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쇠퇴했습니다 4 - J Novel
다나카 로미오 지음, 야마사키 토오루 그림, 곽형준 옮김 / 서울문화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는 쇠퇴했습니다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가 이것이 작품성으로 보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판단한 것은 바로 라이트노벨 인류는 쇠퇴했습니다의 4번째라고 볼 수 있다. 인류는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에서 이런 역사적 문명과 사회적인 현상 그리고 이변에 깔린 보이지 않지만 결국 계보학적으로 따지면 찾게 되는 부패한 모습을 여기서 아주 코믹한 메르헨으로 펼쳐진다. 이렇게 지독한 black comedy가 얼마나 존재할까? 그 지독한 패러디 같은 아이러니가 펼쳐지면서 메르헨 속의 현실이란 말에서 오히려 가상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현실을 찾아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런 맛일 것이다.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meta-physics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meta를 한 번 더 날리게 되면 pata-physics라는 것으로 변모한다. 결국 형이상이상학이란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인간이 아이디어가 모든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해낸 어느 이미지가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예전에 <동물농장> 저자 조지 오웰이 결코 원하지 않은 세상이었으나 어느 순간 되어버린 <1984>적인 디스토피아가 우리 현실을 지배한다. 스크린으로 통해 오세아니아 국가의 관료를 관찰하고, 작은 곤충이 알고 보면 감시와 도청을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원스턴 스미스가 빅 브라더에 대한 적개심과 탈사회적 행위, 그리고 그 나라의 배척자 골드스타인에 대한 동정심까지 감시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처럼 감옥의 역사, 그리고 아르망 마틀라르라는 프랑스 파리8대학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저술한 <감시의 시대>라는 책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원하지도 않은 상상의 세계가 현실적 디스토피아로 구성된다. SF라는 공상과학영화가 비록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아도 현실처럼 다가오는 것이 바로 현실의 모습을 개연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그 모습을 비틀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특정인물의 이름과 외모, 심지어 조건들을 판을 따서 그대로 그 사람에 대한 비판을 날린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의 영화제작들은 삶의 고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마련이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4권은 그런 권력에 대한 어두운 모습을 메르헨 세계로서 아주 재밌게 다룬다. 이 작품에서 주요 등장인물이 있으니 바로 UN국장이다. 인간들의 생활에서 자원과 생산력의 저하로 생존이 어렵게 되자, 요정들이 과거 인간이 만든 공장을 개조하여 요정사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거기 관리인과 공장장이 인간이었다.

 

공장장인 UN국장은 이상한 물건이 마을로 들어오는데도 그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로 주인공에게 추궁 받는다. 그 중 주인공이 선택한 키워드가 인상 깊다. “1.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다는 말씀이시죠?, 2. 문제, 3. 보상, 4 처벌.” 이 말에 대한 국장의 반응은 “우오, 우웃, 으극, 노오!”라고 한다. 대답도 못하고 그저 책임회피 궁리만 찾다가 주인공이 이 공장의 이사진들을 찾아 그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자, 국장은 이사진의 문제가 드러나면 그 다음의 직권력을 가진 자신이 이 공장과 회사의 주인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마치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정치가의 풍모가 보인다. 나중에 그의 발언은 엉뚱하나 바로 우리의 현실을 가리킨다. 쿠스노기 마을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나, 다른 세계나 공간도 역시 쿠스노기처럼 인간의 생존력이 감소하고, 문명을 이어갈 과학기술력과 심지어 행정제도까지 소멸되어갔다. 그런데 그 국장의 발언이 문제다. “우선 매 처음 잃어버린 제도를 하나하나 부활시킨다! 백성을 조종하고, 물류를 지배하고, 경제를 조작한다! 그렇게 되면 초 통일국가의 건국은 쉽지! 엘도라도(황금의 나라)는 내가 생각한 최강정치형태인 겉보기 민주주의, 사실은 절대군주제로 다스리는 거야! 렛츠 압제 정치!”

