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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1 ㅣ 강풀 순정만화 1
강풀 글 그림 / 재미주의 / 2011년 8월
평점 :
강풀, 이번에 영화에서 개봉된 <26년>으로 처음 작품을 접해보았다. 물론 그의 이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학회에 세미나를 들을 때 그때 같이 가시던 디자인학부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시는 한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당시 작년 초였던가?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시장의 열악한 환경에 따른 회생방법으로 한참 웹툰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진두적인 작가가 강풀이었다. 강풀의 웹툰으로 영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희망적인 의견을 당시 그 교수님이 나에게 하셨다. 한국 만화의 침체에서 웹툰의 인터넷에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은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문화에 큰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바람의 선두를 어디인지 나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강풀의 히트작이면서 지금은 연극까지 하고 있는 작품, <순정만화>를 읽어보기로 했다. <순정만화>라고 하여 보통 순정만화라고 하면 로맨스가 들어간 편이나 그 로맨스에는 왠지 모르게 너무 낭만성을 추구하는 바람에 현실에 대한 배제가 너무 격리되어 있는 한계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남자는 왕자나 재벌, 여자는 무명의 회사원이나 아르바이트생으로 말이다. 현실에서 과연 그것이 얼마나 일어날 확률이 있는가에서 현실적 접근이 불가하고, 오히려 더 몽상에 가까운 것이 현실처럼 다가오길 바라는 신화와 같았다.
물론 강풀의 <순정만화>는 실제 인물이 존재하거나 또는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일어나면 좋겠다는 하나의 시라는 것이다.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란 말에서 이 웹툰을 모운 만화가 철학의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까지는 아니나, 적어도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철학적 요소가 없다고 볼 수 없다. 우리 일상생활에 희망이 있는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지, 아니면 언제까지 우리는 과거에 매여 자신의 모습을 자학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내가 과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려는가? 라는 질문이 온다.
어렵지 않게 충실하게 마음으로 다가오는 강풀의 웹툰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감정의 애수를 느끼게 한다. 예술에 대한 부분에서 미적 감각은 철학보다 더 보편적인 것이 칸트의 말이다. 말은 어려워도 우리 일상적으로 미,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대부분 보편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일상 속에서 볼 수 없기에 우리는 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말을 한다. 인간이란 언제나 story-teller인 동시에 story-hearer이기 때문이다. 소통에서 듣고 말하기는 서로간의 마음을 전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런 점을 바로 강풀의 <순정만화>에서 추구한 것이라 본다. 그런 점에서 단행본 상권을 보면 사람들의 인연은 아주 사소한 계기라는 것이다. 아니 사소한 일상의 반복과 반복으로 인한 다져짐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 일상의 반복과 반복에서 그 반복의 순간만 우리는 누적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인가 하나의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 갇혀진 내 마음 속에 답답함과 소심한 용기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 등등까지 말이다. 1화부터 인상 깊은 것은 어느 여고생 수영의 입에서 나온 욕이다. 아침 지각할까봐 기분이 영 내키지 않은 상태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멈추고 만다.
그 옆에는 5층에 사는 소심한 샐러리맨인 연우가 소심하게 수영의 행동에 눈빛만 본다. 그런데 예쁘장하게 생긴 수영의 입에서 “아이 씨빨 조땐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얼어버린다. 조금 인상이 날카로워 보인 여고생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침묵의 엘리베이터는 결국 1층으로 내려가나, 연우는 거기서 수영의 위압에 주눅이 든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 멍하니 수영과 같이 내려가다가 자신의 넥타이가 수영의 넥타이 색과 비슷한 것을 보고 똑같다고 하는데, 수영을 그 모습을 보고 그냥 무심히 보자, 연우는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서 후다다 거리며 도망친다.
