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 A Life -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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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존경하는 정치철학자로는 미국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즈다. 그의 자유주의는 포괄적인 자유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혹은 민주적 자유주의다. 그것은 자신만의 자유를 위해 자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삶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진실한 정의란 힘이라는 도덕적 권력보다는 최소수혜자에 대한 지원에 대한 일반적 삶의 구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최소수혜자의 존재적 가치는 너무 미약하다. 오히려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지금이나 옛날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조금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최소수혜자에게 단지 생활의 보장이 아니라 일반인들과 같이 똑같은 선에서 달릴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는 의미다.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고 그 평등이 있어야 자유라는 것이 존재한다. 당장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하거나 오늘 밤에 잠을 잘 곳이 없으면 이들에게 자유란 없는 것이다. 인간이 단 한 명이라도 고통 받는 세상이라면 절대로 철학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어느 유명한 철학자의 말이 있다. 인간에게 특히 우리 같은 일반 소시민들에게 그런 말은 하늘에 떠 있는 조각배와 같다. 조각배 자체가 하늘에 뜰 수 없으며, 뜬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기적이나 행운을 바라는 것에서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자신은 스스로 되지를 않으나 뒤에서 쉽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희생이란 것은 값진 것일까?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 헬렌 켈러가 남긴 문구는 너무 보편적 진리다. “우리는 언제 알게 될 것인가? 너와 내가 모두 이어져 있다는 걸, 우리가 모두 한 몸뚱이를 이루고 있다는 걸. 인종, 피부색,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정신이 세상을 채우는 그날, 사회 정의가 이루어진다.”

 

정의라는 것은 정말 단순하다. 헬렌 켈러가 말한 저 문구처럼 상대방과의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보고 배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어둠에 가려져 희망을 버린 채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헬렌 켈러는 사랑하고자 했다. 그녀는 성녀이기 위해 성녀가 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서 우려 나온 이상적 가치였다. 듣고 보지 못하고 말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함이기에 더 촉각, 미각, 후각, 육감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글을 남기고, 상상력의 세계에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행위는 미국을 지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대통령이든 왕이든 심지어 일반 국민이나 길가에 뛰어 노는 아이들까지도 말이다. 그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헬렌 켈러라는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라고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장애와 더불어 타인과 세상의 불통은 그녀를 하여금 외로움과 난폭함에 젖게 만들었다.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현실, 그런 절망에서 앤 설리번의 등장은 절대적인 변화였다.

 