 

안타깝지만 옆에서 주인공과 박사 조수까지 그 말을 모두 듣고 있던 증인이 되었고, 심지어 조수에겐 요정사에서 만든 디지털 카메라까지 있어 충실하게 녹화 중이었다. 이번 사건을 꾸민 가공된 통닭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요정들을 모두 포박하고, 그들의 계략으로 인간의 경제구조와 사회구조를 변모하고, 정치적 행위로 이어갔다. 역시 정치적인 행위에서 최고의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수단은 전쟁임을 잊지 않았다. 요정사의 근로자들을 인간으로 내세우고 뒤에서 무기를 제조해 파괴한다는 전략을 말이다.

 

게다가 그 전복한 뒤에 기다리는 것 역시 기회주의자인 권력자들이다. 생각해보면 프랑스 혁명 때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지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1789년 루이16세가 미국독립전쟁에서 막대한 예산낭비와 지방자치기구의 폐지에 따른 자금투여, 각종 특권층과 신흥 세력에 대한 세금감면이 프랑스혁명을 만들었다. 이 프랑스혁명에서 자코뱅당이란 좌파가 주축으로 혁명정권에서 큰 주축이 되었고, 그 반대가 왕정당인 지롱드파 우파가 있었다. 지금 메르헨 세계의 이야기에 좌우파 논리를 집어 던지는 것도 웃기지만, 권력의 이전에 대해 생각하면 프랑스혁명이 성공했으나 당통의 죽음, 로베스피에르의 폭정, 테르미도르파의 반동, 그 후의 나폴레옹의 등장을 보면 그렇다.

 

딱히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에서 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어디서 눈치만 보던 군인이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 지금 이 메르헨의 세계에서 국장은 바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단지 무력으로서 집권하느냐 아니면 경제력으로 집권하느냐 차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니 자본주의를 필두로 한 세계 신자유주의에서 자본은 국경을 초월하고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니 경제력으로 정치권력에 막대한 간섭이 가능하다. 현재 국제정치가 경제적인 여건에서 군사력과 외교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 할 수 있는 발언이다. 물론 옆에는 조수가 폭로하고 있지만 말이다.

 

항상 권력과 음모에 대한 저항은 언론이란 미디어가 있기에 가능한 점에서 이 메르헨 공간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스토리가 오히려 현실적인 상황을 반증하고 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너무 잔혹한 코믹동화라서 코믹한 상황에 집착하게 만드는 작가의 집필능력이다. 매우 공손한 말투의 상황묘사에 대사마저도 주인공은 존댓말로서 표현하니 이것만큼 공손한 작품은 없게 보이나, 실상은 매우 도발적이란 점이다. 항상 말이 없고 조용하고 주인공을 잘 따르던 소년 조수가 이번 편에서 다시 활약한다.

 

그가 만드는 동화이야기를 같이 보면 모두 놀란다. 매우 현실적인 부분이다. 동물들의 친구이야기에서 결국 사자가 다 잡아먹고 다른 동물들의 뼈 위에서 자랑스럽게 서 있는 모습은 이것이 현실 속의 사자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 속의 사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Lion King>처럼 되기를 바란다. 현실의 사자를 우리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만나면 최대한 멀리 떨어진 게 현명하다. 그런 점에서 조수의 성격이 왜 그렇게 어두운가 라는 것이다. 겉모습과 달리 조수는 암흑적인 성격파탄을 소유한 자다. 요정사에 찾아와 주인공이 요정에게 개체수를 증대해달라고 부탁하나, 요정은 즐거운 것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때 조수의 동화책 “그림책-일곱 명의 어린아이”에서 ‘마을에는 일곱 명의 어린아이, 알란, 베키, 카알, 데라, 에드거, 플로라, 제프, 굉장히 사이좋아. 알랑은 숲에서 굶어 죽고, 베키는 늪에 빠지고, 카알은 마차에 치이고, 데라는 파도에 휩쓸리고, 에드거는 들개에게 냠냠, 플로라는 잘게잘게 통통통, 제프가 모든 일의 범인. 끝.’ 이 이야기를 보던 요정은 완전히 패닉현상에 빠졌다. 게다가 KID의 모습에서 문자텍스트에 상응하는 모습처럼 그림체 KILL 된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마음속의 어둠이 생겨나는 걸까요. 하면 고민하면서 조수에게 물어본다.

