요한 순간에 철학적 사고를 유도한다. 아주 도발적인 문구가 등장한다. “네게는 평화라도,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자도 있다는 말이다.”, 이 대사는 오딘이란 북유럽 신이 오면서 오딘에게 반기를 들었던 로키라는 신이 한 말이다. 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일단 신화적으로 신이란 존재가 먼저인지 아니면 인간이 먼저에서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존재이면서 실제로 현실에 살아있는 존재다. 왜냐하면 신화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그 순간에 영원히 이어가는 존재이다. 미신이라고 믿을지 모르나, 우리는 인간의 가진 이성이란 사고로 통해 과학적 사고로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나 딜레마에 포착한다.

 

이 순간, 인간은 자신의 유기적인 존재를 떠나 초월적인 그 무엇에 대해 의존하고 싶은 욕망을 심게 된다. 신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인간이 만들고 고통스럽게 당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이 죽으면 신이 된다. 안 그런가? 다 그렇지는 않으나 우리나라나 동양권에서는 제사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신이란 존재는 언제나 우리와 곁에 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 신화학적인 요소다. 직접 그 관념적 존재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인간의 눈은 형이하학적인 시각으로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념적 존재를 눈으로 보는 것은 형이상학적 존재의 관념을 그림이나 혹은 다른 것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이스쿨 DXD는 그런 요소들을 부각시켰다. 처음에 악마와 타천사의 투쟁, 악마와 악마의 투쟁에서 이제는 악마, 타천사, 천사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분법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오만 신화와 전설의 존재가 나온다. 마지막에는 삼국지의 영웅 중에 하나인 조조의 이름이 나온다. 어차피 인간보다 신이 우월한 존재라도 인류의 역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적어간다. 신이란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할까? 아니면 신 그자체일까? 위대한 경전조차도 신의 말이라고 하나, 그 말을 적고 전승한 사람은 인간이다. 신이란 존재 그 자체가 글을 만들고 전승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이 작품의 주요 사건은 오딘의 등장이고, 그 오딘이 왜 동양의 신을 만나려 하는가이다. 그에겐 북유럽 신이란 명칭과 함께 절대적 영역을 가진 자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인 힘보단 서로 간의 유대감과 공감을 형성하려 했다. 이분법을 넘어 즉 동양과 서양의 관념을 넘는 것이다. 신이란 존재 역시 인간이 만든 문명 중에서 종교에서 다룬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사상과 관념을 지배하는 강력한 도구다.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이기에 그 만큼 숭고하고도 아름답고 때로는 잔혹하며 냉정하다.

 

기본적으로 하이스쿨 DXD는 악마, 천사, 타천사로 시작하기에 성경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단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온 “신은 죽었다.”에서 정말 이 라이트노벨에서 신이란 없고, 신을 죽일 수 있는 롱기누스의 창과 그와 맞먹은 게 나온다. 라이트노벨이 작가 개인이 만든 이야기라도, 결국 인간이 가진 전설, 신화라는 스토리텔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주인공 효도 잇세이의 적룡제마저 드레곤이란 존재이기에 서구의 신화 내지 전설로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적으로 인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의 발현이다. 말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듣고자하는 것을 말이다. 하이스쿨 DXD의 말하고픈 욕망은 효도 잇세이다. 번뇌대장에 음흉하나 한편으로 자신에게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과 삶의 목표이다. 단지 효도 잇세이의 경우에 특이한 것은 적룡제가 젖룡제로 불리는 것이다. 그의 성적인 욕망은 여자의 가슴에 향해 있다. 그 가슴에 대한 번뇌는 그동안 적룡제와 백룡제의 부스트기어에 의존한 자와 다른 길을 걷는다.