앤 셜리번이란 헬렌 켈러에게 말하여 인생 그 무엇과 바꿀 수도 바꾸지도 못할 존재다. 세상의 단절 그리고 인내심으로 태어난 헬렌 켈러의 사회화, 단지 안타까운 것은 앤 설리번이 순수한 마음으로 헬렌 켈러를 대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자신의 가난과 지난날의 고통과 상처를 뛰어넘기 위해 앤은 몸부림을 친 것이다. 아일랜드의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결국 동생과 고아원에 맡겨진 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삶의 위안이던 동생마저 병으로 죽자 앤의 인생은 파탄을 맞은 것처럼 보였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 수술과 치료를 통해 겨우 볼 수 있던 앤, 그녀는 헬렌이 있는 남부까지 오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그래도 그녀는 헬렌과 만나 헬렌으로 통해 세상을 배웠고, 그리고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느꼈다. 나는 장애를 안고 있던 그녀들이 가진 뜨거운 욕망에 놀랐다. 앤은 존 메이시라는 연하의 지식인과 결혼했고, 헬렌 역시 자신을 흠모하던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하려고 했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사랑조차 허락하지 않은 사회적 통념과 가족들의 억압에서 헬렌의 성적 욕망이 제일 인간다워 보였다. 하지만 결국 앤과 가족에 의해 무산되었고, 그녀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결혼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들 성인으로서 바라본 헬렌의 모습에서 저렇게 여성의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균형 잡힌 몸매에 푸른색으로 된 인조 안구로서 사람들을 대해주길 바란 것이다. 헬렌에게 가장 큰 속박은 세상도 그렇지만 주변 인물이었다. 자신을 세상에 내보내 준 것은 분명 앤, 폴리, 넬라 였으나, 세상 사람과의 대화를 막은 것도 이들이었다. 헬렌이 보여준 기적은 모든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이들은 헬렌을 통해 성공과 부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자기에게 가장 좋은 후원자였으나 차후에 가장 그녀와 앤을 공격하던 에너그노스와 그가 퍼킨스학교는 헬렌을 인간으로 대하기보단 오히려 하나의 도구로 대했다. 헬렌으로 통해 얻어질 명성은 행운의 여신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사실 앤이 한 노고였다. 단지 퍼킨스학교에 머문 점에서 모든 것을 공치사하려는 이들에게 헬렌의 인생에서 역정이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가 작문한 글이 다른 작가의 글이란 점에서 맹비난을 받은 헬렌에게 생각해보면 그런 모방이라도 장애를 가진 자가 그것을 과거에 읽고 기억했다는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를 공격하기 바빴다. 헬렌 켈렌이 성녀로서 살아온 만큼 그녀는 뜨거운 투쟁을 하였다. 헬렌은 이성을 중시하고 감성도 중시했다. 1917년 2월과 10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헬렌은 열렬히 러시아혁명을 지지했다. 심지어 자신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당시 FBI의 국장인 에드가 후버에게 감시를 받았으나, 헬렌은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아무런 단서를 주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단서를 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도 그녀는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된 사람보다 그곳에도 인간의 이성이 있는 즉 휴머니즘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헬렌에게 중요한 건 사상과 국경이 아니었다. 고통 받는 자들의 안식과 평온이었다. 록펠러나 카네기와 같은 대부호들이 미국의 대자본으로 성장할 때 헬렌은 이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을 옹호했다. 모두 흑인들에 대해 경멸하고 무시할 때도 흑인들도 인간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헬렌은 천사인 동시에 때로는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어도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진정한 용기였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있는 의지를 외치는 그녀에게 가녀린 육체이나 그 정신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단지 그녀가 그렇게 하면 할수록 지원을 해주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과 생활의 안위를 바라는 사람들이 괴로워지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헬렌 역시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경제적 관념이 없었기에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기심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헬렌은 가난하고 단아한 이미지만 강조하는 것에서 지난 호사스럽고 부유한 것도 같이 받아들였다. 옆에 있던 코디네이터 폴리의 입장에서 매우 불쾌하겠지만, 헬렌은 주는 것만큼 받는 것을 정성스레 간직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이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개를 좋아한 만큼 개를 사는 것에 대한 비용과 기르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헬렌과 주변사람들은 경제적 관념이 없기에 이기심은 없으나 없는 만큼 현실적 상황에 대응이 느렸다.

 

모든 일에서 좋은 일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때에 따라서는 난제가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특이한 점은 자신이 원하거나 혹은 우연히 들어온 물품들이 화재나 사고로 사라져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앤의 이혼한 남편인 존이 집을 불태워 모든 것을 날리는 순간조차 말이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 그녀가 욕심보단 차분한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진정 강한 정신은 그런 대담한 모습인가? 그런다고 시위에 참가하여 죽어가는 노동자의 모습에서는 상처를 받는 헬렌에서 강함은 약함에 대한 포용임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세상이 빛이 된 이유는 그녀 자신은 분명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가 빛이라고 여긴 것은 어둠 속에서 보통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불굴의 의지였다. 헬렌은 그런 자신의 업적에서 모든 것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까지 그 자비의 손길을 뻗으려 했다. 장애를 가진 이유로 차별 받는 부당하며 오히려 이들을 일반인들과 같이 살게 해주려고 했다. 그런 모습을 그녀를 성녀를 만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헬렌의 기적 같은 모습과 그 외모에 비중을 높였다.

 

그녀가 원한 여성들의 참정권 내지 보수적인 기독교에서 출산제한 조치를 거부한 것을 문제를 삼았다. 21세기에서 당연한 것이 20세기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헬렌은 모든 것이 거부당한 것 같은 세상에서 자신의 세계에서 더 넓은 세계로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강한 정신만큼 앤, 폴리의 죽음을 지켜 볼 때는 마음이 힘들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에서 자신을 초대하지 않은 가족들의 사연에서는 매우 애통한 심정을 내비추었다. 그녀가 행복한 인생이냐고 물어보면 헬렌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단지 그 길은 평탄하지 못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어둡고 침묵에 갇힌 세계에 자신이 있었기에 가시밭길을 넘어 모두의 마음을 열어주는 인생을 걸었고, 뜨거운 가슴이 있었기에 고요한 진리를 모두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일구어 놓은 자리에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열어갈 수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는 숙제가 많다. 언제인가? 국내 무슨 국제 행사를 열리는데, 거리에 있는 장애인들을 모두 강제로 보이지 않게 했다고 한다. 단지 세계 정상들이 보고 좋지 못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것을 본 헬렌 켈러라면 아마 눈물을 흘릴 것이다. 헬렌이 진정 바라는 것은 이들이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는 관용과 배려의 미덕이 살아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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