그런 바보 같은 모습에 수영은 비웃으면서 한편으로 호기심이 생긴다. 그런 도중 수영은 아침에 넥타이를 매지 않아 연우의 넥타이를 달라고 한다. 연우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수영에게 넥타이를 주는데, 나처럼 끈 넥타이를 맬 줄 몰라, 지퍼 넥타이를 꺼내려다 자기 얼굴에 걸리는 모습이 나온다. 거짓 없는 연우의 행동, 그리고 그 연우가 보여준 호의에 수영은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넥타이를 준다. 이렇게 조금씩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고, 한편 다른 쪽에선 고등학생 강숙과 캐리어우먼인 하경의 관계가 보인다. 하경은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는 차가운 도시의 여자다.
그녀가 담배에 입에 물고 라이터가 없자 옆에서 누군가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여준다. 아무리 봐도 결코 어울리지 못할 그들, 그래도 강숙은 상관없다. 언제나 하경에게 달려가고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달래려 한다. 자신에게 반응이 오지 않아도 그저 달려가는 강숙, 그의 마음은 오직 1가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았다. 그러나 하경은 허무한 자신의 심정을 달랠 길이 없어 그저 묵묵부답이다.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을까 하는 심정에 강숙을 차갑게 대하나, 한편으로 그의 간절함이 그녀의 일상을 더욱 혼란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샐러리 쑥맥 회사원과 여고생, 그리고 화가를 꿈꾸는 고등학교 남학생과 커리어우먼, 이들의 관계는 왠지 모르게 현실에서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인데도 각자의 마음을 전해주기 위해 살아간다. 특히 연우와 수영의 모습은 작고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자신보다 12살이 어린 수영에게 마치 동등한 인간으로 존대해주는 연우와 그런 연우에게 솔직한 심정을 전하는 수영은 일상적으로 흔한 존재일 것 같은 사람이나 뭔가 특별해 보인다. 낭만적인 것은 겉으로 보기엔 웅장하고 비장할 것 같으나 막상 그 안에 갇힌 자는 고뇌의 순간이다. 따라서 낭만주의적 연애는 자기가 할 수 없기에 타인으로 대리만족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낭만적 사랑이 현실적으로 매우 일상적으로 소소하게 잔잔하게 그리고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연우와 수영의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에 반해 강숙과 하경은 성난 폭폭 위에 떨어지는 나뭇가지처럼 매우 험난해 보인다. 하경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으면서도 괜찮다고 하는 강숙은 아직 철없어 보이나 보통 남자들이라면 한 번 정도 꿈꾸고 싶거나 혹은 직접 해봤을 캐릭터다. 단지 강숙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다면 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 먹은대로 쉽지 않다. 그 가능성은 모든 것에 대한 바침과 동시에 포기다. 자신을 불태움으로 그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4사람 사이에 다른 풋풋함이 나온다. 길거리에서 넥타이와 목도리를 파는 규철, 그 옆에는 포장마차에서 붕어빵과 간식거리를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왠지 소박한 거리의 장사꾼들, 우리 일사에서 흔히 보는 서민적 모습이다. 우리가 항상 기대하고 보는 순정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동화 속 왕자나 공주가 대부분이다. 현대생활에서는 화려한 백화점과 고급승용차, 아니면 외국의 고급스러움을 추구한다. 왜 우리는 진실한 낭만을 그런 곳에서 찾을 생각만 하는 것인가? 작은 것에 대해, 혹은 일상적인 것에 대해, 그것이 좁다면 도서관의 책들 사이에도 좋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소중한 이야기와 인연을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으로 욕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진실한 낭만은 자기에게 오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않다. 그런 물리적인 환경보다는 자신이 가진 마음의 틈새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필요하다. 마음의 틈새라고 하면 무엇인가 간절한 마음으로 인해 그것이 나도 모르게 넘칠 수 있는가이다.
그 마음이 넘치지 못해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을 나나 주변에서 보는 일들이다. 12월 추운 겨울,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그다지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금방 녹아 버려 눈송이가 어느새 빗줄기와 물줄기로 바뀌어 생명을 담아갈 하천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에 눈이 오지 않는다고 편의점에서 눈 스프레이를 뿌리는 연우의 순수한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변화할 주체는 나라는 존재임을 생각해본다.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