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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8월
평점 :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중세에 대한 유럽이란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는다. 중세에 대하여 유럽이란 세계는 마치 암흑기가 도래하는 시기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과 같은 경우는 전투적 메시아주의라는 극단적인 행동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실이다. 스콜라 철학 이후 기독교가 신플라톤주의적인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지배관념이 도래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에 대한 관념은 현실적 영역을 초월하여 정치와 사회, 문화까지 섭렵했다. 십자군 전쟁은 바로 기독교문화의 유럽에서 보인 거대한 지배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신의 성지를 찾기 위해 이교도를 섬멸하고 예루살렘을 탈취한다는 명목은 분명히 자신들의 가치 안에서 성스럽고 위대한 업적이나, 평화를 찾는 것이 곧 침략과 전쟁이란 점에서 모순이 성립된다. 진정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너의 적을 사랑하는 것인데, 너의 적은 모조리 죽여라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물론 서로 간의 신념이 존재하기에 전쟁은 그 만큼 치열하고 무서운 것이다. 그런 무서운 형태로 돌출이 되어도 나름 이 시기에도 인간들이 살아가는 맛이 있었다.
지금의 인간들처럼 개인의 이익과 탐욕을 중시하기보다는 개인의 명예와 긍지를 중시했다. 귀족정신이란 높은 자리에 있는 자로 하여금 더욱 더 금욕과 신앙심을 높이게 했으며, 그것으로 통한 당시 백성들에게 보인 행동들은 하나의 의식이고 관례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 살아온 인간이기에 죽어서도 통곡의 밤을 이루는 도심에서 이들에게도 자신들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강요하지 않을 상황이, 그 시대에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당시의 인간들은 너무 상상력이 뛰어난 것일까? 감정의 열정이 살아있는 것일까? 중세에서 이성과 신앙을 중시한 만큼 그들의 열정은 묘한 뉘앙스로 풀어간다. 기독교 문화에서 어느 상징적인 현상이나 대상을 다른 존재와 겹쳐 보는 상징주의 삶은 매우 독특했다. 가령 어느 성인들이나 특별한 사건을 소재로 인원을 맞추는 것이다. 순결의 백합과 더불어 종교적 관념을 위한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리사는 빵과 포도주였다.
예수님의 성체의식에서 빵은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라는 것이다. 빵과 포도주라 생각해보면 빵은 분명 인간이 섭취해야할 칼로리를 지닌 탄수화물 덩어리다. 그리고 포도주는 인간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도 의식적인 행사를 가지는 도구다. 그리스 시대에 디오니소스라는 포도주의 신에서 서양인들에게 포도주란 신성한 도구일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기독교문화와 그리스사상은 서로 융합되어 새로운 사상적 전개를 맞았으니 말이다.
이성적 스콜라철학이 인간에게 다른 형태의 연애를 제공한 점 역시 특이하다. 민네라는 궁정 안의 연애역사들은 남편이 있는 귀족부인에게 사랑을 구원하는 것이 참 특이하다. 남편이 있는데도, 어떤 남자가 찾아가면 그 집의 남편은 다른 여자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하는 점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것인지? 아니면 그 문란함을 극복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는가? 라는 점이다. 매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에서 서구의 역사는 남성이 정치와 사회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도 나름 귀족부인들은 남성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체스라는 게임이 도입된 유럽사회에서 킹과 퀸, 나이트, 비숍, 록, 폰 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말은 퀸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에서 퀸이 가장 강력한 점은 왕은 남자라고 해도 밑에 있는 남자들은 여왕보다 낮다는 점이다. 나이트처럼 빠르고 강력한 기사들은 귀부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목숨 거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점에서 오히려 이때의 여성들의 대우가 좋았다는 점이 놀랬다. 어떤 신사적인 귀족은 지나가는 여성에 대해 모두 경의가 담긴 인사를 보낸다. 우연히 한 젊은 여성에게 경의를 담은 인사를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창부였다고 한다.
주변에 모두 창부에게 그런 경의를 보여 주냐는 말에, 그 귀족기사는 “난, 정숙한 여자 한 명에게 실수로 인사를 빠트리기보다는 열 명의 창부에게 인사를 하는 쪽을 택하겠네.”라고 했다. 왠지 모르게 게오르크 뷔히너의 작품 <당통의 죽음>이 조금 생각난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한창 피를 뿌릴 때 여기에 환멸감을 느낀 당통이 창부와 같이 뒹굴어대는 행동을 한다. 창부 역시 당시 착취 대상이나 한편으로 모멸의 대상이다.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 박애 정신을 주창한 당통이 창부와 노는 점과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의 눈 밖에 난 이유로 단두대 아래 목이 잘린다.
