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이후의 제3 인터내셔널 풀무질 신서 10
레온 트로츠키 지음, 정민규 옮김 / 풀무질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유명한 영화 1편이 있었는데, 그 영화제목이 <굿바이 레닌>이었다. <굿바이 레닌>의 의미에서 레닌이란 사람은 1924년에 병으로 죽었으며, 그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에서 가장 선두적인 지식인이자 지휘관이었다. 그런 그가 왜 굿바이가 되었나? 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본 것은 아니나, 어느 영화비평 내지 문화연구 도서에서 자주 나오기에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다. 1989년 11월에 독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해 1990년 독일은 통일정부를 맞이한다. 문제는 통일된다고 것이 아니라 그 이후가 문제다. 항상 인간의 실수는 무엇을 한다보다는 그 무엇을 하고 나서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숙고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들은 이미 한국사나 세계사 전반에 깔린 하나의 테제이다. 세상은 하나만 충족되고 나서 또 다른 하나가 시작된다. 결국 거대한 서사라고 볼 수 있는 이 세계는 그 서사의 시작과 동시에 끝이 또 다른 서사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극이란 점이다. 그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세계의 비극은 멈추지 않은 브레이커 빠진 벤츠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넘어가 왜 이 영화를 내가 언급했는가? 주인공 남자청년은 어머니가 아직도 통일독일을 인식하지 못해서 친구들과 짜고 거짓행세를 한다. 정규TV에는 모두 서독주관 방송국이 퍼지고, 음식물과 공산품마저 서독에서 나온다. 그 청년은 병약한 어머니가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만약 이 통일자체가 인정될 경우 충격을 받을까봐 거짓행세를 한다.

 

친구들과 짜고 TV뉴스에 동독위주 방송을 하고, 서독 음식과 물건에 동독 과거 가격표를 붙인다. 이미 동독의 화폐는 소용없기에 그들의 행동은 무척이나 코믹하고도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모순으로부터 꾸준히 불러내야하는 그들의 아이러니한 세상살이에 많은 고뇌가 있었다. 국가라는 조직체계가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경우 모든 사람들에게 혼돈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어머니는 알게 되나, 그 영화 뒤편에 놓인 시대적인 흐름에 적응하는 인간과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 서독과 동독이 합치기 이전의 서독은 공산정권이라고 하나 - 실은 관료주의 체계이지만 - 이들이 분리된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해 자본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이 서로 분할했기 때문이다. 이때 분할에 참가한 국가가 소비에트연방인데, 당시 소비에트 최고 권력자는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이 독일을 분리했지 결코 레닌이 하지 않았다. 또한 스탈린은 1939년 독일 권력자인 히틀러와 독소 불가침 조약까지 맺은 자이니,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침략하지 말자는 히틀러가 결국 소비에트연방으로 침공하여 소비에트연방은 군사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물론 1937~1938년 사이에 일어난 국가적 대숙청에서 스탈린 옆에 있던 부하린의 죽음이 심각한 원인이었지만 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굿바이 레닌>에서 <굿바이 스탈린>으로 보는 것이 현명하다. 세계의 모든 공산국가 대부분이 레닌이 만든 체계가 아닌 스탈린이 만든 체계로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곳으로 북한을 볼까나? 이들은 스스로 인민민주공화국이라 하나, 실상은 관료체제와 독재정권과 거기서 비롯되는 폭력과 억압, 숙청으로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니 차라리 여기는 공산주의국가도 아니면서 공산국가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아닌데 공산당만 존재하는 comedy show가 열리는 셈이다. 솔직히 보자면 문명이 조금이라도 들어온 국가라도 아주 예전에 버린 봉건군주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대통령 후보에게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면서 막상 마르크스주의와 별개인 스탈린주의에 연동하여 색깔론을 펼치는 수준 낮은 정치철학에 경악하는 바이나, 적어도 그런 국내정치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잘 지적한 도서를 발견했다.

