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2
강풀 글 그림 / 재미주의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풀이 돌아가신 노무현 前 대통령 추모를 위해 3년 동안 티에 들어가는 캐릭터를 그려 넣었다. 2012년 올해는 어느 초로의 늙은이가 검정 고무신에 노란 밀짚모자를 쓰고 뒤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노무현 前 대통령의 다룬 다른 웹툰인 노공이산을 보면서 <순정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이 보였다. 경상도 남자라는 특유의 거친 말투와 행동에 당시 그의 아내와 결혼 전에 재미난 일화가 있다. 군대 입영 전에 그녀를 불러내어 이야기하던 모습이 인상 깊다.

 

 

그녀 : 공부하면 공부나 열심히 할 일이지 사람은 와 불러내노?

 

그 : 집을 지으려면 기둥이나 대들보도 필요하지만 서까래나 장식물들도 필요한 거 아이가?

 

그녀 : 그럼 여자는 서까래나 장식물 같은 사람이란 말이가?

 

아차 하고 그는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 후회하나 이미 지나간 말은 담을 수 없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실수 일까나? 아니면 당시 남자들의 스타일이라고 할까나, 그는 그렇게 제대하고 나서 그녀가 생각나서 공부가 되지 않았다. 장난이 심한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장난을 친다고 할까나? 나무 뒤에 숨어서 그녀가 책을 가슴에 품고 지나갈 때, 개구리 한 마리를 던져 그녀를 매우 놀라게 한다. 아마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그녀 주변을 서성인다. 어느 날 짜증이 머리까지 올라온 그녀가 그에게 말은 건다.

 

 

그녀 : 이런 장난 좀 고마하면 안돼?

 

그 : 크크크... 재미없드나? 나 책 쫌 빌리도

 

그녀 : 우짠 일이고? 법전 아니면 쳐다도 안보는 니가!

 

그 : 내도 톨스토이 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알고!

 

그녀 : ?

 

그 : 니가 아는 건 내도 알고 싶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낮에는 서로 공부와 일을 밤에는 밤하늘에 별을 보면 논길을 손잡고 걷는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녀 : 빌려간 책을 베개 삼아 잠만 잔거 아니가?

 

그 : 내도 <안나 카레리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고 억수록 감동받을 줄 안다! 내는 뭐 법전으로 맹근 밥 묵고, 먹는 물도 유죄 무죄 따져 가... 무신 사랑을 법적으로 하는 줄 아나!

 

그녀 : 호호호

 

 

뒤에 달리는 이야기해설은 감동이 온다. “밤하늘이 쏟아질듯 은하수가 흐르는 여름날, 벼이삭에 매달린 이슬에 달빛이 떨어지면 들판 가득 은구슬을 뿌린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사이 논길을 따라 걸었다. 2년 동안 커피 한 잔 값 들이는 일 없이 맨입으로 연애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도시화 된 곳에 이런 소박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래도 뭔가 모르게 무언가를 이끄는 매력은 충만하다. 이런 밤하늘에 별을 보면서 산책하는 소박한 이야기가 강풀의 <순정만화>에도 녹아있다. 강풀도 모두 잠이 들 때 홀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그를 그리워하듯 말이다. 어째든 <순정만화> 하권으로 가면 그들의 단순한 사랑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행복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거울이 되어 새로운 자화상을 비추어준다. 지나간 날에 대한 회상과 반성, 그리고 성장과 미래에서 말이다.

 

주인공 연우를 보면 그는 고3시절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어 아무도 없이 혼자 고독 속에 자신을 버렸다. 친구 규철이가 우연히 장례식장에 준 담배, 그는 담배만 피우던 사람이고, 예전에 살던 집에 있으면 부모님 생각에 괴로워 홀로 아파트 5층에 왔으나, 그가 어디에 있든지 외로움을 버릴 수 없었다. 그저 담배만 피우다 새벽의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 그에게 마음을 나눈 수영은 예쁘장한 여고생이나 뭔가 삐뚤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저항적이고 남들에게 거친 말투를 사용한다. 수영은 본래 아버지가 있었으나 그 아버지가 사실 어머니와 이혼했다는 점, 그리고 새 아빠와 새 오빠가 왔다는 점이다.

