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한길그레이트북스 92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한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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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곡학아세(曲學阿世), 그것은 아주 무섭고도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단어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심각한 국가적 정치적 문제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 받는 것을 두고 가렴주구(苛斂誅求)라고 칭한다. 아니면 <마의 백광현> 소설을 보면 어느 여인이 무덤3개 앞에서 울고 있는 장면을 둔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여인이 우는 까닭을 묻자, 시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어 가족을 잃은 셈이다. 그런데도 무덤가에서 울며 사람들이 많이 사는 부락이 아닌 산 속에 사는 이유는 바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부패한 관리라고 한다.

 

 

부패한 관리 중에 호방이나 이방과 같은 중인 계급층이 그들과 밀접하겠으나, 그들을 진실로 힘들게 하는 것은 높은 자리에 앉은 ‘나리’ 덕분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목민관의 위치는 그 마을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고, 임금을 대신하는 존재이다. 그 만큼 관리들의 업무를 중요하다. 백성이나 혹은 백성을 돌보는 존재들은 그 위치나 입장을 생각하면 항상 공정하고도 양심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작년 2012년은 내가 존경하는 인물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탄생주기 250년이었고, 이와 달리 서양에서는 장 자크 루소의 탄생주기 300년이었다.

 

 

루소의 이름을 생각하니 최근에 루소의 도서를 열심히 읽은 것 같다. 여러 가지 경로가 있었으나, 현대 내지 현대 이전의 근대의 민주주의 역사나 사회구조에 대한 연구에는 반드시 루소를 거치지 않고서는 말하기는 어렵다. 프랑스대혁명과 더불어 헌법의 기본적인 명제가 다 루소의 사상에서 시작한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특히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와 사회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자유, 평등과 같은 정치적 가치와 더불어 인권이란 중요한 원리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대한민국 헌법을 보면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정치철학적 사상과 유사한 면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루소는 그런 위대한 사상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박해와 조롱만 당했으며, 그의 고독과 슬픔 그리고 좌절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모를 당했다. 충언은 역이고, 옳은 말은 하는 것은 역시 잘못된 상식인가? 이번에 읽어본 장 자크 루소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는 참으로 나에게 많은 생각을 심어준다. 평소에 조금 내가 생각한 부분들이 이미 루소가 250년 전에 했다는 것에서 이렇게도 시간과 공간이 다른데도 충분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를 알려준 그의 성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구성은 2가지로 되어 있다. 1번째는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자체의 논문 그리고 그 논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박을 하자 그 반박에 대한 반박문이고, 2번째는 루소가 <산에서 쓴 편지>다. 시기적으로 보면 1번째는 루소가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저술하기 전이고, 2번째는 그것을 저술한 이후다. 루소의 <참회록>을 읽다보면 루소는 1762년 이후 상당히 심한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 자신의 고국 제네바에선 루소에 대한 체포령과 동시에 그의 저서들을 모두 불태운다.

 

 

그것도 국정회의라는 근대적 정치제도를 가진 다소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국정회의는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과 비슷한 곳이다. 입법부로서 법을 집행하고 각종 국가적 의회적 관건을 다루는 점을 말이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편익과 더불어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나, 문제는 그들은 법의 아래 있다는 것보다 법의 위에 있자는 것이 문제이다. 루소의 2번째 <산에서 쓴 편지>를 읽으면 루소에게 가해진 시대적 폭력과 더불어 그 문제가 다소 자신 만에게 가해진 문제만이 아님을 다룬다.

 

 

루소가 이토록 열렬한 사상가로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참으로 안타까우나 그가 처해진 현실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가기보단 만들어진 것이라는 구조적 상황에서도 그 만들어진 공간에서 만들어가기에 다시 시대적인 조류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사회적 갈등에서 루소의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에서는 그렇게 길지 않은 논문이었으나, 그가 의미하는 바는 많은 의미를 보여준다. 루소가 살던 시절은 <그네>라는 그림을 그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가 살던 시절이다.

