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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오늘 나는 우연한 기회로 통해 <안철수의 생각>이란 도서를 읽어보았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 했던 부분이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분명히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어느 책을 읽든지 그 도서에는 분명히 좋은 내용이 담겨질 있음은 분명하다. 예전부터 판단했지만, 안철수 교수는 자신의 의지보단 시대에서 요구받은 시대정신에서 정치의 길을 시작한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가 왜 시대에 대한 정신을 했는지에 대한 개인적 사건으로부터 사회구조적인 시점은 우리가 안철수 교수의 생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은 후에 집에 가서 다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저술한 시(詩) 1편을 찾아 아래에 적고 싶었다. 제목은 “굶주린 백성들의 노래”이다.
인생이 풀이냐 나무냐, 물이랑 흙으로만 살아갈거나.
힘껏 일해도 초목만 먹고살라니, 콩과 조 그걸 먹어야 하는데.
콩과 조 귀하기 보배 같으니, 혈액과 생기가 어떻게 기름질쏘냐.
야윈 목은 구부러져 따오기 모습, 병든 살결 주름져 닭살이라네.
우물 있어도 새벽 물 긷지 않고, 땔감 이어도 저녁밥 짓지 않네.
부모자식 사이도 보전하지 못하는데, 길가는 남을 어떻게 동정하리요.
어려운 삶에 착한 본성 잃어버려, 굶주리고 병든 사람 웃으며 보네.
이리저리 앞뒷집에 돌아다니니, 마을 풍속 본디가 이러했으랴.
부러워라 저 들판 참새 떼들은, 잎 떨어진 가지에 앉아 벌레를 쪼네.
고관 집엔 술과 고기 많기도 하여, 이름난 기생 맞아 풍악 올린다.
물론 이 말고 “애절양”을 읽으면 더욱 분노와 슬픔이 자아낸다. 무력한 현실 앞에 절망한 지식인의 허무한 가슴은 쉽사리 뇌리에 잊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안철수 교수도 그렇게 보였다. 의과대학 시절 자신은 종교도 없으면서 성당에서 주관하는 자원봉사활동하면서 어느 소녀의 가정사를 알게 된 것이 안철수 교수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도망치고, 결국 류머티즘을 앓던 할머니와 초등학교 손녀만 남았다. 손녀는 신문배달 등으로 일하려 했으나 결국 참지 못해 중학교 시절 가출하여 할머니는 굶주림과 병으로 결국 운명을 달리 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자원봉사하면서 겪은 그의 현실적 좌절은 이미 정치적인 입장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의사이기에 그는 사람의 건강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았다. 누가 아프면 그 치료를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그것도 모자라 빚을 지게 된다. 병원에서 환자가 불치병에 걸려도 죽지 않으면 퇴원이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빚이 늘어나고, 결국 그 집안은 파산하고 만다. 누군가의 병이 결국 온 가족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병이란 특히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그러면서 안철수 교수 역시 유러피언 드림을 꿈꾸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생각해보니 의료보건문제는 복지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우리 아버지가 올해 봄, 나에게 아버지가 과거에 있었던 불행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한이 가슴 깊이 묻혔는지 말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서러움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막 근대화라는 이름이 붙은 시기에 한국이란 나라에 배고픔과 가난으로 인해 결핵을 앓는 배역들을 자주 본다. 그러면서 저런 것이 있었나?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집안에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좋은 직장에 결혼까지 하여 잘 살고 있는 내 친형이나, 내 친형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당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안 거주환경이 좋지 못한 까닭에 결핵에 걸렸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나 히로인들이 결핵에 걸려 비극으로 치닫는 그 병을 말이다. 당시 집이 너무 가난하여 치료를 다 해도 퇴원할 수 없었다. 병원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퇴원을 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병마로 사지에 있던, 가난으로 서러웠던 나의 부모, 아버지의 말로는 어머니는 얼굴에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에서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당시 우리 집에 같이 살던 내 작은아버지는 바가지에 찬물을 담고 거기에 생라면을 넣어 밥을 먹었다고 한다. 겨울 빚을 내어 퇴원했다고 하나, 그 당시의 트라우마는 그럴 걱정할 필요 없을 만큼 지내도 남아있었다. 그 후로도 연탄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가스에 종종 중독되어 고비를 맞이했다고 한다.