 

“여의사로군요. 그 의사선생님이 뭔가, 이렇게 사이코한 느낌으로 학대한 거죠? 큐브릭이라든가, 히치콕(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 사이코를 제작했다) 같은 노선으로..” 하고 묻자 조수는 오히려 부정하며 주인공에게 시선을 준다. 참고로 조수의 성격은 주인공이 수백명이 되어 주인공이 바라는 조수의 모습에서 결국 그 자체가 조수의 성격과 인격이 되었다. 문제는 주인공은 매우 공손하나 무의식적인 뒷면에는 매우 사악한 점이다. 조수를 만날 때 자신과 같은 소녀를 발견할 때 그녀는 화로를 살피면서 과자를 만들 수 있다고 하고, 주인공은 그 소녀에게 조수가 어디 있을까 라고 묻는데, 그 소녀(분리된 또 다른 자아)는 아마 화로 안에 있을지도 라는 대사를 한다.

 

결국 조수가 화로 안에 갇혀 불타죽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라는 발언은 상당히 정신적으로 사악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조수가 겉과 달리 속으로 상당히 어둠이 자라는 것은 주인공의 모든 요소에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조용하고 침착해도 때로는 매우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단지 그 방법이 매우 대책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해도 비합리적인 요소로 충만하다. 특히 제일 심각한 존재는 요정이라고 하나 그 요정이 어떻게 보면 인간들이 해온 것들과 비슷하다.

 

도통 논리적이지 못할 일들이 계속 반복된 우리 문명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합리적인 인간 즉 휴머니즘을 논할 자격은 있는가? 그런 요소가 이번에 등장한다. 인류가 쇠퇴하자 요정은 불어나는데, 요정이 너무 불어나서 똑같은 모습이 많아 너무 많은 인구밀집은 서로 간에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른바 차별과 폭력, 억압이 생기고, 우리가 언제나 신의 이야기인 신화가 바로 차별, 폭력, 억압에 대한 해방과 욕망으로 이어진다. 메르헨이란 동화는 순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함에 가려진 어두운 욕망의 검열이다.

 

인간사회도 인구과밀도가 높으면 그만큼 충돌이나 문제가 많아진다. 대신 인구밀집도가 낮아지면 그만큼 낮아진다. 전쟁의 역사에서 농업국가에서 주로 군대의 체계성을 이룬다. 자원의 고갈 내지 자원의 잉여가 그들을 필요에 의해 전쟁을 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소모를 위해 수행한다. 후자라면 더 넓은 농지와 그 농지에 들어갈 인구를 위해 전쟁을 하고, 더욱 더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요정 역시 인구과밀을 피할 수 없다. 인간처럼 먹지도 마시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나, 워낙 순간적인 비논리로 돌발행위를 하다 보니 예측이 불가능하다.

 

주인공은 할아버지 명으로 조금 먼 농가 인근으로 가서 정착하려고 하나, 운 없게도 호수 나루터에서 있다가 나루터의 나무가 너무 오래되어 근처 작은 섬으로 흘러간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이란 낯선 환경으로부터 굶주림과 추위, 안전을 위해 투쟁했다. 즉 의식주 문명은 추위에 견딜 옷과 생물학적 유지를 위한 식량, 악천후와 맹수로부터 방어할 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에서 가장 먼저 직면한 자는 주인공이다. 요정들은 그저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번식하고 사라진다. 오직 그들에게 즐거운 것만 있으면 삶의 활약일 뿐이다.

 

문제는 동기라는 점이다. 그 시발점은 무엇인가에서 요정들 스스로에게 그 의문이나 실천에 대한 계기는 없다. 오직 인간에게 받은 임펙트 만이 가능했다.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과 옷 그리고 전기와 식수, 집과 침대였다. 처음에 작은 요정들이 있을 때는 원시적인 생활에서 수 천명에 이르자 마치 한 나라의 여왕처럼 받들어 모신다. 실제로 주인공은 여왕을 군림했다. 여왕으로서 다소 입헌공화국과 같은 체계였으나, 실상은 여왕은 권력보다는 요정들이 하고 싶은 데로 행동할 뿐이다.