 

 

당시는 귀족들의 탐미주의 성향의 욕망이 강한 로코코시대, 그 이전에는 고전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 바로 예술이란 것이 인간의 정신을 흐리고 망치고 나라를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전에 읽은 진중권 교수의 <서양미술사-고전예술편>에서 서양의 미술이나 예술을 보면 대부분 민속예술보단 왕족예술 내지 종교예술에 많은 것을 두었다. 특히 왕족이나 귀족들은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많은 금액을 들어 예술로서 만들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성을 부여했고, 종교 역시 그렇다.

 

 

그러다보니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켜주기 위한 것보단 자신들의 권력의 위상과 입지를 알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게다가 학문 역시 많은 사람에게 열려있지 않았다. 서양 중세역사에서 성경이 자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다. 그것은 19세기 프랑스도 그런 것 같았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주인공 쥘리엥 소렐이 가정교사로 역임할 때나 귀족집안에서 화려한 생활을 할 때 그는 분명히 라틴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고, 나폴레옹의 이야기가 가득한 점을 본다면 충분하다.

 

 

학문은 인간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하나의 기예(ART)가 아니라, 미셀 푸코가 지적한 것처럼 언어가 권력을 낳고, 권력이 언어를 낳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루소는 바로 그 학문과 예술이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나 서문에서 김중현 교수가 거론한 곡학아세의 이야기에서 그 학문과 예술을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의미는 아마도 인간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그것들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고, 게다가 억압한다는 점이다.

 

 

루소의 미적 가치를 보면 그는 자연주의자이다. 전에 읽은 루소의 <식물사랑>이란 도서에서 루소는 식물이 가진 효용과 가치에 중시하기보단 자연 있는 그대로를 존중했다.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그 순수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연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식물표본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그것이 어떻게 생기고, 언제 나오며, 특징은 무엇인지 찾는 루소의 관찰은 지식으로 타인을 괴롭히거나 우월감을 나타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지식으로 통해 교류를 나누고, 자연의 소중함을 새긴 것이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자연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연에 대한 빛에 대한 신기함과 계절의 변화, 광활한 대지와 푸르고 푸른 바다와 하늘들이 우리 모두의 보물이었을 것이다. 물론 자연은 아름다운 부분을 보여주는 것처럼 무섭고도 미지의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숭고의 대상이었다. 숭고의 대상이 점차 착취와 파괴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처럼 자연의 착취를 할 수 없으면 그 착취의 대상은 인간으로 변한다. 인간에 대한 착취에서 지식이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예술이란 상징을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루소가 가진 사상에서 그 학문과 예술을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전에 읽어본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 취미와 취향이 인간을 구분하는 척도가 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구별짓기하고 있는지 당하는지 묘한 상황이다. 이른바 mass-culture에 대한 회의감과 더불어 그것에 대한 무관심이 일반 대중들과 대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spectacle의 요소는 바로 이런 것인가? 대신 내가 철학이나 예술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가 없는 점에서 나는 별종으로 보일 뿐이다. 아니라면 다소 sub-culture 내지 underground-culture에 관심을 가지기에 대중문화에서 소외된 존재다.

 

 

아니라면 오히려 그런 곳에 있기에 문화적인 현상과 문화로 통해 보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깊이 다루기에 어렵고, 깊은 들어가도 그들이 주장하는 담론에서 많은 한계성이 보인다. 본래 인간은 불평등하다. 태어나고 자라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에서 불평등이 생긴다. 그 불평등이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입지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선천적인 영역이 강하나, 한편으로 후천적인 부분이 강하다. 내가 오늘 돈 5만원을 들고 서점에서 책을 몇 권을 사는 것이나 혹은 친구들과 소주한잔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것으로 인해 발휘되는 효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문제는 책을 사든 술은 마시든 2가지 부류 모두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생각하면 전자가 바른 판단력이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오히려 알면 알수록 말하기가 어렵다. 일반 사람들이 아는 철학적 지표는 모두 한계점이고, 대부분 그 한계점에 몰린 반면에 진짜 노력하는 이들은 그 한계점을 넘어 자신만의 영역을 도달하려 한다. 그래서 루소도 저렇게 심한 꼴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런 상태에서 학문이란 것은 똑똑한 바보들이 사는 대다수에 대한 헤게모니적인 영향을 발휘한다.

