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본 에반게리온 해독 - 한국 최초의 본격 애니메이션 해독서!
키타무라 마사히로 지음, 곽형준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이번에 읽게 된 <완본, 에반게리온 해독, 그리고 꿈을 좇다>를 잡은 순간 어디서 낯익은 이름이 나왔다. 라이트노벨을 전문으로 번역하는 곽형준씨가 이 책의 번역을 맡은 것이다. 노블엔진이 영상노트와 같은 회사라는 점에서 곽형준씨가 이번에 번역한 에반게리온 해독에서 과연 나는 이 책이 제대로 해독했는가에서 점수를 그래 높게 주지 않고 싶다. 작가인 키타무라 마사히로의 프로필을 보니 그는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1990년대 일본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되자 거기에 빠진 인물이다. 같은 작품을 극장에 가서 몇 번이나 다시 보고 또 보고를 분명히 애니메이션을 비평하는 것을 취미로 둔 나로서는 존경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세에 대해선 존경을 보내도 그 접근에서는 상당한 오류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정립이나 전개성은 매우 정확하고 치밀했다. 심지어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부분도 언급했다. 에바0호기에 나오코 박사가 들어갈 가능성에서 말이다. 그리고 상관도표로서 그린 인류보완계획 5가지 루트 역시 좋은 내용이었다. 전반적으로 스토리나 인물에 대한 형식적인 조건은 매우 좋아도 그 내부의 텍스트 해독은 점수로 따지면 10점 만점에 3점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방법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영상기호학에서 정신분석에 대한 접근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영역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도 보이지 않은 심층적인 영역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분석이 잘못된 것은 작가 본인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인간 내면의 심리로 통한 갈등과 문제를 다룬 점은 분명하나, 그 대상 접근 방법에서는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구강기 ☞ 항문기 ☞ 남근기 ☞ 잠복기 ☞ 생식기> 괄호 안의 5가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에서 인간이 가진 2차 성징기 까지의 구도를 설명한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요소로 되는 이유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인간의 죽음과 삶, 그리고 가족과 자아라는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캐릭터들은 모두 14세로 생식기를 갖춘 사람들이다. 레이는 복제인간이라는 점과 생리를 하지 않음에 생식기를 가져도 생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스카는 자신의 월경에서 자신이 어른으로 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카지에 대하여 어른의 사랑을 요구한다.

 

이율배반적이고 질풍노도의 시기가 바로 14세다. 이전에 초등학교라는 어린 시절과 앞으로 고등학교와 사회진출이란 어른의 갈림길이다. 인간에게 다시 과거로 회귀가 불가능한 비가역적 존재에서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하고, 자신의 비가역적에 대한 회귀욕망으로 인간에겐 에로스 대신 타나토스라는 욕망이 깃든다. 따라서 작가는 바로 타나토스라는 죽음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파일럿 선정에서 단순히 토우지를 언급한 건 큰 실수다. 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이해하기 위해 신세기 에반게리온만 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내지 정치적 동물이다. 자신의 존재적 확인과 개성과 인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본연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교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무엇이 빠졌는가? 그것은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언급이다. 이카리 사령관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지가 네르프에 와서 에바초호기를 타야하는 이유는 다른 인간에게 무리라고 했다. 에바초호기는 마치 신지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그 속에 신지의 어머니 이카리 유이의 몸과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에바초호기가 가장 불안정하면서 가장 강력한 이유는 에바초호기는 파일럿의 의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양수 속에 태아(아들)를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방어본능이다. 신의 절대적 영역보다 더 절대적인 영역이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이다. 끊을 수 없는 천륜이기에 추후 내부전원이 모두 소모되어도 싱크로률이 400%가 되어 사도를 격퇴한다. 대신 신지는 어머니의 강한 모성에 엔트리 플러그에서 LCL과 동화되어 버린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남자에게 가장 큰 욕망인 비가역적 시간을 다시 가역적으로 돌리는 욕망을 신지는 에바초호기에서 이루게 되는 점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이카리 사령관은 평소 신지에 대해 냉대하거나 질투한다. 만화책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면 TVA와 극장판에서 나오지 않은 부분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카리 사령관이 신지에게 에바초호기를 타라고 할 때 신지의 멱살을 잡는 부분이다. 자기는 신지를 엄청나게 질투한다고 말이다. 신지가 에바초호기에 탑승이 가능한 이유는 본래 신지는 이카리 유이의 아들이다. 인간의 최초로 만나게 되는 인간은 어머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본래 같은 존재가 아니라 타인이었고, 어머니와 아들은 타인이 아닌 한 몸에서 분리된 존재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다.