안철수 교수의 말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병으로 인해 죽음의 공포와 파산의 공포까지 떠맡아야 한다. 안철수 교수가 겪은 일들, 그리고 내 가족에게 직접 찾아온 지난 시절의 아픔들은 그야 말로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 교수는 유러피언 드림과 동시에 그 모델국가를 스웨덴이란 복지국가로 선정했다.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그러면서 자기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 안철수 교수 역시 앞으로 선진국이 되는 길은 사람에게 투자하고 그 사람들이 모두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이였다. 최근 경제민주화란 말처럼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많은 가난한 서민들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안철수 교수는 복지국가 스웨덴처럼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가치관을 종용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를 중시했다. 책을 읽는 내내 기본적인 마인드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존 롤즈의 <정의론>과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드러나는 사상적인 요소가 확연히 보였다. 저런 비참한 굶주린 백성들의 노래가 울리는 이유는 사회적 분배와 정의에 큰 문제가 있었다. 롤즈의 <정의론>에서도 교육의 기회에 대한 균등적 평등과 최소 수혜자에 대한 보장은 안철수 교수가 바라는 정치적 입장이었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인권으로부터 시작이다. 토머스 페인의 <인권>은 바로 미국독립전쟁과 헌법의 기반이었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의 정신이고, 근대와 현대를 지나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 헌법의 기초가 되는 모든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명제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이 쉽지 않다. 안철수 교수의 그런 비참한 가족의 몰락과 고단한 안철수 부부의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에서 인권의 열악함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병으로 보았다.
안철수 교수의 진심은 이미 언론에서 보았으나 책에서도 강조했다. 힘이 없는 약자와 특히 노동자들의 문제, 지난 쌍용자동차 해고와 관련하여 22명의 사람들이 충격에 의해 목숨을 버려야 했다. 어떤 사람은 타워크레인에서 계속 머물러 있어야 했다. 돈과 배운 것이 없기에 그저 당해야 하는 이들에 대해 안철수 교수는 반드시 이들을 안정된 삶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4대강 공사에도 20명 넘는 노동자들이 강압적인 공사 진행으로 목숨을 잃었다. 왜 이들의 목숨은 잃어야 하는지? 이들의 죽음은 왜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지? 이들의 죽음은 왜 감추고 사라져야 할 기억인지? 이들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사회적 분란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에 정의란 있는 것인가?
대기업의 성장은 중요하다. 국가성장과 거대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고, 거기에 근무하는 정직원의 수 역시 더 제한적이다. 남은 인원은 결국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우리 국가적 문제와 국민의식의 문제에서 나는 현실에 대한 판단보다 허망한 꿈에 대한 집착이다. 대기업에 가기 위해 스펙만 요구하고, 학생들의 인격이나 개성을 무시하며, 공장에서 레니메이드처럼 찍어내는 물건처럼 대하는 비윤리적 행동에서 탄식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남의 머리를 밟고 올라가 그들을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를 바란다. 양극화의 절대적 차이로 사회는 병이 든다.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안철수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책에 빠졌다. 나도 얼마 전에 읽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으나, 그는 <페스트>란 소설을 읽으면서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인문정신이 사라진 한국에서 자유로운 발상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열리지 않은 세계이다.
윤리적 입장에 대한 공감보단 이분법으로 이루어진 경쟁구도는 결국 낙오자를 만들게 하여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회적 악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지난 소득양극화와 가계부채의 증가는 서민들의 입에서 비명과 고통의 메아리를 뱉어내게 했다. 메아리는 다시 돌아오므로 아주 높고 높은 관아에는 벽에 소리가 가로 막혀 그저 사라질 뿐이다. 이들의 비명소리를 안철수 교수는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아픔을 같이 해결하려한 의지가 돋보인 서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도 한계점은 있었다.
안철수 교수의 의견을 1사람이 1권으로 끝낸 점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대화를 나누며 사고와 의견을 나누어야 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은 국내 서민경제나 노동문제, 교육문제일지 모르나, 국제적 정세나 외교문제에 대한 부분은 많이 미흡했다. 물론 미국경제의 위기에 따른 점과 FTA협상 과정도 포함되어 있으나, 그런 점인 미국과 중국의 외교에 국한된 점이고, 통일문제와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다 정리한 부분이란 점이다. 국민적으로 바이러스백신의 의사로도 중요하나 이 서적에 가진 의미는 재야의 지식인으로서 안철수 교수가 정치라는 것에 얼마나 큰 사고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안철수 교수와 다르나 노무현 前 대통령과 기본적 사상이 유사한 것을 알았다. 예전에 <마지막 인터뷰>, <성공과 좌절>, <진보의 미래>, <노무현의 서재> 등을 읽으면서 안철수가 가진 생각들이 위 책들에서 많은 일치성을 보여주었다. 당시 노무현 前 대통령은 자신의 시대에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와 좌절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 나가 달라고 했다. 안철수 교수 역시 만약 실수가 있거든 그 실수의 원인을 찾아 근본을 수정하고, 추후 다시 제대로 기틀을 다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완벽할 수 없다. 오히려 실패와 좌절, 그리고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더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현실이다. 그것에서 좌절하지 않은 사람, 모두가 따뜻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 안철수의 생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