 

과거에 레온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을 읽었는데, 이 책은 트로츠키가 러시아에서 추방되면서 1936년 멕시코에서 저술한 도서다. 스탈린은 이 도서를 읽은 후에 엄청나게 경악했다고 한다, 그 후 1937~1938년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그렇게 시작했다. 한국역사에서 비추어보면 당시는 항일운동 시기인데, 많은 조선독립 운동가들이 러시아나 중국에 있었는데,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스탈린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유형을 떠나게 되어 카자흐스탄과 같은 동유럽으로 가게 되고, 이른바 까레이스키라는 러시아어 권에 정착한 해외동포들이 생겼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죽음 역시 스탈린이 소비에트의 모든 권력을 잡은 시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보면 스탈린의 업적은 민폐의 대왕이라고 할 것이다. 어째든 이 스탈린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 전에는 에릭 홉스봄의 서적명대로 극단의 시대라면, 21세기는 폭력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세기는 이념 냉전이라면 이번 세기는 자본들의 냉전이다. 그런다고 하여도 21세기는 20세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20세기의 철학은 19세기 철학에서 지배받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19세기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 역동의 시기에 20세기의 대표적인 사건은 1차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도 있지만, 러시아혁명 역시 피할 수 없다. 러시아는 1905년 피의 일요일인 혁명, 1917년 2월 차르왕권 붕괴, 1917년 10월 볼셰비키혁명으로 연결된다. 1세기에 혁명이 3번이나 있었고, 그것이 20세기 초반에 몰린 점에서 20세기는 억압과 압제의 폭력과 거기에 대응하려는 폭력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혁명과 그 이후의 일들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 창립하여 레닌이 살던 시절까지는 이들은 지금과 같은 폭력국가인 북한을 연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고, 레닌이 만든 소비에트연방과 공산주의 노동자 국제연합인 communist international 즉 축어로 코민테른이 완전히 정치권력의 도구로 삼았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은 연속혁명적인 관점이었고, 레닌은 그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에 따라 마르크스주의로 활동하다가 러시아혁명 후에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차르왕권의 장교나 귀족, 그리고 관료집단 케렌스키와 같은 부류들이 다시 폭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과거 프랑스혁명에 앙시앵레짐(구체제)을 해체이후에 로베스피에르의 폭정과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인해 프랑스혁명은 어이없이 무너졌다.

 

10월 혁명은 프랑스혁명의 되풀이를 반복하지 않음이지만, 그 후가 문제인 것이 러시아는 차르체제 당시 매우 극빈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빵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고, 농촌에서 문맹의 수준은 매우 심각했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의 참전으로 많은 군비를 지출해야 했다. 러시아혁명에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공하게 한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정책적 쟁점이다. 레닌은 우선 사회주의국가 노선에서 자신들이 이룬 것은 이제 시작이고,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러시아 이외에 각국의 노동자와 식민지 지배를 받는 약소국가의 국민과 결합하여 새로운 민주주의를 확립하려고 했다. 이와 달리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를 찬동했고, 거기에 따라 관료주의체계로 소비에트연방을 탈바꿈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이전에 소비에트연방이 독재국가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소비에트연방과 대결구도를 나선 것이 미국과 서유럽의 선진국이 아니라 어떤 한 남자라는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을 집필한 레온 트로츠키란 점이다. 그도 레닌과 같이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레닌이 살던 시절 NEP(new economy plan)을 기획한 자다. 소비에트연방이라고 해서 자본주의체계에서 실행하던 방법을 도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자가 러시아혁명에서 레닌 옆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했고, 혁명 이후 차르정권에서 권력을 누리던 백군에 대항한 사령관이었고, 각종 외교와 내정을 해결한 사람이었다. 따지고 보면 가장 러시아혁명과 소비에트연방의 중심축에 있던 사람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과의 정치적 경쟁에서 패배하고, 러시아 내의 유형지에서 외국으로 추방당하고, 그 외국조차도 추방과 암살의 위협, 친구들의 죽음을 당해야 했다. 심지어 파시스트를 적대시하던 자들이 트로츠키와 그 일당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파시즘 국가의 동조자라고 할 정도이니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1940년 스탈린의 자객에 의해 피켈을 맞고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그런 자의 서적들과 기록, 많은 증거물들이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트로츠키 연구소란 곳에 관리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트로츠키가 <레닌 이후 제3 인터내셔널>을 집필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은 스탈린정권과 스탈린주의자들이 하고 있는 오류와 모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레닌이 남긴 유산을 모조리 풍비박산을 낸 것을 비판하고 있다. 레닌은 코민테른 회의에서 세계의 식민지 국가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레닌은 자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폭력과 억압을 해체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는 고립된 국가이므로 상대국가와 다른 연합이 조직할 수 없기에 관료조직이 되고, 그것은 과거의 차르체제처럼 되는 것이다.