 

요정들의 과학기술력은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만드는 물품들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구조에서 그 법칙에 따라 결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법칙에 부탁해보았어요 내지 조금 수정했어요 라고 한다. 결국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법칙을 초월한 것이다. 코코아열매에서 초콜릿 재료가 나오나, 그 열매 자체에서 사탕과 초콜릿이 나오고, 우유도 나온다. 도저히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의욕은 넘치는데,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섬의 공간은 한정적이고, 자연의 재화는 일정하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항상 생각난 서적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다. 그동안 많은 문명을 가진 부족과 나라들이 모두 멸망했다. 심지어 최첨단 기술국가인 미국 내의 어느 지역 역시 사람이 살기가 불량한 지역이 넘친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자연의 파괴로 인한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딱 적중하는 편이 바로 모아이가 있는 이스터섬이다. 모아이라는 석상은 거대한 돌로 인간의 얼굴과 흉부상부를 새긴 것으로 이곳의 과거주민들은 모두 멸종했다.

 

그들이 멸종한 원인은 바로 숲의 상실이다. 숲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다. 나무라는 것은 물을 저류하고, 비가 오면 토지가 손실되지 않도록 지면의 응력을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무를 계속 베어내면 지면이 불량해지고, 지면의 에너지를 사용하면 그것에 상응하는 지력을 보충해야 하나 그것이 불가능했다. 토양의 유기물이 있어야지 요정들이 만든 식물들을 재배하나 그것에 대한 영양분이 없었다. 토양에 거름을 공급해야 하나 거름에서 인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인간인 주인공이고, 요정은 배설하지 못한다.

 

그들이 배출하는 것은 거의 물과 비슷한 소변이다. 소변이라고 하여 유기물질이 없는 액체다. 결국 모든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법칙을 어긋나더라도 본래의 자연마저 바꿀 수 없다. 문명이란 것은 결국 자연에 대하여 노동으로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에게 착취를 강요할 수 있으나, 요정에겐 놀이에 불과했다. 인간의 노동 요정의 놀이에서 노동은 하면 할수록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나, 놀이는 하면 할수록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요정이 같은 것에 반복하지 않고, 그들은 항상 새로운 것이 있으면 거기에 우루루 달려든다. 쉽게 모이고 쉽게 해산하는 그들의 특징에서 놀이는 결국 그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활력소는 문명에 건설이고, 문명의 건설에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는 유물론적인 토대가 필요하다. 자연의 자원과 에너지는 필수적이나, 지나친 개발로 토양은 황폐화되고, 식수는 오염되었다. <문명의 붕괴>에서 문명이 붕괴한 것은 문명 그 자체에 대한 붕괴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문명의 토대가 되던 자연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노동할 수 없는 인간이 없거나 혹은 노동력이 있어도 노동을 할 수 없는 자연이 없는 것이 결국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도시국가를 이룬다고 하여 문명국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공기와 물은 어디서 오는가? 결국 자연의 자체적인 운동에서 발생된 것이니, 이들의 순환과정을 과학적으로 본다면 물의 순환이 강우와 증발이란 점이다. 이 물은 결국 하천에 유입되어 취수장을 거쳐 정수장으로 들어간다. 취수장과 정수장은 인간이 노동으로 만든 산물이고, 그렇게 옮겨지는 물은 전기에너지로 옮겨진다. 결국 에너지가 있어야만 모든 문명의 보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에너지의 원천 자체 역시 자연이다. 석유와 석탄으로 해결하는 화력,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발전 등 모든 기본적인 재원은 자연에서 추출한 것들이다.

 

자연매장량이 한정적인 석유, 석탄, 우라늄, 플라토늄이 소모되어 무에 가까운 순간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할 수 없다. 바로 인류는 쇠퇴했습니다에서 주인공이 말한 전기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당히 동화 같은 이야기나 그 속에는 매우 과학적인 사실이 있다. 라이트노벨 자체는 모두가 현실이 아닌 가상을 서술한다. 가상을 서술하기에 그것이 가상이라는 사실을 각인하여 오히려 현실적인 요소를 반추하여 들어다 볼 수 있는 점이다. 왜 신화(神話)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도 계속 되풀이 되는가? 생각하면 간단하다. 인간현실에서 직시하지 않으려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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