 

단지 이 부분은 최근 발매된 만화책 12권에서 나온 내용으로 아직 작가가 이 부분을 읽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2007년 신극장판 서와 이후에 나온 파와 급에서 작가가 언급한 것은 모두 틀리게 된다. 지나친 개인적 경험에 의지한 추론은 뒤에 나올 새로운 이야기에 대해 대응이 불가하다. 가장 치명적인 영역은 바로 스기무라 토우지다. 엔트리 플러그에서 나온 그의 부상에서 코어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에서 신극장판 급의 예고에서 작가의 추론이 완전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급에서 토우지의 여동생이 등장하는데, 만약 그 여동생이 에바의 코어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면 급에 나오는 그녀는 레이처럼 복제인간인가? 그것은 전혀 아니다. 신극장판 파에서 에바3호기 탑승이 본래 TVA에서 토우지에서 아스카로 변경되었다. 만약 가족과의 인연이 없다면 싱크로를 발휘하지 못한 에바였다면 아스카가 에바3호기에 절대 탑승하지 못한다는 점과 본래 에바2호기가 아스카의 기체였는데도 파에서 마리가 탑승했다는 점이다.

 

특히 통상모드에서 마리는 아스카보다 더 뛰어난 전투를 보여준다. 에바에 숨은 모드인 비스트모드라는 것이다. 아스카가 계속 다룬 에바2호기에 아스카조차 모르고, 동경 네르프 요원도 모르던 것을 마리만이 실행했다. 거기서 작가의 오류는 이미 증명된 셈이다. 단지 나오코 박사의 0호기는 가능할지 모른다. 에바0호기가 테스트 중에 신지가 탑승하자 폭주를 일으킨다. 5화 역시 폭주를 일으키는 장면에서 에바0호기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카리 사령관에서 2번째는 레이를 노린다. 그러나 리츠코 박사는 정작 노리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혼자 이야기한다.

 

그것이 반증하는 것으로 신지가 에바0호기에 타자 아야나미 레이의 숨결을 느끼나, 계속 혼자 상상하다가 이것은 내가 아는 레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에바0호기 심연에 위치한 것이고, 레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일그러진 얼굴이 나오면서 에바0호기의 침식을 파일럿을 위협한다. 극장판에서 보면 알겠으나 리츠코는 이카리 사령관과 불륜관계를 저지른다. 그 이유는 어머니 나오코 박사가 이카리 사령관을 불륜대상을 삼은 모습을 보고, 자신이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주체자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과학자, 여자라는 3가지 나오코에서 여자를 택한 나오코, 여성에겐 최후의 보루는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는 여자였다.

 

단지 유이의 경우 그 남자가 남편에서 아들인 게 차이였다. 나오코는 본래 이카리 유이를 증오하고 질투했다. 이카리 사령관을 좋아했기에 유이 사망 후에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실험 당시 유이의 죽음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실험 중에도 신지를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그런 나오코의 신체적 일부가 에바0호기에 이식이 가능하다. 네르프의 중추명령계통인 마기 원본과 동시에 사본들도 다른 네르프 기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점이다. 그런데 왜 나오코는 에바0호기에서 폭주를 일으킨 것인가? 나오코는 유이의 복제인 레이에게 마녀라는 말을 듣고 1번째 레이를 교사시킨 후에 자살을 한다.

 

따라서 신지가 에바0호기에서 본 레이는 처음에 2번째였다가 1번째였기에 폭주한 것이다. 나오코가 에바0호기에서 자신이 저주하는 유이를 잊지 못하는 이카리 사령관과 그리고 유이의 복제인 레이를 무척이나 죽이고 싶은 것이다. 또한 신지가 탔을 때 나오코는 자신의 남자를 가로챈 리츠코에 대한 분노가 살인 충동을 느낀 것이다. 철저하게 이성적인 영역이 아닌 무의식적 기질에서 발동한다. 리츠코의 대사에서 “남녀 관계는 로직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온다. 결국 이성이 아닌 자신 안의 무의식적 기질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작가의 실수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 작품이 있다고 하나, 그 무의식에 대한 해석은 누락되었다는 점이다. 지나친 상징주의적인 추론 역시 문제였다. 레이가 처음 부상으로 한 쪽 눈에 붕대를 감았는데, end of eva에서도 붕대를 감은 것을 다르게 봐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싶다. end of eva에서 아스카는 에바2호기가 롱기누스 창에 머리를 맞고 한 쪽 눈을 다친다. 즉 이것은 공격에 의한 재발이지 상징적 요소로 결부하기엔 우연의 일치가 너무 지나친 점이다.

 

게다가 최초로 신지가 성적욕망을 품은 대상은 이성적으로 미사토다. 처음 에바초호기에 탑승할 때 그 안에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도 못했고, 폭주로 인해 모든 기억이 없다. 단지 자신의 무사함을 확인한 에바초호기의 눈빛만이 인상적이다. 미사토의 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미사토가 신지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갈 때 카메라 로우앵글에서 미사토의 큰 가슴과 신지의 부끄러운 표정을 대비시킨다. 신지가 미사토의 가슴을 보고 성적으로 호기심과 더불어 당황함을 보여준다.