 

 

특히 그런 부분에서 루소가 비판하는 것이 종교적 부분인 것이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와 더불어 <에밀>, <사회계약론>에서 정치에 대해 종교적 부분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종교는 신앙이 중요하지 기적을 바라면 안 되는 것이다. 흔히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신화적 욕망이다. 기적이란 메시아주의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현상이며, 메시아주의가 강할수록 그 사회의 대중들의 의식구조는 낮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다.

 

 

또한 그런 종교적 현상에는 항상 예술이란 상징적 권위가 부여된다. 예전에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읽으면서 칸트가 루소의 사상을 많이 영향 받았다는 점과 특히 <에밀>을 읽으면서 자신의 산책시간을 놓칠 정도로 깊이 몰입했다는 점에서 루소의 사상은 인간에게 주어진 주변 환경보다 선험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력을 전해준 것이 가장 특징이고, 인간의 개인적 계몽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칸트와 마찬가지로 루소의 서적들은 계몽주의적 요소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왜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가 <에밀>과 <사회계약론>하고 통하면서 학문과 예술에 대해 그토록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인가? 그것은 내가 인상 깊게 본 문구로 통해 알 수 있다.

 

 

“사치는 수백 명의 도시인을 먹여 살리지만, 수천 명의 농부는 농촌에서 죽어가게 한다. 사치에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주기 위해 부유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의 손 사이를 오가는 돈은 농부들의 삶에 아무 쓸모도 없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장식 줄이 필요하기 때문에 농부에게는 의복이 모자란다. 사람들의 양식으로 이용되는 물질을 낭비하는 일은 사치를 역겹게 느끼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내 반대자들은 우리말이 어려워 그들이 뻔뻔스럽게 옹호하는 주장에 대해 부끄러워하도록 내가 조목조목 따지지 못하는 것을 지극히 행복해한다. 우리의 부엌에는 주스가 필요하다. 바로 그 때문에 그토록 많은 환자에게는 수프가 부족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농부들은 물만 마신다. 가발에는 밀가루가 필요하고, 바로 그 때문에 그토록 많은 가난한 사람이 빵을 먹지 못한다.”

 

 

당시에 자본주의 경제구조보단 농경사회이기에 지금 경제사회구조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예술이 왜 문제라는 이유는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루소의 예술적 사고는 왠지 모르게 아방가르드 정신과 부합되는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 아방가르드, 그 자체도 근현대미술 역사의 한 자리에 들어가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나, 루소의 사상처럼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바라는 예술이란 바로 배고픈 농부, 20세기에는 가난한 도시 서민과 노동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 지식인들은 왕족, 귀족, 성직자들과 친교가 있기에 자신의 신분적 상승과 위엄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식을 가진 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항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되는 지식을 가진 자들이 필요한 점이다. 루소의 서적에선 당시 시민과 부르주아들은 국가적으로 지식과 양심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에는 부르주아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나온 것처럼 악독한 귀신과 같았다. 귀족과 왕족이 있던 자리를 대체하였다. 노예와 주인의 사슬을 끊을 수 없는 그 인간의 고뇌에서 루소는 그 고리를 끊으려한 인물이다.

 

 

그런 루소이기에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라는 서적은 현대사회의 지성인이라면 반드시 읽고 새겨둘 필요가 있다. 학문과 예술은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이 정말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학문적으로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문명의 발전과 동시에 삶의 혜택은 주었다. 그러나 환경오염, 전쟁무기의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술에서 음악하거나 미술 한다는 것은 곧 가정의 부를 알려주는 척도가 되어버린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예술다운 예술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의 자연적인 느낌을 표현이 아니라 상징성을 부여하기에 그렇다. 물론 상징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나, 그것이 곧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인간애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루소의 서적에서 그가 보낸 편지에는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과 그 원인을 집어내는 부분이 있다. 학문과 예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에 대해 알 수 없거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학문과 예술은 세상에서 가장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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