 

그런 체계가 되어가면서 트로츠키가 집필하던 1929년 유배 및 망명시절에 소비에트는 점차 독립국가 보다는 독재국가로 되어갔다. 관료주의 최고 문제점이 민중들과 소통이다. 소비에트 공산당에는 노동자들이 다수 참가하여 노동자들의 문제점과 국가적 정치방향을 요구했다. 조금 민주자유주의국가와 다른 모습이나 일반 시민이 직접 당원이 되어 국가정책에 요구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서로간의 체계나 구조가 달라보여도 그 의미와 맥락은 비슷하다. 단지 돌아가는 꼴이 서로 뒤죽박죽이란 모순과 왜곡에 의해 엇갈리는 것이 큰 문제점이라 볼 수 있다.

 

점차 소비에트와 코민테른이 노동자를 위한 곳이 아닌 노동자를 억압과 통제로 이어지면서 소비에트는 가난한 국민들이 넘치고, 오히려 NEP-man과 부농인 쿨라크의 이익만 증대되어 가고 있었다. 도시의 노동자들은 임금은 그대로인 반면 물가는 오르고, 일자가 줄어 청년실업자에 교육여건도 악화되어 초등교육 의무까지 불안했다. 농촌에 쿨라크의 이익증대는 반대로 빈농의 증가와 중농의 쇠락을 의미한다. 스탈린이 트로츠키의 경제활동에서 쿨라크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면서 쇼비니즘을 자극했다.

 

민족차별주의를 내세워 트로츠키를 맹비난했다는 것이다. 쿨라크의 반대와 더불어 트로츠키의 영향은 위축되었으나, 이후 스탈린의 5개년 경제계획에서 쿨라크들은 모든 재산과 심지어 목숨까지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트로츠키는 이런 행위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으며, 이 비극이 일어난 것에 대해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자신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탈린과 코민테른을 계속 비판했다. 1927년 전후로 영국과 독일에서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코민테른의 연합까지도 비판했다. 스탈린체제는 영국과 독일 노동자운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그들의 총파업은 유혈사태로 끝났다.

 

파업의 원인은 임금문제, 노동권 보장 등과 같은 생존의 권리였으나, 대부분 역사 속에서 보면 많은 파업자들이 몰락과 죽음을 관찰한다. 물론 스웨덴과 같은 국가는 상당히 선진국이면서 복지국가이나 막대한 죽음과 희생에 의해 유지된 점이니, 유혈사태라는 희생의 플롯은 멈추지 않은 또 다른 서사이다. 중국에서 장개석은 항일운동을 위해 중국공산당과 연합하나 뒤에 배신하고, 중국에서 공산당원은 체포즉시 즉결처형이었다. 칼로 목을 베는 참수형의 사진을 보면서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무능함과 방종함 그리고 이기심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셈이다.

 

마오쩌둥이 중국의 혁명으로 통해 공산국가를 만든다고 하나, 지금 중국의 모습을 보면 그저 관료주의국가에 불과하며 소득차별과 민생안정, 게다가 치안상태는 엉망이다. 중국 역시 마르크스주의와 관련 없이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타도하려던 그 모습과 똑같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국제정치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그렇게나 타도하던 스탈린의 영향이 이토록 거대하게 될 줄 누가 감히 상상조차 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소비에트연방의 문제와 앞으로 대한 정책적 방향을 강조하는데, 그 방향은 세계 어디라도 아니 국내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 내지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는 사항들과 많이 일치한다.

 

기본골격은 모든 정치인들이 추구해야할 방향이나 슬로건과 달리 행동이란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면이다. 항상 정치적 상황을 보면 역사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라고 의문을 던져본다. 그것은 왜 지금이 지금처럼 되었는가? 그때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렇게 되게 한 원인이나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은 우리나라 역사도 좋고 러시아나 중국역사도 좋고, 심지어 저 멀리 있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 미국 등과 같은 나라의 역사도 좋다.

 

인물과 시간적 공간적 조건은 모두 다르게 일어날 수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프로세스라는 하나의 체계성은 유사하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나, 민족, 지리적, 환경적 조건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도 기본적인 과정의 구조는 유사하다. 트로츠키가 저술한 <레닌 이후 제3 인터내셔널>은 트로츠키 자신 역시 레닌이 없다는 사실과 최고 타도대상인 스탈린도 죽었고, 스탈린의 권력을 부리던 소비에트연방도 사라졌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지금의 국제정치역사에서 그 과정적 구조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현재는 과거로 이루어진 현상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