 

다음은 레이인데, 레이의 나체를 6화에서 신지가 목격한다. 아스카는 신지의 방에 와서 옆에 눕거나 또는 미사토의 흉내 내기를 위해 신지와 키스하는 장면에서 신지의 무의식적 성적욕망은 미사토, 레이, 아스카로 연결된다. 문제는 신지는 레이가 유이의 복제이기에 어머니에 대한 성적인 욕망, 즉 윤리적 문제가 있기에 성적욕망을 품을 수 없었고, 미사토는 카지와 연인관계였기 때문에 성적욕망 대상이 될 수 없었다. end of eva에서 처음으로 자위하는 신지는 아스카의 가슴을 보고 나서이다.

 

자위행위에서 대상의 전이는 아스카로 결정된 것은 인간이 언어를 배우면서 사회적 관계로 통한 윤리의식의 획득이라 볼 수 있다. 책 전반적으로 보아도 프로이트, 융,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의 이론이 없었다. 지나친 경험적 추론이 이 도서의 큰 한계점이고, 다소 연역적 검토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다른 이론을 무시한 자신만의 이론을 내세워 독자적 해석은 좋은 시도라고 보이나 국내에서 발간된 각종 애니메이션 도서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하나의 학술적 개념으로 두고 연구한 도서를 읽으면 <완본 에반게리온 해독>은 너무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단지 이제 입문하거나 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너무 내용이 난해한 점을 고려한다면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서적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알기 위해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만 알면 안되는 것처럼 다른 관점과 분야로 통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간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가고자 하는 타나토스라는 죽음의 욕망이 작품 내 깊숙하게 깔려 있다. 단지 모두가 죽음에 대해 열망할 때 그곳에서 유이만이 에바로 인간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즉 이카리 유이는 모든 인류보완계획에서 주체가 되는 초호기 속의 생명의 환원과 동시에 새롭게 삶을 부여하게 하는 타나토스와 에로스의 이중적 존재다. end of eva에서 이카리 사령관은 제레에게 습격당하기 전에 제레의 위원들에게 “사람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것을 위한 에바 시리즈입니다.”이라고 한다. 결국 제레처럼 신이란 형이상학적 존재로 인간이란 존재를 소멸하기 보다는 인간이 에바로 통해 새롭게 인류를 건설하자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이카리 유이가 에바초호기에서 몸과 마음이 살아있는 이유다.

 

또한 후유츠키 부사령관이 “사람은 생존해 가려고 하는 것에 그 존재의 의의가 있다.”라는 발언에서 제레와 네르프 사령관과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후유츠키는 12화에서 남극에 가면서 원죄가 물들지 않은 정화된 곳보단 죄로 더러워져도 살아있는 세계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추후 폴란드 왕이 된 로렌공작이 의회에서 발언했던 연설 중에 “나는 노예의 평화보다는 위험한 자유를 택할 것이다.”와 일치한다.

 

인간에게 정화된 깨끗한 이상보다는 차라리 감정들이 오고가는 자유의 세계가 좋다는 뜻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일반의지 2.0>에서 루소가 부여한 일반의지란 개인의 욕망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포스트 모던한 시대의 인터넷으로 통해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카리 사령관이 “죽음은 아무 것도 낳지 않습니다.”에서 인간의 원죄가 없는 곳은 생명도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곳은 매우 치열한 곳이기에 사람들은 서로 간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는다. AT-field 절대불가침의 영역이 생기는 점 역시 인간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있기에 그렇다. 그것이 서로 간의 죄가 되어 인간과 인간이 서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그것조차 없는 완전무결한 세상에 이미 생명은 존재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더 이상 답을 주지 않는다. 싸움이든 사랑이든 행위주체자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다. 죽음에서 아무 것도 낳지 않는다는 이카리 사령관의 말대로 말이다. 가장 잘 알면서 신지에게 대하는 차가움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은 이카리 사령관의 행동에 분명 이율배반적인 논리가 숨어 있다. 어차피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간의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을 표출한다. 인간이 가진 추악함과 다정함까지 신화적으로 나온다. 작가의 가장 큰 실수는 인류가 멈추지 않은 한 영원히 신화는 살아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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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kllee2 2013-01-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글쓴이분의 글쓴 의도가 먼지 도무지 짐작이 안갑니다. 왠지 혼자서 횡설수설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 쓸데없이 애니라는것에 지식을 요구해 자신의 뜻에 맞게 만들어버리고 만드는, 그런 우물효과 비슷한 방식으로 에반게리온을 해석하시고 글을 쓰신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1-16 12:31   좋아요 0 | URL
넵 그렇죠. 영상서사를 텍스트로 해석하는 기호학적인 측면이 전혀 없어서 보면서 짜증이 밀려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