그러나 결국 그 창부는 프랑스혁명 전후 상황이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다. 가난이란 죄는 계속 억누르고 배고픈 배는 해결할 수 없다. 최근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의 여자주인공 역할 역시 그란 것처럼 나온다. 이때나 저때 모두 현실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원인은 모두 보지 않고, 엉뚱한 부분으로 해결하는 점은 여전한 건 분명하다. 성적인 담론이 나온 김에 신플라톤주의의 엉뚱함이 나온다. 매릴린 옐롬의 <유방의 역사>에서 여자들에 대한 더러움을 말한 것이 나오는데, 이 책에도 소개된 점이 특이했다.
“사람은 가장 더러운 정액으로 만들어지고, 육신의 떨림으로 임신되고, 월경의 피로 자란다. 그리하여 그 열매는 아주 혐오스럽고 불순하여 자라지 않을 것이고 식물은 그것과 맞닿으면 시들어 버릴 것이다. (중략) 만약 개가 그 열매(인간)를 먹으면 미쳐 버릴 것이다.”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인간에게 육체적 가치를 아예 무시한 사고방식이 보인다.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인 libido와 그것을 승화한 생명이 담긴 eros의 가치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 인간이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인 것처럼 성악설적인 요소가 강한 사회적 관념으로 인간은 모두 죄를 지은 존재인 것이다.
그런 정치적 문화적으로 기독교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이 하나의 정치적으로 헤게모니로 작용했기에 유럽 당시의 예술은 즐기기 위한 예술보단 하나의 상징을 나타내는 예술이 많았다.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다. 가령 회화에서는 성모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성인들의 위대한 모습과 업적을 그림을 그렸고, 의식행사에는 의상과 소품 자체에 상당한 정성을 기울인다.
만약 진실한 정치가라면 허례허식부터 줄이는 것부터 중요한 것 같다. 덕분에 세금을 계속 거두어야 했고, 그만큼 농민들에게 부과되는 부담은 과중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위대한 유물은 지금에서 보면 위대한 유산이나 당시로는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증오의 대상이다. 증오의 대상이 감탄과 성스러운 대상이 전화되는 구조에서 어리석게도 현대인들은 그것이 있다고 하여 자신들의 세계에 그러지 않을 것이란 망각을 꿈꾼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나 모든 세상의 물질적 제도적 현상화에선 인간의 노동이 필요하고, 거기에 따른 비용과 희생이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가령 사진예술에서 네이팜탄 소녀는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높은 예술적 가치를 담았으나, 그 안에는 잔인한 전쟁을 담고 있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프랑크 독재정부의 민간인 무차별 살해라는 분노가 숨어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 미술관에 유명작가의 작품, 특히 피카소와 같은 초현실주의자 작품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벽에 걸린 그림을 보기 위해서인지 그림에 걸린 벽을 보기 위해서인지 명확한 판단이 보이지 않는다.
예술이란 인간의 사유와 관념을 담아 넣을 수 있다. 특히 예술이 예술로서 미학적 즐거움을 누리기보단 단지 그 미학적 가치만 부여함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도덕을 반영하는 셈이다. 도덕에 대해 나는 그 시대적 흐름이고, 그 흐름은 권력자가 가진 헤게모니의 반영이다. 물론 민중문화와 counter culture라는 형태도 존재하나, 그런 것을 용납하기 어려운 시기고, 그런 사고를 하기엔 깊숙하게 뿌리내린 지나친 예절과 기독교문화는 다른 문화의 창출이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경건함과 신성함이 주류를 이루기에 아직도 우리는 유명한 유럽 교회와 성당에서 위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면 아름다운 예술이나 그 시대에는 하나의 종교적 의식이니 보는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예술의 흔적이 되어버린 유산과 기록에서 당대는 삶을 살아가는 치열한 한 요소이기에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의 삶이란 이중적인 나사가 계속 돌고 도는 형태였다. 물론 이성을 중시한 르네상스 역시 이성만이 아닌 광기의 이성화가 된 마녀사냥에 피를 뿌렸으나, 지금도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이 정보를 지배하기보단 거기에 지배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면 저 시대가 더 엉뚱한 시기인지 아니면 지금이 더 엉뚱한 시기인지는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명예와 약속을 중요하게 여긴 그 시대에는 차라리 지금의 인간적 관계보다 더 의리와 신의가 있었다. 신용이 자본이라던 현대사회가 오히려 사람을 믿을 수 없기에 오히려 저 시대의 엉뚱한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지 그 엉뚱한 명예와 긍지 때문에 전쟁에서 죽고 패하는 결과에서 인간이 죽으면 아무 것도 남지도 않고 할 수 없다는 어느 분의 말씀대로 낭만적인 삶은 관조하는 것이 아름답지 함부로 실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미가 떨어지는 현대사회의 권태로움 속에 폭발하는 인간의 열정은 조금 배울 부분은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