 

이때까지 적룡제와 함께 하던 인간들은 자신이 가진 이성을 벗어나 폭력과 파괴의 본능에 빠져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인간에게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욕망이 있다. 삶과 죽음,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었기에 삶이란 것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적룡제의 힘에 빠진 자들은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어둠에 갇혔다. 죽음은 안식의 종착지나, 그 종착지에 안식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어둠의 굴레에 갇힌 적룡제의 숙주만 있었다. 그런 점에서 효도는 그들과 달리 다른 길을 걸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 삶에 대한 인식이 있는 그 모든 존재에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상, 그 대상이 자신보다 소중하기에 자신의 안위마저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이 부서지거나 다쳐도 문제없다. 오히려 같이 앞을 보고 싶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는 것이 더 괴로운 법이다. 효도는 그런 친구였다. 여자 가슴에 눈에 팔려 특히 리아스나 아케노 앞에선 그냥 철없는 남자아이나 이 2사람과 옆에 키바나 아시아가 위험에 빠지면 그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날린다. 그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날리는 것만큼 윤리적인 존재는 없다. 그래서 이 라이트노벨은 늘 말하고 싶은 것이 이분법적 사고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악마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나, 여기서는 악마가 과연 나쁜가? 라는 의문을 던진다. 천사들의 수장 미카엘조차 악마를 멸하기 보단 마왕 루시퍼와 손을 잡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 그래서 평화가 평화를 누리는 자에게 행복이라도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아마 권태감인가?

 

그런 권태감은 백룡제가 가장 많이 느낀다. 그는 자신의 최고의 라이벌인 적룡제를 두고, 로키를 물리치기 위해 적룡제와 손을 잡는다. 가장 적대한 자이기에 가장 연합하기가 좋다. 서로 간의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공동전선을 펼치는 자는 가장 위험하고도 가장 사이가 좋지 않다. 서로간의 타도가 서로이기에 그 방해가 가장 배제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작품을 보면 효도의 생명을 길지 않음이 나온다. 악마의 생명은 불멸이라 하나, 자신의 생명을 깎아 버린 금지된 기술에 그는 100년 정도 산다고 한다.

 

100년이면 지금 우리 인간에게 상당히 수명이나, 악마에겐 인간의 나이로 0.5%도 안 되니 사실 효도는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는 계속 굴러가고, 세이크리드 기어를 지닌 자가 늘어나고, 그 자 중에서 밸런스 브레이커의 등장은 삼분법 적인 세계를 지닌 효도의 마을을 위협한다. 왜 평화를 원하지 않은 자가 나올까? 어떻게 보면 악마, 천사, 타천사의 연합은 세력의 안정화고, 그것은 서로간의 멸족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만약 어느 한쪽이 기울게 되는 것은 그만큼 살아남은 자도 세력이 소진하는 것과 같다.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다 어부지리를 원하는 자의 입장에서 위험하다.

 

더 이상 그는 세계의 진입을 하지 못한다. 더욱 연합과 동맹은 견고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테러리스트가 등장한다. 더욱 강력해지기 전에 모두 날려버릴 심산으로 말이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등장세력이 나오고, 기존의 라이벌이 갑자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코네코를 납치하고 리아스를 제거하려한 코네코의 언니조차도 효도를 자신의 종족을 보존을 위한 남성으로 여긴다. 효도의 입장에선 계속 하렘의 영역이 넓어진다. 자기의 동료에서 상대편까지 말이다. 이번에 오딘의 부하인 발키리 로스바이세까지 들어온다. 원래 룩은 코네코였으나 이제 발키리 로스바이세까지 영입된다.

 

폰은 8개를 효도가 모두 투입된 상태이기에 레이팅 게임이나 적과의 싸움, 거기에 나오는 다소 하렘적인 구조는 조금 이래저래 이야기를 흔들어 댈 것이다. 그러나 역시 메인은 찌찌드레곤을 각성하게 하는 리아스다. 효도는 킹이 되고자 하나 킹이 되는 것에 생각에서 리아스의 역할을 생각한다. 동료와 권속을 가족처럼 아끼는 그레모리 가문이나 때로는 싸움에서 동료를 버릴 각오도 해야 하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에겐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하기 마련이다.

 

효도가 바라보는 자신의 길이란 점점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선택의 책임까지 커진다. 아이들에게 재미와 희망을 주는 젖룡제도 좋으나, 그 이름만큼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7권에서 아케노와 아케노의 아버지 타천사 바리키엘의 관계가 중요했다.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욕망덩어리 자신이라도 그 욕망이 상대방을 진심성에 나온 것인 만큼 자기의 욕심도 중요하나 그것보단 그 욕심을 가지고 싶은 상대에 대한 깊은 우정 역시 만만치 않게 중요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