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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 - 조선 최고 어의가 된 마의
장웅진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아직까지 전쟁 수단에서 차량을 이용한 수송이나 이동수단이 없는 경우에는 당연히 제일 중요한 이동 및 수송수단은 말이었다. 물론 수송은 당나귀나 노새 그리고 소가 좋았으나 긴급을 요하는 수송에서는 말을 제외할 수 없는 것이다. 군에 있을 때 생각나던 부분이 있는데, 전쟁에서 화학전을 벌이는 이유는 바로 인마(人馬)를 살상(殺傷)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말의 기동력은 1차 세계대전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아직 장갑차들의 발전 수준이 미미했으며, 숲이나 산과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말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현대전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기계기술의 발달은 말이 전쟁터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었으나, 20세기 초반까지는 분명히 전략수단으로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으며, 그것이 시간이 과거로 가면 갈수록 더 위력을 발휘했다. 말이 가진 기동력은 인간의 발과 비교할 수 없으며, 말의 발굽에 짓밟혀 죽는 이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현대사회 이전의 전쟁에서 말은 곧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적인 영역이었다. <마의 백광현>에서 백광현은 인간을 치료하는 의술이 아닌 말을 치료하는 의술을 배운다.
모든 생물에서 발생되나 특히 인간에게 곤란한 것이 종기라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피부조직이 곪아 그것이 심한 통증과 함께 때로는 신체에 큰 부담을 주어 사망하게 이른다. 과거 조선의 왕을 보면 종기로 인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외에도 상처를 입은 후에 종기가 터져 죽었다는 사료도 존재한다. 전염병에 대한 대처방안이 약하던 시절에 잠깐 스친 상처도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처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게도 존재했다. 백광현을 따지고 보면 지금에 와서 수의사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수의사들을 보자면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의사에 대해 매우 존경의 눈빛으로 볼 것이다. 사랑하는 강아지의 재롱을 볼 수 없다는 게 심리적으로 크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말을 치료하는 자에 대해 백정만큼 천하게 여겼다. 인간을 고치는 의원도 중인이나 하는 짓으로 봤으니 말을 고치는 일은 얼마나 소홀하게 여겼을까?
그런 마의를 선택한 백광현이 이제 말이 아닌 인간을 고친다? 그것은 상당한 방향을 일으킬 사건이었다. 말의 종기를 고치다 인간의 종기를 고쳐보다가 실수로 죽게 되자 그가 고된 일을 보면서 염라대왕이 의원들이 살려준 인간만큼은 아니나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 보였다. 시대적으로 임진왜란 지난 후에 한참 뒤에 병자호란이 일어나니 전국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국토는 황폐화되고 민심은 흉흉하고 위정자들은 당파싸움에 하루가 조용할 틈이 없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역시 예송논쟁, 효종이 죽은 후에 현종 때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복상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크게 논란이 된 두 차례의 예법에 관한 논쟁으로 붕당정치의 피로서 서로 복수하는 정치싸움이었다. 물론 임진왜란 전에 동인과 서인이 나뉘어 다투던 것도 있으나 남인과 서인의 당쟁은 수백년을 거쳐 내려오고, 정조의 죽음으로 서인의 승리하였으나,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귀양을 가야 했다. 덕분에 정치가들은 국정에 대한 심의나 판단보단 정치적 이익과 패권을 위한 당쟁에 참여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 책에서 그런 점이 백광현은 인술로서 어의를 맡으려 하나, 그것을 시샘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종의 어머니를 치료하는데, 모든 의원들이 자기에게 내려진 처벌이 무서워 몸을 사리고 있을 때, 궁중 마의인 백광현에게 종기치료를 잘 한다는 이유로 그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만약 실수로 대왕의 어마마마가 승하하면 그의 목이 다른 의원들의 목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이토록 간사한 것일까? 대왕대비의 종기를 짜내고 무사히 치료하자 이번에는 다른 의원과 대신들이 모함한다.
대왕대비의 고통스런 치료과정을 보고 치료를 그만두란 어명을 거역하고 치료하자, 아무리 결과는 좋아도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권이 흔들리니 엄중의 처벌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분명히 치료의 완결은 백광현이나 임금의 은총은 이상하게 다른 자에게도 돌아갔다.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시샘의 눈빛이 도사린 것이다. 인간에게 정치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꼭 해야 할 의무와 도리를 지키기보단 자신의 이권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합심하는 당시 실료들을 보면 지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임금은 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신하들 속의 임금이었다. 신하들의 눈빛에 동조하지 않으면 어느 날 독살되거나 혹은 반정이 이루어진다. 인조반정에 광해군에게 명에 대한 충성에 반발한 그들이 이제는 청에 대한 충성에 의해 효종의 죽음과 소현세자의 죽음이 의문스럽다고 하니 그 얼마나 무서우랴? 백광현이 초로를 지나 이제 중늙은이가 될 때, 집에 귀가 중에 자객이 와서 자신들이 고용한 의원의 사주로 잔혹하게 살해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질투는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 자세를 망각한다.
백광현이란 인물은 그런 정치세계와 사회의 비극 속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치지 않은 인물이다. 일찍이 백광현의 아버지 백의원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려도 정작 자기 마누라와 딸을 살리지 못한 채 도망치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마의 백광현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도 역시 무시하지 못하고, 그런 갈등과 관련하여 신분제의 한계성에 탄식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압록강 근방에서 몇 년이나 있어야 했던 홍단이의 아들이나, 중인출신으로 손가락질을 받다가 임금의 어의가 되어 겨우 인정받지만 직급 역시 높지 않은 백광현에서 능력 있다고 다 되지 않은 사회란 정말이지 답답하기 짝이 없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은 자기 자식을 잡아먹고, 현실과 맞지 않은 법과 제도들은 여전히 구중궁궐 높은 분들의 뱃속은 불리되, 저잣거리에선 사람들이 굶어죽는다.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자가 나오더라도 무서운 가렴주구 앞에서 무용지물이어라. 어느 아낙네가 3개 무덤 앞에서 우는데, 모두 호랑이에게 먹혔다는 것이다. 시아비, 지아비, 아들 그러나 정작 호랑이 없는 곳에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관리들이란 점에서 왠지 모르게 다산 정약용이 늘 지적한 이야기가 다시 내 기억 속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남아메리카의 혁명가이던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자신의 사촌 형과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한다. 2사람은 본래 의과대학을 다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남미의 현실을 보면서 사람을 고치는 의사보단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세상을 고치는 것에는 자신의 미약한 힘에서 아무 것도 될 수 없었고, 결국 총을 잡아야 했다. 백광현은 조선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환자를 고치는 것보단 그 고칠 수 있는 사람을 고쳐야 했다.
권력에 비틀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시 권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구조에서 마의 백광현이 보여주고자 하는 정치적 입장은 당파를 초월한 인간중심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인간중심적인 발언은 백광현이 대왕대비의 병을 낳게 하면서도 백광현 집에 물품들이 선물 온 것을 가지고 트집만 잡던 백관들의 한 소리가 생각난다. 비겁한 자들은 평소에 백성을 위한 게 아니라 꼭 시기적 상황에서 외치니 참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하며 차는 내 자신의 아쉬움만 더해 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