 

수영은 연우에게 그날 자기에게 떠나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아주 외롭고 쓸쓸하고 처량하며 차마 따라갈 수 없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아버지였다. 연우에게 그런 모습이 보인 이유는 연우에게 그 외로움이란 짐을 평생 가지고 살았으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남자의 고뇌였다. 이 책에서 아마 내가 가장 남자로서 공감 간 부분이다. 한국에선 남자들은 꼰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것은 뒤돌아서면 자신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것이고,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수영이 왜 그날 아버지는 뒤도 안보고 그냥 갔는가에서 규철이 하경에게 이별을 고하고 떠날 때의 그 모습과 동일하다.

 

꼰대 같은 한국남자들의 이면성이 그들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수영의 어긋난 삶의 모습과 연우의 처량한 모습에선 외로움과 그리움이란 뿌리 깊은 상처가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래서 <순정만화>에선 그냥 순정만화가 아니라 인간의 성장에도 관심을 둔다. 특히 하경이의 경우 수영이처럼 그 쓸쓸한 뒷모습을 규철이에게 발견한다. 규철은 회사에서 강제 퇴사하여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회사에도 입사원서가 그대로 무효로 돌아간다. 그래서 내일에 대한 자신이 없기에 오히려 하경이를 아끼는 마음에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남자에게는 그런 심리가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직접적인 것은 아니나 간접적인 경험에서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규철은 하경이에게 자신의 눈물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꼰대 같은 행동을 한다. 그때 하경이에게 강숙이가 불쑥 나타났다. 규철의 행동에 허무해하던 하경은 고등학생인 강숙과 같이 맥주 마시는 도중, 강숙의 행동에 크게 웃는다. 슬프나 강숙의 행동에 그저 크게 웃은 것이다. 강숙은 그런 크게 웃던 하경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다시 행복한 미소와 웃음을 말이다. 그렇게 하경에게 상처를 준 규철은 알고 보면 누구보다 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남자들이 좌절을 하여 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은 최고이면서 최악의 선택이다. 나 때문에 상대를 힘들게 하지 않겠어! 라는 책임의식, 그런 좌절의식에 그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붕어빵 가게 아주머니가 보여준 삶의 의지에 감동받는다. 가게가 거리순찰을 하던 공무원에게 모두 박살나지만, 아주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삶의 의지에서 규철은 거기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붕어빵을 파는 가게 옆에 그는 넥타이와 목도리를 팔고 있던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자신에게 새로운 희망과 사랑은 찾아오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전부 희망만이 좋은 일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강숙이가 하경이에게 선물한 목도리를 규철의 가게에서 파니 말이다. 거리의 상인과 그 상인의 옛날 연인이던 하경의 마주침, 그리고 그것을 보는 강숙과 붕어빵 가게 아주머니, 이들의 마주침에서 알 수 없는 슬픔, 우울, 허무함이 교차한다. 다시 시작하려고 한 그 계기의 순간에서 위기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강풀은 그것만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하자고 하는 것이다. 강풀의 웹툰 <순정만화> 시리즈는 뒤에도 계속 나온 것으로 안다. 그 중에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영화로 만들어져 매우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들었다.

 

작지만 뭔가 마음 속 깊은 곳에 감동을 주는 강풀 작가, 그가 바라보는 감동이란 거대한 서사물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추구하지 않는다. 물론 최근에 개봉한 그의 작품인 <26년>은 매우 거대한 역사적 순간과 비극적 사건으로 풀어놓은 한 맺힌 이야기지만, 그 이외에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일상에 머물러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스쳐갈 지 모른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은 순정만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